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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당대인들에게 알려 주는 파수꾼.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에스겔 33:2~7) 하심 같이, 무릇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누구보다 먼저 예견하고 당대 사람들에게 경고 나팔을 부는 파수꾼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1:17~19) 하심 같이, 하나님의 뜻을 감지한 파수꾼(선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당대 사람들의 죄악을 두려움 없이 책망하여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그들 파수꾼들의 권위를 올바로 세워 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범죄한 자들의 숫자와 덩치와 권세에 위축되어 책망하길 두려워하게 되면, 반드시 오늘날 대한민국의 목사들처럼 종북 반역 세력들의 권세를 두려워해 그 죄악을 책망치 않다가 모든 공권력이 적화되고 맙니다.
사람이 왕중왕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면, 그의 말씀을 근거로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죄악을 책망해 꾸짖는 선각자 역할을 반드시 실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신앙인들은 복음을 순종하여 예수님의 제자된 본분을 다 하여야 합니다. 이런 신앙인들은 자기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각기 하나님께로부터 선교 구역(지역)을 배정 받습니다. 작게는 자기 육신과 가족일 수도 있고, 크게는 부모형제 처자들과 이웃과 모든 교회와 국가 사회일 수도 있고, 더 크게는 온 세계 만민과 열국들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각 사람의 믿음대로 선교 구역을 정해 주셔서 그와 맞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선교구역은 방대하여 제 생각과 마음이 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전합니다.
저의 선교구역은 세상 만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가족은 몰론이거니와 일가친척과 그릇된 신앙인들과 사회인들과 세계인들과 산천초목과 해와 달과 별들과 우주 공간까지도 저들이 어떻게 해야만 사람(피조물)으로서의 본분을 다 지켜 자신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가를 늘 전하게 되었습니다. 전하는 말씀은 제 생각과 마음에서 자생된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록해 두신 말씀의 뜻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합니다. 때로는 어려운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에는 왜 하나님이 이 같은 생각과 마음을 제게만 주셔서 나만 우겨쌈을 당하게 하실까 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너는 너만의 안일을 추구해서는 안되고 너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안일까지 추구해야만 비로소 온전한 평안이 네게 수종들게 된다"는 생각만 떠오르게 하십니다.
사람의 머리는 머리만의 안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 전체의 안일을 추구하여야만 비로소 온전한 머리가 될 수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머리)인 사람이 자기 이하의 것들의 안일을 추구하는 폭과 높이와 깊이가 좁고 낮고 얕을수록 김일성 일가들 같은 인격 장애인이 되고, 안일을 추구하는 폭이 넓고 높고 깊을수록 사도들과 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제가 누구보다 스케일이 커서 만민의 안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같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저 또한 그같은 일을 할 뿐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분담시켜 주신 구역(한계)까지 안일을 추구하여야지, 힘들다 하여 구역을 임의로 축소시켜 변경하면, 축소하고 변경된 구역의 사람들에게 원망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직분과 사명이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는 왕직입니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힘들고 어렵다하여 임의로 축소하거나 제외시키면, 축소되고 제외된 자들이 마침내 김일성 일가들 같은 압제자들이 되어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짓밟게 됩니다. 오늘날 동북아 한반도는 하나님이 남한 땅의 신앙인들로 하여금 정복해 다스리도록 하였건만, 그러나 사단의 신학을 배운 목사들은 그런 일들은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교인수 늘리기와 교회 건물을 웅장하게 짓는 일만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인들이 악인의 악을 책망해 꾸짖는 일이 바로 세상을 정복해 다스리는 유일한 통치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은 사단의 가증스런 인류애로 예수님의 뜻을 포장하여 도리어 악인들의 악행을 덮어주고 보호하는 일을 사랑으로 취급합니다.
하나님이 사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여자 하와에게는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세기 3:16) 하셨으나, 지금의 남자들은 여전히 세상의 물질문명의 발전과 함께 주어진 쾌락으로 음란죄에 빠진 연약한 여자들을 하나님(예수님)의 말씀으로 책망해 정결케 하지 않고, 도리어 사단의 가증스런 애욕으로 저들 여인들의 환심만 사려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남자들은 여전히 여자들이 선호하는 각종 선악과(善惡果), 곧 하나님이 금하시는 모든 죄의 습성들을 에덴동산의 때보다 더 많이 용납해 받아들여 여인들의 우상이 되었을 뿐,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여인들의 머리 노릇을 제대로 수행하여 저들을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사수해 지키려는 참된 사랑이 없습니다.
남자가 한 여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본분을 다하면, 천하의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그 같은 본분을 다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며, 여인이 한 남자에게 정성을 다해 공경하게 되면 만민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을 그 같이 공경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남자들 대부분이 노아 홍수 때 멸망한 세상의 남정네들과 같습니다. 즉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세기 6:1~2) 하심 같이, 오늘날의 남자들이 자기 아내에게 행하여야 할 마땅한 본분을 다하지 않고, 다만 다른 여인들의 아름다움만 좇는 꼬리(돈환)들이 되었으며, 또 여인들도 이런 남자들의 기호와 습성에 맞도록 더욱 더 자기 몸을 음란방탕한 도구로 사용케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수하 사람들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오직 김일성 일가들처럼 육적인 부강으로만 존대받으려고 악착 같이 권력과 재물만 챙기면, 그 때부터 서열이 뒤바뀌게 됩니다. 남자가 처·자들에게 인격적인 교육으로 저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면, 반드시 처·자들의 종이 되어 김일성 일가들처럼 육적인 부강만 챙기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의 갈비뼈로 조성된 아내가 인성적인 교육,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고 경건치 못할 때에는 요부로 돌변해 "어떤 남자이든 간에 육적인 권세와 풍요와 정력이 뛰어난 자이면 언제든지 그와 함께 즐길 수 있다."고 자처합니다. 세상 나라의 통치자들도 자국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시켜 사람다운 사람들로 이끌지 못하면, 국민들 또한 종북 반역 세력들처럼 거머리가 되어 오직 육적인 부강만 다고다고 합니다.
