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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는 엄마인 내가 남편 없이 아이들과 제주에서 한 달을 살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없는 좌절을 겪었다. 우선 숙소만 해도 솔직히 말하면, 외국보다 숙소 정하기가 더 힘들었다. 물론 외국 해봤자, 내가 가 본 몇 나라이지만, 휠체어 탄 내가 아이들과 한 달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숙소를 찾기가 힘들었다.
당시 11살, 10살인 아이들이 즐길 거리도 있어야 하고, 휠체어 시설이 된 곳도 찾아야 하니 말이다. 제주 한 달 살기 숙소를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지만, 휠체어를 타는 엄마가 아이들과 있을 곳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형편상 비싼 숙소는 할 수 없었기에, 1박에 5만 원 이하를 원했다.
정말 찾고 또 찾으니, 구하면 길이 열린다고 했다. 코시국에 모두 여행을 꺼릴 때라 제주 OOOO리조트라는 곳에서 한 달 살기 이벤트로 엄청나게 할인된 가격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휠체어 시설이 대부분 잘 마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가격이 1박에 4만 원 정도였고, 조식 포함, 3일에 한 번 청소 포함, 사계절 미온수 수영장과 위치까지 모든 게 너무 좋았다.
코시국 특가로 가성비 짱! 휠체어 시설도 잘되어 있던 리조트 / 루프탑 미온수 수영장에서 노는 현혜. ⓒ 박혜정
숙소가 결정되었으나 이번엔 렌터카가 문제였다. 장애인 렌터카는 제주에 딱 한 곳밖에 없다. 그런데다 장기렌터카는 문의해보니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한 달 숙소 가격의 몇 배 이상의 금액이었다. 후아~ 차가 없으면 어디를 다닐 수도 없고,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동 수단이 안 되니 정말 막막했다. 꿈꾸던 제주 한 달 살기는 나같은 사람은 안 되는 건가 좌절했다. 그때 불현듯 부산에 살던 사촌 동생이 제주에서 일하고 있는 게 생각이 났다. 사촌 동생에게 자차를 어떻게 제주로 옮겨 갔는지, 방법과 비용을 물어보았다. 동생에게 물어보길 정말 잘했다! 동생은 내가 전혀 몰랐던 탁송 서비스를 알려주었다.
탁송 서비스는 배달의 민족, 정말 우리나라라서 가능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탁송 기사님이 여행 가기 하루 전에 집으로 와서 자차를 가까운 항구로 가져가서 제주항으로 실어 나른다. 우리는 다음 날 항공편으로 제주공항에 가면, 탁송 기사님이 원하는 시간에 자차를 제주공항에 가져다주는 서비스이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집까지 안전하고 편리하게 자차를 가져다 준다.
내가 놀랐던 것은 그렇게 편리한 서비스인데 왕복 탁송 가격이 장애인 렌터카 비용의 1/6도 안 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렌터카 비용을 따져도 1/4 가격이었다. 제주에서 5일 이상 체류한다면, 탁송 서비스가 렌터카 보다 나을거라 생각한다.
우리 차에 아이들의 책과 노트북, 아이패드, 짐을 잔뜩 실어 보내니 이것 또한 너무 좋은 점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간단한 짐만 가지고 제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들도 한껏 신이 났고, 나도 오랜만의 여행에 너무 설렜다. 짧게 다녀오는 제주 여행과는 다른 한 달 살기가 얼마나 멋진 일이 가득할지 두근두근 너무 기대되었다.
카톡으로 차 위치도 자세히 알려주고, 제주 공항에 안전하고 저렴하게 자차를 탁송하는 서비스. ⓒ 박혜정
이렇게 숙소와 차량을 해결하고 나니, 아이들의 학교 문제가 걱정되었다. 한 달을 몽땅 결석하게 할 수도 없고,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해야 하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또다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결과, ‘교환 교류 학습’이라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도시가 아닌 농어촌, 산간 지역, 외곽 지역의 학교에 한 달 이상 전학 없이 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각 학교장의 허가만 받으면 결석 처리 없이, 낯선 곳에서 생활하며 그곳의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제주도도 해당이 되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갈 리조트 근처 세 군데의 초등학교와 심지어 아예 떨어진 몇 군데의 초등학교에까지 문의를 해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나와 아이들의 제주 살기는 2021년인데, 2015년 즈음부터 제주 한 달 살기 붐이 일어서 교환 교류 학습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문의한 학교 선생님께 내가 하도 사정 사정하니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타지의 학생들을 받으면서 오히려 본교의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일들이 일어났고, 대부분의 제주 지역 초등학교는 교환 교류 학습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한참을 알아보고 문의했지만,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또 좌절했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이 없을지 찾아보니, 전입신고를 통해 고작 한 달이라도 전학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우리의 숙소인 리조트는 전입신고를 위한 거소증조차 끊어줄 수 없다고 해서 안 되었다.
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아이들과 같이 가기로 했는데, 나 혼자 갈 수도 없고 못 간다고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며칠을 곰곰이 생각했다. 가만 생각하니 코시국이니 할 수 있겠다 싶은 방법이 떠올랐다.
당시에 아이들은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아니면 두 번 등교하고 나머지는 원격수업을 했다. 원격수업이야 와이파이만 되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등교일은 체험학습을 쓰고, 안 되는 며칠만 결석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니, 역시나 처음에 난감해하시긴 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고, 우리 아이들 학교에서는 제주 한 달 살기를 아이들과 간다는 엄마도 처음 보신다고 했다. 어쨌든 교감, 교장 선생님과 의논을 하겠다고 하셨고, 며칠 뒤 드디어 허락을 받았다.
