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교감하며 상호이해와 소통을 바탕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이어오는 마을이 있다. 전통적인 유교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씨족 마을인 풍산 류씨 동성마을이다. 유교 문화 제2길은 선비문화와 하회별신굿 탈놀이로 잘 알려져 있고 무형문화재가 있는 하회마을 길이다. 전편에 이어 독창적인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하회마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회마을 들기 전 세계 탈 박물관에 들렀다. 보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문득 탈이‘탈 나다.’에서 비롯되었으며 서낭제나 마을굿을 하면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제각각의 모양과 색채, 표정을 가진 탈은 주변의 자연물을 이용하여 만들어졌으며 나름의 뜻을 가졌다. 우리나라와 세계의 다양한 탈 구경에 흠뻑 빠지다 보면 변화무쌍한 실체에 빨려드는 느낌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안동 하회탈 11점과 병산탈 2점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재미도 좋다. 특별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회 별신굿탈놀이는 서민의 놀이라 부담이 없다. 해학미가 넘치는 별신굿탈놀이는 신분제 사회의 모순과 애환을 익살스럽게 펼쳐 보여주었다. 하회탈 빵을 먹으며 공연장에서 별신굿탈놀이를 보노라면 시종일관 웃음과 흥겨움에 취해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공연 후 각종 탈의 주인공들과 관객이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거나한 춤사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탈은 신분 고하를 넘나들며 사회를 풍자하거나 내면의 번뇌를 춤과 말로 풀어내기에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가끔 한 번쯤 마음이 가는 탈을 쓰고 그 나름의 배역에 빠져 열연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탈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색다른 인물 혹은 사물로 거듭난 자신의 진실성과 마주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내외적으로 숱한 가면이자 탈을 쓰고 사는지도 모른다. 한편, 탈을 제작했다는 허 도령의 슬픈 이야기와 턱없는 이매탈의 전설을 잠깐 떠올리다 이내 세계수석전시관과 목공예품 전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만물상을 이룬 진귀한 돌들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개성적인 인간의 모습처럼 돌도 마찬가지 개성적인 미를 가졌다. 비록 정체된 돌들이지만 마치 생명을 가진 듯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 풍경을 담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법하다. 여러 가지 목제공예품이 있는 전시관 역시 제각각의 장승들 표정이 이채롭다. 주로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들은 수호신 역할을 하기에 보는 내내 그 모습이 엄중하면서도 사뭇 익살스럽다.
잠깐 하회 장터를 둘러본다. 장터의 가게들이 초가로 이루어져 옛 멋이 물씬 풍긴다. 그렇기 때문일까,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주막집에 들른 기분이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이 우리 지역의 음식인 안동 찜닭과 간고등어로 배를 채우고 후식으로 붉은 식혜도 시식한다. 보기만 해도 안동 식혜의 청량 함과 매콤, 달콤, 새콤함이 전해오는 것 같다.
풍천면 하회마을은 민속적 전통과 고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민속 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강물이 S자 모양으로 흐른다고 해서 하회(河回)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600여 년 내려오는 풍산 류씨 집성촌이다. 특히 입암 류중영, 귀촌 류경심,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 선생이 하회마을을 유서 깊은 마을로 거듭나게 했다.
사대부가의 면모를 오롯이 간직한 양진당, 충효당, 화경당, 양오당, 염행당, 작천고택, 하동고택 등이 걸음마다 집안으로 발길을 기웃거리게 한다. 현재 고건축물 안에 주민들이 직접 생활하고 있어 마을은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공존하는 느낌이다. 관광객들이 기와, 초가를 둘러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주민의 거처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는 사생활 노출로 적잖은 불편함이리라.
일반주택이나 아파트에 길들어진 현대인들이 지난 선인들의 생활상과 발자취가 머물러 있는 고택과 초가를 접하면 색다른 감회에 젖을 것이다. 자칫 고가가 생활에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막상 내부에 들면 구조가 실용적인 현대식으로 개조된 것을 접하게 된다. 큰 불편함 없이 고가의 멋스러움에 젖어 연인이나 가족들이 종종 한옥 체험을 즐긴다. 고가의 숙박 체험은 지난 문화의 소중함을 헤아려보는 특별한 시간이다.
솟을대문 앞으로 펼쳐진 문필봉과 마주한 양진당은 입암 류중영의 고택으로 풍산 류씨 대종택으로 명당 중의 명당자리다. 고려말과 조선 중기 건축물인 양진당은 정남향으로 천장 서까래와 기둥이 견고하고 웅장하다. 옛날에는 99칸이었으나 현재는 53칸쯤이니 한때의 부귀영화가 떠올려지는 느낌이다.
양진당과 마찬가지고 보물인 충효당은 문충공 서애 류성룡 종택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을 위해 애를 쓴 명재상으로 알려진 서애 종택의 충효당 편액은 미수 허목의 전서체 글씨로 마치 사람이 충과 효를 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충효당 뜨락에 한 그루의 구상나무가 지금은 작고했지만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식수로 눈길을 끈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를 비롯하여 2024년 초 미국 고 케네디 대통령 장녀 캐롤라인 케네디가 다녀간 명망 높은 집이다. 이렇듯 하회마을은 가장 토속적이며 한국적인 미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 민가로 세계 유명 인사들이 미수 허목 선생이 쓰신 전서체인 충효당 현판 곧잘 방문한다.
