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결혼이란 족쇄를 벗고 싶었지만
이혼이라는 강에 내던져지는 게 싫어
선택한
-졸혼-
졸혼을 통해 나답게 살기 위한 결정이라며
이해를 구해보는 아내는
"이별 신호가 오기 전에
하는 안전장치라고 생각해줘."
"애들에겐 말해봤어?"
" 애들이 졸혼 축하식이라도 해주길
기대하는 건 아니지?"
"지 살기 바쁜 자식놈들이 다 늙어버린
부모의 삶에 무슨 애정이 있으려고."
가치가
있을 때까지만 필요로 하는 세상에
졸혼한다는 말에 졸도할 것 같이 구는
남편과는 달리 아내는 오래전부터 지금의
결정을 준비해 온 사람처럼
무덤덤했다.
"내 삶을 이젠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아 선택한 거니까 따라줘."
"난 당신에게 강요한 적 없어 권유를 한 거지."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조언이지만
상대방이 힘들어하면 간섭인 거야."
"난 부부로서 관심일 뿐이었어."
"관심과 간섭은 다른 거야.
애정과 사랑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관심인 척 간섭하는 거."
"날 그 정도로밖에 이해 못 하고 있었다니."
"내 눈높이로 보는 건 간섭과 참견이야."
관심과 배려는
타인의 눈높이로 볼 때란 걸
그 나이 먹고도 이해 못 한 태도가
지금의 결과를 불러온 것이라며
"그게 서로 간의 차이가 되었고
나아가 지금의 결과가 되어 졸혼이라는
우리의 마지막 삶이 된 거라고
이해해주면 좋겠어."
남편의 빛나는 인생을 송금하는
아내가 될 거라며
부부라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라고
신념화시킨 결혼이라는 장점 안에
숨고 싶었는지도 몰랐던 자신을 한 번
더 드러내 보인다.
"부부란 죽을 때 재산을 남기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
반짝이는 사랑 역시
젊음이 있을 때가 아닌
지금처럼 혼자 남았을 때라며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얼굴들을 위해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
"지금껏 내가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던 걸
당신이 권리라고 착각만은 안 했으면 해."
"…………"
"당신이 그런 권리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어."
"당신 이야기 들으니
내가 너무 내 생각만으로 살았던 것 같아."
"상대방한테 다가갈 때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남은
날을 살아가주길 바랄게."
"그럴게."
"자유분방하고 늘 제멋대로인 당신이
이유 없이 싫어지는 게 그렇게 살지 못한
내 안에 오래된 상처 때문인 거라 생각했어."
"미안해, 여보."
"아냐...지금와 생각해보니
당신이 싫었던 게 아니라 상처받은
내가 싫었던 거였어."
"이제부터라도 잘할게."
"아냐...
억지로 내 기준에 맞춰 살 필요 없어.
난 지금껏 그런 당신과 싸워온 게 아니라
내 기대와 싸운 거였더라고."
"…………"
"당신을 바꾸려는 데 마음을 쓰기보다
당신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먼저
생각하지 못한 내 탓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어."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에겐
실망이라는 감정이 이해보다 더 많이
선명하게 쌓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결과가 관계를 잃어버리는 이유였다는 걸
끝으로
가정이란 무대는
늘 자신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무대 같았지만
사랑을 전하면
희망이 된다는 믿음 하나로
지탱해 온 걸 알아달라는 눈빛으로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관계는 시소 같은 거래.
한 번씩 보해주면서 그렇게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처럼."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의
우리처럼 멈춰버리는 거고."
타인에겐 관대하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겐 엄격했던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었다는 걸 이제서야 실천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달라며
지금의 졸혼은
타인의 생각을 들어야 할 자리보다
나의 생각을 말해야 할 자리라 생각해서
하는 말을 끝으로 큰 가방 하나에 지나온
인생의 전부를 담고
다시 웃는 내일을 희망하며
멀어지는 아내를 바라보고 선 남편의
눈에서는 마음이 허락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랑할 때
알아야 했던 것들을 떠올려보면서.....
펴냄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