코시국이라 가능했던 원격수업으로 초등학생 현혜는 제주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었다. ⓒ 박혜정
그렇게 휠체어 타는 엄마와 아이들의 제주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제주공항에서 자차를 찾아 리조트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정리하는 게 일이었다.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도우라고 했지만, 결국 대부분 내 일이었기 때문이다. 리조트 직원이 방까지는 많이 옮겨줬지만,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체크인을 할 때, 장애인 객실이 없다고 해서 짐을 다 정리했다. 그런데 장애인 객실이 나왔다고 다시 옮겨야 했을 때는 극한 체험 같았다. 힘들게 정리한 짐을 다시 다른 방으로 옮기고 정리해야 했으니까.
어마어마한 한 달 살기 짐을 옮기고 정리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 박혜정
그리고 2~3일이 지나자 빨래를 해야 했다. 거의 모든 시설이 휠체어로 가기에 불편함이 없는 리조트인데, 딱 한군데! 세탁기가 있는 곳은 턱이 30cm나 있었다. 재활용품 분리수거장과 세탁기가 함께 있는 곳인데, 도저히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시키고 밖에서 애가 타서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하는데, 하필 허벅지에 올려놓았던 세제가 다 쏟아져버렸다. 세제 가루가 완전 범벅이 되었고, 깔고 있던 방석의 사이사이에 들어가서 엉망이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그 순간 내가 뭐 하자고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나한테는 왜 이런 힘든 일만 생기는 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 찰나 지나가던 객실 팀장님이 보시고 도와주셨다. 그 뒤에도 방으로 찾아와서 명함과 자기 연락처를 주며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해주셨다. 애들 공부할 책상이 필요하다니 세미나실 긴 책상을 갖다 주시기도 했다.
턱이 30cm 이던 세탁실 앞에서 전전긍긍하다 세제까지 다 쏟아서 난리를 치고, 도와주셨던 객실팀장님이 가져다 주신 긴 책상. ⓒ 박혜정
좌절은 쉽게 허락할 수 없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솟아날 구멍은 무조건 있다!!!
원격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심심하다고 어디든 갈 곳이 없는지 종알종알 묻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늘 아이들이 좋아할 곳,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검색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날은 너무 먼 곳이 아닌 리조트 근처에 무언가 갈 곳이 없을지 찾았다. 한림공원이 있었고, 아이들이 즐길 거리가 있지는 않아도 가까우니 한 번쯤은 가 보자고 했다.
한림공원에서 열대 식물원부터 다양한 아열대 식물과 신기한 식물들을 보며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경사가 좀 있는 길이 나오거나 보도블럭이 대체적으로 잘 깔려 있었지만, 나무의 뿌리들 때문에 울퉁불퉁해져 있는 길을 밀고 가야 하니 조금 힘이 들었다. 불쑥 올라와 있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휠체어 앞바퀴가 자꾸 걸리니 휠라이(휠체어 앞바퀴를 든 채로 가는 것)를 하며, 신경을 많이 쓰면서 갔다.
한림공원에서 나의 딸들 현혜와 함께. ⓒ 박혜정
그런데 모든 관람로를 빠져나와서 경사로를 내려오려니 경사가 심한데다 중간이 약간 불룩 솟아 있었고, 돌이 군데군데 튀어나온 게 보였다. 나는 그냥 살살 내려갔다. 역시나 중간쯤 돌이 좀 튀어나온 부분에 휠체어 앞바퀴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앞으로 넘어지겠다는 생각이 확 들어서 한쪽 브레이크를 잡았다. 브레이크가 한쪽만 걸린 채로 ‘엄마야!!!’ 하며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질 듯 내려갔다. 그대로 땅에 처박기 일보 직전이었다.
천만다행히 어느 순간 나타나 앞에 있던 아줌마가 나를 안아주셨다! 아~~~ 살았다! 그 아줌마도 놀라서 나를 안아주며 '아고, 놀래라~ 큰일날 뻔 했네^^ 도와달라 하지~'라고 말을 하셨다. 이 고마운 아줌마 덕분에 땅바닥에 철퍼덕은 면했고, 다칠 뻔한 사고도 피할 수 있었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
이런 1~2cm의 턱에도 수동휠체어는 걸리기 쉽상이라 크게 다칠 뻔 했다. ⓒ 박혜정
휠체어를 타게 되면, 당연히 수많은 계단이나 높디 높은 턱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은 결코 느끼지도 못하는 1~2cm 조그만 턱도 걸려서 넘어질 수 있다. 땅이 울룩불룩, 울퉁불퉁하기만 해도 휠체어를 밀기가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늘 경치나 구경거리를 감상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땅의 상태만을 보고 다녀야 하니 온전히 즐기기가 힘든 것 같다.
또, 식당이든 어딘가를 가더라도 무조건 입구에 계단이나 턱, 화장실까지 일일이 알아봐야 한다. 그러니 맛집을 가고 싶어도 입식 테이블이 없거나 수많은 계단이 있고, 화장실도 들어갈 수 없다면, 맛 따위는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힘이 들더라도, 혹시나 다치게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순간순간 좌절을 느끼게 되더라도 일단은 길을 나서야 한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해보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길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세상이 바뀌게 하는 길이다.
순간 순간 좌절을 느끼더라도 일단은 길을 나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하자! ⓒ 박혜정
누구나 좌절의 순간이 크든 작든 온다. 그 좌절의 순간에 그냥 나는 안 되겠지, 방법이 없을 거라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 넘어졌는가? 그러면 일어나야지!
두 번 넘어졌나? 그래도 일어나야지!!
세 번 넘어졌다고? 그럼에도 일어나면, 길이 보인다!
더 넘어지고 일어나면 더 좋은 방법과 희망찬 길이 당신 앞에 열릴 것이다.
휠체어를 타는, 몸의 2/3가 마비인 내가 하는데, 당신이 왜 못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