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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3월 6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저희의 교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믿거나 말거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신기한 모습도 보이고,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2지창(二枝槍)을 보여주는데 그 창의 용도가 종교재판을 할 때 이단자나 마녀로 판결된 사람들을 빨갛게 불에 달군 2지창으로 눈을 지져 뽑아내는 도구라고 하였습니다. 공상 영화나 악마가 출현하는 영화에 보면 악마의 눈이 독기를 품거나 빨갛게 혹은 파랗게 변하는 것을 보면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는 눈을 도려내고, 불로 달군 2지창으로 찌르려고 만들었던 도구 같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가슴이 섬뜩하고 소름이 끼치고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는데 2지창은 범죄 집단에서 사건의 목격자에게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똑같은 방법으로 살인하고, 고발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일제 시대 때 사람들을 고문하면서 손으로 눈을 찔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중국영화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에서 사람의 껍질을 벗기게 하고, 마루타로 실험대상을 삼아 처참하게 사람을 죽인 것을 생각하면서 그토록 잔인한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지 새삼 묵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악령이 들린 사람을 구하시고, 악령을 쫓아내시며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 그렇게 온 힘을 다 기울이셨는데 중세에서는 왜 주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종교재판을 해서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고, 악령 들린 불쌍한 사람을 죽이고, 눈을 뽑는 잔인한 형벌을 행하였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 요한바오로 2세 성하가 1985년 대희년과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여 모든 교회의 잘못을 용서 청한 것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었고 우리 각자도 교황님과 같이 세상을 향하여 용서를 청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억울하게 희생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리와 성경을 인용해서 주님을 모독하고, 하느님을 함부로 말하고, 말씀을 빙자하여 이단으로 몰고, 인터넷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고 함부로 아프게 말을 하고, 사랑이 아닌 말로 상처를 입히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특히 교리를 이유로 벌어지는 종교전쟁은 폭력과 테러로 확대되고, 죄 없는 어린이와 힘없는 노약자들이 죽어 가는 일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독설로 벙어리와 귀머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잔인해졌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저토록 모질게 변했는지 생각하면서 현세의 전쟁과 형벌과 고문, 그리고 살인과 상해를 입히는 모든 잔학한 행위에 대해서 정말 많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집단에서는 자신들이 재림예수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악마에게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말이 비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박히고 있을 것입니다. 내 편견과 아집으로 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벙어리를 만들고, 아집과 고집으로 지금도 매일 살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자신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위선과 허식과 거짓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비와 동떨어진 모든 행동들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해 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함부로 심판하고, 판단하며, 단죄한 모든 잘못을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되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마녀 재판을 하거나 과학자들을 종교재판으로 몰아간 것처럼 우리가 판단하고 단죄한 대로 다시 판단되고, 단죄될 것입니다. 매 순간 2지창이 아니라 다지창(多枝槍)으로 찔릴 것이며, 매 순간 눈을 멀게 하는 아픔과 귀를 먹게 하고 혀가 잘리며, 손이 잘리고,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내 독설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지금 다시 독설로 나의 말을 되받을 것은 내가 되질한 그 되로 다시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살벌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행운마저도 바랄 수 없기에 아득하기만 합니다.
