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오베르마스 - 나는 전성기를 정말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라이언만큼은 절대 넘을수가 없었다. 그는 대단히 높은 선수였다. 빠르고, 유연하며, 날카롭다. 루이스 피구와 함께 내 평생 본 가장 환상적인 윙어다. 내가 더치맨이라면, 플라잉 더치맨은 내가 아닌 라이언이었을것이다. 지네디 지단 - 긱스는 대단한 선수다. 난 아직도 그와 마주했던 경기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를 처음 보았을때의 충격은 호나우두를 처음보았을때 그것과 비슷했다. 만약 그가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와 로베르중 하나는 벤치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유럽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가진 선수는 그였을지도... 루이스 피구 - 이전에도 말한적이 있지만, 그는 어느 축구선수보다 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부러울만큼이나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친구다. 콘세이상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라이언이 우리와 함께했다면, 유럽최강은 프랑스가 아닌 우리였을 것이다. 델 피에로 - 내가 어떻게 그를 평가할 수 있겠나? 판타지 스타? 그 말은 라이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딱 두번 운적이 있다. 첫번째는 로베르토였고, 두번째는 라이언이다. 그와 한팀에서 뛰는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일것이다. 네드베드 - 절대자란 말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라이언은 왼쪽라인의 절대자다. 그는 내가 할수 있는 것을 모두 할수 있지만, 나는 그가 하는 것을 모두 할수 있는 자신이 없다. 라이언이 체코선수였다면, 벤치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선수는 다름이 아닌 나일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성명 : 라이언 긱스(Ryan Joseph Giggs) 생년월일 : 29. Nov. 1973 국적 : Wales신장 : 180cm 체중 : 68kg 주포지션 : Left Wing (FW / MF)소속 클럽 : Manchester United FC (England) 1991-2006-?
주요경력 : 92/93, 93/94, 95/96, 96/97, 98/99, 99/00, 00/01, 02/03 잉글랜드 프리미어쉽 우승,
93/94, 95/96, 98/99 FA 컵 우승,
1992, 2006 리그 컵 우승,
98/99 챔피언스 리그 우승
PFA Young Player of Yea r상을 받은 두번 받은(1992,1993) 유일한 선수..
"클럽에서 나는 10년 동안 성공해 왔다. 하지만 웨일즈와 함께
성공하는 것은 여전히 나의 주요 야망들중 하나다" -Ryan
라이언 긱스, 그는 1973년 11월 29일 웨일즈의 수도 Cardiff의 성 다비드 병원에서 어머니 Lynne Giggs 그리고 아버지 Danny Wilson 사이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 때 긱스의 부모님은 17세로, 매우 어린 나이었다.
긱스가 7살 되던 해, 럭비선수였던 그의 아버지가 Switon이라는 럭비팀과 계약을 하게되며
맨체스터로 이사를 오게된다.
맨체스터로 온 처음 2년간, 그는 그들과 다른 Welsh억양을 쓰는 이유로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를 닮아 그보다 더 검은 피부를 가졌던 그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Welsh의 억양, 말투를 빠르게 잊어갈 수 있었고 점점 맨체스터 억양을
쓰기 시작했다.
긱스는 아버지의 럭비경기 보는것을 좋아했는데, 아버지를 따라 럭비선수가 되기를 원했으나
그의 첫사랑, 축구에 빠지게되며 그 꿈은 축구선수로 바뀌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축구를 First Love라 썼더군요 )
긱스는 훗날 자신의 몸이 운동선수였던 아버지를 닮아 축구를 하기 좋은
신체를 갖춘것이라고 생각했다.
긱스의 아버지는 럭비선수로 항상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일을해야 했기때문에
외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할머니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팬이셨다!)
그의 부모님은 항상 긴장 상태였고 불안했으며 자식들앞에서까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일이 많았는데 그는 이런 모습들이 끔직히도 싫었다.
(그 후,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을한 후 원래 이름인 Ryan Wilson을
어머니의 성을따라 Ryan Giggs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을 축구 하는것으로 보내는 날이 아주 많았는데 언제나 길거리에서
그의 남동생 Rhodri, 그리고 친구들과 공을 차고 다녔고 학교가 끝나고 어두워 질때까지 그의 축구는
계속되었으며 가로등의 불이 켜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가 아홉살이었던 어느날 오후, Grosvenor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을 때
그를 지켜보던 Man City의 스카우터 Denis Schofield 에 의해 Dean이라는 클럽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는 그곳에서 사이드 포워드로 뛰게 되었는데 A,B팀으로 나뉘어진 그곳에서 긱스는 40명의 다른 선수들중 28번째였다.