미수 허목 선생이 쓰신 전서체인 충효당 현판
충효당 내 서애 선생의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에는 선생의 일대기와 업적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다수의 저서와 생전의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소박한 유품들이 지나간 세월을 헤아리게 한다. 참고로 정갈하고 아담한 글씨로 쓴 영모각 편액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고 하니 의미가 한층 더 깊어 보인다. 영모각 앞의 만지송 가지들이 대단하다. 건물의 지붕을 넘나드는 만지송이 대대로 서애 선생 집안의 자손 번창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초가와 기와로 이루어진 마을의 고택 모두를 볼 수는 없다. 비록 국가 민속문화유산이자 보물들로 이루어진 고택들이 발길을 끌어당기지만, 실제 생활하고 있는 개인 집이라 무턱대고 집안 구경하기가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고택의 멋스러움과 정겨움이 머물러 있는 옛집 방문은 사생활 공간을 침범하는 것이기에 국가지정문화재 정도만 들여다본다.
영모각 앞의 만지송
마을 중앙 삼신당으로 가는 토속적인 아늑한 골목
아늑함이 몰려오는 황톳길 골목을 파고들어 삼신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을의 역사와 같이하는 보호수인 삼신당의 거대 신목(느티나무) 둘레에 수많은 소원지가 울타리에 빼곡히 끼워져 있다. 마치 사람들의 소망이 하얀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듯 다가온다. 주민들은 동목을 신성시하고, 동목은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준다. 한편, 삼신당은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의 안녕을 위해 동제를 지내고 하회별신굿 탈놀이 시작을 알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한 신목인 삼신당
풍만한 품을 가진 거대 느티나무는 수많은 세월을 건너면서 온갖 풍파에 시달렸음에도 동민의 애정으로 끝없는 삶을 지새운다. 하지만 긴 세월을 견디느라 패이고 갈라진 몸체 하단은 이질적인 시멘트를 받아들이며 지속적인 생명의 연장을 보여준다. 비록 차가운 시멘트가 채워졌지만, 느티나무 속살은 언제까지나 일상의 굳건함이자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목화는 꽃이 지고 다래가 익어가면서 하얀 목화솜을 품고 개화를 서두른다. 그때 온통 하얀 꽃으로 채워졌던 목화밭은 일대 장관이었다. 하얀 솜을 터트린 눈앞의 목화솜을 보노라면 솜을 따기 위해 밭고랑을 헤매고 다녔던 일이 이제는 멀어져간 그리움이 되어 곤궁했던 지난날을 더듬게 한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형 겸암 류운룡 선생이 북서쪽 바람을 막기 위해 심고 가꾼 만 그루의 소나무 숲이다. 현재의 숲은 1906년에 다시 심고 가꾼 것이다. 만송정이 여름엔 홍수로 인한 피해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방풍림으로 마을과 토지를 지켜준다. 현재 만송정은 사시사철 휴식의 공간이자 문화의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강 너머 주황색 노을이 만송정 솔숲으로 찾아드는 찰나의 순간
부용대 한쪽 기슭에 자리한 서애 선생의 옥연정사 및 강 언저리 나루터의 호젓한 배
선유줄불놀이를 위해 강 위에 드리워진 긴 오선 줄
해마다 만송정 앞 강변에는 선유줄불놀이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줄불놀이 행사가 시작되면 보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선비들의 놀이인 선유줄불놀이가 밤의 어둠을 보석의 그것처럼 찬란하게 빛을 뿜어낸다. 마치 하늘에서 반짝이는 주렴이 수를 놓는가 하면 우주의 무수한 별이 일시에 지상으로 쏟아 내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뿐인가, 강물에 띄운 달걀 불은 어두운 강물 따라 빛의 실타래를 풀어 놓는다. 그와 함께 꿈과 희망을 품은 풍등은 암흑인 하늘을 뚫고 거침없이 날아올라 아득한 별빛 속으로 묻혀든다. 하늘에는 다양한 소망을 안고 유영하는 각양각색의 풍등이 수를 놓고 지상에는 휘황찬란한 줄불놀이가 천지를 환희의 도가니로 잡아끌었다.
그도 잠시 부용대 꼭대기에서 소깝 단이 엄청난 불덩이를 안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깝 단의 낙화가 선유줄불놀이의 대미를 장식하는 클라이맥스다. 거대 불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낙화야!”를 외친다. 그때 절벽으로 떨어지는 커다란 불덩이는 불의 핵으로 기다란 불기둥을 늘어뜨린다. 그 어떤 액운이든지 단번에 모두 없애버리는 듯 거침없이 아래로 내달리는 화력은 영락없는 도깨비불이다.
여러 차례 소깝 단의 불기둥은 순식간에 사라지는가 하면 어느 순간 다시 부용대 꼭대기에서 활활 타오르며 거센 불기둥을 만들어내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낙화야! 낙화야!” 소리는 모인 이들의 바람과 희망을 외치는 염원이다. 그렇게 어둠 속을 밝히는 찬란한 빛의 세계는 한동안 황홀경에 취하게 했다.
모든 이의 소망을 싣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풍등
하늘에서 주렴처럼 쏟아지는 줄불과 강물 위에 옹기종기 모여 긴 여행을 떠나는 달걀불
“낙화야!” 소리에 따라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소깝단의 황홀경
그렇게 환희의 불꽃놀이는 한동안 검은 하늘의 파라다이스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