2012 윈난‘아듀’여행 9-2

[불초]

28밴드 정상에 올라왔다.

해발 2650m의 그야말로 오금 졸이는 잔도(棧道)였다. 뒤이어 모두 무사히 올라오는 일행을 열심히 촬영하며 환영하였다. 옥룡설산은 더욱 다가와 윽박지를 듯하였다. 까마득한 진사강은 맹렬히 포효하였다. 초입에서는 잔잔하고 물소리도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협곡 전체를 울렸다. 특별히 수량이 불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아마 좁은 협곡이 스피커 역할을 하여 증폭된 것 같았다.

기슭만 밟아 온 합파설산의 연봉도 보였다. 진사강 옆길은 실선 같았다. 바람은 드셌다. 사진 찍기 좋은 바위는 천길 절벽에 위태로웠다. 강가 마을이 장난감 같아 내가 비로소 선계에 든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감싸 돌던 외로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茶馬객잔으로 내려서는 길은 교목의 그늘 속에 험하지 않았다.

호도협 물소리는 점점 커졌다. 일행의 발걸음은 쉬엄쉬엄 여유를 부렸다. 산굽이를 돌자 차마객잔이 포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호호 할아버지 한 분이 흰 부대와 손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살이라곤 한 점도 없는 새카만 얼굴에 허리는 굽었다. 그는 일행을 스쳐 지나며 웅얼웅얼 혼잣말을 하였다. 산세 하고도 안 어울리는 얼굴.

차마객잔은 한가했다. 닭과 소 그리고 아이 한명과 여자 어른이 눈에 띄었다. 유명세와 많이 달랐다. 발걸음을 쉬며 증명사진을 남겼다. 맥주 생각이 간절한 사람도 있었을 게다.

중도객잔은 두 시간, 8km를 더 가야 했으나 내리막에 평탄한 길이라 별 걱정은 안됐다.

그러나 그곳에 함정이 있었다. 웹상에서 차마객잔에서 포장된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야지 내려서면 안 된다는 주의였다. 아래 길은 강의 포장도로에서 올라오는 ‘지옥의 찻길’이었는데 우리팀은 윗길로 잘 잡아 첫 관문을 넘었다.

두 번째 관문에서 이번 여행 중 가장 큰 사단이 터졌다.

트렉킹 3시간이 넘어서면서 일부 멤버가 피로도를 보였다. 차마객잔을 지나 갈림길이 또 나타났다. 두 갈래 길은 모두 차가 다닐만한 큰 길이었다. 갈림목에는 큰 바위 두 개가 있었는데 그곳에 각 GH를 가리키는 3색의 화살표 3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바람돌이 멤버는 앞서 윗길로 올라가 머뭇대는 일행에게 그 길이 맞다고 오라고 하였다. 반면 고령 남성 멤버는 아랫길이 맞다고 주장하셨다. 우선 아랫길로 가서 다른 바위에 표시된 안내를 보니 ‘월넛 GH’와 포레스트 INN'이 써있었고 중도객잔 표시는 없었다. 돌아와 상황을 보고하고 이번에는 윗길로 가본다고 하자 ‘이 길이 맞는데 그런다’고 말하셨다. ‘여기 계시라, 위로 가서 알아보겠다.’하고 윗길로 가서 이미 모퉁이를 돌아가 안 보이는 바람돌이 멤버와 표식을 찾았다. 표식은 없었고 바람돌이 멤버를 불러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그림자처럼 합류한 호호 할아버지도 아랫길을 가리켰다. 그는 무엇인가 담은 부대를 굽은 등에 지고 흐린 눈빛으로 손도끼를 든 채 같이 걷는 내내 계속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여기서 나는 큰 실수를 하였다. 정말 의도하지 않았고 또 의식하지도 못했지만 나의 대답은 고령 멤버에게 고까운 어투였나 보았는데 몰랐다.

오후 네 시가 넘자 협곡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옥룡설산은 발치를 그림자로 가리고 위의 바위 덩어리로만 햇살을 받아 무겁게 반사하였다. 평탄하고 너른 길 끝에 중도객잔일 성 싶은 마을이 보였다.

중도객잔의 대문은 허름했으나 시설은 훌륭했다. 더운 차를 마시며 도미토리를 계약하고 저녁을 시키고 식당 옥상에서 어둠에 묻혀가는 설산을 바라보았다. 많이 내려와선지 아니면 넓어져선지 협곡의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짙었을 때 저녁이 준비되었다. 전망 좋은 곳이란 소문 때문인지 식당은 많은 트렉커로 붐볐다. 전기 사정이 안 좋은지 한두 번 불이 나갔고 촛불을 켰다. 그때마다 분위기 탓인지 식당 안의 트렉커들은 불평보다 환성을 지르며 촛불을 붙였다.

