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하고, 경기는 혹한보다 더 꽁꽁 얼어 붙어버려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암울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우리 삶이 그리 각박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닥친 암담한 현실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쏟는 노력까지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약이 되어있다. 도저히 헤쳐 나올 길 없어 보이는 오리무중의 암담한 현실도 시간이 지나면 안개 걷힌 뒤의 밝은 햇살처럼 그렇게 희망의 빛이 되어 밝게 빛나기도 한다. 한 살 두 살 나이 들어가면서 실감하는 것 중의 하나는 살다 보면 때로는 “세월보다 더 나은 처방전도 약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갑진년 용띠 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인 2025년을 맞이해야 한다. 언제나 새롭다는 것은 가슴 벅찬 희망이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새로움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시간만큼 새로움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시간은 우리의 인생이자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바다 위 사후 세계를 그린 ‘해상명부도' 속의 뱀/국립민속박물관
2025년은 을사년 뱀[巳]의 해다. 뱀은 12지의 여섯 번째로 육십갑자에서는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 정사(丁巳), 신사(辛巳) 등 5번 순행한다. 뱀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 4월에 해당한다. 옛사람들은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삼라만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하늘에는 하늘을 여는 기운이 있고 땅에는 땅을 지탱해 주는 기운이 있는데 이 두 기운을 일러 양(陽)과 음(陰)이라 했다. 또 양과 음,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치고 움직여 우주를 형성하는 근본이 되니 양은 하늘이고 음은 땅이라 했다. 또한 하늘에는 열 가지 기운이 있으니 이를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라 하여 이를 십간(十干)이라 했고, 땅에는 12가지 기운이 있으니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로 이를 십이지(十二支)라 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람의 띠는 바로 땅의 기운과 관련되어 있으며 십이지를 상징하는 동물인 12개로 이루어져 있다.
뱀신도상, 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벽사를 기원하기 위해 걸었다/국립민속박물관
띠는 쥐띠(子), 소띠(丑), 호랑이띠(寅), 토끼띠(卯), 용띠(辰), 뱀띠(巳), 말띠(午), 양띠(未), 원숭이띠(申), 닭띠(酉), 개띠(戌), 돼지띠(亥)로 모두 12개가 해를 돌아가면서 이루는데 그 순서는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습성에 의해 분류해 놓았다. 또 열두 띠 동물을 구성하는 십이지는 시간신과 방위신의 역할로서 그 시간과 방향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 수호신이 된다. 십이지의 열두 동물을 각 시간과 그 방위에 배열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동물의 발가락 수와 그때 그 시간에 나와서 활동하는 동물의 습성으로 구분 지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십이지를 나타내는 동물 중 가장 앞에 있는 쥐는 앞과 뒤의 발가락 수가 다른데 앞발은 홀수이고 뒷발은 짝수로 이루어져 있어 특별하다고 맨 앞자리를 잡았다. 그 뒤를 이어서 소는 네 개, 호랑이는 다섯 개, 토끼 네 개, 용은 다섯 개, 뱀은 발가락이 없고, 말은 일곱 개, 양은 네 개, 원숭이 다섯 개, 닭은 네 개, 개는 다섯 개, 돼지는 발가락이 네 개인데 이처럼 발가락의 숫자가 홀수와 짝수로 서로 교차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음양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동물의 순서를 배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고대 중국인들은 시간을 표시할 때 그때그때 나와서 활동하는 동물을 하나 들어 그 시간을 나타냈는데 십이지를 이루고 있는 동물의 순서는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2025년 계사년은 청사(靑巳)의 해!
뱀에 대한 인식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의해 그 의미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동물이다. 서양에서의 뱀은 ‘악’을 상징하는 동물로 받아들여진다면, 동양의 뱀은 윤회와 영생,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된다. 불교에서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을 뱀신이라 하여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워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고 가르쳐서 올바로 살게 하도록 해줌은 물론 일체의 병으로 하여금 완전케 해줌으로써 광명을 찾게 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뱀은 사람들에게 피하고 싶은 징그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둘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혀, 징그러운 비늘로 덮인 몸, 몸으로 기는 기괴한 이동법 등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유신장군 묘의 십이지상/ 왼쪽부터 용, 뱀, 말
뱀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 재생(再生), 영생(永生)의 상징이다.
현실에서 뱀의 부정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상 세계는 뱀의 주 무대이자 주인공이었다. 십이지 동물 가운데 뱀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많은 이야기를 가진 동물도 없다. 한국 설화 속에서 뱀은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대리자로서 인간 내면의 여러 요소가 기묘한 동물인 뱀의 입과 몸을 빌려서 나타난다. 설화 속에서 뱀은 은혜를 갚는 선한 존재로, 복수의 화신으로, 때로는 탐욕스러운 절대 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 묵은 구렁이인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상징이다. 또한 저승 세계에서 뱀은 악인을 응징하는 절대자로 나타나며, 악한 사람은 뱀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소리 없이 발밑을 스윽 스쳐 지나가는 섬뜩함,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 무서운 독을 품은 채 허공으로 날름거리는 기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교활함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뱀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그리 반가운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관심을 끄는 부분도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 동물이다. 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 재생(再生), 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로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 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뱀을 각기 문화적 맥락 속으로 상징화할 때 생긴 문화적 오해 때문이다.
또 뱀은 치료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이 의술신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의 신성 아스클레피오스 한 하인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하여 탈피함으로써 새로운 정력을 소생시키는 상징으로 간주해 왔다. 지금도 군의관의 뺐지는 십자가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뱀이다.
아스클레피오스
이처럼 십이지와 관련된 동물 민속은 현세의 평안과 내세의 영생을 기원하는 의식의 반영으로서 민중들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초석이자 문화의 창이다. 우리 민족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달으며 동물에게까지 자연의 이치를 부여해 한민족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선사시대부터 오랜 역사를 동물 상징과 함께해 온 우리 민족은 동물을 정복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경외(敬畏)와 기원(祈願)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으로 승화시켜 왔다. 선조들이 남긴 예술품에 보이는 동물 상징은 한국인의 토속적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동물 상징에서 보이는 깊고도 유장한 한국인의 정신세계! 한국의 미, 그 이면에는 우주의 질서가 숨어 있다.
뱀 탈/스리랑카
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뱀, 영화에서는 묘를 파헤치고 관을 밖으로 꺼내는데 이때 붉은색의 뱀이 불쑥 나타난다. 이 뱀은 관을 지키기 위해 숨어 있던 요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