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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27_경남 고성군 개천면 옥천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43 12.03.17 19: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진주에서 문산을 지나 옥천사를까려 1007번 도로로 갈아탓다. 개천면에 도착해 개천초교를 조금 지나니 옥천사 안내판이 보인다. 우회전해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서니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옆에는 공룡의 자취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어 잠시 둘러보고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한적한 길을 오른다. 옥천사를 찾는 사람들은 옥천의 물맛을 꼭 보고 간다고 한다. 옥천의 물맛은 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물을 마시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옥천은 단순한 샘물이지만 부처님 가르침이 녹아 있기 때문에 감로수 이다.

뿐만아니라 인간들의 어리석음, 스님들의 수행원력 등을 다 담고 있다. 의상스님이 국내의 영지를 가려 많은 사찰을 세운 사찰을 화엄십찰이라고 일컫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창건한 연화산 옥천사이다. 연꽃이 반쯤 핀 모양을 한 연화산의 옛 이름은 비슬산 이었는데, 폐허나 다름없던 옥천사가 인조 때 중창되면서 산 이름도 연화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옥천사라는 이름도 맑은 물이 샘솟는 경내의 옥천(玉泉)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는 길은 아직은 봄이 활짝 다가선 것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따뜻한 햇살은 목덜미에 후끈한 더위를 느끼게 해줄만큼 온도는 올라있다.

[공룡 발자욱이 있다는 곳...]

[공룡이 짓발고 간 것 같은 돌모양...]

[연화산 옥천사 일주문...]

옥천사 일주문은 혜명선사와 상오선사, 청담선사의 문인으로 절의 주지를 맡으며 1984년에 일주문을 세웠다. 일주문은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불(佛)의 세계에 들어서는 첫 관문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줄로 되어 있다는뜻으로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현판에는 '연화산옥천사(蓮華山玉泉寺)'라는 글이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옥천사 천왕문...]

혜명선사와 상오선사가 청담선사의 문인으로 들어와 주지로 있을때인 1989년에 조성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중간에 통로의 좌우에 사천왕을 모시고 있다. 천왕문은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는곳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천왕문의 오른쪽에는 남방천왕인 증장천왕이 보검을 잡고 서방천왕이 여의주와 용을 잡아 악귀를 밟고 불문을 지키고 있다. 사천왕들은 불교? 수호신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천왕문 왼쪽에는 동방천왕인 지국천왕이 비파를 들고 북방천왕인 다문천왕이 왼손에 탑을 들고 악귀를 밟고 서 있다. 이들은 수미산의 중복 사면의 사천국을 다스리는 왕으로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는 호법신인 것이다.

[새로 지은 것 같은 건물...]

[옥천사 보장각...]

보장이란 진귀한 보물을 가득 채워둔 보물창고라는 의미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장중에 중생들의 고뇌와 제액을 제거하는 미묘한 교법이 가득 들어있다는 뜻이다. 정면 7칸의 팔작지붕으로 2층건물

[옥천사 보장각 현판...]

[옥천수라고 쓰여진 입석...]

[화려한 자방루와 축대가 높은 벽...]

[경내엔 요즘 조성된 것 같은 청담대사 사리탑이...]

[청담대사 사리탑비...]

[옥천사 해탈문...]

번뇌에 묶인것에서 풀려 미혹의 고통에서 풀려나오는것 즉, 미혹의 세계를 넘는 문을 말한다. 또한 '귀를 기울여 불법을 듣는다'라는 뜻도 있어 불법을 듣고 해탈을 하는 곳이다. 미혹의 고통에서 풀려나서 미혹의 세계를 넘는 문을 말한다.

[건물밑에는 오래된 정겨운 문이...]

[옥천사 요사...]

[대웅전건물 밑에는 굴뚝이...]

[옥천사 대웅전...]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인 다포계(多包系), 외3출목(外三出目), 팔작지붕 건물이다. 방향은 동향(東向)이며 앞쪽 왼쪽에는 적묵당(寂默堂)을, 오른쪽에는 탐진당(探眞堂)을 각각 배치하고, 맞은 편에는 자방루(滋芳樓)를 두어 아늑한 마당을 형성하고 있다. 옥천사에 소장되어 있는 『옥천사사적기(玉泉寺事蹟記)』에 의하면 1745년(영조 21)에 창건된 것이라고 하며, 이 보다 앞서 1654년(효종 5)에도 법당이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편액 글씨는 동화사 대웅전 현판을 모각해 온 것으로 동국진체풍의 대가 기성(箕城) 쾌선(1693~1764)대사의 글씨이다.

[옥천사 탐진당...]

탐진당은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종무서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건물도 적묵당과 마찬가지로 시축(時竺)선사가 1754년(영조 30)에 지은 것이며 현판 글씨도 진경시대의 특징을 드러낸 동국진체풍이다. 금고는 금구(金口), 범구(梵口), 반자(飯子)등으로 말하여지는 북의 일종이다. 주로 금속으로 만들어지는데 금, 은, 구리가 재료이다.

[옥천사 나한전...]

