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ert Camus (1913~1960)
1. 알베르트 카뮈
나는 카뮈를 좋아한다. 영어로는 알버트 카뮤스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소설가이자 철학자였다.
내가 이 사람을 처음 접한 것은 삼중당이나 범우문고에서 발행한 소설 이방인을 읽고서였겠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영화였다.
예전 경복궁 근처 사간동에 프랑스 문화원이 있었는데 그곳 지하에 있는 영상실에서 종일 프랑스 영화를 틀어줬다.
입장료가 100원이었던 걸로(천 원이 아니고) 기억을 하는데 나는 가끔 이곳에서 알아 듣지도 못하는 프랑스 영화를 보며 지적 허영심을 달랬다.
그때 카뮈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방인을 봤는데 카뮈의 작품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뫼르소 역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프랑스의 전설적 여배우 안나 카리나가 애인 역을 맡은 걸로 기억을 하고, 뭔가 잡히는 것은 없어도 묘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이방인을 읽었지만 까뮈는 잊고 살다가 이 영화로 인해 카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시지프 신화, 이방인, 페스트, 반항하는 인간 등, 딱히 세계문학을 읽지 않은 사람도 카뮈의 작품 제목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런 작품보다 소설처럼 살았던 카뮈의 일생에 더 관심이 갔다.
카뮈는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는데 이듬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당시 29살이던 아버지가 군대에 징집을 당했다가 사망하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는 스페인계 하녀 출신으로 글을 모르는 문맹에다 청각 장애인이었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남의집 식모 생활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그런 카뮈가 가난 속에서 성장했을 것은 뻔할 터, 카뮈는 실제 세상의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지독한 가난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카뮈는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을 하는데 바로 스승인 <루이 제르맹>을 만나면서다.
국민학교 때부터 카뮈의 재능을 알아 본 스승은 유독 카뮈의 문학성에 관심을 보인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처지에 놓인 카뮈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계속 공부를 하라며 용기를 주었고, 카뮈 집을 방문해 어머니와 외삼촌을 설득하기도 한다.
훗날 카뮈는 1942년에 발표한 이방인으로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데 그때 카뮈 나이는 44살에 불과했다.
카뮈는 노벨상 수상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고 나서 바로 옛 초등학교 스승인 루이 제르맹에게 편지를 보낸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이 그 당시 가난한 어린 학생이었던 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 않았다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고 손수 보여 주신 모범이 없었다면 이런 모든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이 영예를 지나치게 중요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생님이 저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어떤 존재인지 말씀드리고, 선생님의 노력, 일 그리고
거기에 바치신 너그러운 마음이 나이를 먹어서도 결코 선생님께 감사하는 학생이기를 그치지 않았던 한 어린 학생의 마음 속에 언제나 살아 있음을 선생님께 말씀드릴 기회는 되는 것입니다>.
카뮈는 노벨상을 받은 후에 수상 소감인 그 유명한 스웨덴 연설을 루이 제르맹 선생님에게 바침으로서 그 깊은 감사의 마음을 세계 독자들에게 증명했다.
노벨상을 받고 3년 후, 카뮈는 파리 근교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를 마친 카뮈가 기차로 돌아가려는데 친구가 자기 차로 가자고 제안을 했다.
예정에 없던 친구 차에 동승했던 카뮈는 교통사고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사후 카뮈의 외투 주머니에서는 그날의 파리행 기차표가 발견되었다.
2. 이방인
요즘 신촌에 있는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극 이방인이 상연되고 있다. 산울림이 우리집에서 걸어 15분 거리에 있어서 나는 이곳에 올라 오는 작품을 자주 본다.
오래전 연출가 임영웅 선생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산울림 극장은 한국 연극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여럿 공연했고 소극장 자체가 한국 연극사 일부이기도 하다.
올 봄에 임영웅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큰딸인 임수진 선생이 극장장을 맡아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이방인도 아들인 임수현 선생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는데 밀도 있는 구성과 탄탄한 줄거리가 소설 못지 않게 감동을 주었다.
이번 연극 이방인은 초연이 아니고 2017년과 2018년에 산울림에서 상연을 했어도 보지를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소원을 풀었다.
사람도 공연도 인연이 있어야 만나는 법이고 때를 놓치면 영영 만날 수 없기도 하건만 내가 이 연극에 유독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카뮈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소설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로 시작하는 도입부 문장으로 유명한데 연극에서도 이 대사로 시작한다.
그동안 이 문장 하나를 두고도 번역가들끼리 이견 다툼이 있었고 숱한 시인들과 작가들도 이 문장을 모티브로 작품을 쓰기도 했다.
