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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걷고 있을 때에 ‘주앞에 내가 서 있네~ ’ 찬양을 하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자꾸 울어 대는 모습이 떠 올랐다.
그러니깐 지금도 저 좋은 천국을 누리고 산다고 하는데, 그래도 주 앞에 서면 무지장 울것 같다.
그게 항상 여기 마음에 있다.
그것이 첫사랑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감격인가보다.
이땅에 살면서 천국을 누리며 입신이나 꿈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 I love You!”하는데도
마음 한쪽으로는 만약 내가 하나님 앞에 서면 무진장 울 것 같다. ......... ...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감격이 너무 셀 것 같다.
미국으로 가방 하나 들고 이민을 올 때에
양희은의 아침 이슬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노래하며 왔었다.
군에서 제대할 때에도 이 노래를 하며 제대를 했었다.
몇 주전 월요 기도 모임이 끝나고 적은 호다 식구들이 모였을때에
왜 이 노래를 무시무시한 노래라고 했냐면?
나 같이 착한 사람을 그 노래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데 까지 끌고 간거다.
그래서 미국 이민을 올 때에 그 노래를 부르면서 이민 가방 하나 가지고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미국으로 왔다니깐요.
서러움 다 버리고서
서러움 다~ 버렸으니, 이제는 죽어도 괜챦다고 하면서 미국으로 왔다니깐요.
여러분들은 내게 “집사님은 젊은 시절 연애를 많이 하고 아가씨들과 춤을 추고 잘 놀았는데,
무슨 서러움이 있으세요?” 하실텐데
그 자체가 서러움이다.
지나고 보니 그게 서럼움이다.
서러움을 다 버리고 왔는데, 하나님께서 LA 공항 문간에서 12시간 넘은 늦은 시간에
멋진 할아버지 신사 모습으로 오셔선 “AreYou Won Koh?” “I welcome you!”
“Take care ! good bye.”라고 잘 왔다고 할 줄은 몰랐었다.
그 노래가 이렇게 착한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 노래가 ‘죽어도 좋다.’ 살인의 영이 들어와서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러구 있었다.
군에 전방에 배치되어 전 소대장에게 첫 임무를 전해 받은 것이 지뢰밭 지도였다.
주변 나무들은 다 채취를 해서 겨울 땔감이 없어 지뢰밭에 땔감을 구하러 부하들을 보내던
그 시절들이 다 지나가면서 ~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과거에 나를 죽일려고 했던 이 노래를 찬양 가사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곡에 찬양 가사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때 아비 가일 자매가 그 내용으로 카톡을 보내 왔다. 아비가일 자매가 지식의 말씀의 은사로
그 내용을 보내 준 것을 간증에 올려 여러분도 보았을 것이다.
같은 곡조이지만 30년 전에 ‘서러움을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했던 before와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하며 천국 소망 하나 가지고 살고 있는 after의
지금의 모습을 가사로 붙혀 말해 주고 싶은 거다.
내가 주님을 만나고 변한 after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다.
우리 과거 쥐엄 열매 먹던 이야기를 해야 공감이 가지요.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before 에서 after 이다.
before가 없이 어떻게 after이야기를 하겠는가?
어제 다솜이 친구 제인이 말하기를
자신이 만났던 크리스챤들은 밝은 쪽만 이야기 했다 한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말한 사람을 보면, 밝은쪽 보다는 부정적이면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거다.
그래서 예수를 안 믿었다 한다.
그런데 다솜이는 양쪽 사이드를 다 이야기 해주면서
이제야 예수를 믿으면
이쪽 사이드도 있다는 것과 죽을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동안 제인을 전도했던 많은 친구들은 하나 같이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고 밝은 쪽만 이야기한거다.
실제로 100% 예수님을 믿으면 그렇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솜이가 호다에 와서도 영적전쟁을 하면서 천국을 향해 간다고 이야기 해주니깐 제인이
놀라와 했다 한다.
새술에 취한 자가 간증을 올린 것도 before에서 변한 after를 이야기 해주는 거다.
before를 생각해 보지 못 했다는 것은 회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 줄 모른다.
만약 여러분이 죄를 회개 해 본적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사는 지금의 이 삶이 얼만큼 좋은 줄을 모른다.
죄를 용서받은 구원의 감격이 얼마나 좋은 줄 모른다. 회개가 터져야 한다!
그러나 과거를 생각을 안 한다. 왜 ? 무시무시하거든요.
근데 왜 과거의 지은 죄를 돌이키며 회개를 하지 않냐면?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서 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회개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 “잘못했어요!” 라며 회개하면 “너! 어떻게 그런 죄를 지었니?”하시며
군밤을 때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쟎아요.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을 하기 위해서 회개를 하라는 거다.
회개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 쥐엄 열매를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내가 항상 밝은 빛이 였는데, 무슨 회개 할 거리가 있냐?”그럴텐데,
그러니깐 그 분들은 쥐엄 열매 먹던 befor와 변한 after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래서 미국에 이민 들어 올때 자정 공항에서 하나님이 마중 나와 말씀 하신 것 하고
그 노래가 이렇게 되었구나........
before애기를 안 하면 현재가 after 어떻게 있어요?
몇달을 할려고 했는데, 오늘도 못하고 다음번에 하라시나보다.
다음 번에 내가 초벌로 작사 한 것을 발표할테니, 글솜씨 있는 여러분들이 더 멋지게 만드시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깊고 넓고 높다고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다.
내가 늘 말하던 것이, 성령님보다 앞서지 말라고 했다.
성령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 지켜보시고
만약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라면
심지어 목숨을 내 놓으라고 해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여러분들이 내게 배울 것은 성령님 보다 앞서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내가 여태까지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여러분을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지 않았쟎아요.
성경에 얼마나 추한 이야기가 많은가? 그걸 통해서 누가 나오셔요?
예수님이 오셨다.
내놓기 정말 부끄러운 족보이다.
우리도 내놓기 부끄러운 족보인데 그것이 예수님 족보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냐며?” 나다나엘이 질문을 한다.