곡식이 부족할 때 양식을 많이 꾸어본 사람들은 후하게 되질하고 말질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고, 야박하게 되질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곡식은 누르고 두드리며 흔들고 넘치도록 담아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밑지지 않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야박하게 담아주고, 홍두깨로 위를 자르고, 흔들거나 두드리지도 않게 주어야 합니다. 그게 일명 ‘장사 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손해나는 일을 주님은 하라고 하십니다. 손해 보는 짓은 정말 하기 싫어도 그게 진정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마음이라면 그래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9,4ㄴ-10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축일3월 6일 성 치릴로 (Cyril)
신분 : 수도원장
활동 지역 :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 연도 : +1235년경
같은 이름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카르멜 회원으로서 콘스탄티노플의 사제였다. 그는 소위 '성자와 함께'(Filioque)로 불리는 신학적인 문제로 발생한 그리스 정교회와의 논쟁을 주도하여 가톨릭 교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은 그에 대한 자세한 경력을 소개하지 않고, 다만 27년 동안 자기 수도회를 훌륭하게 운영했다고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축일3월 6일 성녀 콜레타 (Coleta)
신분 : 수녀
활동 연도 : 1381-1447년
같은 이름 : 꼴레따, 꼴레뜨, 콜레따, 콜레트
성녀 콜레타는 1381년 1월 13일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코르비(Corbie)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결혼 후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이들의 수호성인인 성 니콜라우스(Nicolaus, 12월 6일)에게 기도해 딸을 얻자 니콜레트(Nicolette)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보통 콜레트(Colette)로 불렸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 고장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목공 일을 하던 로베르 부알레(Robert Boilet)였고, 어머니는 카트린(Catherine Moyen)이었다. 어려서부터 기도와 고행을 좋아했던 성녀 콜레타는 17세 때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일하던 수도원 원장의 도움으로 잠시 수녀원에 머물다가 자신의 유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뒤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어 1402년 9월 17일부터 베네딕토회 수도원 근처에 암자를 짓고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성녀 콜레타는 21살부터 코르비의 은둔소에서 홀로 살았는데, 그곳에서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환시를 보았다. 이때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클라라 수도회)가 엄격하던 그들 본래의 회칙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이미 그녀의 성덕과 영적 지혜가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영적 조언을 받고자 몰려들었다. 그녀는 클라라 수도회가 초창기 정신에 따라 살도록 개혁하라는 환시에 응답하고자 자신의 은둔소를 떠났다. 성녀 콜레타는 자신의 고해신부인 앙리 드 바움(Henry de Baume)의 권고에 따라 교황청 책임자인 베드로 드 루나(Petrus de Luna)를 면담하기 위해 1406년 8월에 니스(Nice)로 갔다. 루나 신부는 먼길을 걸어서 아비뇽까지 온 성녀 콜레타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는 1406년 8월 29일 교황 칙서를 통해 그녀가 클라라 수도회에 입회하는 것을 허락하고, 기존 수도원의 개혁과 새로운 수도원 설립의 사명을 정식으로 위임하였다.
처음에 그녀는 피카르디와 사부아(Savoie) 지방의 클라라 수도회를 개혁하려 노력했지만, 그 지방 수녀들로부터 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즈음 클라라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 정신에서 벗어나 수도 생활이 매우 해이해져 있었다. 1407년 성녀 콜레타는 기증받은 브장송(Besancon)의 부지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의 엄격한 회칙을 준수하며 절대적인 가난과 단식을 실천했다. 1410년부터 앙리 드 바움 신부의 지지를 얻어서 개혁 사업은 점차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프랑스와 플랑드르(Flandre) 지역 내에 엄격한 규칙을 지키는 수도원을 17개나 세웠고, 르 퓌 앙 블레(Le Puy en Velay) 수도원을 비롯한 기존의 몇몇 수도원도 개혁하였다.
성녀 콜레타는 임신부(임산부)와 아픈 아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데, 이는 그녀가 행한 기적과 관련 있다. 그녀가 교황을 만나기 위해 니스로 여행하던 중 한 친구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셋째 아이를 갖고 있었고 출산의 어려움으로 죽을 위험에 놓여 있었다. 성녀 콜레타는 즉시 그 지역 성당에 가서 기도했고, 어머니는 아이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페트로닐라(Petronilla)라는 이름을 얻었고, 후에 성녀 콜레타가 설립한 수녀원에 입회해서 그녀의 비서 겸 전기 작가가 되었다. 또 한 번은 교황으로부터 클라라 수도회를 개혁할 사명을 위임받고 브장송에 수도원을 설립했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가 어려웠었다. 그 무렵 그 지역에 살던 한 여인이 사산아를 낳았는데, 아이의 영혼 구원을 위해 아버지는 성당에 가서 세례를 청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 아이가 이미 죽었다며 세례를 거부했다. 그래서 수녀원으로 달려갔을 때, 성녀 콜레타는 교황으로부터 받은 수도복으로 그 아이를 감싸주고 성당 사제에게 가라고 했는데, 성당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의식이 돌아와 울고 있었다. 사제는 즉시 그 아이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성녀 콜레타는 무슨 일을 수행하도록 훈련받거나 준비한 일은 없었지만, 믿음의 힘과 성덕 그리고 아무도 거스르지 못하는 결정에 따라 일을 올바르게 성취해 나갔다. 그녀는 자주 탈혼 상태에 빠졌고 고난에 대한 환시를 보았으며, 벨기에의 겐트(Gent) 수도원에서 자신이 죽으리라는 예언대로 1447년 3월 6일 평화로이 선종했다. 성녀 콜레타의 개혁 클라라 수도회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그녀의 개혁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성녀 콜레타는 사망 직후부터 시성 조사가 시작되어 1740년 1월 23일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 축일을 맞은 치릴로 (Cyril) 형제들과 콜레타 (Colet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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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