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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9일 수요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제1독서 : 2마카 6,18.21.24-31
복 음 : 요한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렸을 때, 아침이면 집안이 시끌벅적했습니다.
6남매이다 보니, 회사 출근과 등교 준비로 늘 바쁜 아침이었습니다.
이렇게 바쁜 아침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바로 화장실 문제입니다.
가족 모두 이용해야 하는데, 화장실 숫자는 마당 구석에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장실 앞에 줄이 서 있을 때, 저는 곧바로 앞 건물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이 앞 건물이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1분만 뛰어가면 바로 성당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당 화장실을 거침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집처럼 편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 집 화장실보다 더 많이 이용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정 급하면 사정을 이야기하고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웬만해서는 이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성당은 제게 너무나 편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편한 곳이 된 것은 그만큼 성당에 자주 갔기 때문입니다.
매일 미사를 했고, 또 복사를 서면서 성당은 집처럼 편해졌습니다.
주님과 편한 관계가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많이 주님을 만나야 하고, 주님과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가깝고 편한 관계가 되는 길입니다.
즉, 기도를 통해 대화하고, 신앙생활을 통해 주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들 때, 주님께 얼른 달려가서 그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주님 안에서가 아닌 세상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의 동료 순교 복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들은 아직 성인품에 오르지는 않으셨지만,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바치셨으며
이로써 지금의 한국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신 우리의 선조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실제로 우리 순교 선조들은 자기 죽음을 통해
이 땅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신 분이셨습니다.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크기에 배신할 수 없었고, 그 사랑이 너무 편안해서
주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을 행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과거 우리 순교자들이 보여주셨던 주님께 대한 사랑을 우리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가득 담을수록 주님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편한 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영광
반영억 라파엘 신부
오늘은 잊었던 감격을 일깨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하며
프란치스코 교황 124위 시복식 미사 강론을 요약해 봅니다 (2014,8,16).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성 바오로는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의 영광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 신앙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키시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셨고, 그분의 승리는 또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안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승리를 경축합니다.
이 순교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환희와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함께 참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승리를 우리에게 선사하셨음을, 순교자들은 성 바오로와 함께 증언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순교자들의 승리, 곧 하느님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한국 땅에서, 교회 안에서 계속 열매를 맺습니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들의 희생으로 이처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복자 바오로와 그 동료들을 오늘 기념하여 경축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여명기, 바로 그 첫 순간들로 돌아가는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는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의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민족,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적 호기심과 종교적 진리의 탐구를 통해 촉발되었습니다.
복음과 처음으로 만난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더욱더 많이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에 대한 무언가의 깨달음은 곧 주님과의 만남으로 이어져,
첫 세례들과 더불어 충만한 성사 생활과 교회적 신앙생활에 대한 열망,
그리고 선교 활동의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사회적 신분의 차별과 상관없이,
믿는 이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던
초대 교회의 삶(사도 4,32 참조)에서 영감(靈感)을 받아,
한국의 신자 공동체들 안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평신도 소명의 중요성,
그 존엄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은 헌신적으로 행하는 각자의 직무 수행을 통해
지난 세대의 신앙 선조들이 일구어 온 풍요로운 신앙의 유산을 지금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어
세상 안에서 거룩함과 진리의 누룩, 즉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이 땅에 믿음의 첫 씨앗들이 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요한 17,14 참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됨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박해를 의미했고,
또 나중에는 산속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즉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그들의 진정한 보화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정신에 순응하라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 최우선으로 모시고,
그다음에 이 세상의 다른 온갖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원한 나라와 관련해서 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순교자들은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지를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해 옵니다.
또한 순교자들은 그들의 모범으로, 신앙생활에서 애덕의 중요성에 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 증언의 순수성이었고,
세례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지녔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대의 엄격한 사회 구조에 맞서는 형제적 삶을 이루도록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계명을 분리하는 데 대한 그들의 거부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제들의 필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믿는다면,
우리는 순교자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간직했던
그 숭고한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마침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오늘의 이 경축을 통하여, 지난 마지막 세기에,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그분의 이름 때문에
모진 박해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 이름없는 순교자들을 기리며 기억해야 합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부터 아시아 전역을 거쳐
마침내 땅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오늘은 그들 중 5위(이일언, 신태보, 이태권, 정태봉, 김대권)가
1839년 전라도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날입니다.
이들은 한국 초기 교회의 순교자들로서,
시대로는 오히려 103위 성인보다도 앞서 사셨던 분들입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병인박해 순교자 103위를 시성했으나,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교회를 일궈낸 이들이 누락 되었다가,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에 의해 신해 박해(1791)부터 병인박해(1866)까지의
124위 순교자들이 시복된 것입니다.
