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erno’, ‘Poema’, ‘Buscandote’
이 세 노래는 초급 수업용 음악의 삼신기(三神器)입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템포라 동작을 연습하기도 좋았고
멜로디가 워낙 감미로워 탱고 음악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했습니다.
초급 수업 내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를 정도지만 전혀 질리지 않았고
지금도 가장 즐겨듣는 노래들이죠.
그런데 이 음악들은 무엇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주아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들이라
꽤나 낭만적인 상상을 해보며 가사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Invierno, 겨울.
첫 도입부는 확실히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듯 하지만
그러면서도 벽난로처럼 은근히 따스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지만 그대가 있어 포근해요..라는 노래일 거라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겨울이 돌아왔구나. 겨울서리는 사랑 없는 내 삶을 벌써부터 아리게 하고 있어.(Volvió el invierno con su blanco ajuar, ya la escarcha comenzó a brillar en mi vida sin amor.)”
상상보다 꽤 심각하게 나가는걸?!
그렇지만 “그대를 만나 안식과 평안을 얻었어요”라는 결말로 끝나지 않을까?
깊은 고통은 홀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깨닫게 하네.(Profundo padecer, que me hace comprender, que hallarse solo es un horror.)
사무치는 찬 바람이 가슴을 헤집어놓을 때면 울고 싶어라.(Y al ver cómo soplan en mi corazón, vientos fríos de desolación, quiero llorar.)
내 마음은 떨쳐버릴 수 없는 겨울 안개에 사로잡혀있으니까.(Porque mi alma lleva brumas de un invierno, que hoy no puedo disipar.)
헛된 기대였습니다.
겨울 서리는 외로운 삶을 더욱 끔찍하게 만들고,
겨울 바람은 가슴을 사무치게 파고들고,
겨울 안개는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기대와 전혀 다르게 꿈도 희망도 없는, 시궁창 같은 현실을 담담하게 노래합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지만, 그 다음 노래에 희망을 품어봅니다.
Poema, 시.
이거야말로 ‘당신이 내 인생을 시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줘요’라는 노래겠지?
너의 장미가 더욱 아름답게 다시 피어날 때, 넌 내 사랑을 기억하겠지, 그리고 내 쓰라린 아픔을 알게 되겠지(Cuando las flores de tu rosal, vuelvan mas bellas a florecer, recordarás mi querer, y has de saber, todo mi intenso mal.)
가슴을 달뜨게 하던 시들 속에도, 우리 둘 사이에도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아 보여(De aquel poema embriagador, ya nada queda entre los dos)
내 슬픈 작별인사 속에 담긴 아픔을 느껴줘(doy mi triste adiós, sentiras la emoción, de mi dolor)
한때는 나의 뮤즈였던,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의 시들을 쏟아내게 했던 그녀지만
가슴 아프게 헤어지고, 다만 바라는 것은 내가 진정 사랑했는지,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알아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것뿐……
역시 가슴 아픈 작별의 노래네요;;;
최후의 희망은 Buscandote!
아주아주 낭만적인 분위기인데다 ‘그대를 찾아서’라는 뜻이니
이거야말로 달달하고 꽁냥꽁냥한 사랑의 노래겠지?
Vagar…
con el cansancio de mi eterno andar,
tristeza amarga de la soledad
ansias enormes de llegar.
Sabrás…
que por la vida fui buscándote,
que mis ensueños sin querer rompí,
que en algún cruce los dejé.
Mi andar apresuré
con la esperanza de encontrarte a ti,
largos caminos hilvané
leguas y leguas recorrí.
