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4.9.23.월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잠언3,27-34 루카8,16-18
삶의 지혜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다”
정작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지식이 많아서 스승이 아니라 삶의 지혜가 뛰어나 스승입니다. 지식의 선생은 많아도 지혜의 어른이나 스승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추세라 웬만한 답은 스마트폰이 다 해주기에 이젠 지식의 선생도 쓸모없어졌습니다. 이럴수록 삶의 스승이, 지혜의 스승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 사막의 수도자들은 “참으로, 진짜로 살기”를 원했고, 많은 구도자들은 이들의 지혜를 찾아 사막에 갔습니다. 사실 우리 옛 어머니들은 지식은 짧았어도 겸손했고 삶의 지혜는 탁월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감동하고 감탄하는 바 제 어머니입니다. 살아갈수록 자주 생각나는 어머니요 어머니의 지혜입니다. 예전에 이런 어머니를 그리며 쓴 자작 고백시 일부를 나눕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조선 여자 같은 분이셨다
애교나 아양은 거의 없었지만
강인한 의지에 아주 지혜로운 분이셨다
심한 밭일에 몸 많이 피곤하여
밤에 끙끙 앓으셔도
아프다는 내색 하나 않으셨다
아버지 원망하는 말 하나 들은 적 없고
큰 소리 내셔서 다투거나
화내신 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돼지 키워 자식들 학비도 대셨고
장마다 계란 모아 팔아 꼭 찐빵도 사다 주셨다
사실 오십 년대 육십 년대는 모두가 가난했지
그러나 마음은 참 부자였고 행복했다
그 흔한 종교나 신앙없이도
한결같이 사셨던 어머니
삶자체가 기도였고 종교였다
이리저리 감정에 연약하게 흔들렸던 분이셨다면
그 험한 세월에
다섯 남매 어떻게 키웠을 것인가
“외롭다’거니 ‘그립다’ 거니
감정 표현 없이도
따사로운 남편 사랑 없이도
흔들림 없이 꿋꿋이 가정을 지켜오신 내 어머니”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지만 여전히 그리운 어머니는 제 삶의 교사, 지혜의 교사가 되고 계십니다. 지혜 역시 보고 배웁니다. 지식들은 다 잊혀져도 보고 배운 사랑과 지혜는 영원히 살아 있어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오늘부터 이번 주간 제1독서는 지혜서에 해당되는 잠언과 코헬렛을 맛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비의적 지식이 아니라, 개인이나 공동체가 합리적으로, 책임감있게 살도록 부추기는 상식입니다. 새삼 영성생활도 비상하기 보다는 이런 평범한 상식의 지혜가 기초해야 함을 배웁니다. 이런 지혜는 책에서보다는 삶의 체험에서 깨달음을 통해 배웁니다. ‘삶의 책’이 지혜의 보고(寶庫)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성인들에게 배우는 바 역시 지혜입니다. 교회학자 축일 때 마다,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께 어서와 조배드리세” 부르는 초대송 후렴도 생각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느님 주시는 참 좋은 선물이 지혜입니다.
오늘은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입니다. 흔히 오상의 비오 신부님으로 유명한 성인입니다. 비오 신부님은 1968년 9월23일 81세로 선종하기 까지 카푸친회 수도사제로 반세기 동안 어떤 의학적 치료나 과학적 설명을 찾지 못한 오상을 지니고 사셨고 오상에서는 피가 배어나왔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수십만명이 비오 신부님을 찾은 것도 대부분 고백성사를 보고 영적지도와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성인은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에게도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십자가의 예수님이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에 살아계심을 놀랍게 증언하였습니다.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성인을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렀고, 교황 비오 12세는 “비오 신부님은 돌아가시기 전부터 성인이셨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라 하셨고,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우리 주님의 오상을 뚜렷이 잘 나타내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세기 동안 비오 신부님은 하루의 대부분을 고해소 안에서 보냈고, 선종하기 직전이 1967년에는 만오천명의 여자와 만명의 남자에게 고백성사를 주었다고 합니다. 성인의 삶이 응축된 지혜로운 말씀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이란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이외의 것이 아니다.”
“세상은 태양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미사성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세상을 떠난 뒤에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나는 고통을 사랑합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 때문에 고통을 열망합니다. 내 고통을 통하여 우리 형제들이 구원되고, 불쌍한 연옥영혼들의 고통이 단축될 것입니다.”
평생 영적전쟁중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살아가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오상의 비오 신부님입니다. 오늘 제1독서 잠언의 지혜는 이웃사랑에 관한 지극히 상식적인 가르침입니다.
“이웃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이웃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공연히 이웃과 다투지 마라.”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라.”
새삼 이웃사랑이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참된 사랑은 ‘지혜의 샘’입니다. 이와 더불어 잠언의 현자는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 하시며 복을 내리시고 호의를 베풀어 준다 하시며 우리 모두 지혜로운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올곧은 삶을 살며 ‘하느님의 벗’이 된다고 지혜서는 말합니다. 지혜중의 지혜가 ‘하느님의 지혜’라 일컬어지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은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지혜가 빛납니다.
“등불은 켜서 등경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지혜로운 신자들은 등경위에 등불처럼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니 하늘 두려운 줄 알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삶, 지혜로운 삶을 살라는 촉구이며, 이래서 즉각적인, 끊임없는 회개와 고백성사가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온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경청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져 빼앗길 것이다.”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진리입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수행자로서 한결같이 깨어 수행에 전념하는 영적부자로 사는 이가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언자(豫言者)와 더불어 현자(賢者)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평생교육을 이뤄주는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날로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