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김명배문학상 수상자 - 동시
직선 긋기 외 4편(동시) / 강기원
직선을 그린다는 게
손이 흔들려 물결이 되었어
물결은 물결을 낳아
곧 바다가 되었지
바다가 생겨나자
작은 섬 같은 지느러미가
수욱 솟아오르는 거야
상어?
깜짝 놀라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무언가 밑에서 슬며시 받쳐 주었어
섬?
했는데, 아! 친절한 고래 등이지 뭐야
고래는 빠르게 헤엄쳐
뭍으로 데려다주었어
수영도 못하는 난
덕분에 도화지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지
직선을 그을 땐 조심해야 해
설레는 양파
양파 속 동심원
호수에 돌을 던지듯
양파의 마음속에
누가 설렘을 던졌을까?
작은 양파가
여덟 겹의 동심원을 그리는 동안
양파의 심장은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그걸 안으로, 안으로만 감추느라
양파는 저 홀로 점점 매워졌고
그래서 또 누군가는
꽁꽁 싸맨
양파의 마음을 쪼갤 때
눈물도 대신 흘려 주는 거지
글꼴의 역사
처음 태어났을 때 나는
백두체였습니다
사 킬로그램이 넘는 우량아였죠
네 살이 되었을 때 나는
고딕체였습니다
고집이 장난 아니었죠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잠시 궁서체로 살았습니다
예의 바르고 진지하게요
앞으로
마술사 매직체가 될지
보디빌더 튼튼체가 될지
패션 디자이너 샤넬체가 될지
아니면 소설가가 되어 즐거운이야기체
생물학자 개미똥구멍체가 될지 모르겠지만
암튼
지금의 나는
남들보다 일찍 온 사춘기
삐딱이 꽃게체입니다
브로콜리
브로콜리
한 송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바오바브나무 한 그루를 보는 것 같아
어린 왕자의 별에서 쫓겨 나온 바오바브나무 같아
나무에 노을이 깃들면 진한 꽃향기에 날아드는 박각시나방처럼
나무 속으로 들어가 볼까? 부시먼처럼 나무 속에 집을 짓고
나무랑 함께 살아 볼까? 소원을 들어주는 과일박쥐가
먼저 들어가 살고 있을지도 몰라 오천 년을 산다는 나무
하나님이 거꾸로 심었다는 바오바브나무 옆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물구나무를 서도 좋을 거야
아, 브로콜리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다가스카르에 와 있는 것만 같아
(바오바브나무 숲이 울창하대)
그래, 브로콜리는 먹는게 아니라
바라보는 거지
잠들기는 어려워
잠자려 누웠는데
푸른 고등어 같은 달빛이
창문으로 흘러들어
고등어 한 마리가
고등어 두 마리를
고등어 두 마리가
고등어 네 마리를
고등어 네 마리가
고등어 여덟 마리를……
줄줄이 데려와
푸른 고등어 수만 마리
떼춤을 추기 시작해
아주아주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인 것처럼
위로 옆으로 아래로 부드러운 춤을 춰
정말 환상적이야
침대가 출렁출렁 흔들리더니
밍크고래처럼 방 안을 떠다녀
밍크고래 위에 누워
고등어들의 떼춤에 맞춰 흥얼거리며
난 생각해
오늘 밤도 잠자긴 틀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