결국 그는 B팀으로 들어간 후 A팀으로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뛰었고
마침내 A팀과의 경기에서 6골을 넣으므로서 A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시는 B팀에서 뛰지 않게 된 것이었다...!!(라이언 긱스는 그 때 그것은 그가 그때까지 축구를 한 이래 최고의 체계화된 축구였으며
경쟁이었다고 말하고있습니다..^^)그 당시 그는 Old Trafford에서 경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팀은 결국 졌고, 관중석도 거의 텅텅 비어있었지만 나는 유나이티드의 팬으로서
언젠가는 이곳에 꼭 돌아올겠노라고 다짐했다"
Manchester City 스카우터 Denis에 의해 Dean에서 자신을 포한 3명이 맨시티로
스카웃 되었고, 그는 맨체스터 시티의 Plate Lane 에서 일주일에 두번 훈련을 했다. 그는 훈련을 즐겼으나 그곳에서의 훈련은 충실하게 하지 않았다.
저항의 상징(^-^a;;)으로 그는 언제나 빨간색 셔츠를 입고 갔는데 이것은 매우 많은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고 City 의 코치는 그에게 그 만약 그옷을 입고있을려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긱스는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라이언은 이 글에서 '나는 그때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었던것 같다'..라고 하며
그의 어머니는 Reds의 팬이었고 조지베스트를 좋아했는데아마 이런 이유로 그가 시티를 싫어했던게 아니었나 싶다고 회고했습니다 )
그의 14번째 생일날, 그가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을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것은 바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유스팀 사무실의 Joe Brown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학생으로서 16세 까지의 계약을 제안했고
마침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날 밤 긱스는 잠을 전혀 잘 수 없었다고 하네요.. )
그는 주말에 유나이티드의 A팀과 B팀에서 훈련을했고 이 때, 그는 또한 잉글랜드 유소년팀의 주장이었다.
그때를 그는 이렇게 말하고있다. "내가 웸블리에서 잉글랜드의 White Shirts를 입고 있는 이 유명한 사진속의 모습이 훗날 내가 잉글랜드의 모든 국제경기 (국가대표가 될것이라는)에서 뛸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촉진시킨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단지 잉글랜드의 학생으로 있었고, 유소년팀이 잉글랜드의 학생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로인해 나는 웨일즈 유소년으로 뛰길 원했어도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굶주려 있다. 이번 도전은 단지 나 자신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웨일즈 팀을 위한 일이며 매우 흥미진진할 것이다. 우리에겐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Ryan
유나이티드에서 그는 First팀 데뷔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1991년 에버튼과의 홈경기에서 긱스는 서브로 이름을 올렸고 데니스 어윈의 부상으로 전반전 경기에 출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몇주 후 맨체스터 시티전, 올드트래포드에서 선발로 출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모든 사람들에게 라이언 긱스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다음 시즌, 리 샤프의 부상으로 긱스는 주전 도약의 해를 맞이한다. 시즌이 시작되고, 긱스는 첫 15경기에 연속 출전했고, 총 38경기에 출전했다. 또한, 긱스는 이 해에 웸블리에서 열린 리그 컵 결승에서 맨체스터 Utd가 노팅햄 포레스트를 1 : 0으로 제압하면서 그의 프로 경력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맨체스터 Utd가 시즌 초반의 압도적인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라이벌 리즈 Utd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면서 긱스는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1992-93 시즌 시작과 동시에 맨체스터 Utd는 첫 두 경기에서 연패를 당하며 지난 시즌에 보여준 실망을 계속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곧 팀과 긱스는 다시 자신들을 추스리며 전력을 회복했고,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위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미 팀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줬던 긱스는 곧 팀의 확실한 주전자리를 굳히며 그의 이름이 선명히 새겨진 등번호 11번의 유니폼을 얻게 된다. 그와 동시에 팬들은 옛날 그 등번호를 달고 뛰던 스타 조지 베스트와 긱스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1992년 9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벌어진 토튼햄과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골을 터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교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베스트가 긱스의 특출난 재능을 인정하며 높이 평가하면서 그 비교는 얼마 안가 사라지게 된다.
