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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기억 속의 신혼여행을 호주, 뉴질랜드로 다녀온 후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며 해외여행은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아이들이 6학년, 4학년이 되던 지난 겨울 역마살에 발동이 걸려 가까운 베이징엘 다녀왔다. 베이징투어에 탄력을 받아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7월 초가 되면서 또 일을 저질렀다. 갑자기 몸이 근질거려 H투어(하나투어 아님)가 제일 먼저 떠올라 다른 여행사와 비교도 하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클릭하여 서유럽 5개국 10일 코스를 선택하였다.
계약금을 입금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학기말 사무 처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여행이 코 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체력이 바닥나서 머리는 계속 어지러워 생각을 정리할 수도 없고 전신 근육은 뭉쳐 출발하기 전 등 관리를 받아가며 준비물도 챙길 여력이 없어 나의 영원한 오라버니께서 여행 가방을 꾸려 주고 중학생 딸에게 보디가드를 부탁하면서 무리하게 출발했다.
짧은 머리로 기억할 수 있는 한도의 문화유산과 느낌을 적어보고자 한다.
제 1일(2009.07.21.)-프랑크푸르트에 발을 딛다
인천 논현동 촌사람인지라 출근 시간 교통 혼잡을 피해 새벽같이 준비하여 한 시간 먼저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마일리지카드 적립도 하고 오가는 사람 구경도 하다가 가이드님을 만났다.
H투어 모객으로 딸과 둘이 R투어 팀에 합류하여 혹시 왕따 될까 조금 걱정했으나(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절대 왕따 될 사람 아니다. 인간성으로나 미모로나...ㅋㅋ) 가이드님을 만난 순간 느낌이 좋았다.
중국 갈 땐 남편과 작별 인사하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아이들에게 놀림 받았는데 벌써 두 번 째라 씩씩하게 인사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긴 시간 몸살 끝에 드디어 국제공항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제 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하며 들었던 꿈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발을 딛자 감개무량하였다. 숙소에 들어가긴 이른 시간이라 우린 만장일치로 프랑크푸르트 시내투어를 하였다.
아!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신성 로마 제국 시대 역사의 현장 ‘뢰먼 광장’-처음 유럽의 문화 유산을 접하고 가이드 서은경 과장님의 설명을 듣는 순간의 전율은 가보지 않은 분은 절대 모를 것이여.
의회 장소에서 황제 선출을 하고 황제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는 발코니(영화에서나 봤던 장면)는 우리 차범근 선수도 그 장소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는 일화까지 재미있고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며 감동이 시작되었다. 또한 황제 대관식이 이뤄졌다는 카이저 돔 성당까지 들어가는 팁이 있었다.
처음 본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중세 시대 성당의 장엄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광장 주변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아무리 마실 줄 모르고 먹지 않는 거지만 독일 맥주와 소시지가 유명하다는데 안 먹어보면 독일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싶어 잘 통하지 않는 영어를 열심히 구사하며 어렵사리 생맥주와 소시지를 샀다. 왜 그 동네는 조금씩 파는 건 없는 겨? 다들 우악스럽게 먹어 그리 살쪘단 말인가?
맥주는 두 모금 마시고 딸에게 한 모금 권했다가 미성년자에게 술 권하는 엄마라며 눈흘김 당하고, 소시지는 숙소에 가서 먹었는데 소시지 안 먹었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딸아, 엄마는 어디까지나 문화 체험을 시키려는 욕심이었을 뿐이란다.)
이렇게 첫 날을 성대히 보내며 아픈 건 어디로 사라졌다. 내가 여행오기 전까지 진짜 비척거린 거 맞아?
