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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11
씬1. 동모현, 내빈관 빈청 안 (밤)
빈청에 ‘樂浪之王 王宏’ 이라는 명정(銘旌)이 늘어뜨려져 있다.
(자막) 낙랑의 왕 왕굉
명정 아래, 얼음을 채운 옥관에 왕굉의 시신이 담겨 있다.
왕자실,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씬2. 동모현, 내빈관 모하소의 숙소 (밤)
최리,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있다.
모하소, 소반에 마실 것을 놓고 들어온다.
모하소 : .. (본다) 빈청에 가시려구요?
최리 : (고개를 끄덕인다)
모하소 : 가지 않으심이.. 부달 장수도 그렇고, 영호장원 가신들이..
최리 : (돌아본다) 가야한다.
모하소 : .. (마실 것을 건네며) 생 칡뿌리 즙입니다. 드세요..
최리 : 당신이 마시게. 아직, 창백하군. 백두옹이 그리 쉬 풀어지진 않을 거요. 워낙 강한 독이라.
모하소, 다탁 위에 소반을 내려놓는다.
최리 : 라희는?
모하소 : (고개 젓고) 충격이 너무 컸는지.. 시간 지나도, 저대로면 어쩌죠?
최리 : 어쩌겠는가. 그런 에미에게서 태어난 라희의 운명이니.
최리, 문쪽으로 간다.
모하소 : 자실 아울, 미워 마세요.
최리 : (돌아본다)
모하소 : 아우 아니었다면, 당신도.. 나도, 다 죽었을지도 몰라요.
최리 : 두둔하지 마라.
모하소 : 누구든 이거 아니면 저거. 아무리 피하려 해도, 둘 중 하날 택해야 할 때가 있어요.
당신을 택하고 오라버닐 버린, 자실아우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겠어요.
최리 : 사람은 죽을 길인지 뻔히 알면서도.. 가야만 하는 때도 있다.
모하소 : 여보.
최리 : 죽음이 두려우냐?
모하소 : 모르겠어요. (생각하다) 당신을.. 라흴 볼 수 없다는 게.. 자명이가 살아 있는데 만날 수 없다 생각하면, 두려워요.
최리 : 당신이 자실이라면, 친 오라빌 죽일 수 있었을까?
모하소 : (자리에 앉고) 어느 여자라도 그럴 수 있어요.
최리 : 그저 생각만 하는 것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거다. 당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
모하소 : 전 자실아우가... 안쓰러워요.
최리, 씁쓸한 시선으로 본다.
씬3. 동모현, 내빈관 빈청 앞 (밤)
부달과 부관1을 비롯한 영호장원의 가신들 빈청 앞을 지키고 있다.
최리, 걸어온다.
부달, 최리의 앞을 막아서는데 눈에서 불이 튄다.
부달 : 여기가 어디라고 옵니까! (검을 빼려고 한다, 반쯤 뺐을 때)
최리 : 너희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만해라.
부달 : (수하들에게) 베라!!
최리 : 우리가 유헌과 맞서 싸운 까닭을 잊었느냐!!
왕굉·최리, 누가 왕이 될 것인가!! 누가 신생 낙랑국을 먹을 것인가! 그 때문에 싸웠더냐!
부달 : 번지르르한 개소리! (수하들에게) 폐하를 시해한 자다!! 주군에 관을 모시고 갈 때, 최리 것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
부달, 검을 빼들고. 수하들, 검을 뽑는데.
최리, 전광석화처럼 부관2의 검을 빼앗아, 검으로 부달의 검을 쳐내고. 부달의 다리를 후려쳐 넘어트린다.
최리 : (부달의 목을 검으로 겨눈다)
부달 : 베라! 모시던 주군을 잃고, 뭔 낯짝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최리 : 왕장군은 이미 죽었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낙랑을 다스릴 수 있는가·구할 수가 있는가?
고구려 왕, 무휼의 입에 낙랑을 처넣을 생각 아니라면, 이쯤에서 멈춰라.
최리, 검을 집어던진다. 부달, 일어난다.
최리 : 너희가 이를 갈아도 이젠 어쩔 수 없다. 무휼을 막을 자는 나 밖에 없으니.. (문안으로 들어간다)
부달 : 위선자!!
최리 : .. (멈칫- 하지만, 걸어 들어간다)
부달 : 왕이 되고 싶으면, 나도 왕하고 싶다, 욕심난다. 사내답게 한판 붙었어야지!!
