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는 언제 생겨났을까요?
정확한 연도까지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연대 정도는 분명합니다.
1880년대보다 빠르지도 않고, 1890년대보다 늦지도 않은,
바로 1880년대에 탱고가 생겨났죠.
그렇다면 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길래 탱고를 탄생시켰을까요?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특허내고
제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지도 어언 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석탄과 증기기관의 제1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저물고
석유와 내연기관의 제2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1876년 벨이 전화를 발명하고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개량·상용화했으며
1886년 다임러·벤츠가 자동차를 발명했고 1896년 헨리 포드가 저가 자동차를 내놓으며
교통·통신·에너지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기술 혁신과 자본 축적이 고도화되며
석유왕 록펠러, 강철왕 카네기, 금융왕 J.P. 모건, 자동차왕 헨리 포드 등이 활약하는 대자본가의 시대가 열립니다.
거대 자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낳고
소비의 주체인 대중이 중요해지면서 문화 역시 귀족 문화에서 대중 문화로 주도권이 넘어갑니다.
요컨대, 1880년대는 ‘현대(the Modern Times)’가 태동하던 시대였죠.
기술혁신과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가 되니
자원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해집니다.
무진장한 자원에 광활한 땅, 그러나 인구는 적은 신대륙 아메리카는
전세계로부터 노동인력을 대거 수용하게 됩니다.
국제적 노동 이민이 일어나며
중국인들이 캘리포니아 금광과 대륙횡단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일본인들이 브라질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이탈리아인들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어리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엄마를 찾아 나선 이탈리아 소년의 모험담 [엄마 찾아 삼만 리]가 발표된 것도 바로 1886년이었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경제 호황과 노동 이민의 물살을 타고 급격히 성장합니다.
1810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는 4만여 명에 불과했지만
1870년에는 18만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1869년 아르헨티나 총인구가 200만 명이었는데
1880~1905년 동안 거의 300만 명의 유럽 이주민이 아르헨티나로 왔고
1900년에 이르자 외국 출신의 사람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의 1/3을 차지하게 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해외 이민자들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시골과 목장에서 일하던 지방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섞이며 고단한 삶의 애환을 나누었습니다.
기술 혁신,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 대자본의 형성,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중문화의 시대…….
언뜻 보면 매우 화려했지만 그것은 시대의 주인공들의 이야기.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주인공들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서민들이 있었고, 그들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가슴이 따뜻했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들의 딱한 처지에 깊은 연민을 느끼며 시대의 부조리를 격렬히 비판했습니다.
일견 이 시대는 황금시대(the Golden Age)처럼 보이지만,
실상 속은 썩었는데도 겉에 금칠만 해서 황금시대인 척 하고 있는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고 비꼬았죠.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천박하고 지저분한 그런 진보였다.
철로 한 구간을 깔 때마다, 석탄과 철광석 1톤을 캘 때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런 진보였다.”
- 강준만, [미국사산책 : 3.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 인물과사상사, 2010, p. 208
중국 속담에 “좋은 사람은 오지 않고, 온 사람은 좋지 않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특유의 폐쇄성과 배타성이 녹아 있는 속담이지만,
대부분의 편견들이 그러하듯,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습니다.
남의 땅, 언어와 문화와 풍습이 다른 남의 땅에서 살기란 녹록치 않은 일입니다.
제가 나고 자란 땅에서 사는 것이 편하긴 편합니다.
그러나 자기 땅에서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객지를 떠도는 사람이 형편이 좋은 사람이겠습니까?
이민자의 대륙, 아메리카에는 이처럼 자기 땅을 떠나 맨주먹으로 온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이들은 낯선 땅에서의 험난한 삶, 온갖 차별과 냉대, 잃어버린 사랑 등 갖가지 감정들을 노래했습니다.
북미에서는 컨트리, 블루스, 재즈, 스윙 등이
중미 카리브 해 일대에서는 살사, 바차타, 메렝게, 차차차 등이
남미에서는 탱고, 삼바, 보사노바 등의 음악이 꽃피었습니다.
이들의 피맺힌 절규는 현대의 대표적인 소셜 댄스 스윙, 살사, 탱고 등으로 이어져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역사란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가요?
첫댓글 1879년 에디슨 아저씨가 백열전구를 갸량 상용화 한 덕분에..... 밀롱가에서 늦은 시간까지 춤 출 수 있습니다.
전구가 발명되어서 좋아한 사람들은 노동력을 착취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네요.
유지가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네요.
탱자가 회수를 건너면 유자가 되는거지요~^^
칼은 선악을 갖지 않습니다.
요리사가 사용하면 맛난 음식으로 재료를 거듭나게 하지만
강도가 들고 있으면 상해를 입하는 무기가 되지요.
탱고도~
그 시작은 힘겨움을 이겨내는 노동요와 같은 느낌이었을 수 있으나~ 이제는 그 색을 달리하여 풍요로운 사람들의 놀이가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그 놀이에 색을 입히는 것은 탱고를 추는 사람들의 몫이 겠지요.
즐거운 유희이나 문란해서는 안되고~
매우 가깝게 춤추나 예의를 지켜야 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나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되는~
어떻게 키워갈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라 생각이 듭니다.
비록 이 춤의 시작이 지금과는 많이 다를 수 있으나~
또다른 해석이 참 멋집니다^^ ... 여러가지 생각의 폭이 정말 넓으세요 ㅎ
에디슨은 일 열심히 늦게까지 하라고 전구를 개발했고, 벨은 전화를 중요한 정보전달수단으로 여겨 전화로 잡담했던 사람들을 못마땅해했다네요. 진지한 목적의 발명품들을 놀이에 쓰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인간은 정말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이지 싶네요~ ^^
@해리(쎈뜨로113) 은물을 개발한 프뢰벨이 고아원에 갔을 때 놀이감이 전려 없던 아이들은 배가 고팠음에도 빵의 일부를 놀이에 사용하는 걸 발견했다고 합니다.
놀이가 없다면 삶은 너무 진지하지요.
에디슨 아저씨나 벨 아저씨는 놀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처음으로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화석을 발굴한 고고학자 바넘 브라운은 화석을 발굴하러 다니던 중에도 탱고와 투스텝이라는 춤을 추며 즐겼다고 하네요.
음~ 바넘 아저씨가 더 즐겁고 행복했을 것 같아요. 일이 고되었다고 해도~^---^
놀이는 힘든 일을 한 수고를 위로해주는 것이지요.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전 놀이가 아주 좋아요~♥♥♥
같이 놀아줄 사람도 아주 좋아해요~♥)
이야기에 푹 빠져서 마치 제가 그 시대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ㅎㅎ 어느 시대이건 삶에는 애환이 있고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옛날사람들도, 요즘사람들도, 똑같이 춤(탱고, 살사, 스윙 등)을 통해 애환을 달래고 있네요.ㅎㅎ 오늘도 수고한 그대와 나의 탱고가 되도록 더 따뜻하게 안아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당~~~ Abrazo profundo!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그윽한 포옹~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
해리~~~ 굿!!!!!!!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와우~~ 역시 해리님~ 엄청 재미있어요^^ 연재해주세여ㅎㅎ
탱고의 역사도 참 재미있는 주제예요~ 틈나는 대로 함 써볼게요~ ^^
@해리(쎈뜨로113) 기다리고 있을께요~^----^
해리님, 좋은 글 잼나게 잘 읽었어요. 역사, 문화 등에 해박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이야기가 담긴 역사와 문화는 항상 절 매혹시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