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애 시절 끝도 없이 나를 웃기려 했다. 나는 남편의 유머 감각이 좋았으나, 사실 남편은 코미디에 소질이 없었다. 대체로 슬랩스틱 코미디거나 요즘 말하는 ‘아재 개그’였다. 그는 어이없는 말장난에도 웃어 주는 나를 보려고 매일같이 두 시간 거리를 달려왔다. ‘이렇게 잘 맞는 인연도 드물 거야.’ 싶어 결혼을 결심했다.
신혼집은 어린아이 둘만 사는 집 같았다. 우리는 질세라 서로를 웃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남편은 조용하다 싶으면 얼굴에 밥풀을 묻히거나 앞니에 김을 끼우고, 나는 남편을 놀라게 하려 장롱에 숨었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만 보면 까르륵까르륵 웃었다. 가끔 이웃집에서 ‘애들 좀 조용히 시키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
‘철없는 둘이 아이를 낳으면 애가 우릴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실없는 걱정을 하면서도 내심 얼른 셋이 되어 같이 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찾아왔다. 시부모님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했다.
내 인생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신혼은 아이를 유산하고 난임 진단을 받으면서 끝났다. 퇴원하는 날 우리는 강제로 어른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집에 한기가 돌았다. 태어날 때부터 웃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대화도 줄었다. 남편이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날 남편이 고백했다. 평생 주식이란 건 생각도 안 해 본 사람이 태어날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많아 욕심이 났단다. 귀신에 홀린 듯도 하다고 주절거리는데 결론은 상당한 빚을 졌다는 것이다. 나는 몸도 추스르지 못하고 백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녔다. 일자리도 찾아 헤맸다.
차라리 일에 미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퇴근길, 집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웠다. 시부모님 앞에서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싫었다. 철없는 남편이 한심해 보였다.
남편은 자신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는 사실이 미안한지 내 기분을 풀어 주겠다며 다시 농담하고, 장난을 걸었다. 빚진 상황이야 둘이 열심히 벌면 극복할 테지만, 웃으려니 얼굴에 힘을 줘야 했다. 웃는 데에 많은 근육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남편의 장난이 즐겁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사는 기분이었다. 아니, 같이 놀던 놀이터에서 나만 훌쩍 어른으로 자란 듯했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상담 선생님은 권태기 같다며, 배우자에게 솔직히 밝히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니 남편이 저녁 밥상을 치우고 있었다. “여보, 얘기 좀 해.” 남편은 싱크대에 그릇을 놓다가 멈칫했다. 등 돌린 채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올 게 왔구나.’ 하는 것 같았다. “당신 도움이 필요해. 나…….”
남편이 굳은 표정으로 서서히 돌아섰다. “궈, 권태기래!” 일단 하려던 말을 던지고 남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돌아선 남편 뺨에 하얀 밥풀 하나가 붙어 있었다. 덩치는 곰만 한 남자가 싱크대 앞에서 나를 웃기겠다고 일단 뺨에 밥풀은 붙였는데, 분위기가 심각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니. 나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남편도 나를 따라 영문도 모른 채 구르며 웃었다. 남편이 헥헥대며 물었다. “근데…… 권태기가 왜 웃겨?”
남편의 말에 나는 다시 웃음보가 터졌다. 그렇게 웃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동안 각자 어떤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또 그 죄책감이 어떻게 미움으로 변해 갔는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웃음 덕에 권태기가 줄행랑쳤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사실 삶의 위기마다 그랬다. 웃을 수 있으면 견딜 만했다.
‘코미디의 왕,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