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0 土/ 연중 제 18주간 토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아침/축일 미사.
① 2코린 9,6ㄴ-10 ㉥ 요한 12,24-26
-저녁/(연중 제 19주간)주일 저녁(제1)미사.
* 오늘의 성인('24.08.10)
라우렌시오 순교자 남, 바사 동정/순교 여, 아가토니카 동정/순교 여, 아스테리아 동정/순교 여, 제론시오 왕/순교 남.
* 칠석七夕:
·명절중 하나로, 음력 7월 7일( 양력 8월중)을 일컫는다.
· 다른 이름으로 칠성날(七星-), 꼼비기날, 농현, 풋구(경상북도 북부), 호미씻이(경상북도 문경), 꼼비기(구미 선산지역), 호미걸이(전라북도 군산)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다.
ㅡㅡTㅡ묵 상(1)ㅡTㅡㅡ
♧ 연중 제 18주간 토요일- 참으로 아끼는 사람에게는 아낌이 없다. ♧
ㅁ
<2019.8.10 성 라우렌시오 부제 축일-
말씀나눔/김레오나르도 신부>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도가 아닌 성인들 중에서 축일로 지내는 성인은 성 스테파노 부제 순교자와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뿐입니다.
성 스테파노는 잘 아시다시피 사도가 아닌 부제였지만 첫 순교자로서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의 초석을 놓은 분이기에 우리 교회가 축일로 지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는?
스테파노가 그리스도교의 초석이기 때문이라면 라우렌시오는 로마 교회의 초석으로 우리교회가 인정하기 때문이지요.
그의 순교가 로마에서 썩는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은 것이 바로 로마 교회의 번성이고 로만 가톨릭의 국교화인 거지요.
그래서 오늘의 전례는 밀알 하나가 썩어 열매를 맺는다는 복음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왜 라우렌시오의 순교가 가톨릭을 로마의 국교가 되게 했을까요?
로마의 순교자는 라우렌시오 말고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왜?
그것은 라우렌시오가 자기 목숨 하나 하느님께 바친 것이 그의 사랑의 전부가 아니고 그의 공로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라우렌시오는 자기 목숨만 하느님께 바친 것이 아니라 교회 재산의 관리자인 부제로서 교회가 주는 교회, 무엇보다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실로 자기 목숨만 바치는 순교는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 다른 사람까지 구원케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하느님께 받은 것을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게 해야 하느님의 교회가 나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교회가 되고 교회가 보편적 구원의 성사가 되는 거지요.
라우렌시오 성인은 실로 순교자일 뿐 아니라 하느님 은혜의 충실한 분배자였습니다.
로마 황제가 교회가 보물을 갖다 바치라고 하였을 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대로 교회의 보물을 팔아 몽땅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이에 분노한 황제에 의해 불에 달궈진 돌판 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죽을 때 그가 한 말과 행위는 참으로 영웅적일 뿐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써, 황제가 교회의 보물이 다 어디 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기가 보물을 나눠준 가난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하였지요.
진정 교회는 하느님 은총과 은사의 분배자이어야 하고, 교회의 관리자는 라우렌시오처럼 하느님 재산의 분배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는 나누는 교회가 아니라 점차 부를 모으고 축적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나누는 교회가 아니라 신자들로부터 재물을 긁어모아 축적을 하는 교회가 되어 가는데 그것은 우리 교회에 라우렌시오 같은 관리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 자신부터 깊이 반성을 하는 오늘이 되고 싶습니다.
우선 세상 것을 소유하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는 제가 되어야겠습니다. 받지 않고는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받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것도 넘치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믿어야겠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 9,8)
다음은 말할 것도 없이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참으로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보물도 아낌없이 줄 수 있지요.
라우렌시오처럼 가난한 이들이 제가 아끼는 보물들이 된다면 말입니다.
ㅡㅡTㅡ묵 상(2)ㅡTㅡㅡ
♧ 연중 제 18주간 토요일- 어차피 죽을 인생, 멋지게!
이러려는 저에게 주님, 자비를!♧
'24.8.10 土 성 라우렌시오 부제 축일/ofm -김레오나르도 신부/말씀 나누기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ㅁ
<성 라우렌시오 축일-2024>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2코린 9,6ㄴ)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자식이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되었을 때
자기 자녀의 장기를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기증하는
부모의 얘기가 미담으로 뉴스에 나오는 것을 가끔 보았습니다.
과연 훌륭한 행위이고 사랑의 행위이지요.
그런데 그 사랑은 이웃에게도 사랑이지만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식에게 사랑입니다.
어차피 죽은 자기 자식의 죽음을 아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죽을 우리 인생도 이렇게 의미 있게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지혜로운 인생이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전신을 기증했고 이왕이면 저의 시신이
구더기 밥이 되거나 재가 되기 전에 하나도 빠짐없이,
뼈까지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모두 쓰이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라도 저는
도움이 되는 인생을 넘어 살리는 인생이 되고, 살리는 인생을 살고 싶은데,
죽게 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막차 타듯 나를 내어주는 인생이 아니라,
지금부터 도움이 되는 인생을 넘어서 살리는 인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런 바람은 낭만입니다.
어차피 죽게 되었을 때 나를 내어주는 것은, 큰 사랑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더 살 수 있고 아직 더 살고 싶은데도 나를 내어주는 것은
큰 사랑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바람이 낭만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큰 사랑이어야 하고 타오르는 사랑이 되어야,
그러니까 꺼져가는 사랑이 아니라 타오르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우렌시오 성인이 바로 그런 사랑의 소유자였습니다.
석쇠 위에서 불에 타 죽을 정도로 사랑이 불타올랐습니다.
먼저 순교의 형장으로 끌려가며 3일 후에 같이 순교하게 될 것이라며
교황이 순교에 초대하였을 때 라우렌시오는 살 궁리를 하지 않았고,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영웅적으로 죽을 각오를 했으며,
교회 보물을 황제에게 빼앗기느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부제로서의 마무리 작업을 죽기 전까지 차분하고 깔끔하게 했습니다.
이제 이런 라우렌시오 부제에게서 시선을 돌려 저를 봅니다.
꺼져가는 나이에 사랑이 불타오를 수 있을까요?
기력이 점점 쇠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는데 사랑이 불탈 수 있을까요?
저의 선택입니다.
근근이 연명하는 쪽이 아니라 라우렌시오처럼 죽는 쪽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남은 인생 그리고 어차피 죽을 인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생 곧 씨 뿌리는 인생이 아니라
아예 내가 씨가 되고 밀알이 되는 쪽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어차피 죽을 인생, 멋지게!
이러려는 저에게 주님, 자비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한국관구//
서울오류동공동체/서울신사동수도원분원//
평의원/여기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국가영적보조/재속프란치스코회 위원장"
*¹ 오늘 김신부님 말씀나눔이 없으시어 2019 8.10 의 성 라우렌시오 축일 말씀을 올립니다.
*² 김 레오나르도신부('24 8.10.07:21) 늦은 올리신 말씀을 추가로 올립니다...
(ofs/정릉 아타나시오 韓 옮김)
ㅡㅡTㅡ복 음ㅡTㅡㅡ
◈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적독서 후에 잠시 묵상합니다>
<묵상 후 사도신경을 바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