Después que entre tus brazos
pueda descansar,
si lo prefieres volveré a marchar
por mi camino de ayer…
헤메었어요
끝없는 여로에 지치면서도
쓰고도 슬픈 고독을 마시면서도
그대에게 닿기를 한없이 갈망했죠
당신은 알까요
평생토록 당신을 찾아 헤메었다는 것을
사랑을 찾지 못한 채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을
어느 갈림길에서 꿈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걸음을 재촉했죠
어딘가에서 당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머나먼 길을 밟으며
수천수만리를 헤메었죠
그대의 품 안에서
잠시 피곤을 덜게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다시 떠날게요
어제까지 걸었던 그 길로
안물안궁 TMI(안 물어봤고 안 궁금했던 too much information)가 쏟아지면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사랑을 찾으리라는 당찬 기대를 품고 여기저기 헤멨지만
결국은 사랑도 못 찾고 꿈도 잃은 고단한 신세..
사랑을 찾으리란 기대를 버렸을 때
거짓말처럼 평생토록 찾아헤멨던 사랑을 만났지만
기껏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가 잠시 안기는 것에 불과하다니……
“잠시만 안아주세요, 잠시 피로만 풀고 갈게요, 절 안 원하시면 바로 떠날게요”라고 사정하고 애원하는 거말고는
무언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뭐라도 해볼 의지도 사라졌다니…… ㅠㅠ
고달픈 떠돌이의 신세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ㅠㅠ
라틴음악 “널 사랑하니까(Por amarte así)”의 가수는
널 너무 사랑해서 행복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하다고,
그래서 널 사랑하는 것은 축복이자 형벌이지만(Es esa mi fortuna, es ese mi castigo)
일곱 번을 더 산다고 하더라도 이 사랑, 이 마음을 지킬 거라고(Si aún tengo que esperarte siete vidas más, Me quedaré colgado de este sentimiento)
굳세고도 뜨거운 사랑을 다짐합니다.
팝송 “날 내일도 사랑할 건가요(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의 가수는
당신이 나밖에 없다고는 말하지만(You say that I’m the only one)
이게 계속 지속될 사랑인지 한 순간의 쾌락에 불과한지를 알고 싶다며(Is this a lasting treasure, or just a moment’s pleasure?)
날 내일도 사랑할 거냐고(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당돌하고 깜찍하게 물어봅니다.
그러나 Bucandote의 가수는
사랑을 지킬 의지도 없고
감히 날 내일도 사랑할건지 물어볼 배짱도 용기도 없습니다.
그저 잠시 안아주기만 바랄 뿐,
떠도는 신세를 면치 못할 거라는 불안감을 품고 있습니다.
사랑따위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 하고
다만 한 순간 그녀를 안아본 따스함만을 가슴에 품고 살려고 합니다.
체념이 물씬 풍기는 패배자(loser)의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누가 이 사람을 비웃을 수 있을까요?
한창 때는 세계를 정복할 것 같았지만
나이가 들며 기력이 쇠하고 의지가 꺾이고
결국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고달픈 신세……
그 속에서 어쩌다 만나게 되는 사랑도
함께 하자고 말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며 쓰디쓴 눈물을 흘리는 운명……
우리의 애처로운 인생이 바로 이와 닮지 않았나요?
여기서 탱고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탱고 음악은 처음에 얼핏 듣기에는 무척이나 달달하고 감미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쓰디쓴 현실이 숨어있습니다.
너무나 달콤해서 거부할 수 없지만
달콤한 맛을 보자마자 덮쳐오는 쓰디쓴 맛……
탱고는 바로 이런 달콤쌉싸름한(bittersweet) 인생,
황홀하면서도 고단한 인생을 닮았습니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동화일 줄 알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잔혹한 현실이 녹아있는 잔혹동화.
탱고는 이런 잔혹동화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탱고는 달콤쌉싸름한 잔혹동화입니다.
알면 알수록 다채롭고 복합적이고 오묘한 인생을 보여주기에
탱고는 그토록 알쏭달쏭하면서도 매혹적인 거겠죠.
첫댓글 잔혹동화. 제목 좋네요!-
탱고를 알면 알수록 결국은 잔혹동화 같아요 ㅠㅠ
새상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거지요.
그런데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을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기대를 하니 힘든 것이고요^^
전 탱고 딱 좋은데요.