고래 잡고 살 거네 헛소리 지껄이다. 이제 와서 무휼이 어째? 당신은 구역질나는 위선자야!!
최리 : .. (돌아본다)
최리, 부달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등 돌려 빈청 마당으로 들어간다.
씬4. 동모현, 내빈관 빈청 안 (밤)
최리, 들어온다.
왕자실, 앉아 있다가. 최리가 들어오자 일어나 읍한다.
왕자실 : 몸은 좀 어떠세요? 토증은 가라앉았나요?
최리 : ..
최리, 왕자실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무시하고, 관 앞의 향로에 향을 한줌 넣고, 두 번 절한다.
최리 : 형님.. 혼백이 떠나셨습니까? 아직 여기 머물고 있습니까?
왕자실 : .. (본다)
최리 : 욕심에 찌든 아녀자 하나가, 우릴 동시에 망치는군요.
왕자실 : !! (시선이 파르르- 떨린다)
최리 : 낙랑으로 모시고 가, 왕의 예로 묻어드리겠습니다.
왕자실 : 내가, 당신을 망쳤나요?
최리 : (무시)
왕자실 : 난, 내가 당신을 살렸다 생각했는데. 망쳤다구요?
최리 : .. 넌 남자를 모른다.
왕자실 : (OL) 남자가 뭐길래요? 목숨 걸고 살려 놓았더니. 그냥 죽게 내버려둘 껄 그랬나요?
최리 : 그게 나았다. 차라리 형님 손에 죽는게.
왕자실 : (기가 막힌) 하아!
최리 : 너와 헤어질 생각이다.
왕자실 : !!
최리 : 낙랑으로 돌아가면, 우리 인연을 끊어야겠다. 영호장원에 가 살 순 없을 테니. 매시달에 내려가 살아라.
왕자실 : 호호호~ 호호호호~~
왕자실,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기막힌 표정으로 바라보던 최리.
최리 : 네가 정말 미쳤느냐?
왕자실 : (웃음을 멈추고) 라희하고의 인연도 끊을 껀가요?
최리 : 애는 모하소가 돌볼 것이다. 라희가 나아질지, 저대로 평생을 갈지 모르겠다만.. 모하소 품에서 크는 게 낫겠지.
왕자실 : 당신은 위선자에요!!
최리 : ..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럴지도..
왕자실 : 혈육에 피를 손에 묻히는 아픔이 뭔지나 알아요! 난, 당신을 위해. (하는데)
최리 : (OL) 날 위해가 아니라, 널 위해 한 일. 덮어씌우지 마라.
왕자실 : 아뇨! 당신을 위해 했어요!! 왕후가 되고 싶다, 라희가 여왕이 되는걸 보고 싶다, 욕심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최리 : ..
왕자실 : 이리도 날 모욕하는 당신이지만, 내 안엔 그래도 정이 살아 있어서...
최리 : ..
왕자실 : 당신이 손에 피 묻히기 싫어하니, 대신 내 손을 오라버니 피에 담갔어요!
최리 : ..
왕자실 : 슬픈척·괴로운척·좋은남잔척·죽음이 두렵지 않은 척·왕위에 욕심 없는 척, 제발 하지 말아요!
왕자실, 최리를 차갑게 바라본다.
씬5. 동모현, 내빈관 라희의 숙소 (밤)
모하소, 라희에게 죽을 먹이려고 한다.
모하소 : 아가, 어서.. (숟가락을 라희 입가에)
라희 : .. (손을 쳐서, 죽 소반을 엎어버린다)
동고비 : 마님!! 데지 않으셨어요!! (수건을 가지고 온다)
모하소 : 데였다 한들. 우리 라희, 맘속에 일어난 불길만 하겠느냐.
동고비, 모하소의 치마를 닦아준다.
라희, 침상에 머리를 콩콩- 찧기 시작한다.
모하소 : (그런 라희를 바라보다) 어른들이 사는 세상은 말이다. 너무나 복잡하고, 복잡해서..
내 딸이 이해할 수 없는 걸로 가득하지.
라희 : .. (콩콩, 찧는다)
그 모습을 보던 모하소, 속이 상해 라희의 등을 한 대 때려준다.
모하소 : 이 녀석! 어쩌자고 배에 몰래 타! 어쩌자고 그런걸 봐! 안봐야 할 것을.. 왜 하늘은, 내 딸한테 그런 걸 다 보게 하는 거냐.