제 2일(2009.07.22.)-하이디의 숨결을 느끼다
마음씨 좋은 로마 아저씨 마리오(자칭 로미오)기사님의 버스를 타고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을 관람하며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그에 갔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인 고성을 바라보고, 하이델베르그 대학, 대학 광장,영화 ‘황태자의 첫사랑’배경지인 하숙집, 파크호흐 광장에 있는 성당 등을 보고, 중세 시대 영주의 성문을 지나 기념 사진도 찰칵,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산책했던 길도 거닐었다. 시장에서 제일 좋아하는 체리를 흥정하는 재미로 두 팩, 살구 한 팩을 사기도 했다. 다음은 예술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아름답고 아담한 인스부르그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지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닌 황금 지붕을 바라보며 마침 마을 악대들의 신나는 행진을 볼 수 있는 영광까지 누렸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하이디 소녀의 알프스산 기슭에 자리잡은 호텔을 우리 팀이 단독 전세를 냈다.
“하이디야, 드디어 언니가 왔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책에서 너를 만난 이래 알프스에 가보 는 게 소원이 되었단다.
이모가 너를 할아버지께 데려다 주는 장면, 무섭지만 깊은 정이 있는 할아버지 등을 상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요하고 맑은 공기, 목동들의 신호 종소리가 신비하게 들리는 이 곳을 거닐어보지 않으면 안 되지. 딸과 깜깜한 밤이라 더듬더듬, 조금이라도 맑은 공기를 더 마시고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산책했다.
제 3일(2009.07.23.)베니스여, 영원하라
아침 식사 후 한가로이 방목 중인 젖소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많이 아쉬워하며 이탈리아를 향했다. 여유가 된다면 일주일 쯤 머무르면 싶었다.
이탈리아의 수상 도시 베니스(베네치아)하면 베니스의 상인만 떠올랐었지.
버스 안에서 서은경 과장님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 깜짝 놀라며 이태리어 몇 가지를 듣고 순박한 우리 일행들은 반복 연습을 했다. 그라치에를 배운 후로 우린 수시로 그라치에(감사합니다)를 외쳐댔다. 우리나라에 가면 좀 더 적극적으로 반갑게 인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태리에 도착하여 조각 같은 넘이 나타나거든 부드럽게“오별-로”(남자가 멋있을 때 해주는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가는 도중 현지 가이드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가이드님의 꼼꼼하고 해박한 설명, 고품질의 유머로 우린 곳곳의 작은 것 하나 하나의 의미와 학창 시절 배웠던 건축 양식을 확실히 파악하고 역사적 사실을 깨달으며 한꺼번에 많은 걸 집어넣어 빵빵해진 머리로 38도의 폭염을 이기며 한국인답게 열심히 관광했다.
두깔레 궁전, 프리지오니 감옥을 잇는 탄식의 다리에서 디카 배터리가 방전돼 또 한 번의 탄식을 하며 이쁜님(김모 선생님)의 신세를 지며 찰칵!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는 정말 대단한 황제라 생각된다.
독일에서부터 계속 거론되는 그들이 축적된 부를 예술의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 위대한 문화 유산이 남아 있고, 거장들의 이름이 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우리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잠시 생각했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로 불렀다는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산마르코 성당 외관만으로 우리의 눈은 충분히 호사를 누렸다.
도대체 어떻게 바다에다 그렇게 거대한 수상도시를 치밀하게 건설했다는 것이야?
고딕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양식을 두루 겸한 건축물의 섬세함, 아름다움, 위용에 다시 한 번 감탄하고 또한 조상 잘 둔 이탈리아 국민들을 잠깐 질투하며 옛날엔 귀족들만 탔던 곤돌라에 올라 마을 곳곳을 둘러본 다음 선택 관광으로 수상택시를 타고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선장에게 ‘브라보’를 외쳤더니 마구 흔들어 줬다.
아름다운 베니스도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현지 가이드님을 처음 본 순간 혹시 음악 전공하시면서 가이드를 겸하는 분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오 솔레미오’로 마지막을 장식해주셨지.
“아! 멋있더라.”
그 날 밤 빨래를 두 시간 하고 다음 날 눈 떠보니 보송보송 말랐다.
아무리 더워도 습기가 없으니 맘에 들었다.
제 4일(2009.07 24.)-꽃의 도시,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에 가다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는 뜻이란다.