이방인은 대표적인 부조리극으로 인생을 딱 규정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거다. 극중에서도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죽은 엄마의 장례식에 가서도 마냥 무덤덤하다.
엄마 얼굴을 보겠냐는 권유에 고개를 젓고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신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장례식은 끝났고 뫼르소는 다음날 애인을 만나 코미디 영화를 본 후 섹스를 한다.
행실 나쁜 친구를 따라 갔다가 아랍인들과의 싸움에 연루가 되고 나중 혼자서 해변에 갔는데 그 아랍인들을 다시 만난다.
아랍인이 들고 있는 칼에 햇살이 비쳐 눈이 부셨기 때문일까. 친구가 준 권총으로 아랍인을 쏜 뫼르소는 교도소에 갇히고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뫼르소는 프랑스 본토 사람이다.
정당방어 차원에서 식민지 사람을 쏘았다고 변론을 하면 사형은 면할 수 있었겠지만 뫼르소는 그저 남의 일처럼 아무 변론도 하지 않고 사형 선고를 순순히 받아 들인다.
소설 이방인의 특징이기도 한 소통과 불통, 오해와 이해의 경계뿐 아니라 삶과 죽음마저 초월한 듯한 뫼르소의 독백은 거의 다 원작 소설에 나오는 문구들이라 금방 동화가 된다.
1인극라 해도 될 정도로 이 연극에서는 뫼르소 역을 맡은 배우의 대사가 많은데 내가 공연을 본 날 뫼르소 역은 차예준이라는 젊은 배우였다.
6년 전 초연 때부터 뫼르소 역을 맡은 전박찬 배우와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 모양인데 오열하는 장면에서 실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열연을 펼쳤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카뮈가 한 말이다. 한편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라고도 했듯이 카뮈는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과 절망을 뫼르소를 통해 표출한다.
어릴 때부터 폐결핵을 앓으며 평생 병원을 드나들었던 카뮈였다.
뫼르소는 꾸미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말과 행동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누가 뫼르소를 이방인이라 손가락질 하는가.
어쩌면 주류이기를 원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한편으론 이방인이 아닐까. 이 연극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첫댓글 유현덕님, 카뮈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댓글은 몇번 더 읽고 다시 달겠습니다.
아하~ 홀리님도 저처럼 카뮈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오래전부터 이 사람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배움이 짧은 저의 한계이기도 했구요.
엊그제 본 연극으로 인해 옛 생각이 나서 오늘 글은 일기처럼 술술 써지긴 했네요.
년전,
윤소정의1인극(제목은 기억이나지않습니다)을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웠을까
싶을정도로 대사도 많았던기억.
본글과 거리가 먼 댓글이라 송구스럽습니다
고리울님, 댓글이 본글과 거리가 멀긴요. 산울림과 연극은 어떤 작품이던지 관련이 있답니다. 이름도 순 우리말에다 외우기도 쉬운 극장이지요.
제가 윤소정 선생의 1인극을 본 적은 없지만 극단 산울림 원년 멤버였던 걸로 압니다. 윤석화 선생의 모노드라마는 본 적이 있네요.ㅎ
이방인과 페스트를 볼때 너무 끔찍했는데 오늘은 이방인을 만납니다,
그 옛날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샬롬
페스트를 아시면 호반청솔 선배님도 카뮈 애호가이십니다. 카뮈의 작품이 논란을 끌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지요.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의 끝판을 보여 주고, 단두대에 대한 성찰에서는 사형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게도 했습니다. 항상 좋은 날 되셨으면 합니다.
異邦人
우와~ 멋지네요. 이 사진이 앙리 브레송의 유명한 작품이지요. 사진가 브레송은 카뮈와 사르트르를 무지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셋 다 같은 불란서 사람입니다. 브레송이 찍은 사르트르와 카뮈가 같이 나온 사진 하나 첨부합니다.ㅎ
와우
또박또박 넘 잘 써주셔서
이해가 갑니다
이방인은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까뮈가 스승님의 은혜를
기리는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ㅎ 리야님께서 이해를 하셨다니 글 쓴 보람이 있습니다. 작품 해설은 능력이 딸려 잘 못하지만 감동 받은 사람에 대한 제 느낌은 술술 써진답니다.
이방인이 주변인이거나 외로운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리야님 말씀처럼 우리들이 바로 이방인일 수 있지요. 항상 건강하세요.
이 소설을 읽었을 때 20대 중반이지 싶습니다
아니 그 전일 수도 어쨌든 당시 저는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져 아침에
눈뜨기 싫을 정도였지요 하루가 천리같던 지독했던 시간들
태양 때문에 쏘았다는 주인공 말에서 무력감과 권태
삶의 절망 꼭 저의 심정 같았지요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그런가 봅니다 지금 저는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며
삽니다 현덕님 감사합니다 ~
운선님의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 염세적인 생각이 오늘날 운선님의 흡인력 있는 필력 밑바탕이 되었을 걸로 보입니다.