(눈물이 고인다)
라희 : .. (콩콩, 머리를 찧는다)
모하소 : 강해져야 한다. 넌 원래 강한 운명을 타고 났으니..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
라희 : .. (콩콩)
모하소 : 네가 본게 다는 아니야. 아가, 이 세상은 아름다운게 더 많단다...
모하소, 라희를 와락, 끌어안고 정수리에 입맞춘다.
씬6. 동모현, 내빈관 빈청 안 (밤)
왕자실, 최리를 바라본다.
왕자실 : 난 당신하고 헤어질 수 없어요.
최리 : 세상이 모두, 왕자실 니 손바닥 안에 있다 믿는군.
왕자실 : 지금도 우린 헤어진 거나 같잖아요? 자명일 버린 그날부터 당신, 단 한번도 날 찾지 않았죠. 그냥 지금처럼 살면 돼요.
최리 : .. (듣는)
왕자실 : 나도 한 때는, 사랑에 목숨 걸었죠. 잘난 사내 최리에게 사랑 받고·사랑하며 살고팠죠.
최리 : ..
왕자실 : (격해지는) 모하소가 당신 마음을 다 가졌는데, 그럼 난요? 권력 밖에 가질 게 없잖아요!
최리 : 왕자실이 손 써준 덕에, 난 왕이 되겠지.
왕자실 : 조금쯤은 내게 고마워해도 좋잖아요.
최리 : 나도.. 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수만 조선족 백성들의 목숨값 위에 세운, 낙랑국을 깨트리면서까진 아니었다.
왕자실 : (본다)
최리 : 적어도 왕위보다 큰 것에 욕심이 있다한 내 말을, 넌 이해하지 못했다.
왕자실 : 그 대단한 욕심이 뭐죠?
최리 : 낙랑국에 정신을 만든 자로 역사에 남고 싶었다.
왕자실 : ? (본다)
최리 : 신생 낙랑국에 왕이 되어, 태평성대를 이루는 성군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으나..
그토록 버리기 힘들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떨치고. 빈손으로 떠날 수 있는 인간이 되고자 했는데.. 넌, 그걸 깨트렸다.
왕자실 : 그렇게 칭찬만 받으며 살고 싶었나요? 식구들이야 다 죽든·말든 자기 혼자 고결하게?
최리 : (OL) 더 고약한 건 말이다. 넌.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왕자실 : (본다)
최리 : (왕굉의 관 옆에 앉는다) 형님이 죽기를 바란 건 아닌가. 누군가, 내 대신 죽여주길 바라건 아니었던가.
나 역시 (왕자실을 돌아본다) 너와 똑같이 탐욕한 놈은 아니었는가!! 형님을 죽이고, 왕이 되고 싶은건 아니었던가!!
왕자실 : ...
최리 : (관을 보며) 시퍼렇게 얼어붙은 형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물이 흐른다) 계집의 치마폭에 쌓여 왕위를 꿰찬 놈이라는
자괴감 속에 평생을 살겠지..
왕자실 : 엄살떨지 마세요!
최리 : (본다)
왕자실 : 나는 앞으로 오라빌 죽인 년 소리 들어가며 살 껍니다! 그러니, 당신도 견디세요!
나, 왕자실. 죽기 전엔 당신 옆을 떠나지 않아요!
최리 : ..
왕자실 : 대신, 당신을 보며 살진 않아요. 라흴 보며 살게 내버려둬요. (문쪽으로)
최리 : (나지막이) 라희는 내 뒤를 잇지 못한다.
왕자실 : ! (돌아본다)
최리 : 자명이 살아 있다면 내 뒤는 그 아이가 잇는다.
왕자실 : .. (노려본다)
씬7. 동모현, 내빈관 빈청 마당 (밤)
왕자실, 마당을 걸어 내려오는데 휘청한다. 난간을 붙잡는다. 눈물이 흐른다.
왕자실 : 언젠 내가 저 남자를 믿고 살았더냐.. 사랑이 백년을 가더냐. 천년을 가더냐.. (손끝으로 눈물을 닦는다)
씬8. 낙랑국, 영호장원 빈청 (밤)
등불을 밝히고, 빈청을 마련하는 시비, 종복들.
도찰, 시비·종복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왕홀, 아직 관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명정 ‘樂浪之王 王宏’ 앞에 돗자리에 꿇어 앉아 있다. (다들 상복 차림)
모양혜,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다. (아직 상복차림 아니다)
시비1 : 태대부인 마님..