그건 우리 생각이다.
내가 어떻게 과거 쥐엄 열맨 먹던 곳에서 나와서 여기에 이르렀는지 말해주어서 여러분이 다 알쟎아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거다. 내가 절대 못 하는거다.
성령께서 하시면 내려놓구.
손해 보는 것 같고 아닌 것 같아도 성령께서 하시는 거구나? 하면 자신의 생각을 내려 놓고......
여러분, 성령께서 하시는지 아닌지 무엇을 보고 알아요?
“열매를 보고 알아요” 라고 자매님들이 또롱또롱하게 대답을 하셨다.
이것을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알라고 이야기 하려고 한다.
사도바울이 몇대를 몇번 맞았나요?
39대를 5번 맞았다.
정말 39대를 맞았어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있어요.”라고 형제자매님들이 대답을 하였다.
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태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범죄의 종류에 따라 매질의 횟수가 정해졌는데
최대한 40에서 하나 감한 39대 까지만 허용되었다.
그 이유는 죄수에 대한 인격적인 배려 차원에서 과잉형벌을 방지하기 위한 거였다.
40대를 맞으면 죽는다고 보았다.
바울은 39대를 맞았다는 것은 거의 죽을 만큼 맞았고,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렷는데 살았다.
39대를 맞은 것이 아니라 40대를 맞으면 죽는데 죽기 바로 전까지 맞은 것이었나보다.
근데 바울이 맞다가 죽었는지 내다 버렸는데, 그 후에 살았쟎아요.
그럼 태장을 때린 사람의 실수로 기절해 있던 바울을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렸을까요?
죽었었던 것 같다. 성경에는 죽었다는 말은 없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죽었다.
때린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가?
죽었으니 내다 버렸다. 게다가 의사인 누가가 기록을 했다.
태장을 맞다가 죽어서 내다 버렸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바울을 살리신 거다.
나는 그렇게 본다. 죽어서 내다 버렸는데, 할일이 있으니 하나님이 살리신다.
여러분이 박해를 받으면 육적인 박해 뿐 아니라 영적인 박해를 받으면
여러분이 죽을 것 같다.’ 내가 뭐 이러면서 까지 예수를 믿어야 하나!’ 할 정도로
39대의 태장을 영적으로 받는다고요.
그러나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살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걸 보면서 상식적으로 알라고 말씀을 드렸다.
어제께 목사님이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교를 하시는데, 제가 조금 업그래이드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창12:4~20 )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는 살리리니
13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내가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제대로 알려 주려고 한다.
여러분 가운데 물론 제대로 알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지난 주에 누가 가나안 땅으로 가기로 작정했다고 했지요?
아버지 데라...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이르러 미적 거리다가 데라는 죽고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하는데,
거기에 보면 아버지 데라가 말한 것이 있으니,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지나친다.
제가 애기 하고 싶은 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
장막을 치도록 내버려 두었겠는가?
만약 여러분이 땅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땅에 누가 와서 소양을 치겠다 하면 가만히 내버려 둬요?
거기다가 진을 치려고 천막까지 치니깐 “야! 무슨 소리야 우리 땅이야가 !”그런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할 수 없이 거기를 떠난다.
세겜땅 모래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게 준다. “하니 아브라함이 단을 쌓는다.
거기 가나안 사람들이 한국말로 하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사람이야!”하며 난리를 부려, 아브라함이 장막을 못 치고 옮겨간다.
동쪽으로 간다.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단을 쌓으니
“야! 우리 땅이야! 내려가!”
그래서 남방으로 내려갔는데, 그땅에 마침 기근이 와서 애굽으로 내려간다.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그 가나안 땅 사람들이 장막을 못 치게한다.
내가 이것을 읽으면서 이상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 가면 하나님이 “이제 됐다! 여기까지 온 다고 수고가 많았다”
“네게 약속한 땅이다!” 하셔야지. ............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에 장막을 못 치게 하면
“무슨 소리야! 하나님 내 신이 내게 준 땅이라고 그랬어?” 하며 아브라함이 가나안 사람들과 한판 붙어야지.
가나안 사람들이 장막을 못 치게 해서 아브라함은 장막을 옮기고, 못 치게해서 장막을 옮기고 한거다.
또 옮긴 남방 땅에 기근이 들어서 저 애굽까지 가는 거다.
그리고 애굽에 가서의 그 뒤이야기를 잘 아신다.
애굽왕이 사라을 데리고 가서 아내를 삼으려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는데, 전염병의 재앙을 내려서
사라를 돌려 준다.
목사님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 가라했을때에,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냥 견디고 있어야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아니하고 , 남방으로 피해 도망가다가 아내까지 뺏길뻔 했다’ 며
하나님의 말씀이면 힘들어도 순종하라고 설교를 하시는데, 이제까지 그리 늘 듣던 설교였다.
그동안 제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보면서 많이 겪은 거다.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어려움을 만나면,
“이거 하나님께서 하시라고 했는데요?”
“이 집 저한테 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서 이것을 해야 해요!”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목사가 되어야 해요! 선교를 나가야 해요!” 라는 말씀들을 하신다.
거기에 딱 묶여 버린 그런 사람을 보았는데, 나중에 그 사람들의 신앙이 어떻게 되냐면?
굳어진다. 바리새인처럼 되어버려! 그것이 거짓일 수 있는데,
그 다음에 어떤 계기가 되어서 성령께서 다르게 이야기 하시는데, 이 사람에게는 안 듣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갔더니 가나안 사람이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우리 땅이야 저리로 가!” 하니 아브라함이 그래서 딴데로 간다.
내가 이렇게 보면서 ‘아브라함에게 성령이 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내 땅이야! 가라!”했더니 아브라함이 또 떠난다.
산으로 갔다가 “ 아니야! 내 땅이야! 가라!” 그랬더니 단만 쌓고 또 떠난다.
근데 오늘 목사님 설교에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셨다하면, 꼭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 땅에 있으라고
설교를 하셨다.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뭐냐면?