우승의 짜릿함을 맛본 긱스는 더 큰 성적을 원했고, 93-94시즌 맨체스터 Utd는 프리미어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 2관왕에 오르며 긱스를 충족시켰다. 1960년대 이후 올드 트래포드가 새로운 축구의 전성시대를 구가함과 동시에 긱스도 득점 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1994-95시즌, 긱스는 계속되는 부상으로 큰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시즌 초 입스위치와의 경기에서 부상당한 햄스트링을 시작으로 발목, 발꿈치 그리고 허벅지 부상이 차례로 긱스를 괴롭혔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긱스의 부상은 팀의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맨체스터 Utd는 블랙번에게 승점 1점차로 리그 우승을 내주고, FA컵 결승에서 에버튼에게 0 : 1로 패하면서 리그와 FA컵 2연패에 실패한다. 긱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39 경기에 출전했지만 기록은 전(前) 시즌 그가 보여줬던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며 급강하했다.
맨체스터 Utd에서 5번째 시즌을 맞이한 긱스는 팀이 많은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고 재정비에 들어가면서 또 다른 도약의 계기를 갖게 된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베켐, 버트, 스콜스 그리고 네빌 형제와 같은 잉글랜드 선수들을 팀의 주축으로 구성했고, 이것은 놀랍게도 약관의 긱스를 팀에서 가장 경험있는 선수로 만들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긱스는 왼쪽 윙으로써 다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고, 이는 맨체스터 Utd가 2번째 리그 & FA컵 2연패를 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이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긱스가 잉글랜드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 중 한명이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긱스는 아직 유러피언 리그(챔피언스 리그 & UEFA 컵)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1996-97 시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지난 시즌 리그 챔피언과 챔피언스 리그에서 선전했던 맨체스터 Utd는 부진하게 시즌을 출발한다. 그들은 홈에서 처음으로 페네르바체에게 패한 것을 포함해서 초반 6경기 중 3경기에서 패하는 부진을 보였으며, 2주 후 홈에서 다시 유벤투스에게 0 : 1로 패하고 만다. 비록 경기 결과는 유벤투스의 승리로 돌아갔을지 몰라도 긱스는 후반 내내 그가 유러피언 레벨의 성숙한 선수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록 그의 스피드, 기술, 그리고 드리블은 유벤투스의 수비수들을 당황시켰으나 팀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비엔나에서 열린 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긱스는 멋진 선취골을 기록하며 활약했고 결국 맨체스터 Utd는 8강전에 진출해 FC 포르투와 대결하게 되었다.
1997년 3월 4일은 긱스가 가진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날임에 틀림없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거친 포르투갈 챔피언을 맞아 긱스는 상대 중앙 미드필드 진영을 헤집고 다니며 팀의 세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맨체스터 Utd는 4 : 0의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2001년 8월 1일, 그의 Testimonial game에서 여동생 Bathaney와 함께...
(저 꼬마숙녀는 라이언의 여동생입니다. 물론, 친동생은 아니고 異父동생이구요,
많은 분들이 라이언과의 키스사진을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시더라구요..^^)
안타깝게도 긱스는 부상으로 두번째 리그 경기와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준결승에 결장해야 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맨체스터 Utd는 긱스의 공백을 절실히 느꼈고 결국 많은 득점 찬스를 살리지 못한 채 보루시아 도르트문드에게 아깝게 패하며 결승 진출에 좌절한다. 실망감에 자극을 받은 긱스는 이듬해 꾸준히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며 컴백했다. 긱스의 시즌 중 최고의 경기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벤투스를 3 : 2로 물리쳤을 때였다. 전 시즌 유벤투스에게 2번의 패배를 맛본 맨체스터 Utd는 라이언 긱스의 화려한 윙 플레이에 힘입어 보기좋게 복수한다. 긱스는 테디 셰링햄의 동점골을 어시스트 하고 경기 종료 직전 환상적인 결승골을 터뜨리며 대활약 한다. 경기 후, 유벤투스의 마르셀로 리피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로 긱스의 유러피언 레벨을 칭찬했다.
