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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 가운데 하나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다. 9월 1일 현재 국내 누적 관객 900만 명을 넘어섰다. 개봉 27일 만이다. 수천 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2026년의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에 다시 빠져드는 것일까.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긴 여정에서 수많은 섬과 낯선 존재를 만난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가 몇 곳을 거쳤는지가 아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겪었고,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억한다. 여행의 본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관광의 첫 질문이“어디를 갈까”였다면 지금은“거기서 무엇을 할까”, “무엇을 느끼고 돌아올까”로 바뀌고 있다. 관광의 경쟁 단위가 장소에서 경험으로, 경험에서 기억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울산은 이런 변화에 대응할 자원이 충분하다. 산과 강, 바다와 정원이 있고 산업도시의 시간과 선사문화가 한 도시에 공존한다. 반구천의 암각화, 태화강 국가정원, 장생포, 대왕암과 슬도, 영남알프스까지 저마다 다른 시간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문제는 자원의 수가 아니다. 이 자원들이 관광객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느냐가 중요하다.
관광자원과 관광콘텐츠의 차이도 여기서 생긴다. 자원은 이미 존재하지만 콘텐츠는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다. 장소에 의미를 붙이고 사람의 이야기를 연결해 관광객이 직접 보고 느끼고 기억하게 할 때 비로소 콘텐츠가 된다.“무엇이 있는가”보다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스 신화의‘아리아드네의 실’이야기가 떠오른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들어간 테세우스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 한 가닥 덕분이었다.
지역관광에도 그런 실이 필요하다. 처음 찾은 도시의 수많은 역사와 장소는 관광객에게 미궁처럼 보일 수 있다. 무엇부터 봐야 하고 왜 중요한지 알기 어렵다. 문화관광해설사는 그 가운데 실 한 가닥을 건네는 사람이다. 흩어진 장소와 이야기를 여행자의 언어로 이어준다.
문화관광해설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전문가이면서 그 지역을 살아가는 시민이다. 도시의 변화를 지켜봤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장소의 표정과 지역 사람들의 기억을 안다. 책과 검색만으로 얻기 어려운‘시민의 경험’이 해설사의 중요한 자산이다.
반구천의 암각화도 제작 시기와 학술적 가치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계곡을 수천 년 전 사람들도 바라봤습니다”라는 한마디가 더해지면 관광객은 유적을 보는 사람에서 긴 시간과 마주한 사람이 된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아름다운 정원을 넘어 도시가 강과 다시 관계를 맺어온 변화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장생포의 고래에는 지역민의 삶과 기억이 있고, 대왕암과 슬도에는 걷기와 일몰, 미식이 이어지는 해안의 시간이 있다. 영남알프스는 도전과 성취, 회복의 경험으로 기억될 수 있다. 자원은 그대로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관광객이 가져가는 울산은 달라진다.
AI 시대에는 해설사의 역할이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연도와 인물을 찾고 외국어로 번역하며 관광코스를 추천하는 일은 AI가 빠르게 해낸다. 그러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인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인지 살피고“지금 이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일은 현장에 있는 사람의 몫이다.
때로는 열 가지 설명보다 질문 하나가, 많은 말보다 잠시 풍경을 바라보게 하는 침묵이 더 좋은 해설이 된다. AI가 정보를 찾는다면 사람은 사람을 읽는다.
그래서 문화관광해설사는‘경험 큐레이터’에 가깝다. 지역에 흩어진 역사와 자연, 사람의 기억 가운데 무엇을 꺼내고 어떻게 연결할지를 판단해 한 사람의 여행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준다.
시민 중심 관광도 여기서 시작한다. 행정이 시설을 만들고 관광상품을 개발해도 관광객이 실제 도시를 만나는 곳은 현장이다. 지역에서 살아온 시민의 시선이 여행자의 언어로 번역될 때 도시의 이야기는 깊어진다.
오디세이의 마지막은 결국‘귀환’이다. 긴 여행을 마친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오지만 떠날 때와 같은 사람은 아니다. 수많은 경험과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온다.
울산을 찾은 관광객도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느냐다. 누군가“울산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반구천도 있고 태화강도 있고 대왕암도 있어”에서 끝나는 여행과 “울산에 가면 말이야….”라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여행은 다르다.
자신이 걸었던 길과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감정을 꺼내놓는다면 그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호기심이 되고, 그 호기심이 다시 울산으로 향하는 여행을 만든다.
관광객과 도시가 만나는‘관광의 마지막 1미터’. 그곳에서 시민의 시선은 도시의 이야기가 되고, 도시의 이야기는 여행자의 기억이 된다.
문화관광해설사는 복잡하고 풍부한 울산의 이야기 속에서 관광객에게 실 한 가닥을 건네고, 스스로 자신만의 울산 이야기를 찾아가도록 돕는 시민이자 경험의 큐레이터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울산관광의‘오디세이’도 바로 그 마지막 1미터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