여러분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에요!” 라고 하는데, “글세 그런가?”......하시며
그런가 아닌가를 상고해보시라.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경직되어 가지고 신앙에 유연성이 없고 사랑이 없어져 하나 밖에 모른다.
그게 예를 들자면 어떤 면에서 보이냐면? 은사 중지론.
딱 배운 다음에 고착되어서, 은사라고 하면 다 무조건 듣지도 않는다.
이해할려고 생각지도 않는다.
지난 주에 이야기한 것처럼 성령님이 임하면 바람이 불데,
어디서 불어 오는지 모르는 것 처럼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다.
요3: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성령이 들어오면 성령에 끌려 가니깐 어저께는 이쪽으로 왔는데,
내일 하나님께서 저리로 끌고 가시면 그리로 가는 그런 것이 성령의 사람이다.
우리는 신약에 들어 왔으니깐 성령님이 이끄신데로 끌려 가야지.
낼 무슨 일이 있을런지 모른다니깐요.
띠 끌려 가는 거다.
하나님이 오늘 이렇게 이야기 하시다가, 낼 또 얼마든지 다르게 이야기 하실 수가 있다.
거기에 민감해야 한다.
성령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은 그때 그때 성령께서 말씀 하시는 것 들이 있다.
지난 주에 성령께서 제게 말씀 하신 것이 있는데, 그 전주와는 다를 수가 있다.
어쩔때에는 “지난번에 그것은 틀렸고 오늘은 이거다! “ 그렇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러면 순종해서 이야기 하는 거다.
내가 만들어 간 것이 아니다. 주신 데로 받아서 말하는 거다.
제가 이야기 할 때에 이것 했다가 저것 했다가 하는데,
일주동안 그렇게 이야기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를 죽~ 주시면서 설교를 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것했다가 저것 했다가 받아 적어 두었다가 월요 모임때 이야기 하는거다.
그래서 말씀 받았다고 해서 하나 ?! 붙들어 늘어지지 마시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시며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의심하고 어려움이 오자 순종 못해 떠나서 아내도 빼앗길 뻔 했다.’ 며
늘 설교를 하시는 것 대해서 , 전에는 100% 믿었다.
근데 어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구 오히려 내가 아브라함이었다면,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내 땅이야! 떠나라!”
그러면 떠나가고
그래서 옮겨 산으로 갔더니 “여기도 안돼!” 하니
“여기도 할수 없구나. 여기도 아닌가?” “ 떠나 가아야되나 보다.”하며
그렇게 되지 않았나?........
제 과거를 보니깐 그렇게 하셨다.
겸손한자의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했다면 하셨어야지 할 것인데,
아니고, 하나님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을런지 모르겠다.
우리가 교회에서 기도하지 말라며 ?겨 났쟎아요. 그러면 “그것이 아닌가 보다...” 했더니,
나가보니 하나님이 더 좋은 데를 주셨다.
그 당시 ?겨 났을때에 만약
“아니, 어찌 하나님께서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겨 낼 수 있어요?”
하면서 씩씩 거리고 있었다면.........
하나님 방법은 “네 그럴수가 있다.”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처음에는 우리를 교회에서 기도하게 그렇게 하셨는데,
시간이 지나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에서 끌고 나오셔야 했다.
주일날 아침에 예배 전 한시간씩 전에 나와 오늘 드려질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데
기도를 못 하게 하셔서
그래서 레고를 해서 45분까지 기도를 할께요 해서 45분까지 기도하고 그러구 가는거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일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여러분이 겸손해 진다. 그것을 듣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 꼭! 해라!” 가 아닐 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아니다. 우리는 모세가 아니고 사도바울과 같지 않다.
세례요한, 사도요한 같지도 않다. 우리는 요모양이다. 요모양 가지고 할려니 할수 없다.
바람 부는데로 성령께서 이끄시는데로 ..........
목사님이 어제 설교하시는데 전에 같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으니 당연하지 그렇지! ” 했는데,
지금은 그럴힘이 없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성령께서 그만 두라면 ok 하고 그만 두는거다.
베스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만 믿고 가는거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 여기 와서 보니깐 이게 베스트이다. 이게 베스트였는지 제가 알겠다.
내가 전에 말했었다. 천국갈 때까지 딱 한사람이면 된다고,
애기할 수 있는 사람 딱 한사람이면 된다.
두 사람이면 싸우니깐 골치 아프고, 한 사람이면 싸울것도 없다.
지금 여기까지 베스트로 이끌고 오셨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의 과거를 보는데, 그런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이 메꾸어 버리고
다른 곳을 옮기고 “이것 하나님이 내게 준 것 이다!” 면서 싸워 본적이 없다.
옮겼더니 또 메꾸어 버리고, 또 옮기구!
근데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우리의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그런 사람을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떠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셨다구요?”
할 것인데,
아닐 수도 있다. 하나님이 말씀 하셨을 때 떠난 아브라함은 이미 옛날부터 꺽어 졌을 런지 모른다.
모세가 얼마나 센사람인가?
주먹으로 사람을 때려 죽인 그 모세가 나중엔 부들부들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죽일려고 하는데도 “하나님~” 하면서 엎드려 지는 거다. 그런 사람을 쓰신다.
‘어쩜,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이 애굽으로 옮겨 갔나? ‘하며 우리는 그렇게 보면서
만약 하나님 말씀이 떨어지면 꼭! 붙어 있으라고 그러는데
그 안에 성령님께서는 “아니지?~”하시며
결국 그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쓰신다.
굉장히 우리가 묵상할 것이 있다. 나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말씀 주셨다고 딱 고정되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회하시는 가보다 이리로 가라시나 보다 하시며,
오른쪽을 때리면, 왼쪽을 돌려 데려나 보다 하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럴려면 여러분이 바보여야 하는데, 여러분이 바보가 되려면,
바보같이 기도하기 전에는 바보가 절~대 되지 못한다.
기도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똘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 똘똘하다 .
그런데 똘똘 한 사람은 절대 천국을 못 들어간다.
똘똘해서는 절대 천국을 못 들어 간다.