병약했던 카뮈가 병원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이 했으면서도 살고자 하는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어둠이 삶의 배경이었음에도 잘 헤쳐온 덕분입니다.
저도 삶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이렇게 카뮈의 일생을 옮기며 살고 싶은 힘을 얻습니다. 늘 제게 공부하는 자극을 주는 운선님, 평온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더 나 자신이
이방인이 되가는 기분은 왜 그러는걸까 ?
까뮈형한테 카톡 보내볼까나....ㅎ~
적토마 선배뿐 아니라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외로움을 친구로 삼거나 제것으로 만드는 사람일수록 알맹이는 단단합니다.
선배님이야말로 고독 속에서도 독야청청 빛이 나니 이대로 살아도 충분히 풍요로운 삶일 겁니다. 저도 카뮈 형한테 배운 겁니다.ㅎ
나이를 먹어갈수록 혼자 노는 즐거움에
단련되라고 했는데...그치 ?
더불어 현덕아우처럼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삶을 즐기는 승리자일세...
젊은 시절 잠깐의 경력을 내세우며 계속 읅어
먹으면 영원한 이방인이 되는 것 같고...ㅎ~
풀벌레 소리에 잠을 깨
모처럼 방해꾼 없이
차분하게 글을 읽어 내려오다
ㅡ우리 모두는 사형수이다ㅡ에
전율을 느낍니다
다음 생에 생명가진 것으로
태어 나지 말자!
평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ㆍ
이렇게
길고 정성드린 글에
너무 짧은 댓글이 성의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준비했던 말들이 한 꺼번에
날아가버렸어요
ㅡ사형수ㅡ와
ㅡ생명 없는 것으로 태어나자ㅡ의
인간의 고통을 같은 맥락으로
봤기 때문이겠지요
모르는 게
절반 이상이지만
잘 읽었습니다 ^^
윤슬님의 정성 가득한 댓글에서 활자를 대하는 진지함이 느껴집니다. 오히려 제 글이 다소 무거워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이곳 카페뿐 아니라 어디를 가든 사이버 상에는 글과 이미지로 넘쳐나지만 저라도 좀 진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긴 글에 아이쿠야 하면서 지나갈 사람은 그냥 지나갈 테고 윤슬님처럼 읽을 사람을 읽을 테구요. 이 버릇은 죽을 때까지 안 고칠 생각입니다.^^
다음 생에 생명 가진 것으로는 태어나지 말자,, 하여, 이 대목에서 제 마음과 흡사해 잠시 숨을 고릅니다. 전생에 저는 바람난 여자와 함께 도망친 노비였을 겁니다.ㅎ
솔직히 저는 책을 .독서를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다독에 대한 욕심은 많아서 당근. 이란곳에 사무실 집기품 사러 들어갔다가 책만 잔뜩 사서 쌓아두기만 하기도 했지요. 일 그만두게되면 읽어야지~~하고,
최근엔 짬만 나면 읽습니다.
알베르트 까뮈..
소녀적에 읽어보곤..
제 독서시작의 5할은 카페 탓입니다.ㅎㅎ
유현덕님의 글은 .. 정성이 5할입니다.
정성스러운 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보기엔 커쇼님이야말로 삶을 참 진중하게 대하는 분이라 여겨집니다. 책에서 모든 인생을 배울 필요는 없지만 책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독이 문제가 아니라 한 권의 양서를 내 것으로 만들어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커쇼님이 그런 분처럼 보이구요.
서로서로 자극을 주고 공부하는 기회가 된다면 이 카페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요. 저는 커쇼님의 글과 댓글에서 이런 덕목을 발견해서 참 좋답니다.ㅎ
ㅎㅎ
웃음이 납니다..
시공의 차이가
있겠지만
프랑스문화원을
들락이고
카뮈에 심취하고
더구나
신촌 주위를 배회하고..
삶의 괘적(?)이
흡사 나를 보는 것이라
글의 내용에 취하기 보다
놀라움에 웃음이
나옵니다.
현덕님을 보며
느낀 친숙함에
이런 것들이
이유가 될까요?
ㅎㅎ
글제를 보고
옳커니 하며
이끌려 왔습니다..ㅎ
ㅎ 반가운 요석님,,
알토란 같은 내공과 맑은 감성을 가진 요석님이야말로 마음 부자여서 제가 부러운 분입니다. 요석님도 사간동에 있는 프랑스 문화원을 분명 드나들었을 테구요.