"긱스는 진정한 최상급 선수다"
긱스는 맨체스터 Utd가 챔피언스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데 일조를 한다. 그러나 그 해 2월, 긱스와 팀에 있어 불행한 일이 닥쳐온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긱스의 선취골로 더비 카운티를 2 : 0으로 리드하고 있던 가운데 긱스가 햄스트링에 부상을 당하면서 두달간 1군에서 제외된다. 이번 공백으로 인해 맨체스터가 얼마나 긱스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확연히 증명되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을 맛본 맨체스터 Utd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초반 승점 12점차를 지키지 못하고 아스날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며 무너졌고, 뒤늦게 합류한 긱스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7-98 시즌 부상에서 완쾌되면서 그는 그가 명백히 최고 레벨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부상에서 탈출한 긱스의 맹활약으로 맨체스터 Utd가 챔피언스 리그 초반 독주를 이끌며 운명적인 1998-99 시즌이 화려하게 시작된다. 긱스는 로즈, 바르셀로나, 브론드비와의 경기를 포함한 챔피언스 리그 4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그가 유러피언 리그에서 맨체스터 Utd의 가장 능력있는 선수라는걸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
그러나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경기 도중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다 발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한 긱스는 몇주간 결장해야 했고, 놀랍게도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또 햄스트링에 부상을 당했기에 기대가 됐던 시즌이 다시 한번 무너지는 듯 보였다. 운좋게도 부상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아서 긱스는 무사히 팀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이베리에서 열린 FA 컵 준결승,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맨체스터 Utd는 연장전 10명으로 싸우는 수적 열세로 탈락을 눈앞에 두며 그들의 시즌 3관왕의 길은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멋진 골을 작렬시킨 긱스 덕분에 맨체스터 Utd가 2 : 1의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둔다.
맨체스터 Utd 진영 중앙에서 패트릭 비에이라의 패스를 가로챈 긱스는 폭발적인 드리블로 유럽 지역에서도 강력한 수비로 정평이 나 있는 아스날 중앙 수비를 치고 들어가 4명의 수비수를 제낀 뒤 데이비드 시먼이 손쓸 수 없는 각도로 슈팅을 날려 골을 성공시킨다. 이것은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 조지 베스트조차도 할 수 없는 그런 환상과도 같은 플레이였다 그 후 발목 부상으로 잠시동안 고생하던 긱스는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와 맨체스터 Utd가 프리미어 리그, FA 컵,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석권하며 3관왕에 오르는데 큰 몫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99년 4월 14일 밤 보여줬던 라이언 긱스의 골(FA 컵 준결승, 對 아스날 전의 골)은 잉글랜드 축구계에 있어 영원한 전설로 기억될 것이다.
1998-1999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레블 달성 당시를 회고하며...
"솔샤르가 우승을 결정짓는 골을 넣은 그 순간, 너무나 굉장했도 또 너무나 믿기 어려웠다. 나는 무엇을 했었는지 아무 생각이 없다. 골을 리플레이 해서 볼때 나는 생각한다.'나는 어디에 있었지?' 나는 선수들의 세리머니 속에 있지 않았다. 정말 기뻤지만 나는 센터서클의 주심에게 다가가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던걸로 기억한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That's it."
"나는 지난수년간 우승을 한 선수들을 보며 '무엇때문에 저렇게 우는걸까?'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그것이 나의 일이 될것이라 결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누 캄프에서 마지막 휘슬이 울린 후, 나는 무릎을 꿇고 울 수 밖에 없었다. 우승으로 인한 극도의 감정으로 인하여 나는 정말 주체할 수 없었다."
"드레싱룸에서의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모두들 서로 부둥켜 안고, 욕조안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즐겼다. 그 후 바르셀로나이 중심지에서 이어진 파티는 정말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모든 선수들은 서로 계란을 던지며, 요상한 춤을 추었는데 그 때 나는 내가 테이블위로 올라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댄스를 춘것으로 기억한다."
☆ 이상으로 2000년 까지의 긱스에 대하여 적어봤습니다.
혹시라도 긱스에 대하여 빠진부분이 있을까,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 걱정스럽네요..^^
2000년, 그 후로 6년이흘러 어느덧 긱스도 은퇴를 바라볼 나이가 다가왔습니다.
앞으로 많아 봐야 2-3년..
하지만 저는 지금, 그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어 정말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이 조지베스트의 플레이를 보고 열광하며
그의 마지막 가는길을 함께 슬퍼하고 추모했듯이
저도 많은 그의 팬들과함께 라이언긱스를 계속 지켜보며 뒤에서 응원할것입니다.
☆ 자료는 라이언긱스의 영국사이트 (www.icons.com/giggs) 의 글, 자서전,
그리고 긱스의 커리어부분은 싸커라인 (www.soccerline.co.kr)의 글을 발췌하여 작성했습니다.
"나는 항상, 왜 잉글랜드 대신 웨일즈를 택했냐는 질문을 받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웨일즈에서 태어났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 조부모님도 그랬다. 잉글랜드를 위해 뛰는것은 결코 나의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내가 비록 맨체스터의 억양, 말투를 쓴다고 할지라도 나는 뼛속까지 웨일즈인이다."