너무 똘똘한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 있다니깐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안 듣는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가까이 하자고 그러신다.
가까이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무슨 방법이예요? 기도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기도를 하면 가까이 하시겠데. 그러면 그분은 오셔서 무엇을 해요?
만나 주시겠지요.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겠지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만들겠지요.
그것이 겸손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를 치면 저리로 가고 성령님만 의지해서 떠밀려 가는 것이다.
성령님만 의지해서 떠밀려 가다보면, 음성이 들린다고요
여러분,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
공격을 받아도 이 마음 안에서 그분은 자꾸 말씀을 하신다. 이 안에서 기쁨을 자꾸 주셔서 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본다.
남들은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내 안에서는 성령님의 소리가 들린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 주신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고 싶으셔서 .......
왜? 성령님은 뜨거운 불이다. 성령님이 임하면 뜨거워진다니깐요.
여러분 가운데 뜨겁지 않고 맹숭맹숭한 사람이 있다.
왜? 성령님은 불인데, 불이 안 들어와 안 뜨겁다.
불이 들어와야 뜨거운데, 근데 불이 그냥 떨어지나?
물론 때론 그냥 떨어지고, 하나님께서 그냥 선물로 주시기도 하시는데,
여러분이 구할 때 주신다구요. 우리가 구한 것 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으로 보여 주시겠다고 하셨다.
불덩어리 요정도가 아니라 원자 폭탄 같은 것으로 주신다니깐요.
그 원자 폭탄 성령의 불을 받으면 세상은 간곳없다 한다니깐요.
여러분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숱태 안 믿는 다니깐요.
그러니깐 바보기도가 무엇인 줄 모른다.
바보기도가 무엇인지 체험 하신분 있어요?
남들이 보면 이루어진 것도 없는데, 왜 저 사람은 바보처럼 맨날 교회에 기도하러 가냐?
여러분도 “내가 바보인가? 이루어 진 것도 없는데 밤낮 기도하러 가고 이러구 있냐? ”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바보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바보처럼 그냥 쭐래 쭐래 기도하러 교회에 간다.
앉아서 기도하다가 집에 갈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찬양하다가 올때도 있고, 맨날 그러구 있어.
그게 바보기도이다. 그걸 누가 보고 계시지요?
여러분에게 발려진 어린양의 피를 누가 보고 계신다고 했지요?
우리 아버지가 보고 계신다니깐요.
그건만 생각해도 여러분 감격이다. 여러분이 바보처럼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누가 봐요?
우리 아버지가 보고 계신다.
그게 바보 기도이다. 그래야 뜨거운 성령을 받아서 견딜수가 없다.
견딜 수가 없어서 그분이 이끄는 데로 가게 되어 있다.
그 아브라함이 바보 같은데 그 사람이 수태 많은 민족의 아버지이다.
여러분 성경 책으로 아브라함의 스토리를 보니 쉽지요?
아브라함이 되어 보시라니깐요. 지금도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깐요.
“아니, 아내를 팔아먹는 그 아브라함을 남자라고 그래?”
“아내 팔아먹어 돈 벌었냐? “ 하며 그렇게 손가락질을 했다니깐요
근데 하나님의 뜻은 모른다.
하나님의 때에 보니깐 그 사람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어 버렸다.
천국에 들어가는 오리지널이 되어 버렸다. 아브라함 믿음 없으면 천국도 못 들어가고
예수님을 믿지도 못 했다니깐요.
이게 자다가도 놀랠일이요 길 가다도 놀랠 일이다.
생각해보면 감사하지요 .
이제는 이 땅의 서러움다 버리고 우리 집에 간다고요.
이제 내 집에 간다.
오늘 내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지난 주에 걷는데,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예요!”하며
혼자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 처럼 혼잣말을 하면서 길을 걷고 있는데,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냐면?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좀 그만좀 해라!
아이구, 지겹다!” 그러구 뭐라고 하시냐면?
“내(하나님이 말씀 하신면서 )가 사랑이야!”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들은 것을 남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쟎아요 .
“여러분 , 하나님은 사랑이시래요.”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라고 설교를 내가 그러구 있더라구요.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라고 말할때에는, 나 하고는 관계가 없는 말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남이야기 하듯 하지 말고,
너는 앞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에 “내(하나님 )가 사랑이야!” 이야기 하라 하셨다.
제 삼자가되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설교 하지 말라고
내가(하나님) 사랑이야!
내가 (하나님) 하나님이야!
그러니깐 하나님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것 까지도 말씀 하시는 우리 아버지이다.
내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제 삼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을 듣기를 싫어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하나님이라!’ 고 해라 하고 하셨는데
여러분도 들으니 두 문장의 뉘앙스가 다르지요?
그것까지도 말씀을 하신다.
그것도 듣기를 싫어하시는 아버지....
이사야 집사님은 내가 말하는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 줄 알것이다.
이번에 간증 쓴 것 처럼, 전에 나를 ‘아빠’ 라고 부르기 전에는
‘저게 무슨 소리인가? 언제 나는 저렇게 되나?’ 했는데,
지금은 무슨 말인 줄 알게 되셨다.
내가 그렇게 하나님과 그런 인티머시까지 들어와 있어 감사이다.
주일날 예배시간에 469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이 찬양을 드렸다.
1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그 아무도 없으리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3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큰 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 쉬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4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내가 성령을 받고서는 찬송가에 있는 찬양을 하나님께서 못 부르게 하신 것 같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무엇을 하게 하셨냐면 복음성가만 하게 하셨다.
성령받기 전에는 내가 복음성가를 아주 무시했었고,
복음성가를 하기 전에는 일평생을 찬송가를 하게 하셨다.
내가 그것에 아주 데여서 성령을 못 받았다가 성령을 받고 나서는..
오목사님이 복음성가를 좋아하신다. 그것을 다운받아서 프린트 아웃해서 했다.
그런데 내가 23년, 24년 되어가니까 영성이 깊어졌는지, 애비의 마음을 좀 알게 되었는지
이 찬양을 하는데 깊이 이렇게 왔다. “야아, 그때 이 찬양을 쓴 사람은 이 영성으로 썼나보구나...”