그들 중 124위 중 최연소자는 12세로 이봉금 순교자이며,
최고령자는 75세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의 증조부인 김진후 순교자입니다.
이들 가운데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은 이종사촌입니다.
전라도 진산 출신으로 1790년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가 체포령이 내려지자 자수했습니다.
1791년 12월 8일에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첫 성직자입니다.
구베아 주교의 파견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1794년 입국했습니다.
강완숙 집에 숨어 지내면서 성사를 집전해
6년 만에 조선교회 신자 수를 1만 명으로 늘리는 데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신유박해 때 귀국을 결심했다가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했고,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의 아버지인데,
형 약전에게 교리를 배우고 가톨릭에 입교했습니다.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해
주문모 신부의 인가를 얻어 교우들에게 보급했고,
평신도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내다 1801년 순교했습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첫 기념일을 앞두고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님은 특별담화문에서,
그들은 “신분 차별과 불평등, 가난이 일상화되었던 시대에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보여주었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복자들에게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우리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고 권고하였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에서 윤지충 바오로를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진산 군수가 “네가 사교(邪敎)에 빠져 있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자,
“저는 전혀 사교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천주의 종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길입니다.” 라고 대답하였고,
또 다른 곳에 이송되어서도 “왜 사교에 빠져 방황하느냐?”고 문책하자,
“저는 조금도 사교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요 위대한 아버지신데,
그분을 섬기는 것을 사교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고 전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는 말씀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곧 목숨을 바쳐 섬기는 순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이야말로 곧 '순교'입니다.
'섬김'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섬김의 순교'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함께 있는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곁에 있는 형제를 존중하고, 함께 계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섬김으로 당신을 증거하게 하소서.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지난 5월 5일에 ‘첫 영성체’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성체를 처음으로 모시는 아이들의 모습이 순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새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맨 아이들의 모습은 천사 같았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이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강조이(아녜스), 강소희(스텔라), 김민준(다니엘), 김예성(미카엘라), 김재호(토마스 아퀴나스),
박서인 (헤론), 박수현(스텔라), 박세온(프렌시스), 엄율하(노엘라),
이영후(사비나), 임유빈(브루노), 장유주(로사), 전라희(벨라뎃다), 정서현(줄리아),
진도미닉(프란치스코), 릴리 지윤 페냐스(릴리아나), 아리얼 은윤 페냐스(아리얼), 홍재원(루크)”
미사 후에는 아이들을 위한 파티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파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선물과 첫 영성체 증서를 주면서 파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조금 늦은 나이인 1974년에 동생과 함께 첫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기억에 남은 것은 당시 찍었던 ‘첫 영성체’ 사진입니다.
기도문을 외우던 것도 기억납니다. 12개 기도문을 외워야 했습니다.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첫 영성체를 하였던 저는 사제가 되었고, 동생은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1984년에 저는 신학생이었습니다.
1984년 5월에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103위 시성식을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여의도 광장에는 대형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시성식에 함께 하기 위해서 전국에서 교우들이 여의도로 왔습니다.
당시 저는 질서유지를 위한 안내를 맡았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휴지 한 장 없이 행사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보도 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난 1994년에 저는 보좌 신부로 용산 성당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2년 동안 본당 신부님을 3분이나 모시는 색다른 체험을 했습니다.
용산 성당은 ‘성직자 묘지’가 있는 성당입니다.
해마다 위령의 날이 되면 교구장님과 사제들이 ‘위령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난 2004년에 저는 교구청이 있는 명동에서 지냈습니다.
제가 명동의 사목국에서 교육담당 사제로 일하게 된 것은 작은 사연이 있습니다.
2001년 저는 ‘사제 성화의 날’에 사목체험을 발표하였습니다.
저의 체험담이 바람을 타고 교구청이 있는 명동까지 전해졌고,
사목국장 신부님이 제가 있던 성당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저는 3년 동안 교육담당 사제로 일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난 2014년 저는 또다시 교구청이 있는 명동에서 지냈습니다.
이번에는 성소국장의 소임을 맡았습니다.
2014년에는 오늘 축일로 지내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위한 시복식이 있었습니다.
시복식을 위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하였습니다.
시복식은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질서유지를 위해서 안내하던 저는
‘영성신심분과’를 맡아서 시복식 준비에 함께하였습니다.
겸손하시고, 따뜻하신 교황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 저는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첫 영성체’를 함께 하였습니다.
