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해 보는 것입니다. 잠이 드셨으면 깨울까 싶어 조심스러운 생각으로 해 봅니다.“
”저도 해 볼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던 참입니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민희씨! 민희씨 덕분에 제가 아주 즐거웠습니다.“
“저 때문에 일부러 안성까지 내려와 주시고 바닷바람도 쏘일 수 있게 해 주시고 맛있는 것도 먹게 해 주시고 정말 여러 가지로 고마웠어요.”
“우리 그런 인사말을 하지 맙시다. 나야 말로 민희씨 덕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왔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편안하다는 것을 처음 느껴보는 감정입니다.“
”네! 저도 참으로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이런 감정 처음인 것 같아요.“
”민희씨! 시간을 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안하게 전화를 받아주셔서 더욱 고맙고요.“
”고마운 것은 오히려 접니다. 전화 주셔서 고맙고요.“
”늦었는데 그만 주무세요. 편안한 마음으로 주무세요.“
”네! 형우씨도 편안하게 주무세요.“
김형우는 전화를 끊고 한참을 뒤적인다.
그 누군가를 향해서 이토록 간절한 마음이 되어 보기는 처음이다.
다음날이 되어 김형우는 다른 날보다 늦게 잠에서 깬다.
이미 약수터를 다녀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몸과 마음이 개운하고 기분이 상쾌하다.
간단하게 씻고 커피를 한잔 마시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가족들이 아침을 먹는 시간이다.
“아버지!”
성일이 아버지를 보며 식탁에서 몸을 일으킨다.
“왜 이렇게들 늦었냐?”
“오늘 주말입니다. 아이들도 학교를 쉬는 날이고 저도 다른 곳에 들려서 회사에 나가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나가는 날입니다. 아버지가 벌써 나가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 나도 오늘 늦잠을 잤다.“
식탁은 여전히 빵과 우유다.
“어미야! 나도 커피 한 잔 주거라!“
“네! 식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유혜령은 시아버지를 보고 당황한다.
빵을 싫어하시는 시아버지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 없다.
“천천히 나가서 먹으면 된다.”
“그러지 말고 어서 아버지 밥을 준비하면 되잖아?”
아내를 보고 성일이 말을 한다.
“아니다! 아침 생각 없다. 커피나 한 잔 주거라!“
어차피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에 먹을 것이 없음을 잘 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며느리다.
김형우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집을 나선다.
오전에 서예 학원을 가야하고 오후에는 모임이 있다.
동창들의 모임이다.
이제는 하나씩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동창들이다.
하나씩 세상을 떠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 참으로 서글프다.
오늘 모임에서 또 누구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지 공연히 울적해진다.
학원이 끝나고 나서 김형우는 민희의 저장된 번호를 누른다.
“민희씨?”
“네! 어디 나가신 것이에요?“
”네, 지금 서예학원을 나서는 중입니다. 뭐하십니까?“
”며칠 집을 비웠더니 청소할 것이 많아 청소하고 집안일을 하는 중이에요.“
”바쁘시겠네요?“
”조금요.“
”네! 저는 오늘 오후에 동창들 모임이 있어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참, 점심은 드셨습니까?“
”일을 끝내고 먹으려고 아직 안했어요. 아침을 늦게 먹었거든요.“
“그랬군요. 공연히 어제 저 때문에 늦게 주무셔서 피곤하지 않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오늘은 오후에 큰 올케하고 약속이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이따가 다시 전화를 드려도 되지요?“
”네!“
민희는 김형우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서 잠시 그를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전화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들키는 사람처럼 화끈거린다.
오전에 동생과의 통화를 끝내고 나서 큰올케와 통화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성경미는 시누이의 전화를 반갑게 받으며 흔쾌하게 약속을 한다.
민희는 집안일을 다 끝내고 나서 외출 준비를 한다.
이렇게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밖에서 만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늘 직장에 출근을 하는 올케는 시간에 쫒기는 사람이다.
오늘은 주말이 되어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을 한다기에 식사라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다.
전화로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천 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기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간다.
성경미의 회사 근처로 약속을 정한 것이다.
아직 성경미는 도착하지 않았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내 뒤따라 들어오는 성경미다.