이게 내 마음에 굉장히..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깊은 데서.. 이게 그냥 깊은 데서가 아니라 깊~~~~은 데서.. 아주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내 영혼의 깊~~~~은 데서 아주 맑~~~은 가락이, 깨~~~끗한 가락이 울려나네...
내가 이사야 집사님이 간증 쓴 것을 보면 그것을 본다.
그 안에 “이야~ 저 안에는 맑은 것만 있네! 흰 옷만 있네! Pure한 것만 있네!”
주님하고 둘 사이에 뭐가 없다. 내가 이 찬양을 하면서 하늘 곡조가 언제나 울려나와 내 영혼을..
내 영혼을 고이 싸네..가 아니라 고~~~이, 아주 흰 옷에 고~~~이 싸인 것처럼..
우리가 엄마 탯속에 있는 것처럼.. 엄마 탯속에 있는 것처럼... 그런 것을 느꼈다.
지난 주에야 이게 그렇게 오더라.
그래서 제가 이것을 쉐어하는 이유는 이제야 나도 이 찬양이 뭔지를 알겠다.
이 많은 찬양을 쓴 사람들 처럼,
아직 내가 그 사람의 영성에 들어갈려면 아직 멀었구나...
이제야 이곡이, 또 옆에서 간증 써 주는 것들이 우리를 이렇게 끌고 가는지도 모른다.
또 이런 찬양 하나님 앞에 가기 전에 병원에서 이런 찬양할 때 그때 더 깊이 들어올 수도 있다.
더 깊이 들어올 것이다. 그냥 쉐어할려고 얘기했다.
내가 아마 늙어가는 징조지요? 늙어가는게 아니라 벌써 늙었다.
이 찬양이 들어오는 것 보니까 하나님 앞에 가기 바로 얼마 안 남은 모양이다.
지난 번에 제가 아주 우스운 찬양을 하나 올린 것이 있다.
기억나세요? 제가 찬양을 하나 올렸다.
그것 여러분 아마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김석균이란 그 분이 목사님이시고 그걸 작사, 작곡하시고 아마 노래도 그분이 하셨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근데 울진에 있을 때 그곳에 테잎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 있던 것인지 누가 준 것인지 기억이 잘 아나는데, 찬양 테입이 있어 틀어놓았다.
매일같이 그게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게 정신이 없어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들을 것이 그것 밖에 없으니까 계속 듣는 것이다.
그런데 그 찬양이 옛날에 유행가 부르듯이 톤이 그랬다.
좀 촌스럽고 그렇다. 그런데 울진에 있으면 그게 맞다.
여기 미국에 있으니까 그게 안맞지만 울진에 있으면..
한국에서 그것을 트로트라고 그러나? 그건 유식한 말이고 트롯트를 뭐라고 하나? 뽕짝!
뽕짝.. 그런 것처럼 나도 들었는데 매일 들으니까 이게 친근감이 갔다.
그러다가 6, 7년 지나니까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인터넷을 보다가 한번 다시 들어보았다.
그 테잎에는 누가 불렀다는 그런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들어보니까 “어어? 이것 듣던 것인데?” 마음에 들어오면서 그때 가사도 없었는데 가사도 ㅂ로 수 있었다.
가사를 보니까 좋았다.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
전에는 이게 “뭐 이런 걸 찬양이라고 했나? 뽕짝같이..” 그랬는데
나중에 이분이 목사님이라 그러고 이 목사님이 썼고 찬양도 본인이 했다고 하니까 더 감격이 되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제가 그것을 올렸다.
그동안에 지난 6, 7년동안 그후에 일어난 일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찬양이 울진에서.. 이건 여기서는 잘 안맞는다.
울진에 가야한다. 시골에 가야 이게 맞다.
내가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한 것도 올렸다. 찬양합창한 것은 여러분한테 맞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하신 것은 여러분한테 조금 안 맞을 수도 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올렸는데 거기에 대해서 댓글들을 달아주었다.
자기 전 밤에 댓글들을 읽는데 아까 내가 엄마 태에 들어간 것처럼..
그 댓글이 내가 탯 속에 포오옥 들어가고..
찬양을 듣는데 포오옥 들어가서 포~~~근한 그것을 내가 느꼈다.
거기에 이게 나온다. 여러분이 쓴 것 중에서 하나가 나한테 들어온 것이 뭐냐면
“집사님이 애비의 마음을 알 때까지 죽고 죽어서 감사해요..
집사님이 아직 예수님 안에 계셔서 감사해요..” 라는 댓글이었다.
그 말이 지금 내가 감사하고 있는 그 얘기였다. 지금!
지난 주를 보내면서 “하나님, 감사해요..”
하나님께 내가 아직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 이게 너무 감사했다고 고백했는데,
정확하게 내 마음을 알아선, 죽고 죽어서 애비 마음이 될 때까지가..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죽고 죽어서 온 것이다. 그것을 정확하게 집어서 얘기했다.
그때 내가 폭~~~ 싸여있는...
그날은 그냥 폭~~~싸여서 포근히 감싸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죽고 죽어서 감사하다고...
자기도 죽고 죽어서 왔고, 아직 예수 안에 있어서 감사하다고...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고 딴데로 가 보시라.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나?
같이 가다가.. 누가 그렇게 했지요? 데마..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으로 나갔고..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아로 갔고.. (딤후 4:10)
얼마나 가슴이 아프면 그것을 썼을까! 얼마나 가슴이 아프면!!
그래서 아직 예수 안에 있어서 감사해요. 그동안 죽고 죽어서 애비 마음 알게 해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내가 쉐어하고 싶었다.
그 찬양이 정말 우스웠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우스운 게 아니다.
나중에 여러번 들어보시라. 가사를 가만히 들어보시라.
주위의 교회들을 보면 쪼개져 나가는 교회가 있다.
잘 되다가 목사님이 어쩌고해서 꼴보기 싫다고 쪼개져 나간다. 떨어져 나간다.
