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불복종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1944년 8월 9일, 독일의 디트리히 폰 콜티츠(Von Choltitz) 중장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2개월 전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이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하고 있는 상황. 히틀러는 그에게 거듭 “절대 파리를 온전한 채로 내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폰 콜티츠는 이 명령을 묵살한 끝에 8월 25일 1만7000명의 휘하 장병과 함께 연합군에 항복했다. 히틀러는 폰 콜티츠의 항복 소식에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Brennt Paris)?”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연합군의 파리 수복 과정을 영화화한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6년 작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폰 콜티츠는 회고록에서 “후세에 ‘파리를 파괴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전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감지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파리를 보게 된 것은 폰 콜티츠의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어떤 군대도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삼지 않은 적은 없다. 대한민국 군 형법 44조도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자’에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엄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 명령 불복종으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6·25 당시 유엔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 경남 합천 해인사의 국보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 그는 항명을 추궁하는 상부에 해인사의 가치를 조목조목 설명해‘귀하와 같은 장교를 둔 건 대한민국의 행운’이라는 찬사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시기 “태우는 건 하루면 족하지만 다시 세우려면 천 년도 부족하다”며 구례 화엄사를 소각령으로부터 지킨 차일혁 총경, 오대산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 장교에게 “그럼 나도 함께 태우라”고 맞선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도 감동을 전한다. 물론 그 뜻을 받아들여 법당 문짝만 뜯어 태우고 떠난 이름 모를 국군 장교를 빠뜨릴 수 없다.
위화도 회군 이후 수많은 장군이 사리사욕에 의한 하극상으로 역사를 더럽히기도 했지만, 이렇듯 숭고한 불복종의 기록은 인간이 명령대로 단순 복종하는 기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첫댓글 인간 양심의 승리이지 ..
나는 종종 서방님한테 숭고한 불복종 하는데... 그건 안되나?
이 시기에 제목부터 불복종 운운하는 건 적절치 못한 면이 있어 보인다~~~예를 든 사람들의 발바닥도 못 따르는 잉간들이 득실거리는 정치판 잡종들!!! 지들이 무슨 불복종운동을 펼치겠다고~~~에라이 불출마 약속이나 지켜라 넝감탱이야!!!
불복종에 숭고함이 있다고 개나 소나 무족건 불종할까봐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