모양혜 : 어제까지 왕비마마가 오늘은 태대부인이라. 여자 팔자 두레박이라더니. 흐흥.. (코웃음)
시비1 : 상복 준비했습니다. (준비한 흰 베옷을 가져와 내민다)
모양혜 : 치워라! (손으로 쳐낸다) 난, 아직 폐하에 시신도 보지 못했다.
도찰 : 마님.
모양혜 : (버럭) 부달은 최리를 죽였다던가!! 자실이 년은 죽였다던가!! 내 그 둘이 죽고 나면, 머리 풀고.
(시비가 주워 개키고 있는 상복을 보며) 얌전히 저 옷 입어줄 테니!!
모양혜, 꿇어앉아 있는 왕홀을 본다.
모양혜 : 일어나라.
왕홀 : (본다)
모양혜 : 일어나라니! (왕홀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긴다)
왕홀 : 으.. 냄새. 술 드셨어요?
모양혜 : 그럼 맨 정신에 어찌 견디리!! 가자!!
왕홀 : 빈청은..
모양혜 : 그보다 중한 게 있으니, 따라 나와.
모양혜, 왕홀을 끌고내려가려다 명정을 본다.
모양혜, 한손으로 명정을 부욱- 뜯어, 집어던진다.
씬9. 낙랑국, 영호장원 후원 마당 (밤)
사방에 등불을 대낮처럼 밝혀 놓고.
모양혜, 왕홀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다. 모양혜, 왕홀을 두드려 잡는. 모양혜의 칼에 왕홀, 손을 맞는다.
왕홀 : 아야!! (칼을 놓친다. 칼이 멀리 날아간다)
모양혜 : 집어!!
왕홀 : 싫어요.
모양혜 : 이 놈이!! 집어!!
왕홀 : 진짜 취하셨어요. 쫌 주무세요..
모양혜 : 집으라니까!!
모양혜, 칼을 집어다가 왕홀의 손에 억지로 쥐어준다.
모양혜 : 니 누나, 자실이 년이 니 형이자. 내 남편을 죽였다.
왕홀 : (조그맣게) 형수님이 보신 건.. 아니잖아요.
모양혜 : 이제 왕홀 네가 영호장원 주인이다! 왕자실은 불공대천지수! 영호장원은 앞으로 왕자실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어!
네 손으로 형님에 원수를 갚거라.
왕홀 : ..
모양혜 : 왜 대답이 없어, 이 자식아!! (어깨를 잡고 흔든다)
왕홀 : .. 죽구·죽이구.. 형수님.. 난, 진짜.. 싫어요. 이런 거 싫다구요. 그냥 편하구 재밌게 살구 싶다구요.
모양혜 : 못난 놈. 그러고도 네가 영호장원에 주인이냐?
왕홀 : 주인은 형수님이 하심 되잖아요. 전, 절대 싫다구요!
왕홀, 모양혜의 품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인다. (Dis)
씬10. 고구려, 국내성 일각 (낮)
성곽에서 뿔피리를 부는 병사. 동시에, 국내성 마당에 설치된 북을 치는 병사.
내시장, 제금을 치며 시간을 알리는 타경관(打更官)1·2와 함께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타경관1 : 정시(丁時)요!! 정시요!!
씬11.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의 침소
송매설수와 송옥구, 점심을 먹고 있다.
시녀장과 아미·술이, 시중들고 있고.
시녀장, 손으로 생선을 뜯어 송매설수의 앞접시에 놓아준다.
송옥구 : (숟가락을 놓는다)
송매설수 : 간밤에 타호태와 술을 과하게 드셨다더니.. 입맛이 없으세요?
송옥구 : 연나부와 대작하기 쉽지 않지요.
송매설수 : 타호태는 어쩌겠답니까? 전쟁을 하겠답니까?
송옥구 : 술 마신 입하고, 맨 정신인 입하고는 다르니.. (송매설수를 보며) 사람의 말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소리) 쟁쟁- 제금소리.
송옥구 : (문밖에 시선을 두다) 폐하가 나를 부르는군.
송매설수 : 왕의 장인이 끼니도 제대로 못챙긴답니까? 그이와 싸우자면, 많이 드셔야 합니다.
(국을 밀어주며) 해장 하셔야지요. 자요, (저로 송옥구의 밥 위에 고기 한점을 얹어주며) 아바님 좋아하시는 맥적입니다.
송옥구, 숟가락 들지 않는다.
송매설수 : 좀 드세요..