목사님이 별로 잘못한 것도 없다. 설교가 조금 부족하나.. 어째가지고 목사님을 비난하고
쪼개져 나갈 때 목사님을 비난하고 나간다. 수태 우리가 여기서 본다.
근데 쪼개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목사님 멱살 잡고서 나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런다.
하나님의 뜻이에요? 뭐에요? 사단의 뜻이다.
성경은 뭐라고 그래요? 말세에는 뭐라고 그래요? 모이기를 힘쓰라고 그런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모이기를 힘써.. 오지 않는 사람들도 전도해서 끌여와야 하는데, 그것도 못하는데
모이지도 않을 뿐더러 있는 것조차 쪼개 내.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런다.
사단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얘기를 한다. 속지 마시라.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다. 가서 불교 신자, 이슬람 신자한테 전도해서 교회로 모이도록..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목사님의 저꼴 보기싫다고 쪼개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간다.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하나님께서 뭐라 그러시나 성경을 보시라.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다.
많이들 비판하는 자리에 들어가서 교회를 나간다.
저보고 와서 “집사님, 아직도 교회에 붙어있어요? 그렇게 모욕당하면서?”라고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내가 교회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령님께 붙어있다! 예수님 사랑하면 된다.
교회를 비판하고 나가고 한 사람들은 정신 바짝 차리시라.
말씀이 부족해서 부흥회를 가는 것은 Okay.
그런데 그렇지아니하고 목사님을 비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요?
그게 하나님의 뜻인지 잘 보시라.
욥이 그당시에 동방에서 제일 의인이었다. 욥을 시험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 욥 1:1, 8-12)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3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않겠나이까
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욥 2:2-6)
하나님이 시험했지요? 하나님의 시험은 누구의 뜻이에요? 사단의 뜻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기셨다.
그것 뜻이라 할 때 성경에서는 뭐라고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것은 사단의 뜻이었다. 거기에 여러분 놀아나지 마시라.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모여서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자고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여러분의 영성을 위해서 아이합도 가고 TD도 가고 여기저기 가는 그런 것은 Okay.
더 풍성하기 위해서는 Okay이고, 비난하면서 나가는 그런 것은 좋지가 않다.
지난 주에 다윗과 골리앗,삼손과 데릴라 얘기한 것이 있다.
점심 때 그 생각을 하면서 걷는데 제가 좀 멍청한 짓 한 것을 얘기하겠다.
여러분이 좋아할 것 같다. 멍청한 짓은 아니고 미친 짓거리다.
걷는데 그것을 묵상하면서 가는데 무슨 얘기를 하시냐면
지난 번에 내가 그랬지요? 내가 블레셋사람이 되어 보았고,
저 편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야, 우리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 골리앗 그딴 놈이 물맷돌 하나에..” 하며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았다.
블레셋 사람이 되어서 그 장면에 들어가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거다.
“헤이, 우리 군에 대표로 나갔던 골리앗이 어떤 줄 알아? 근육마비 걸린 자야!
그 친구가 등치만 컸지 근육마비병에 걸렸고 움직이지도 못해!
목소리 하나 크고 등치가 커서 그냥 내 보낸 것이다. 돌이 오는데 피하지 못하는 장수가
세상 어디있냐? 골리앗 걔는 월래 근육병에 걸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해!
그 골리앗을 물맷돌로 맞추고서 잘났다고..그러냐?
루게릭 병에 걸린, 그 친구 골리앗은 사람도 하나 못 죽이니,
그냥 한번 나가서 소리쳐 보라고 했더니..
이야, 그 골리앗이 나가서 으앙!!! 했더니 너희 다 도망가고..
무슨 너희 신이 최고라고 하더니 문 밖에도 못나오냐? 문을 꽁꽁 잠구고서?
기껏 보낸 것이 그 조그만한 다윗 하나 물맷돌 잘해서 딱 서 있는 것 맞치는데 누가 못 맞추나?”
하며
내가 블레셋 사람이 되어서 여기서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을 또 생각하냐면
열가지 재앙을 내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고 나왔다며
얼마나 우리가 그 얘기를 울겨 먹었나?
그때 내가 애굽 바로 왕이 되고 애굽사람이 되고 보니까
“야야야, 그딴 소리 하지 말아! 너희 신이 오죽 못 났으면 내 밑에서 430년 먹고 살게 했니?
저기 피라미드 봐라, 스핑크스 봐라. 우리 신을 너희들이 다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 밑에 430년 있게 하다가 너희가 나간 것은 우리 신한테 얘기해 보니
너희들이 바로인 나한테 공양을 잘못해서 우리 신이 너희들을 내보낸데,
우리가 너희에 대해서 한번 종살이 해 본 적 있니?
너희들은 430년동안 종살이 했잖아? 또 바벨론, 지금은 페르시아 (이란)
너희는 70년동안 종살이 했잖아?
너희 하나님은 어떻게 위대한 하나님인데 자꾸 종살이 시키냐?
너희 40년 광야생활할 때 봐라.. 하나님이 너희들 끌고 나왔어?
배가 고파서 너희들 맨날 불평한 것 있잖아? 그래도 우리 애굽에 있을 때는 고기도 먹고
부추도 먹고 마늘도 먹고 힘 좀 써서 애도 많이 낳았는데 광야에서 힘들어서 애를 낳기나 했냐?
오죽 정욕이 약해가지고 고기 좀 달라도 해서 메추라기 먹고서..
메추라기 주고서 네 하나님은 또 고기가 너희의 이빨사이에 끼기도 전에 죽이냐?
그게 뭐가 위대한 하나님이라고? 썅, 우리 신을 봐라!
너희 하나님은 , 너희 백성들을 끌고 가다가 종살이 시키는 하나님이야.. 우리 신이 더 쎄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 보시라.
나는 블레셋 사람 이방 사람이고.. ........ 나는 얼마든지 얘기할 것이다.
“무슨 놈의 하나님이 그러한데 위대하다고 하냐? “하며 얼마든지 블레셋 입장에서는
말할 것이 많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그렇게 약하다. 생각을 해 보시라.