집집마다 발코니에 그림처럼 화분을 가꾸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단테의 생가를 들르며 단테의 신곡이 탄생하여 발간될 때까지의 숨은 이야기들을 자세히 듣고, 시뇨리아 광장을 들러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으로 불리는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구경했다.
두오모는 중신이라는 뜻이고 유명한 도시의 중심 광장에는 반드시 두오모 성당이 자리하고 있단다.
시뇨리아 광장 분수대에 서 있는 사나이들의 손끝, 몸짓 하나 하나가 건너편 성당 건축과 관련있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아주 재미있었다.
시뇨리아 광장 주변의 건물 베란다에서 시민들이 경기를 관람했다고 한다.
제 5일(2009.07.25.)-아! 그 이름 ‘천지창조’여!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알현하고자 바티칸 시국을 향했다.
아쉽게도 교황님은 멀리 출장 중이셨다.ㅋㅋ
르네상스 3대 거장인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의 감동은 감히 표현할 길이 없다. 누가 그림이라고 할 것인가? 조각이야. 인물들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에이, 이 문장력으로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 그러나 난 충분히 느꼈다.
"거룩한 성당 앞을 지키고 있는 스위스 근위병들아, 너희 둘 두고 보자. 더구나 성당 앞에서 유럽 아이들이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니 다정하게 찍고, 우리 아이가 사진 같이 찍어도 되냐고 정중히 부탁했는데 강하게 거절했지? 하느님이 보고 계신다."
가톨릭교의 본산지이며 가장 큰 성 베드로 성당이여, 위대하도다.
베드로 사제와 바울 사도께서 양쪽에 서서 맞이해 주셨다.
잠시 기도를 하고 자유 관람을 했다.
관람이 끝난 후 잠시 차를 타고 가서 가이드님의 팁으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쇠 구멍을 통해 보았다.
길 끝에 베드로 성당이 보이다니, 이런 치밀한 설계를 누가...?
천국 들어가기 전 베드로 사제께서 문을 열어줘야 들어간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다.
욕심 많은 나는 두 번 보면 혹시 천국행 티켓을 따려나 싶어 다시 한 번 봤다.
다음은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의 외관, 포로로마노 외관을 돌아보며 설명을 들었다.
가는 곳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대단한 옛 님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것들아, 너희들은 조상 잘 둔 덕에 좋겠다. 그래도 청소는 잘하고 손님을 맞이해라. 쓰레기도 마구 버리는 무지한 사람들아.”
다음 트레비분수에 가서 혹시나 하는 기대로 동전 한 개 던지고 전쟁기념관, 영화 ‘벤허’의 배경지인 경기장의 잔해, 건너편에 있는 그 시절 시장이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또한 ‘로마의 휴일’ 배경지인 스페인 광장 계단에서 잠시 오드리 햅번 포즈를 취했으나 그림은 영 딴판이로다.
선택 관광으로 벤츠 투어를 하면서 로마 오현의 마지막 황제 아드리안 황제 때 아그리빠에 의해 세워졌다는 판테온 신전을 관람했다. 기둥 모양은 코린트식이며 내부 직경이 43미터나 되는 아직도 사용되는 세계에서 두 번 째로 큰 돔 건물이란다.
기원 전에 그런 웅장한 기둥을 날라서 세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붕은 한참 올려다보는 높이에 원형 구멍으로 이루어졌는데 과학적인 설계로 비가 와도 지면 공기의 압력으로 비를 밀어 올려 신전엔 비 한 방울 들이치지 않게 지었다니 그들의 발전된 문화에 다시 한 번 감탄과 존경을 날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신교 신앙 신전이지만 종교를 떠나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 가이드님(로마의 안정환씨)과 사진도 찍고...
우리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 사진 찍자고 청하긴 처음이네. 다른 나라에 가면 이런 요상한 용기도 생기나 보다.
밤엔 피유지 휴양지에 가서 그 곳의 문화를 체험했다.