나한전의 현판 글씨는 기성대사의 글씨이다. 나한전은 주로 십육나한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삼존불의 좌우로 봉안되어 있는 16나한상은 최근에 봉안된 것이다. 첫번째는 바를를 든 모습의 빈두르 존자, 두번째는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 가나가바차, 세번째는 가나가바라타자, 네번째는 수빌타존자, 다섯번째는 등을 ?고 있는 나쿠라, 여섯번째는 참선하고 있는 모습의 바다라, 일곱번째는 한쪽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카리카,여덟번째는 바자라푸드라, 아홉번째는 지바카, 열번째는 판타카, 열한번째는 부처님의 아들인 라후라,열두번째는 나가세나,열세번째는 경전을 읽고있는 안가다, 열네번째는 선정의 모습인 바나바시, 열다섯번째는 아지타, 마지막으로 현인의 모습인 수다판타카라고 한다. 이 분들은 왼쪽에는 홀수, 오른쪽에는 짝수의 배열로 봉안된다.

[옥천사 산령각...]

산령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독성각 옆에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1897년(고종 34)에는 중건된 것이며 신령스러운 산신을 모시는 전각이다. 독성각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예불을 하는것이 특이하다. 신령스러운 산신을 모셔놓은 전각으로 아주 작은 전각이라는 특징이 있다.

[옥천사 독성각...]

독성각은 나한전 왼쪽에 산령각(山靈閣)과 나란히 가마 보다 조금 큰 크기로 마치 모형 건물처럼 서 있다. 1897년(고종 34)에 지었다고 하는데 갑오년 난리 후에 급급히 불탄 것을 복원하느라 이렇게 축소해서 지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지세(地勢)와 국세(局勢)에 맞춰 짓느라 장난감 같은 전각을 지어 놓고 밖에서 예불을 드리도록 하였던 모양이다. 다른 절에서는 흔히 보지 못하는 특이한 건물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이 분을 우리나라에서는 독성(獨聖), 수독성(修獨聖),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한다.

[포광당형진, 의상조사, 청담대종사, 백련삼오선사, 서응대강백스님 등의 진영이 걸려 있는....]

[조사당 건물앞에 고양이가...]

[옥천사 칠성각...]

정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치성광여래를 본존으로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동학란으로 대부분이 건물이 소실되자 이에 농성 화상은 더욱 분발하여 다음해 1895년에 곧바로 명부전(冥府殿)과 나한전(羅漢殿)을 복구하고 1897년(고종 34)에는 칠성각(七聖閣)과 독성각(獨聖閣), 산신각(山神閣)을 중건하여 사찰의 규모를 갖춰 놓았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의 칠성을 신격화시켜 천재지변을 다스리는 신을 모시는 전각이다.

[바닥엔 오래된 석조물이...]

[차마와 연화산의 조화가 어우러져...]

[옥천사 명부전의 공포가 아름다워...]

[명부전 금강역사상...]

[신도들의 정성이 모인...]

[명부전 처마의 날카로운 공포...]

[사찰 구석에 자리한 작은 건물...]

[건물 툇마루에 달린 징...]

[...]

자방루는 1764년(영조 40)에 지어진 목조 누각 건물이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2칸인 주심포계(柱心包系) 팔작 건물이다. 자방루 뒤편에는 '연화옥천(蓮華玉泉)'이라는 현판이 걸려져 있는데 이 현판 글씨는 추사의 수제자 위당(威堂) 신헌(申櫶, 1811~1884)의 예서체 글씨이다. 앞에는 '자방루(滋芳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옥천사 자방루라 쓰인 현판...]

[자방루 안쪽엔 많은 연등이...]

[옥천사 범종각...]

팔작지붕으로 조성된 전각으로 범종을 봉안하고 있다. 범종각의 안에는 범종을 비롯하여 목어, 법고, 운판, 동종1기가 봉안되어 있다. 범종각은 범종을 모셔놓은 전각을 말한다. 그러나, 옥천사의 범종각은 사물을 한군데 모아 모셔두었다. 운판은 금속판으로 구름모양을 하고 있어 운판이라고 한다. 금속판으로 만들어 장식적이며, 허공에 떠다니는 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법고는 북을 말하는데 종과 더불어 중요한 법구이다. 조석예불이나 의식행사때 절도있게 두들깁니다.

이 북소리는 모든 축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목어는 나무로 깍아만든 물고기로 항상 눈을 뜨고 있어 물고기처럼 졸지말고 정진에 힘쓰라는 의미이다. 범종은 범종각 안에 모셔져 있는 종으로 위에는 한마리의 용으로 된 용뉴가 있고 상대와 하대, 유곽에 보상화문과 당초문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또한 구름속에서 차(茶)를 받치고 있는 공양상이 명문과 함께 돋을 새김되어 있다.

[옥천사 범종각내 목어...]

[꽃상여가 준비되어 있고...]

[신발도 신은 견공...]

[경내를 나와 종각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다시 천왕문을 향해 내려서면...]

사찰에 있는 샘에서 물이 아닌 공양미가 나온다면 누가 믿겠는가? 매일 일정량의 공양미가 나오는 玉泉(옥천)이 있던 도량이 바로 고성 옥천사이다. 지금은 공양미 대신 맑고 맑은 물이 나오지만 옥천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산사를 찾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옥천사의 옥천은 우리들에게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욕심을 깨우쳐 주었다. 한꺼번에 많은 쌀을 얻겠다는 욕심으로 바위를 깨뜨려 결국 영원히 공양미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욕심은 영원한 자비심까지도 파괴한다는 가르침을 설하였다고 생각한다고 코리아템플에서 설화를 전해준다. 욕심을부리며 돌아다니며 오늘도 사찰을 찍어댓지만 제일 중요한 옥천각을 찍은 사진은 없다. 공사중이긴 하였지만 옥천샘은 내눈을 거부한 것은 아닐런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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