계속해서 이방인의 백성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본거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2천년 동안 세상으로 다 흩어졌어..”
“그러다가 내 신이 히틀러를 하나 세워서 너희 6백만을 죽이니까 꿈쩍도 못하잖아? 뭐 하나 했냐?”
“우리 독일 사람 한사람이라도 죽여 봤냐? 너희 하나님은 어떻게 그 모양이냐?”
“6백만이 죽었는데 꿈쩍도 못해? 겨우 조그만한 땅 나라를 만들어서 그러고 있어?”
“그게 무슨 신이야?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그럴 것인가?
제가 브레셋군이 되어서 나찌 독일군이 되어서 말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어서 말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목사가 되면 그것 가르키지 마라..”
“여호와 하나님이 기껏 그것 팔씨름 해서 이기는 하나님으로 여태까지 설교했냐?
너희 목사들은 어떻게 나를 팔씨름 해가지고 알통 좀 나오고 조그만 애들 쥐어박고
그런 하나님으로 설교를 했냐?” 너는 어떻게 설교 할 것이냐?” 라며 그 얘기를 하셨다.
“아니, 내가 천지를 만든 하나님인데, 어떻게 나를 걔네들하고 알통자랑하는 하나님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았냐? 나를 저주로 만들어 놓았어?”
“그러다 힘들면 다고다고하면 주는 하나님으로.
그래서 광야에서 다고다고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가 다 죽였는데도 아직도 다고다고하냐?
교회가 그 모양이야?”
“내 이름으로 귀신쫓고 병을 고치고 성령으로 했다는
모두가 다 다고다고하면 부자 만들어주는 이런 하나님으로 나를 만들어 놓았냐?”
“어떻게 우상, 이방신들이랑 똑같이 나를 만들어 놓았어!””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할 것인가?
여러분이 목사라면 그것을 가르키겠나?
여러분은 뭐라고 그럴 것인가?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대신해서 대변하고 나타내야 될 것 아닌가?
내가 지금 골리앗처럼 얘기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나와서 이야기할 다윗이 하나 없어요?
그렇게 가르켰는데? 여러분은 뭐 가지고 나올 것인가?
“나를 살리기 위해서 죽은 신은 우리 하나님 밖에 없다!”..고 모 자매가 답했다.
그래.. 내 하나님은 사랑 밖에 없어!
왜? 사단이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그 사람들은 자비라고 해서 Fake된 거짓 사랑이다. Fake!
사랑 가지고 나오는 것은 우리 하나님 밖에 없다.
“허, 야아 우리 하나님은 그런 것(Fake 거짓사랑)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가르켜야지! 우리 하나님은 사랑을 가르켜야한다!
그래서 달라고 하고 배고프다고 그러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정도로만 알면 안된다.
거기서 머물면 안 된다.
여러분은 최소한도 “그래, 힘들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뭐라고 그래? “구원으로 말미암아 나는 기뻐하리라..”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이다, 사랑!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다!
블레셋군을 향해 “ 너희의 우상은 사랑이 없잖아?”
너희 우상신은 너희들을 살리기 위해서 죽기 까지 했냐? ”
“우리 하나님은 너와 나를 위해서 죽으셨어! 너 하나 제발 오라고! 사랑 좀 해 보라고!”
그 사랑을 여태 가르켰더라면 교회가 저렇게 싸움이 안나지..
교회가 싸움이 안 난다.
그걸 하면서 오는데 이제 결론을 얘기한다.
점심시간에 걸으면서, 내가 이것을 영어로 블레셋군이 되어 말을 하고
하나님 백성이 되어 반박을 영어로 하면서 .......
“나와 보라고! 여러분은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다며?
어, 지금 내가 골리앗이니까 나와 보라고!” 이것을 영어로 하면서 또 한국말로 통역하면서
신나서 걸어 가니까
하나님께서 “됐다!” “너 하나 내 마음 알아준다! 너 하나 밖에 여태까지 나를 알아 준 사람이 없어..
그 사랑 가지고 나가야지! 물맷돌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 가지고 나가야지!
너 하나 이제 나를 알아줬어!” 하셨다.
그래서 내가 신나가지고 내 팔을 휘저으며 회사로 돌아 왔다.
누가 보면 저것 미친 놈이지, 저것 걸으면서 저러는 것 미친 놈이지..
했을 것 같다.
소리 막 내가면서 손가락질하면서.. 듣는 사람이 없으니까 했다.
지난 주에 점심시간에 내가 팔을 휘저으면서 그러구 있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인가 우리 이사야 집사님이 차에서 내려 들어오면서
팔다리를 휘저으며 들어오잖아요? 내가 그것을 본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시면 들어오면서 팔을 내두르고 발을 깡총거리면서 들어오나?!
내가 바로 어제 했지, 저걸! 하나님께서 너무 기쁘셔가지고!
지난 주에 남들이 나를 보면 “저것 나이든 사람이 미칠려면 곱게 미치지 저렇게 미쳤나?”
했을 것 같다.
보면 길가에서 쭝얼쭝얼하는 사람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지요? 그렇지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남들이 보면 정신병자처럼 그렇게 만드시더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셨다.
너무 내가..”너 하나 나를 제대로 증거한다..”하셨다.
물론 하나님을 잘 증거하시는 다른 분도 계시는데,
“너 하나! .........” 하시며 나보고 기뻐하라고 그러신 것 같다.
그런데 한쪽으로 우리 서울 호다가 깨진 것을 보면서
내가 “어찌 저럴 수가 있나? 어찌 저럴 수가 있나?” 그 마음이 드는데
하나님께서 “너, 그것 감사해라. 너도 옛날에 다 손가락질했던 그런 사람이잖아?
지금 네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네가 된 것에 하나님께 감사해라.
거기까지 왔어!”그러시는데 집에 오는데 숙연하게 하시더라.