“형님이 먼저 나오셨네요.”
“나야 하는 일이 없는 사람 아닌가? 공연히 바쁜 사람 불러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아닙니다. 가끔이라도 작은 형님을 만나서 함께 식사라도 해야 하는데 사는 것이 뭔지 늘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삽니다.“
“올케! 정말 내가 면목이 없고 미안한 마음일세! 그렇게 큰돈을 선뜻 내준 올케의 마음을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미안하네!“
“작은형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이는 늘 작은형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자기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고 자기 학비를 대 준 것을 생각하면 고맙기는 하지만 형님이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쓸데없는 말이 어디 있어? 모든 것이 다 타고난 운명이고 팔자지. 내가 공부할 팔자였다면 아버지가 하필 그럴 때 부도가 나시고 집안이 어렵게 되겠어? 엄마 말씀대로 난 받을 복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모양이지.“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작은형님도 언젠가는 반드시 잘 사실 날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선은 추위가 다가오는데 어디 다니시려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이젠 나이도 있고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납니다. 우선은 겨울이라도 편안하게 보내시고 봄이 되면 다시 방법을 찾아보세요.“
“고맙네! 허지만 겨울이던 봄이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나오면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해! 자네 말대로 나이가 있다 보니 어디든 써주는 곳이 없네!“
“그럼요! 저희도 이제는 정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왜 안 그렇겠어요?“
성경화는 늘 마음이 착하고 부지런한 작은 시누이가 안쓰럽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고운 마음씨인데 형제 중에서 가장 고생하며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시누이의 모습이 애처롭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시누이를 시어머님께서는 늘 못마땅해 하시며 꾸중을 하시는 것도 민망스럽다.
“형님! 절대 기죽지 마시고 용기를 내세요. 형님 같으신 분이 언젠가는 복을 받고 잘 사실 거라고 믿습니다.“
“자네 말은 고맙기는 하지만 내 나이 지금 환갑을 넘긴 사람일세!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런 허황된 꿈을 꾸겠는가? 다 부질없는 일일세!“
“형님! 요즘은 수명이 늘어 팔구십은 거뜬하게 사는 세상입니다. 더구나 형님은 건강하시고 아직도 이렇게 팔팔하신데 어딘가에 좋은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망측스러운 말을 그만 두시게! 이 나이에 무슨?“
민희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올케의 마음이 고맙다.
그렇게 올케와 단 둘이서 거금을 준 식사를 한다.
모처럼만에 큰마음을 먹고 비싼 집으로 간 것이다.
민희는 조금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곤 자꾸만 휴대폰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언제부터 자꾸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자신의 마음이 되는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부터는 일할 곳을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책을 본다.
이대로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민희로서는 뭔가를 해야만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이 될 것이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민희다.
요즘 들어 안정이 되지 않는 마음으로 인해 책을 멀리하고 살아왔다.
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나날이었다.
이젠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다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책을 보고 있으면서도 휴대폰에 신경이 쓰인다.
벌써 열시가 가까이 되는 시간이다.
김형우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보며 민희는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 아닌가?
민희는 그만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의 불을 끄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김형우의 전화다.
“늦었습니다.”
“아, 형우씨!”
민희의 음성에는 반가움이 묻어난다.
“지금 어디세요? 집에 들어가신 거죠?“
”아닙니다. 지금 민희씨 집 앞에 와 있습니다.“
“네? 이 시간에?“
”잠시 나와 주실 수 있지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급하게 겉옷을 찾아 입고 아파트를 나선다.
정문 앞에 승용차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민희는 뛰다시피 빨리 걷는다.
김형우의 승용차다.
김형우 역시 민희를 보고 차에서 내린다.
“미안합니다. 얼굴이라도 잠시 봐야 할 것 같아서..........“
“정말 뜻밖입니다. 그냥 전화만 하실 것이지 이 먼데까지..........“
“민희씨! 늦었지만 잠시 드라이브라도 하면 안 될까요?“
”네!“
민희는 서슴치 않고 그의 승용차에 오른다.
여기까지 달려와 준 그의 성의가 고맙고 하루 종일 자신도 모르게 기다렸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반가운 마음이 앞선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