저녁을 먹고 마음 맞은 가족들과 산책을 하며 서양인들이 여유가 넘치는 여가 생활을 봤고, 이탈리아의 명물 피자집에 가서 피자 만드는 모습도 보며 엄청 싼 피자를 마음껏 먹었다.
이탈리아에서 피자 하난 싸고 맛있더라 .
그 집에 가기 전 그럴 듯한 피자집에 들어갔다가 동양인을 멸시하는 종업원들의 오만방자함을 보고 울분을 느끼며 나오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황색 인종 차별을 경험하니 우리 국력이 신장되도록 모두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6일(2009. 07. 26.)-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향하다
‘피사의 사탑’, ‘갈릴레오 갈릴레이’ 학자만 들어봤는데 더 중요한 피사대성당, 세례당, 납골당, 세계 7대 불가사의 피사의 탑 모두 우릴 놀라게 했다.
피사의 번영 시절 사라센 제국과의 전투 승리 기념으로 세운 탑이란다.
기울어지고 있는 이유는 토양이 충적토라서 이고, 매년 1mm씩 기울고 있어 100년 후엔 볼 수 없는 문화유산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기울어진 피사의 탑을 열심히 밀어보고 패션의 도시, 공업의 중심지 밀라노로 이동하여 스칼라극장,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두오모 성당을 둘러보았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앞에 있는 건물은 왕궁이었다고 한다.
광장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상이 있어 잠깐 포즈를 취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적 성향과 그들의 활동 내용은 버스 안에서 충분한 설명을 들었기에 동상 앞에서 그의 생을 들은 만큼 생각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두오모 성당에 반했기 때문에 좀더 얘기하고자 한다.
앞에 관광했던 성당들마다 입이 쩍쩍 벌어졌는데 두오모 성당은 그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에 어떻게 그런 건축물을 세울 수 있었단 말인가!
신을 향한 인간의 경외심을 잘 드러낸 첨탑마다 올려진 섬세한 조각상들, 그 중의 위 쪽에 빛나는 화관을 두른 성모마리아님...또 감탄 연발이다.
교황님께서 매년 5월(?)에 1회 큰 문을 여시고, 다음 문은 대주교님께서 여신단다.
중세 유럽 도시는 가톨릭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천주교 신자로서 이번 여행은 더욱 의미가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중에 스포르체스코 성의 외관을 둘러보았다.
뭐라 말할 수 없이 튼튼한 외곽, 그들의 일가를 지키기 위한 본능에 의해 오늘날까지 남아 자손만대에 영광을 주는 건물 앞에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제 7일(2009. 07. 27.)-신의 선물 융프라우 등정하다
스위스는 가 본 나라 중 제일 부러운 나라였다.
그림 같은 목조건물이 산기슭에 멀리서 보니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고, 인터라켄이라는 말답게 에메랄드빛 호수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정말 깨끗한 나라이다.
국민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 국민답게 여기저기 헹글라이더를 즐기고 있었다.
해발 3,454m의 Top of Europe 이라 불리는 융프라우는 산악열차를 타고 1역, 2역을 거치며 얼음동굴, 스핑크스 전망대를 감상하고 밖으로 나가 눈도 뭉쳐 보며 잠시 어린아이가 되어 보았다.
융프라우는 눈이 두텁게 쌓여있는데 앞산들은 잔디가 파란 그림을 가보지 않고 어떻게 느끼겠는가?
내려오는 산악열차를 탄 지 얼마 안 돼 비가 쏟아지더니 이내 우박이 내리고 다시 햇빛이 반짝이며 커다란 무지개가 동시 다발로 3개 활짝 떠올라 열차 안의 세계인들은 모두 열광하였다.
몇 시간 만에 그런 장관을 맛보다니 행복 가득이었다.
제 8일(2009. 07. 28)-낭만의 도시 파리 근교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루이 14세의 위용을 느끼다
베르사이유의 대단한 유리응접실, 어떤 영화에서 봤는데 내가 주인공이 되다니......!