첫댓글 ㅜㅜ 매우감동
아 감동 물결이네^^ 스포츠에서도 이런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파헤치고 진정한 승자가 될수 있다는거 정말 안습입니다;.. 만약 긱스가 잉글랜드 국적을 택했더라면 긱시는 컵이란 컵은 다 거머쥐었을지도 모를일이네요^^
아쓰리님 좋은자료 ^^
매직드리블 ㅋㅋ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긱스의 의리 정말 다시봐도 안습입니다.ㅠㅠ
긱스 ㅠ ㅠ정말 최고의 선수임을 다시한번 알게됩니다
최고의 선수 정말 좋아하는선수 ,,,
먼저 Ashelee.H님께 좋은 자료에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구요... 라이언 긱스 선수... 존경합니다.
긱스.
와 다 읽었습니다 긱스 없는 맨유는 없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웨일즈로 갔다. - Ryan Giggs
좋은자료에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처음부분읽을때도 그랬지만..뭐니뭐니 해도 트레블 당시 부분 읽을때에는.. 온몸에 소름이;;;
긱스 최고,
긱스 코치나 감독으로 라도 꼭 다시 봤으면...
선수 프로필중 이게 가장 감동적이네요 잘봤어요^^
우리가 지금 이선수의 플레이를 볼수 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해요,
아...............안습..ㅠ_ㅠ
아... 이 전율..
전율이 느껴집니다...제가 축구를 좋아하게끔 만든 선수가 긱스선수인데...안습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긱스팬이신데 그런말하시면 안되죠 ㅎㅎ 긱스가 마지막에도 언급하듯이 자신이 뼛속까지 웨일즈인이라는 자긍심을 같고사는 긱스형인데 ㅋㅋ
뼛속까지 웨일즈인이다.......감동이네요
222222222222
진짜 축구선수중에 긱스가 제일좋아 ㅠㅠ 긱스화이팅!!!!!!!!!!!!!!!!!!!!!!!
긱스 쵝오
이런 선수랑 박지성 선수가 같이 뛰고 있습니다.감동.
정말 최고다....난 언제나 좌긱스 우베컴을 그리며 축구를 본다
전성기 긱스의 드리블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선사해 주죠ㅜㅜ
첫댓글 ㅜㅜ 매우감동
아 감동 물결이네^^ 스포츠에서도 이런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을 파헤치고 진정한 승자가 될수 있다는거 정말 안습입니다;.. 만약 긱스가 잉글랜드 국적을 택했더라면 긱시는 컵이란 컵은 다 거머쥐었을지도 모를일이네요^^
아쓰리님 좋은자료 ^^
매직드리블 ㅋㅋ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긱스의 의리 정말 다시봐도 안습입니다.ㅠㅠ
긱스 ㅠ ㅠ정말 최고의 선수임을 다시한번 알게됩니다
최고의 선수 정말 좋아하는선수 ,,,
먼저 Ashelee.H님께 좋은 자료에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구요... 라이언 긱스 선수... 존경합니다.
긱스.
와 다 읽었습니다 긱스 없는 맨유는 없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웨일즈로 갔다. - Ryan Giggs
좋은자료에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처음부분읽을때도 그랬지만..뭐니뭐니 해도 트레블 당시 부분 읽을때에는.. 온몸에 소름이;;;
긱스 최고,
긱스 코치나 감독으로 라도 꼭 다시 봤으면...
선수 프로필중 이게 가장 감동적이네요 잘봤어요^^
우리가 지금 이선수의 플레이를 볼수 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해요,
아...............안습..ㅠ_ㅠ
아... 이 전율..
전율이 느껴집니다...제가 축구를 좋아하게끔 만든 선수가 긱스선수인데...안습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긱스팬이신데 그런말하시면 안되죠 ㅎㅎ 긱스가 마지막에도 언급하듯이 자신이 뼛속까지 웨일즈인이라는 자긍심을 같고사는 긱스형인데 ㅋㅋ
뼛속까지 웨일즈인이다.......감동이네요
222222222222
진짜 축구선수중에 긱스가 제일좋아 ㅠㅠ 긱스화이팅!!!!!!!!!!!!!!!!!!!!!!!
긱스 쵝오
이런 선수랑 박지성 선수가 같이 뛰고 있습니다.감동.
정말 최고다....난 언제나 좌긱스 우베컴을 그리며 축구를 본다
전성기 긱스의 드리블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을 선사해 주죠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