통치자가 한 국민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 성심 성의껏 진리로 대하게 되면, 반드시 온 국민들로부터 성군으로 존중받게 됩니다. 그러나 김일성 일가들처럼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파리 목숨 취급해 임의로 죽이게 되면, 모든 국민의 목숨도 파리 목숨 취급해 죽이는 폭군이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좌경화된 정치인들과 운동권 강성 노조들이 활개를 치면서 공권력을 잡은 공직자(경찰관)들을 마구 희롱해 대적합니다. 저들의 그러한 행위는 바로 이 땅의 목사들이 하나님께로 파송된 선지자들에게 그 같은 짓을 자행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일꾼들이라면, 배드로처럼 바울의 책망을 겸허히 수용하였을 것입니다.
세상 임금들은 수하의 공직자들에게 자격증과 제복을 주어 일하게 하지만, 하나님이 임명한 공직자(선지자)들은 그런 외형적인 자격증과 제복은 주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비추어 보게 한 후 그릇된 죄가 발견될 때에는 그를 책망하는 일로 성도(선지자)된 자격과 제복이 되게 하였습니다. 참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는 목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않고 사사로운 뜻을 전하게 되면, 그 직위와 명성을 가리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책망합니다. 이런 책망이 바로 하나님이 파송한 하늘 공직자(파수꾼)들의 자격과 제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 대해 이 시대의 목사들은 교회를 혼란케 하는 이단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실 짓을 저지른 자신의 죄악은 자책하지 않고, 다만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반동분자로 몰아 처형하려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책망할 때에는 하나님의 법에 어긋났을 때에만 한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뜻)과 다르다 하여 책망할 때에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켜 저들의 신이 되려는 마귀(독재자)의 책망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할 때에는 어느 그릇된 생각 하나만 시정토록 하였으며, 사도 바울이 대 선배된 베드로를 책망할 때에도 책망한 그 한가지 잘못만 시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것은, 자신들의 신앙과 다르다 하여 미워해 죽이는 살인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백가지 일들 중에서 아흔 아홉가지가 정상이라도 한 가지 일이 잘못되면 그 일을 책망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흔 아홉가지 잘한 일들로 한 가지 죄목을 덮으려 하지만, 하나님이 그럴 수 없는 것은 천국에는 죄가 티끌만큼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하나님(예수님, 성령)의 뜻을 따라 세상 사람들, 곧 불신자들의 죄악을 책망하는 것은 저들이 사단의 반역질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죄악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신앙인들을 책망할 때에는 책망한 그 죄목에 대해 시정하여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부패하고 연약한 신앙적 시각으로는 사도 바울이나 배드로 같은 분들의 잘못을 발견해 책망할 수 없지만, 예수님(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저들 모두가 철부지 어린 아이들과 같아서 잠시라도 제멎대로 방치시키지 않고 성령으로 하여금 무시로 저들을 책망하기 때문에 저들이 사도직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거룩한 성도들로 일컬음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2:6~8) 하심 같이, 사람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가졌어도 아직은 갓 태어난 아이와 같아서 하나님이 주야로 돌보지 않으면 도저히 예수님 쪽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 저들을 밤낮으로 책망하시지만, 사람들은 천둥 벼락 같은 육적인 소리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취급할 뿐, 양심을 꿰뚫고 들려오는 세미한 음성의 생각은 항상 무시해 성령을 소멸시키고 다만 거짓된 아비, 곧 신학자들의 가르침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해 받듭니다.
이들에 의해 예수 믿게 된 교인들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될 생각은 하지 않고, 부패타락한 신학교 출신 목사들 보기에 합당한 교인들만 되려합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세상에 재림해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심판의 주 대상이 불신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다고 자부하는 수많은 신앙인들이 심판의 주 대상이 됩니다. 불신앙인들은 전도의 대상이지만, 신앙인들은 상과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선생들이 썩어 부패하였는데 더 이상 무슨 소망이 있어 하나님이 세상을 용납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더라도 예수님의 본말씀은 믿지 않고 예수님의 본말씀을 사람의 뜻으로 해석된 신학만 믿으니 하나님께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목사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신학만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교인들에게 더 이상 자신들만 바라보게 하는 김일성 일가들 같은 짓을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저들 마음 속에서 예수님의 본말씀을 직접 기억나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가르침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강권하여야 합니다. 더 이상 신학을 전하는 교주 노릇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게 된 성령에게 이끌리게 하여 그분의 뜻에 맞는 참되고 거룩한 성도들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전도자들이 이렇게 회개하여야만 그나마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언행에는 이 모든 내용들이 기록되었으니 읽으시고 성령을 스승 삼는 참된 파수꾼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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