왕비 침실 또한 대단했다.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유물로 눈이 부셨다.
한인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세느강 유람선인 바토무슈 크루즈에 탑승하여 미라보 다리, 퐁네프 등 유명한 다리와 각종 유물을 보고 에펠탑을 예습했다.
섬머타임으로 밤이 늦어도 도대체 어두워지지 않았다.
제 9일(2009. 07.29.)-루브르 박물관에서 밀러의 비너스 상 외 명작들을 만나다
파리 현지가이드님, 노련하시고 예술에 대한 이해가 대단하셔서 덕분에 알찬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미술책에서 잠깐 맛보았던 유명한 조각상들의 탄생 배경 및 감상법,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들의 인간 중심 사상이 깃든 작품 외 셀 수 없이 많은 명작들을 살펴보았다.
레지오 마리애 기도서에 나오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그림, 최후의 만찬 그림 등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나폴레옹이 끝내 완공을 보지 못했다는 개선문을 둘러보고 패션과 문화의 거리인 샹제리제 거리를 거닐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게 하도 많아 아픈 줄도 모르고 열심히 다녔는데 여행의 막바지에 피곤이 몰려왔다.
하지만 단군의 자손 한국인답게 콩코드(화합) 광장에서 일어난 역사를 재미있게 들었다.
루이16세와 마리앙트와네트 부부가 호화의 극치를 달리다 시민들의 반란으로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한 광장을 직접 봤다.
시민혁명의 본거지 바스티유 감옥 주변도 봤다.
갑자기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루이 16세 가족이 혁명군에게 가둬져 아주 불쌍한 모습으로 벌벌 떨던 인간의 최악의 장면이...
정치가들, 지도자들은 우리 보다 훨씬 역사를 잘 알텐데 역사적 교훈을 깡그리 잊는지 모르겠다.
가이드님이 버스 안에서 다시 한 번 여정에 따라 재확인시켜 주셔서 나름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땐 열흘을 견딜 수 있을지 내 체력을 의심하며 걱정했는데 하느님의 은총과 훌륭한 가이드님의 온갖 배려로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음엔 성지순례를 하리라 마음 먹으며 파리 드골공항을 향했다.
제 10일(2009. 07.30.)-그리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다
11시간 여의 비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그리운 우리 땅 인천에 도착했다.
떠날 때 평소 건강하지 못해 늘 걱정해주는 남편이 여행 가방을 꾸려주었다.
우리 딸과 단 둘이 시부모님과 남편, 아들은 남겨놓고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좋은 생각이라고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일생에 모녀가 그렇게 길고 먼 여행을 할 경우는 드물 거라며 아낌 없이 지원해 준 남편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님께서 보고 싶었다고 하셨고, 딸과 절대적인 관계인 할머니와의 상봉 또한 대단했다.
여행이 즐거운 건 이렇게 반겨주는 가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후기
갑자기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지만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가족과 여행사와 가이드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발바닥 신앙이지만 무조건 맡기는 마음으로 기도함에 응답해주신 하느님, 이번 기회가 저의 신앙 체험이 되었음을 굳게 믿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바쁜 직장 일로 사전 공부할 틈도 없이 떠났지만 가이드님들의 멀티미디어 방식의 설명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읽으시다가 저의 무지로 년대나 유물명이 틀린 경우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실감해서 다음 여행 시엔 사전에 공부를 하고 가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물의 소중함 등 자원 절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앞으론 우리 나라 문화재에 더욱 관심을 갖고 미래의 꿈나무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내가 배운 내용을 많이 전해줘 미래의 새싹들이 큰 꿈을 갖도록 동기 부여를 해줘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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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여행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하고요. 원체 긴 글에 겁부터 먹는지라. 일부 간략히 읽고 담에 또 조용한 시간에 다시 들러야겠군요. 좋은 글들 계속 올려주시길 기다릴께요~ 행복샘님!.. 닉네임처럼 꼬옥 행복하시고 늘 건강하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