아이들의 첫 영성체를 보면서 저의 지난 50년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순교자 영성’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순교 영성이란 말은 흔히 순교 정신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곧 순교자들이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의
모든 신앙과 신념과 모범적 삶 모두를 총칭하는 것이다.
즉 오직 하느님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생명까지도 포기하며 사는 삶,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와 닮은 삶을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순교 영성, 순교 정신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소중한 목숨을 바치는 순교가
스승이신 그리스도와 가장 긴밀하게 일치하는 것이며
그분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길임을 깨닫고 그 길을 따랐으며
다른 이들에게도 그 길을 따를 것을 권고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순교자들의 삶을 살지 못하고 그분들의 정신을 기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알맹이 빠진 껍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그마한 일상에서 순교하는 삶,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그분을 위해 많은 자리를 비워 놓으며 그분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신앙생활,
바로 오늘날의 순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할 때 그 옛날 우리의 순교자들이 목숨 바쳐 지킨 신앙을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퇴색됨 없이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시련을 통과하면 생명의 화관을 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을 어찌 사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124위 순교 복자 시복식이 거행된지 벌써 1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참 세월이 빠릅니다.
통상 바티칸 외에서 거행되는 시복식은
諡聖省 장관 추기경이 집전하는 것이 보통인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친히 방한하셔서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식을 거행하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기념일에 다블뤼 주교님께서 쓰신
복자(福者) 윤지충 바오로(1759~1797) 대한 약전을 읽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는 현재 충남 금산군에 위치 해 있는 진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진산은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
그곳에 가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기념하는
진산성지(대전교구 관할)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의 가문은 여러 정관계 인사들을 배출한 명가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예의 바르고 총명했으며 학문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25세 되던 1783년 과거에 응시해서 진사(進士)를 취득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물론 가문의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도 컸습니다.
그런 윤지충 바오로가 1784년 겨울 경성에 머물렀을 때,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 놀러 갔다가 운명 같은 책을 두 권 발견합니다.
그 유명한 ‘천주실의’와 ‘칠극’입니다.
순식간에 두 권의 책을 읽은 윤지충 바오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됩니다.
두 권의 책을 사본으로 만들어 계속 탐독하였습니다.
그의 내면에서 시작된 하느님과 진리에 대한 갈증은
그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 있는 여러 가톨릭 관련 서적들을 읽은 그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좋은 교리교사로부터 예비자 교리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가톨릭 관련 서적을 스스로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또 주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선포한 윤지충 바오로의 신앙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느님과 진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그 자발성,
그 적극성 앞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윤지충 바오로의 하느님과 진리,
새로운 세계와의 달콤했던 순간들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조정은 조상제사 문제, 신주 문제를 이유로
가톨릭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그는 즉시 관아로 자진 출두했습니다.
진산 군수와 윤지충 바오로 사이에 이루어진
심문 기록이 아직도 정확히 남아있습니다.
둘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탁월한 신앙인이었으며,
그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군수: “소문이 매우 심각한데, 근거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네가 사교(邪敎)에 빠져 있다는 게 사실이냐?”
윤지충 바오로 “저는 전혀 사교에 빠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천주의 종교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군수: “그것이 사교가 아니냐?”
윤지충 바오로: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길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진산 군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윤지충 바오로를
잘 설득해서 배교시키려고 안간힘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군수는
탄식을 터트리며 그를 전주 감영으로 이송시켰습니다.
전주 감영의 감사가 또다시 묻습니다.
감사: “왜 사교에 빠져 방황하느냐?”
윤지충 바오로: “저는 조금도 사교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감사: “그렇다면 천주의 종교가 사교가 아니더냐?”
윤지충 바오로: “하느님은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요 위대한 아버지이신데,
그분을 섬기는 것을 사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감사: “너는 죽게 되더라도 이 종교를 버리지 못하겠느냐?”
윤지충 바오로: “만약 제가 높으신 아버지를 부인하게 된다면,
살아서든 죽어서든 어디로 제가 갈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 때문에, 견고한 가톨릭 신앙 때문에,
임금 앞에는 반역자, 부모 앞에는 불효자,
친구들 앞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윤지충 바오로는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과 의연함을 드러냈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에 대한 사형은 신속히 이루어졌습니다.
0대의 곤장을 맞고 난 그에게는
효수형(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형벌)이 언도되었습니다.
1791년 12월 8일 그는 33세의 나이로 순교자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조욱현 토마 신부
오늘은 한국천주교회의 초기의 순교 복자들 124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떼르뚤리아누스 교부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다.』(호교론 50,13) 했듯이
이분들은 참으로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씨앗이 된 분들이다.
지난 2014년 8월 16일 서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시복되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
우리 순교자들은 모두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한 알의 밀알이었다.