맘 놓고 한 딴따 동안 가슴이 뜨거워지게 춤추고 아쉬움과 여운이 남지만 쿨하게 보내주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지요.
사회적 통념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안전한(?) 사랑을 하는거지요. 아마 탱고의 아브라소는 왠만한 애인이 안아주는 것보다 편하고 부드러울껄요. 세상 편안한 또 다른 나~ 걸음과 음악과 호흡에 이물감을 느낄 수 없을때.....
영원한 것도 없고 영원해서도 안되고 영원할 수도 없고~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 '지금'인거지요.
달콤이 들어있어 다행인 잔혹동화가 삶이지요^^ 쌉싸름하기만 하면 하늘이 까맣찮아요~
해리님~ 담에 보면 부지런히 까베를 보낼테니 달콤함을 잘 챙겨주세요~^^
일요일 밀롱가 다녀오신거지요~?
달콤? 쌉쌀? 달콤쌉쌀?
다음에 위 세곡에 춤을 출 때 춤에 달콤쌉쌀이 묻어나는지 살펴야겠어요~
문득 전에 스페인어를 잘 하시는 땅게로가 음악이 슬픈데 어떻게 춤추는데 웃느냐고 하셨던 생각이 떠오르네요^^
(전 늘 웃는 중이라~><)
무한의 영원과 순간의 지금.. 요것도 탱고의 핵심주제 중 하나인 거 같아요.
뭐, 의도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음악은 슬픈데, 얼굴은 웃고 있는 것도 분명 탱고의 정서라고 생각하구요 ^^;;;
이렇게 오늘도 또하나를 배우고가내여 ㅎㅎ
좋은글 감샤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ㅋㅋㅋ 탱고곡은 치정이나 쓸데없는 애정사를 다룬 노래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쓸데없는 치정과 부질없는 사랑.. 그게 인생이니까 그렇겠죠? ^^;;;;
해리님 힘내요~~화이팅~^^
전 힘이 넘치는데용? 그냥 저 노래들의 화자에 잠시 감정이입을 해본 것뿐~ ^^
달콤 쌉싸름을 즐겨봐요.
함께~~^^
단 맛이 있기에 쓴 맛이 더욱 쓰고, 쓴 맛이 있기에 단 맛이 더욱 달게 느껴지니..
행복이 불행이고, 불행이 곧 행복이겠죠 ^^
반갑네요~~해리님 글^^
쎈뜨로 113 생각하니 행운이 함께 했네요~~ 해리님 후기 열심히 찾아 읽었는데..
앞으로.. 언제인지...
편하게 밀롱가 다닐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즐감~~^^
두어 달 뒤 정도면 슬슬 편해지지 않을까요? ^^
ㅎㅎ 나비잠님 이제 좀 편하게 다니고 계신거잖아요~
자주 얼굴 뵈요~♥
언젠가 탱고음악의 내용이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이별,상처,후회,매달림등등...ㅋㅋ
찌질한 연애사는 다 담겨 있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냥 음악만 듣고 춤만 추기로 했어요...^^
생각보다 가사랑 상관없이 탱고음악은 좋은게 넘 많더라구요~
꼭 탱고만 그런게 아니라 대중음악의 사랑 노래는 대체로 찌질한데..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 모든 노래들이 다 내 얘기같은 게 함정 ㅋㅋ
@해리(쎈뜨로113) 슬픈 가사내용에 즐겁게 춤추긴 싫지만,
어차피 못 알아 들으니 ㅎㅎ
탱고 춤에만 집중하는 걸로 갈래요 ㅋㅋ
근데 답댓을 넘 빨리 다는거 아닌가요? ㅎㅎ
@연진(114랑해) ㅋㅋ 저도 오늘이 8월 9일인줄 알았습니다~
셋 다 좋은 곡인데
가사가 그렇군요?ㅠ.
저는 걍 음만 들을래요.
음과 가사의 괴리감이 꽤나 낯설죠 ^^;;;
정성스러운 포스팅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