여행지 정보도 그곳에 가면 있었고 근처 화랑가에서는 그림 냄새가 진동했거든요. 어쩌면 요석님의 이런 감성도 그때 가슴에 담은 문화예술이 숙성된 것이지 싶습니다.
못난 글에 따뜻한 댓글이라 기분이 참 좋습니다.ㅎ
영화를 자주 보시는 유현덕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달려가서 보실 수 있으니 참 부럽습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사진 속의 멋진 남자가 47살에 먼 곳을 가버렸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저는 요즈음 느끼고 있는데
책과 영화를 멀리한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어서 글문이 꽉 막히고 이름도 모르고
그렇지만 유현덕님 글은 보면 따뜻하고 술술 읽힙니다
네, 제가 신촌에서만 43년째 주소를 두고 삽니다. 세월에 휩쓸려 많은 것이 변하지만 예전에 쌓은 추억을 하나씩 꺼내 돌아 보는 재미도 있네요.
제가 보기엔 가리나무님도 감성 풍부한 분이시네요. 재주 많은 사람은 신도 질투을 한다던데 너무 일찍 떠난 카뮈의 일생이 안타깝습니다.
인생은 후반전이라는 말처럼 가리나무님도 이제부터 조금씩 문화생활을 해도 충분할 겁니다. 모쪼록 님의 인생 후반전이 풍성하길 빕니다.
알베르 까뮈~
그의 대표작으로는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 가
있습니다..
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46세이던 1960년에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습니다..
"삶에대한 절망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까뮈의 표현이나 글은 아름답고 심오하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곤 하지요..
이렇듯 철학적이고 깊은 사고를 거쳐야만 나올수 있는 글이
그의 나이 고작22세란 점을 감안한다면,,
난 그에게 존경심이 그저 존경심이 극에 달하지 아니할수 없음 입니다..
그가 차량에 동승을 하지 않고
예매해 두었던 기차표로 떠났더라면 까뮈의 인생여정은
어찌 펼쳐 졌을까요.
그런 그의 인생속살을 보노라면 제 속마음은 창살없는
방안에 갇힌 느낌??? 때론 미로속을 헤에이는 기분???
저는 22살 되던 해인가?
신촌에 산울림 소극장이란 곳에서
윤석화님의 모드라마...
"목소리"를 관람했었습니다
그때의 여운이 지금까지 가시질 않고
마음속에서 조용하게 용솟음 치고 있네요..
곧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오네요
풍요로운 한가위 맞이하셔요^^
긴 글 천천히 정독 했습니다.. :~)
와우~ 멋진 칼라풀님,,
영양가 넘치고 감성 가득한 댓글이 뷔페가 따로 없습니다. 닉처럼 건네는 댓글도 고루고루 칼라풀하네요.
님이 정리해 주신 카뮈의 일생이 훨씬 더 명료해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말씀 대로 카뮈의 대표작들은 그가 20대에 쓴 것들이 완성도가 훨씬 높다고 하지요. 제가 카뮈의 모든 저서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이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칼라풀님이 산울림에서 윤석화님 공연을 보셨다니 친근함이 더 생기네요. 윤석화는 연극무대에 최적화된 배우로 같은 시대에 이런 배우와 함께 있다는 것도 복이지요.
연극 무대에서 느낀 여운만큼 오래 가는 것도 없는데 아마 칼라풀님이 그런 것 같습니다. 님도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뫼르소의 삶은 불행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사회의 편견속에 고립된 삶을 살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니 세속의 눈으로 보면
분명 불행한 삶인데...
반면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사회적 성공이나 물질적인 풍요보다
내면의 평화를 중시했으며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괜찬은 삶 같기도 한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뫼르소의 행복 척도를 어느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는 걸 카뮈가 이 작품에서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90의 행복을 갖고도 나머지 10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누구는 20을 갖고도 이만하면 어디냐고 만족하며 살기도 합니다.
인생엔 정답이 없어서 사는 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저부터 정답을 모르니 그냥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라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한가위가 코앞인데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에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 궂은 날이네요. 그래도 비온뒤님 가슴에 고운 달빛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신문에서나 읽을 법한 아주 귀하고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집필하시느라 노고가 크셨겠습니다.
저는 문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몇 십년 동안 연극을 한번 보았는지 두번 보았는지 까마득합니다.
카뮈는 고작 이름만 아는 정도입니다.
곡즉전이란 닉만 보고도 심오하면서 철학적인 분이라 여겨져 반가움이 앞섭니다. 제가 팔랑개비처럼 가벼운 사람이라 이런 묵직한 닉에 눈길이 간답니다.
아무리 님께서 문화생활과 거리가 멀다해도 카뮈를 아는 것만도 어디인가요. 부족한 글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