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백운대 산행기
오랜만에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려고 산행 채비를 했다. 백운대에서 보이는 안쪽 풍경을 그리려고 그림도구와 보통 크기보다 긴 종이를 준비했다. 북한산 여기저기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갔던 곳을 다시 가는 기회가 그리 자주 있지 못한 형편이다.
우이-신설 경전철 종착역인 북한산우이역에 내려 도선사 주차장으로 갔다. 거기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이 가장 짧은 편이다. 도선사를 오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방생일이라 행사에 가서 오늘은 버스 운행이 없다고 했다. 택시에 화판이 들어가지 않아서 다른 차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걸어서 오르려는데 막 도선사를 오가는 봉고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그 차를 타고 도선사로 갔다.
2시 22분 도선사 입구 탐방안내소에서 산길로 들어섰다. 정상에 올라 그림을 그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있었다. 올라가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오르는 길에 위쪽에서 짐을 진 사람이 내려오면서 나를 아는 듯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화판을 들고 가는 것이 절에 가는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후 시간이라 오르는 사람은 적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을 내려오다 전에 보았다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고 가는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얘기해 주었다.
2시 44분 깔딱 고개로 불리는 하루재를 넘어 10분 후 인수봉 안부에 도착했다. 백운대까지 1.2km 남은 이정표가 보였다. 도선사 입구에서부터 그 곳까지 거리와 같았다.
안부에서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백운대까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익숙한 길이다. 녹음 사이로 공기에 초가을 기운이 배어났다. 하지만 아직 한낮 기온이 높아서 땀이 많이 흘렀다. 산행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냥 묵묵히 한걸음 한결음 오르다 보면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산행-3
김석환
돌부리 채이며
오르는 길
땀 한바가지
정상서
트인 사방 돌아보는
시원한
눈멋 한소금
조급한 마음에
길은 멀고
묵묵히
정취에 취해 갈때
발걸음 가볍다
(20230902)
오르다 배낭을 매지 않은 분을 추월하게 되었다. 그 분이 계속해서 바짝 뒤따라오고 있었다. 3시 12분 백운산장에 도착했다. 보수를 마치고 산악구조대 사무실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위문 쪽으로 오르다 지난주 관봉에서 만난 분을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보니 뒤따라오던 분이 지나쳐가며 나에게 대단하다고 했다. 무거운 배낭에 화판을 들고 자신을 추월해 간 것을 의식해서 하는 말 같았다.
3시 20분 위문에 도착해 우측으로 백운대 정상을 향해 다가섰다. 만경대쪽을 지키는 초소 직원이 뒤따라와 “설치하는 것 아니죠”하고 물었다. 그림을 그리러 간다고 하니 다시 초소 쪽으로 돌아섰다.
데크 계단을 지나서 암벽 철난간 구간을 올라가 2시 28분 백운대에 도착했다. 먼저 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섰다. 차례차례 뒤에 선 사람이 앞사람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을 찍고 내려와 뜀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 있던 부부가 화판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리러 왔느냐고 물었다. 준비를 하다 먹물통이 바위에 미끌려 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낭패다 싶어 급히 바위 사이로 내려갔다. 그 밑 바위에 있던 한 분이 내려가는 것을 잡았다며 놓은 곳을 가리켰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날씨가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초가을 공기가 느껴졌다. 뜀바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거기까지 화구를 챙겨와서 그림 그리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했다. 처음으로 뜀바위를 건너 뛰어 바라보다 다시 그리던 자리로 돌아와 그림을 그렸다.
아까 먹물을 챙겨준 분이 올라와 얘기를 건넸다. 리프렛이 있어 보여주니 감탄을 하면서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자기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했다. 귀한 분을 만났다며 암벽을 걸어 내려갔다.
백운대 정상 쪽을 보니 평소보다 풍광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마치 거대한 돔이 정상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아직 태극기 앞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옆에서 구경하던 분이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찍어주었다. 그 사진을 카톡으로 아는 분들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한 여성분은 오르내리가가 힘이 들겠다며 다 그릴 때까지 매번 화판을 다시 들고 오느냐고 했다. 그렇다고 하자 놓고 가지 그러느냐고 했다. 그래도 들고 다닐 수밖에 없다. 계획대로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장소에서 그림을 그리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바위에 무릎이 배여 계속 꾸부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끔 돌아 앉아 무릎을 폈다. 전에 안감독과 영화 촬영을 하러 올라왔을 때처럼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된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느덧 서쪽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장엄한 광경이었다. 매번 자연의 신비를 대한다. 노을을 보면서 화구를 챙겨 도선사 입구로 내려왔다. 슈퍼마켓에서 켄맥주를 마시며 쉬었다.
(20230902)
다시 백운대를 오르려고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려 도선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옆 좌석에 앉은 연세 지긋한 분이 나이 들어가면서 식사를 잘 해야 된다고 했다. 도선사 입구 주차장에 당도할 때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구름이 자욱해서 산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차에 그대로 있었다. 내려갈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하다 오를 결심으로 차에서 내렸다. 날씨는 변화될 수 있다. 올라가면 다른 상황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와 같은 코스로 올라갔다. 오르기가 좀 더 수월한 느낌이었다. 11시 58분 백운대에 도착했다. 구름이 짙게 가려서 인수봉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리던 부분에 이어 만경대를 그리려고 뜀바위를 건넜다. 좁은 계곡 너머로 화판과 배낭을 던진 다음 뛰어 넘어갔다. 만경대가 쪽 시야가 확보되는 위치이지만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 보니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건너온 두 젊은 일행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 곳은 바위가 비스듬히 경사진 곳이어서 머물러 그림을 그리기에 불안정했다. 빨리 마치고 바위를 건너가려고 빠르게 그렸다. 바위 건너에 말레이시아에서 온 젊은이들이 바위에 앉아 한가롭게 얘기를 나눴다.
만경대를 그리고 뜀바위를 건너 어제처럼 내경을 바라보며 그렸다. 멀리 비봉 능선이 가렸다 보이다 했다. 오늘도 옆에서 찍어준 사진을 몇 군데 보냈다. 오늘 북한산을 오르겠다고 했던 정교수님이 사모바위에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었다.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일기예보에 5시부터 비가 내리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비를 맞지 않으려면 그 전에 갈무리를 해야 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외국 젊은이들이 다가와서 즐겁게 쉬고 있었다. 서울관광재단에서 안내하는 일행이었다.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분들도 합류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외국인 일행에게 지난달 전시한 리프렛을 보여 주니 놀라워해서 갖으라고 했다.
일기예보를 의식해 서둘러 화구를 챙기고 어제보다 일찍 내려섰다. 어제 들렀던 슈퍼에서 맥주를 한켄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 오늘 다시 백운대 오르기를 정말 잘 한 것 같았다.
(20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