그 밀알이 죽음이라는 행위를 통해 다시 살아나 많은 열매를 맺었다.
오늘의 한국천주교회의 모습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신 길과 같다.
예수께서 지상 생활을 하실 때는 하느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부활의 영광을 입으셨다.
십자가와 부활의 열매로 모든 이가 그분을 알게 되었듯이
순교자들의 피는 이렇게 열매를 맺은 것이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절).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자신의 삶에 대해 과도한 욕망에 빠짐으로써
자기를 파괴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자기 자신이 파멸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이러한 집착에서 자유로우며
진정으로 하느님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위해 우리 자신을 이겨 나가야 한다.
순교자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늘 하느님의 뜻 때문에 자신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26절)
그분을 올바로 섬기려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그분이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1요한 2,6 참조).
사랑을 실천할 때, 선을 행하려는 뜻 말고 다른 의도가 있어서는 안 되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마태 6,3 참조).
오늘의 순교 복자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분을 닮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으며,
당신의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위해 가장 큰 사랑을 드리셨다.
우리가 지금 순교 정신을 산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같이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끊고 나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실현하며 그분을 체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분의 길을 가지 못하면서 그분을 따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삶으로 순교자들을 기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믿음의 완성이요, 모범이요 증거인 순교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순교자들의 축일을 지낼 때마다 부끄럽고 괴롭습니다.
육신은 편한데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죽었는데 저는 죽지 않으니 말입니다.
요즘 우리는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고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으니 자기(Ego)를 죽이지 않으며,
자기를 죽이지 않으니 자기 살자고 남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고도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지금이
옛날 우리 선조들의 신앙생활보다 더 복되다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실은 육신은 죽어도 영혼이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그리고 신앙인이란 이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으며
성인들 특히 순교 성인들은 그것을 완성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순교 성인들은 그것을 완성한 분들일 뿐 아니라 모범입니다.
오늘 독서 마카베오서의 엘아자르는 이런 순교의 모범입니다.
율법이 금한 돼지고기 대신 먹어도 되는 다른 고기를 먹으면
살려주겠다고 책임자들이 제의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하지요.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눈을 한 번 질끈 감아도 될 것입니다.
나는 순교할 마음이 있고 또 순교의 용기를 이미 보였다고 합리화해도 됩니다.
사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보면 그래도 됩니다.
나의 믿음을 하느님께서 다 아실 터이니 말입니다.
입으론 배교해도 마음이 그렇지 않다면 말입니다.
얼마 전 일본에 합동평의회 때문에 갔을 때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일본 순교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었는데 이때 영화로도 만들어진
엔도 슈사꾸의 그 유명한 소설 <침묵>의 배경이 되었던 곳도 방문했지요.
이 책을 저는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는데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후미에 밟기입니다.
후미에 밟기란 배교의 표시로 성상이나 십자가 등을 밟게 한 것인데
배교하지 않으면 신자들을 죽임으로써 이웃 사랑의 배교와 순교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는 고문 방식이었지요.
이때 주인공인 신부는 이웃 사랑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이라면
이웃 사랑을 위해 당신 얼굴을 밟으라고 하실 것이라고 믿고 후미에를 밟지요.
이때 주인공인 신부는 주님의 이런 말씀을 마음속으로 듣는 듯하였습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도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아무튼 겉으론 후미에를 밟아도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믿으면
주님께서는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래서 배교해도 되지만,
순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믿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순교의 세 번째 이유는 증거입니다.
순교가 다른 믿는 이들에게는 모범이 되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는 이들에게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증거하는 것이 순교라는 말입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대하게 죽을 수 있는 저 죽음은 무엇이고,
죽어가면서도 행복해하는 저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증거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믿음이란 육신은 죽어도 영혼이 사는 것이 행복임을 믿는 것인데
순교란 자신에게는 이 믿음의 완성이요,
다른 믿는 이들에게는 믿음의 모범이며,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믿음의 증거임을 순교자들에게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한 아델라 수녀
한국 순교 복자들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삶 안에서,
그리고 한국 천주 교회사 안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물론 실제로 밀알이 되어 열매 맺는 하나의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자연스레 희생이나 인내에 대한 어떤 대가를 생각하고
셈을 하게 되는 인간 본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그 본성을 늘 이겨내는 인내를,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청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희망하는 것은 바로 끝을 알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하루 중 일어나는 작은 희생이, 어려움이
밀알이 되어 열매 맺어 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기억하며
기쁘게 삶을 살아내면 좋겠습니다.
[출처]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대구수녀원 - 복음묵상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