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테는 독일이 낳은 천재시인이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엔 괴테가 있다. 괴테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다. 그는 시인인 동시에 극작가, 정치가, 과학자, 변호사였으며, 바이마르공화국의재상(총리)이었다. 뿐만 아니라 생물학자, 경제학자이며 자원과 에너지 정책의 총 책임자 동력자원부 장관이었다. 독일문학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는 1749년 8월 28일 마인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1832년 3월 22일 83세의 나이로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쳤다. 아버지 요한 카스파 괴테는 38세, 어머니 엘리자베트 텍스토르는 17세가 되던 해인 1748년에 결혼했고, 이듬해인 1749년 첫아들 괴테를 낳았다. 괴테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그마치 21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이를 두고 어느 교수가 대학 강의시간에 천재 자녀를 원하면 부부의 나이 차가 적어도 20년은 되어야 한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라고 했다. 괴테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한 가지 흠은 있었다. 바로 화려한 여성편력이다. 영웅호색이라고 하던가. 한마디로 괴테는 지독한 바람둥이였다. 괴테의 인생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여성은 5명이요, 괴테가 사랑하고 흠모했던 여성은 9명이다. 이처럼 공개된 여자만 14명이지 실제 괴테를 스쳐간 여성이 몇 명인지는 괴테 자신만이 알 것이다. 대체 괴테는 몇 명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 걸까. 일반적으로 많은 여성을 만나는 남성에게는 바람둥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게다가 유부녀를 사랑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세간의 비난을 받는 사랑도 예술가에게는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원동력이 되는 듯하다. 괴테를 두고 한 말이다. 괴테에게서 여성을 빼면 작품을 말하기 어렵다. 그의 마음을 흔들었던 흔적들은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작품 덕택에 평생 그가 갖고 있었던 바람기는 그리 흠이 되어 보이진 않는다. 괴테의 첫사랑은 그의 13~15세 무렵 첫눈에 반한 그레트헨이다. 술집 심부름을 하는 여성이었는데,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묘사했다. <파우스트>에서는 늙은 학자 파우스트가 악마의 유혹으로 젊어지는 약을 먹고 회춘해 그레트헨이라고 하는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와 사이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사건들이 파우스트 1부의 내용이다. 괴테가 19세 때 자기 어머니의 친구인 26살의 연상 수산나 폰 클레텐베르크를 좋아했다. 어머니 친구를 좋아하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클레텐베르크는 깊은 신앙심을 갖고 살아가는 독신 여성이었다. 괴테가 중병에 걸려 라이프치히대학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에 돌아와 힘들어 할 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괴테의 대표작 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있다. 독일 문학계의 낭만주의를 제대로 보여주는 고전이자 면도칼처럼 서슬퍼런 연애소설이며, 가장 슬픈 러브스토리다. 이 작품은 괴테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이 소설에서 로데의 검은 눈동자가 나오는데, 그는 괴테가 사랑한 ‘막시밀리아네’이다.
괴테의 놀라운 여성편력은 끝이 없다. 1823년 여름, 74세의 괴테는 부인과 사별 후 이제 겨우 19세인 울리케 폰 레베초프에게 청혼을 한다. 둘 사이에는 무려 55년의 어마어마한 생물학적 시간차가 존재했다.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괴테의 아들은 청혼에 대해 고민하는 괴테에게 무척 화를 내며 반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괴테의 청혼에 황당한 울리케 어머니는 인근 도시 까를로비 바리로 이사를 가버렸다. 하지만 울리케에 대한 사랑 열병은 식을 줄 몰랐다. 괴테는 그 곳까지 찾아가 울리케를 불 수 있게 해달라고 애걸했지만 결국 둘 사이의 사랑은 슬픈 이별을 고하는 것으로 그 끝을 맺는다. 그러나 괴테의 총애를 받았던 울리케의 운명은 의외로 박복했다. 그는 아주 매력적인 여성으로 성장, 뭇 남성들의 구애를 받았지만 이를 한사코 거절했다. 울리케는 무슨 한이 있었는지 평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살았다고 한다.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괴테의 영혼의 포로가 된 것일까. 이루지 못한 둘의 애틋한 사랑은 그렇게 문학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불멸의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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