그러면서 예수님 만났을 때 예수님 만나서 일대일로 돈 달라고, 돈 안주겠다 할 때
예수님이 내가 그 찬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우리 와이프가 돈달라고 서 있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 나한테 돈 더 달라고 할 때 홈리스한테 돈 주라고 할 때
안 주겠다, 안 주겠다고 버텼던 그 영성이 다시 생각이 났다.
“아, 내 안에 아직도 저 뿌리가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그게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이 난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렇게 울고불고 하면서도..
혹시 내가 다 드렸는데 지금도 혹시 그 안에 쓴뿌리가 아직도..
지난 번에 얘기했잖아요? 달라고 그러면 혹시 또 그런 환상이 보여지면서
아직도 모자라 가지고 그러지 않겠나...
이것 보시라. 그렇게 기뻐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그런 것들이 아직도 있다.
이게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고 죽을 때까지 떨리면서 두려움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수 밖에 없다.
다솜이가 지난 주에 저보고 영어를 아주 잘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가만히 있다가 그렇지..
왜 다솜이가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그랬잖아요?
“다솜이가 나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렇지!”
너무 사랑하니까 내가 콩글리쉬를 아무리 해도 다솜이는 아주 아메리칸 네이티브 영어로 듣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얘기 안 했는데 사랑이 들어가서 콩글리쉬를 해도 사랑이고..
그러니까 내가 영어를 너무 잘 하게 듣기는 거다.
그리고 다솜이가 여기 호다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다솜이에게 영어로 얘기를 한 모양이다.
내가 How are you? Welcome you...한 모양이다.
그것 몇마디 한 것이 자기한테 터치가 되었다고.
자기한테 한국말로 했으면 떠났을텐데 내가 영어로 했다고.. 그게 사랑이다.
여러분이 성경이 왜 안 읽혀져요?.. 재미가 없어요?.. 기도가 좀 하기 싫어요?
묵상도 하기 싫고 친구들하고 그냥 카톡이나 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어요?
어디가서 사역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 그건 여러분이 아직 사랑을 몰라서 그런다.
사랑한다고 그러는데 그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을 해야지.
첫사랑을 해 본 사람들, 그때 첫사랑할 때 정신이 없는데 그 사랑이 예수님하고의 사랑이 있다.
그걸 하지 아니하면 성경도 재미가 없다. 졸린다.
기도? 아이쿠, 기도 해 봐도 뭐가 떨어지나? 그래서 자꾸 하나님하고 멀어진다.
멀어지니까 사랑이 없어진다. 사랑이 없어지니 불이 안 들어온다.
자꾸 음성이 안 들리기 시작한다. 음성이 안 들린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안 들린다.
가까이 있으면 들린다. 필로톡이 뭐에요? 바로 붙어있으니까 그게 필로톡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 내가 기도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인지..
친구하고 얘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인지..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는 것인지..
성경책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인지.. 내가 예수 믿는 사람들하고 앉아서 얘기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세상 친구들하고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친구들하고 그때 얘기하면서 즐거운 것이
더 재미있는 것인지 그 상태를 한번 보시라.
지금 여러분이 내가 예수님하고 하나님하고 성령님하고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알 것이다.
여러분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다 댈 수 있다.
아, 내가 요즘 일이 바빠서요... 힘들어서요... 내가 자식들 뭐를 해 줘야하는데...
라이더해주고 뭐 이것도 해야하는데... 세상의 핑계는 여러분이 내 나이정도까지 와도 핑계가 더 많다.
핑계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다. 이제는 손자까지 생겼다. 골치아픈 것이 더 많다.
여러분은 조심하셔야 된다. 자꾸 가까이 가도록 노력하셔야 된다.
가까이 가야 자꾸 사랑이 들어와서 불이 붙고 음성이 쉽게 들리고 이래 된다.
자꾸 멀리가 있으면 안 된다. 지금 여러분의 상태를 가만히 보시라.
내가 지금 핑계를 대고 있는지...
핑계있는 것 다 제쳐놓고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지금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이것이 관건이다. 그래야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붙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난 번에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시더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을 때 흙으로 지었는데 흙도 여러 종류의 흙이 있다고 한다.
물기가 있는 흙, 영양분이 있는 흙, 아무 영양분이 없는 먼지같은 흙..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쓸모없는, 물기도 없고 영양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먼지같은 것으로
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놓고서 생령을 후~ 하고 불어넣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는 그런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동물들은, 식물들은 흙이 좀 영양이 있는 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한국말에 짐승보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성령이 임하지 않은 자는, 성령이 없는 자는 동물보다도 못하다고 했다.
흙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다. 동물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
전에 제 회사 친구가 와이프하고 헤어졌는데 “집에 가면 너 뭐하니?..”하고 물었다.
미국 친구인데 집에 가면 개가 있다. 문만 열면 개가 2층에서 자기한테 점프해서 온다고 했다.
점프해서 자기를 꼭 껴안는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와이프는 한번도 그렇게 해 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개하고 산다고 한다. 이것 보시라. 개보다도 못하다.
그래서 여러분이 인티머시에서 떨어져나가면..
세상 친구가 더 좋아요? 이것 보시라. 개보다도 못 할 수가 있다.
아직 말씀 가운데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 것이 더 좋아요?
그럼 성령님이 떨어져 나간다. 앞으로 개보다 더 못된 인생이 될 수도 있다.
여러분, 조심하셔야 된다. 그래서 붙어있도록 노력하셔야 된다.
이게 성경이에요.. 흙으로 지었다는 흙이 그런 흙이다.
여러분은 성령이 떠나가면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이 된다.
못할 뿐만 아니라 더 지독하게 악한 인간이 된다. 사단의 앞잡이가 된다.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시는 형제님은
자신의 영적으로 부족한 부분까지 드러내시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알려 주셨다.
겸손한 자이기에 사람의 눈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호다는 자신 안에 연약한 부분을 치유 받아야 할 부분인 치부를 드러내고
가짜이라고 드러낼 수 있는 곳이라 감사하다.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치유가 시작되는 것일거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찌질이들이 모인 호다에는 오늘밤에도
성령 하나님이 더욱 만지셔서 더 바보가 되기를 부르짖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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