식당 안은 마치 한국의 어느 산장 같았다. 수많은 패넌트와 낙서 등이 열에 아홉은 한국팀 것이었다. 익숙한 이름도 몇몇 보였다. 세계 곳곳의 오지 여행지에서 동양인만 보면 일본인냐고 묻던 것은 옛말이고 요즈음은 한국인이냐고 묻는단다. 불같은 빠름과 벌떼 같은 유행의 속성이 이런 것에도 통용이 되나 보았다.

우리팀은 별미 오골계 백숙을 시켰는데 아주 훌륭했다. 빼갈을 곁들인 일행은 즐겁고 피로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 메뉴는 모 여행가이드는 자기가 개발한 것이라고 자랑했었다. 옛날 안나푸르나 트렉킹 중 ‘간드룩’에서 ‘영자치킨’이라 명명한 닭백숙 요리를 직접 개발한 사람이 바로 동행한 ‘맏언니’이었다.

식사 후 애프터에 고령 남성 멤버가 갑자기 무거운 얘기를 꺼내셨고 당사자인 나는 순간 망치로 맞은 것처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진중한 분이 하신 말씀이라 더욱 그랬다. 특히 내개 그분은 30년을 만나오면서 멘토이자 롤 모델로 존경하며 따르는 분이셨고 YMCA 에서도 상징이자 큰 바위 얼굴 같은 분이셨다.

그 분은 ‘박원장과 앞으로 더 이상 여행을 못 하겠다. 너무 이미로워선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시며 올 때 갈림길 대목을 예로 드셨다. 그때 내가 본인에게 짜증을 내며 무시하는 등 결례를 한 것으로 느끼셨다는 설명이셨다. 당시 그 분이 조금 피로했고 짜증을 내셨고 그 원인도 나름 짐작은 하였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서 그분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내 잘못이었다. 죄송하고 언행을 조심하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그런데 그분은 한 걸음 더 나가셨다. 수허고성에서 ’본인은 사방가에서 있자고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럴 분이 아니신데..... 당시 그분은 東門을 찾으며 짜증을 내셨고 나는 수허대문이 맞을 거라며 사방가에서 쉬시면 내가 돌아다나며 찾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관계가 전혀 달랐다. 이번까지 8번의 해외여행을 함께 하였지만 그분은 술을 드셔도 절대 틀린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데. 꾸중을 듣는 것과 사실관계는 별개 아닌가 하니 순간 나도 흥분을 하였다. 결국 더 큰 잘못을 또 저지른 셈이었지만. 수허고성에서 맏언니에게 혼난 일이며 그동안 그분과 갈등을 혼자 삭혔던 것이 발단이었다.

‘식사 끝나셨죠. 술 다 드셨죠. 저 먼저 들어갑니다.’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차고 방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실수와 무례를 범하였다. 항상 급한 성격과 미숙한 인격 때문에.

잠이 올 리가 만무했다.

그분과 바람돌이 멤버가 맥주 두병을 들고 돌아 오셨다. 그분은 술을 따라주며 ‘박원장이 요새 조급해지고 화를 잘 내는 것 같다’고 덧 붙였다. 다시 사죄를 했다. 이때 바람돌이 멤버도 같은 말을 했다.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치미는 것을 간신히 눌렀다. 그분에게 혼나는 것은 당연하고 무척 깊이 생각해야할 문제지만 아무리 돌이켜도 한참 연하의 바람돌이 멤버에게 책망을 들을 일을 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행 전이나 여행 중에도 그의 언행이 거슬리는 것이 많았는데 이게 무슨 부채질에 적반하장!

두 분은 잠이 들었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큰 실수를 하였다니...... 오늘 하루를 싹뚝 잘라내어 없앴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보름에 가까워 한없이 밝은 달과 깊은 밤이라 쌀쌀한 냉풍을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휘둘렸다. 날 밝으면 그간의 내 심정을 모두 까발리고 길고 짧은 것을 대보나. 그러다가도 이내 머리를 저었다. 바람돌이의 언행은 ‘까짓꺼’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새겨볼수록 심각했다.

이번 여행 중에만 느낀 소회를 말씀하신 것이라면 사죄도 드렸고 나름 변명이나 핑계를 댈 수 있기는 하였다. 물론 내 잘못은 당연한 것이지만.

고민은 이번 중에만 아니고 평소 교류할 때에도 느끼신 바라면 이는 나의 오만방자함과 안하무인의 결례를 가장 믿고 존경하고 따르는 분에게 저지르면서도 깨닫지도 못한 인격적인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귀국해서도 나의 일상에 많은 ‘숙제’를 안겨주는 것을 의미였다. 졸지에 무거운 ‘숙제 여행’이 되었다.

[현재미래로]

아! 대단하네요. 멋진 풍경입니다. 옥룡설산 어디에서 많이 들었던 것 같아 생각해 봤는데요. 옛날에 읽은 중국 무협소설에 나온 단어 같아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하도]

네 ~
대단하군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