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時代生活之思想的指標, 性理學
-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읽고 -
인문대학 역사학과 20173733 김규연
一. 冊及著者之紹介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한 이 책은 철저히 역사적 사료(史料)를 기반으로 엮은 조선시대 생활상(生活相)에 대한 이야기이다. 1편과 2편이 있는데, 두 책 모두 조선시대(朝鮮時代)를 백그라운드로 하여 민중적(民衆的) 삶과 민중의 삶에 연관된 제도(制度), 풍습(風習) 등을 다루고 있다. 1편은 조선의 인구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대한 이야기, 두레, 신분상, 형벌(刑罰) 제도, 장돌뱅이, 조세 제도, 식생활 이야기로 끝난다. 2편은 왕실(王室) 이야기로부터 김조선 이야기, 경국대전(經國大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음악적⋅풍류적 생활, 성리학(性理學), 아리랑 이야기로 끝맺음 지어진다. 조선시대의 생활상 전반(全般)을 다루었지만,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그 맥락(脈絡)을 벗어나지 않는다. 즉, 모든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질문으로 수렴(收斂)한다. 이러한 점이 책의 집필(執筆) 의도와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의 저자(著者)인 ‘한국역사연구회’는 두 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첫째, 사회 변혁(變革)과 진보(進步)를 실현시켜 나가는 주체(主體)를 민중으로 설정하고, 이를 자각하여 민중의 의지와 세계관에 적합한 역사학을 지향한다. 둘째, 우리 개개인이 변혁주체임을 깨닫고,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운동을 적극적으로 행동해 나간다. 즉, 한국역사연구회는 하나의 담론(談論)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사회를 올바르게 이끄는 주체로서 사회적 모순(矛盾)을 해결하고자 하는 담론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을 저술한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 전반적인 생활상을 대중(大衆)에게 보여주어 작금(昨今)의 사회와 민중의 삶을 관조(觀照)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二. 選定理由
나의 어린 시절은 경험의 나날이었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내가 많은 곳을 보고 자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당신의 희생으로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견문(見聞)을 넓힐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유적지(遺跡止)를 다녔다.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말이다. 그러나 여러 역사적 의미가 담긴 유적지나 건축물들을, 어린 시절의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머리가 커지고, 주관적인 사고(思考)를 하게 되며 과거에 다녔던 곳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다양한 자료를 통해 나의 추억을 끄집어내어 다시금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럴 때면 유적지가 만들어지던 시대를 상상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것들을 당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을까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조선시대 생활사 강의를 통해 강의 밖의 혹은 강의의 내용에 실증적(實證的)인 자료를 더하여 공부해보고자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三. 朝鮮時代及性理學, 性理學及朝鮮時代
(책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과 관련하여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필자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였다.)
조선시대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성리학. 개인적인 생각으로, 조선시대는 성리학이라는 단어 하나가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이데올로기였으며, 조선 정치의 가장 중요한 담론이었다. 상례(喪禮)와 같은 전통적 문화를 만들어 낸 것 또한 성리학이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분야(分野)에 ‘성리학’이라는 한 가지 사상이 핵(核)을 이루고 있었다.
한편, 이것에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과연 조선시대 사람들은 성리학의 도입으로 인해 사상적으로는 발전을 이룩해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발전은 저해(沮害)되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지워야 하는가?’하는 의문이다. 인(仁)과 예(禮)를 중시하며 다른 중요한 부분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책에서는 성리학, 즉 주자학의 도입이 신분제적⋅경제적 지배를 합리화할 수 있었으며, 신분제적 질서 아래 구성원 간의 도덕적 화합(和合)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해 지배 질서를 합리화하였고, 이를 통해 사회에 내재하는 갈등을 무마(撫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리학은 정치 싸움의 도구로 이용되며 변용력(變容力)을 상실하고 사상적 탄력성(彈力性)을 잃어갔다고 이 책은 말한다. 또한 이로 인해 성리학이 역사 발전에 장애로 작용하였다고 해도 책임을 그것 자체에서 찾기보다는, 성리학을 고수하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지배 권력들에게 책임이 지워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위에서 가지게 된 의문이 이것 때문이다. 성리학을 국가의 근본(根本)을 이루도록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고수(固守)한 지배층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책임을 그들이 모두 짊어지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책임의 일부는 민중에게도 있다. 태어나기를 성리학 질서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기를 그 속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판적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사회를 움직이는 변혁의 형태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 변혁은 사상적 변화일수도, 문화적 변화일수도 있다. 이를 당시의 민중들은 해내지 못했고,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四. 感想
‘조선시대 생활사’ 강의를 들으며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역사학자들이 역사적 사료(史料)를 토대로 기록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강의 내용을 접목(椄木)시키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은 이외의 이야기들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생활적인 측면부터, 상업적 측면, 제도적 측면, 사상적 측면까지 다방면으로 조선시대 생활상을 엿보는 기회를 가졌다.
더욱 다양한 이야기가 많았고,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들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역병(疫病)이 끼친 영향, 상인(商人)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에 대한 느낀점만 코멘트한 것은 가장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을 하나만 뽑자면, 나는 당장 ‘성리학’을 뽑을 것이다. 성리학에 대한 나의 관심과 조선 사람들에게 끼친 성리학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간략하게 덧붙여 본 것이다.
강의 시간에 배운 것을 책과 접목하여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필드’에 나가 공부하는 것이 역사학도로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공부 방법인 만큼 역사학과에서 공부하는 시간 동안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답사(踏査)를 직접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적으며 글을 맺는다.
五. 參考文獻
단행본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개정판)』, 청년사, 2005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개정판)』, 청년사, 2005
사이트
한국역사연구회 http://www.koreanhistory.org/
조선시대 생활사 서평.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