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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포인트는 뉴욕주 미국 육군사관학교(USMA)를 지칭하는 별칭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약 80km가량 북쪽 지점 허드슨강을 내려다보는 고지대에 있다. 풍광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사적으로 필수적인 망루가 돼 강 건너편을 지켜볼 수 있는 요새라는 점이다.
1802년 토마스 제퍼슨이 처음 학교를 열었다. 같은 해 뒤이어 학교가 병설되어 6,475만 제곱미터 넓이로 확장됐다. 그 결과 웨스트포인트 캠퍼스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캠퍼스 중 하나를 갖추게 됐다.
웨스트포인트는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영웅들을 다수 배출 한 역사적 성과로 유명하다. 또 웨스트포인트 출신 장교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 부상 실종돼 한국과도 굳게 연결돼 있다.
1950년 졸업생 365명 중 졸업 직후 한국전선에 330명이 투입됐다. 그중 41명이 전사하고 110명이 부상 실종됐다. 미군은 1950년 7월1일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3년 1개월간 전쟁을 치르면서 전사자 5만 4,246명을 비롯해 실종자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만 3,284명 등 17만 2,800여 명이 희생됐다. 국군 희생자 64만 5,000명에 비해 약 27%다. 이처럼 많은 미군들이 한국 땅에서 희생됐다
더욱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미국 장군의 아들 35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고, 장관의 가족도 미8군 사령관의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 중위는 1952년 미3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대통령의 아들이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했단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의 아들 샘 워커 중위는 미 제24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부자가 모두 한국전쟁에 헌신한 참전 가족이다.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23일 의정부에서 차량사고로 순직 시, 아버지 시신을 운구한 사람이 바로 아들이었다. 그는 이후 1977년 미국 육군 대장이 되어 자유의 불사신이 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도 한국전에서 이들을 잃었다. 그의 아들 지미 밴 플리트 2세는 한국전에 지원해 B-52폭격기 조종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지미 대위는 1952년 4월4일 새벽 전폭기를 몰고 평남 순천지역에서 야간 출격 중 적의 대공포에 전사했다. 지미 대위가 처음 참전을 결심했을 때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선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저도 힘을 보탤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라고 적었다.
미 해병1항공단장 해리 장군의 아들 위리엄 해리스 소령은 중공군 2차 공세 때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시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임관한 신임 소위 365명 중 참전한 장교가 330명이며 그중 41명이 전사하고 110명이 부상·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대망을 펼치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교했는데 임관하자마자 한국전선에서 희생된 것이다.
우리나라 고위층 중에는 군 미필자가 많다고 한다. 국민의 신성한 의무를 완수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미 육군소위 41명과 큰 대조를 이룬다. 물론 미필자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국만리 낯선 땅에서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그들과 비교되는 건 사실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