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주영의 고향은 경북 청송이다. 고추가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이다. 김주영은 냉면을 먹을 때도 고춧가루를 듬뿍 친다. 청양 고추까지 곁들여 먹을 만큼 매운맛을 좋아한다. 그가 멕시코 고추 얘기를 꺼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멕시코에 여행 가서 고추를 먹었는데 천장이 핑그르르 돌더니 정수리가 도끼로 찍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주영이 멕시코 식당에서 먹은 것은 '아바네로'라는 고추였다. 멕시코 사람들도 고춧가루를 음식에 뿌려 먹지만 고추를 날로 먹는 건 어쩌다 내기를 할 때뿐이라고 한다. 김주영이 아바네로를 다 먹었더니 주변에서 지켜본 멕시코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박수를 쳤다. 억지로 고통을 참은 김주영은 "태어나 처음으로 울면서 웃었다"고 했다. 미국에선 고추의 매운맛을 '스코빌 지수'로 잰다. 아바네로는 57만6000스코빌이다. 거기 비하면 청양 고추는 1만 스코빌밖에 안 된다.
▶고추의 매운맛은 화학물질 캡사이신에서 나온다. 여자들이 치한을 물리칠 때 쓰는 분무기에 캡사이신 액체가 들어간다. 지난해 기네스북은 미국 고추 '캐롤라이나 리퍼'가 세계에서 가장 맵다고 꼽았다. 156만9300스코빌을 기록했다. 고추는 한반도에 1600년대 무렵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1614년에 나온 백과사전 '지봉유설'은 "고추가 왜에서 들어왔기에 왜개자(倭芥子)라 한다"고 썼다.
▶엊그제 농림축산식품부가 고춧가루와 김치의 매운 등급을 매긴 표준규격을 마련했다. 스코빌 지수보다 더 객관적이라는 PPM으로 표시했다. 고춧가루 캡사이신 함량이 150PPM(스코빌 지수 2250)이면 '순한 맛'으로 정했다. 150~300PPM은 '덜 매운', 300~500PPM은 '보통 매운', 500~1000PPM은 '매운' 맛이다. 1000PPM(스코빌 지수 1만5000)이 넘으면 '매우 매운 맛'이다. 이 등급에 따라 김치도 '순한' '보통 매운' '매운', 세 등급으로 나눴다. 국내 김치 15%가 '순한 맛'이고 62%가 '보통 매운' 맛, 23%가 '매운' 김치다.
▶과학적으로 매운맛은 섭씨 43도 넘는 음식이 혀에 닿을 때 느끼는 통증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매운 음식에 빠지는 것은 고통을 달래려고 뇌에서 엔도르핀이 자동 분비되기 때문이다. 매운맛이 삶의 신산(辛酸)을 화끈하게 달래는 셈이다. 즐거울 때 먹는 매운맛은 뒤끝이 달다. 그러나 마음의 화(火)를 혀끝의 화(火)로 다스리는 건 두 겹의 고통이기도 하다. 새해엔 그런 날이 많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