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프지만 진정 흥미로운 책!
프레드릭 웨이크맨(캘리포니아대 동아시아 연구소장)
장래가 촉망되던 미모의 역사학자가 목숨과 바꾼 기념비적 역작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알아야할 비극의 역사를 만나다
대학살을 잊는 것은 두 번째 학살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리 위젤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역사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풀리처상 수상자 카를로스 로물로
1937년12월13일 난징은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난징 성벽에 올라가 환호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난징 시민들의 시체는 양쯔 강둑으로 끌려가 강에 던져졌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아이리스 장을 위한 짧은 묘비명
죽음
그녀는 어렸을 때 조부모들이 난징대학살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났던 것이다.
양쯔강 남부에 자리잡고 있는 난징시가 두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에 막혀 있다.
처음에는 북쪽으로 굽이쳐 흘렀다가 그 다음에는 동쪽으로 굽이쳐 흐른다.
상하이와 난징 사이에 걸쳐 있는 호수 타이후(太湖)
쑤저우의 인구는 35만명에서 500명으로 줄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8천~20만 명 정도의 여성을 위안부로 만들어 1938년 난징 근처에 공식적으로 첫 번째 위안소를 설치했다.
중국 서예와 회화의 규범이 정해지고, 중국어의 사성 체계가 확립되었으며, 불경이 번역되고, 산문과 운문이 혼합된 고전적인 육조 스타일의 문장 체계가 확립된 곳이 바로 난징이었다.
1911년 쑨원이 중화민국의 첫 임시 대통령이 된 곳도 바로 난징이었다. 지금도 난징 사람들은 이 도시에 쑨원의 무덤이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서쪽으로 흐르는 양쯔 강과 동쪽에 자리잡은 쯔진 산 때문에 난징의 지세는 똬리를 틀고 있는 용과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북동쪽으로는 쯔진 산을 등지고 있는 쑨원의 거대한 무덤과 난징 최고의 갑부들이 소유한 저택들이 보인다. 북서쪽으로는 활발한 산업 활동이 벌어지는 항구 지역이 펼쳐졌다.
일본군이 난징이 진입했을 때, 힘 있고 돈 있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 도시를 떠난 후였다. 대략 난징 주민의 절반 정도가 도시를 빠져나갔다. 전쟁 전 이 도시의 인구는 약 1백만 정도였는데 12월경에는 5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군인들이 떠난 후 성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아이들, 노인들, 가난한 사람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 등 그야말로 가장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기도, 반란을 일으킬 여력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샤오멘코 가의 친구 집에 숨어 있었다. (탕슐산) -마치 하늘에서 비가 아니라 피가 쏟아져 내린 듯 사방에 피가 튀어 있었다.
산 채로 묻기, 사지 절단, 불태우기, 동사시키기, 사나운 개의 먹이로 던져주기, 염산이나 황산에 담그거나 아기를 대검으로 찌르거나 사람들의 혀를 뽑아 매달았다.
1937년과 1938년, 한 독일 외교관은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여성들이 양쯔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일본군은 난징의 모든 여성을 철저하게 능욕했다.
농부의 아내, 학생, 교사, 노동자, 대학교수, 여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강간을 당했고, 많은 경우 여러 명의 병사들로부터 집단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난징에서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은 잔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진링대학교
일본군에게 저항하다 서른일곱 군데나 대검에 찔리고도 살아남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리 소잉.
난징의 나치당 리더 존 라베; 수십만 명의 중국인을 구한 국제안전지대의 전설적인 지도자
1908년 지멘스 차이나의 베이징 사무소에 취직-1931년 난징 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그는 중죽 정부에 전화기를 비롯한 각종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일을 맡았다.
쯔진 산이 불 탈 때 난징은 사라진다.
저자: 아이리스 장 IRIS CHANG
아이리스 장은 1967년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미국국적의 중국인 2세로 태어나 일리노이주 샴페인-어배너에서 자랐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Ap와 시카고 트리뷴에서 잠깐 기자로 일한 후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6세 때 발표한 첫 책 누에의 살 (Tread of the silkworm)은 중국의 미사일 프로그램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난징에서 일본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들으면서 자라난 그녀는 난징의 강간을 악에 대한 메타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거대한 범죄가 잊혀진 역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그녀는 The Rape of Nanking (한국판 제목;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_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을 썼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의 수도인 난징에서 자행된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폭로한 이 책은 출간된 첫해에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60만부가 팔려나갔다.
아이리스 장은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다큐멘터리 작가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난징 희생자들을 위해 싸우는 행동주의자이자 미국 내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부각된다. 또한 책이 출간된 후 열린 미국의 한 티브이 토론회에서 아이리스 장은 주미 일본대사와의 격력한 논쟁에서 철저한 증거와 논리로 일본대사를 압도하여 꼼짝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이 책은 1957년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과 만행의 참상을 생생히 되살려, 영어로 쓰여진 난징대학살에 대한 훌륭한 첫 번째 보고서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일본 학자들과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아이리스 장의 책은 사실 왜곡과 날조라고 반박하며 아이리스 장에게 전화와 메일,시위 등의 방법으로 협박하였다. 한편 이 책을 일본에서 한 출판사가 번역출판하려고 하자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책을 반일위서로 규정하고 출간을 저지하기 위해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개최하였다. 결국 이 책의 일본판을 출간하려고 했던 출판사는 계약을 파기하고, 일본에서는 출판조차 되지 않은 이 책의 비판서들이 등장하고, 그 비판서들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난징 희생자들이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중국 정부도 대만 정부도 그리고 수많은 역사학자들도 침묵하고 있는 동안 진실을 향한 순수하고 지적인 열정으로 수백만 명의 방관자들 속에서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책을 저술했다. 이후 그녀는 취재과정에서 얻은 우울증과 일본 극우세력의 협박에 시달리다가 2004년 샌프란시스코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난징에 남아 있는 수십만 개의 주인 모를 무덤에 바치는 묘비명이라고 명명한 The Rape of Nanking은 그녀의 진실을 향한 열정과 가녀린 목숨을 모두 던져 이뤄낸 기념비적인 역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