송옥구 : 전에 마마, 궁에서 받는 밥상은 양념으로 모래라도 끼얹는지 서걱거린다더니
과연, 어수관(御壽館)에선 모랠 쓰나봅니다. 흐흐.. (웃는)
아미 : 어머나! 그럴리가요~
술이 : 돌이 잘못 들어갔나, 간을 보겠사옵니다~ (맥적 한 조각을 번개같이 집어 입에 넣는다)
시녀장 : 이런·이런! 버릇없는 것!
(내시장의 소리) : 마마- 하덕이옵니다.
문 열리고, 내시장 들어온다.
내시장 : (송매설수에게 읍하고. 송옥구에게) 제가회의 시간이옵니다, 고추가 어른.
송옥구 : (웃으며) 입이나 부시고 가지. 폐하께 구린 입냄새 풍풍- 풍겨서야 되겠나.
아미, 얼른 물잔을 가져다주면. 송옥구, 받아서 요란하게 물양치를 하고 술이가 내미는 타구에 캬악- 신경질적으로 뱉는다.
씬12. 고구려, 국내성 소요전(笑要殿) 송수지련의 침소
수지련, 손으로 생선을 통째 집어들고 살을 발라 대무신왕의 밥 위에 얹어준다. 뒤에, 그림자처럼 서있는 궁녀1·2.
대무신왕 : 됐다, 그만.
수지련 : 오나부 늙은이들과 싸우려면 많이 드셔야 합니다.
대무신왕 : 그 늙은이들 중엔, 네 큰아버지 송옥구도 있다.
수지련 : 큰아바님을 치십시오.
궁녀1 : ! (눈빛이 빛난다)
수지련 : 비류나부 안에도 틀림없이 폐하와 뜻을 같이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옵니다.
대무신왕 : 너 또한 비류나부를 위해 여기 왔을 텐데.
수지련 : 큰아바님이 저를 보낸 것은 비류나부에 이익 때문이오나, 신첩은 오선전 마마와는 다릅니다.
대무신왕 : 어떻게?
수지련 : 오선전 마마는, 저나·마마나 비류나부에 뿌리를 둔 한가지라 하지만. 이 몸, 수지련은 폐하께 뿌리를 두고 있사옵니다.
대무신왕 : (본다)
수지련 : 비류나부가 썩은 뿌리라면, 폐하께서 넝쿨을 거둬 태워버리시면 됩니다.
(일어나 숟가락으로 밥을 떠, 생선을 얹어 대무신왕의 입가로 가져간다) 많이 드셔야 하옵니다~
대무신왕 : (입 벌려, 받아서 씹다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튀쳐 나온 밥알이 수지련의 얼굴에 튄다) 미안, 미안.
이거야 말로 걸작이구나.
수지련 : 신첩은 고구려에 왕비가 아니라, 폐하에 여자이고 싶습니다~
수지련, 얼굴에 묻은 밥알을 떼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대무신왕, 그 모습을 바라본다.
씬13. 고구려, 국내성 강국전
대무신왕과 호동, 송옥구를 비롯한 오나부의 수장들.
을두지, 우나루, 추발소를 비롯한 대신들.
대무신왕 : 우리 고구려 백성들이 비적(匪賊)에 무리인가?
언제까지 춘궁기면, 개가 똥냄새 찾아가듯, 낙랑·옥저 변경에 숨어들어 곡식자루나 털어올 것인가!
신하들 : ..
대무신왕 : 낙랑을 치면 내, 그 땅을 오나부에 똑같이 나눌 것이다!
낙랑 십팔 현을 공로에 따라, 차등 없이 나눠, 식읍(食邑)으로 내릴 것이다.
우나루 : 폐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어찌 군사를 내지 않는단 말이오! 고구려를 위해 비류나분 군사를 내십시오!
송옥구 : 불가하오.
대무신왕 : (본다)
송옥구 : 두 번 아니라, 열 번·백 번 제가회의를 한다 해도, 비류나부는 군사를 낼 수 없습니다.
대무신왕 : 끙.. (신음을 토하고) 좋다. 이번 낙랑정벌에 비류나부는 빠져라. 계루부, 연나·환나·관나의 군사들이 간다.
비류나부는 단 한 평에 땅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나루 : 사나부가 솥 걸어놓고, 김- 설설 피어 올리며 낙랑에 쌀로 밥 지을 때. 비류나부는 빈 솥이나 핥아야 될겁니다.
송옥구 : 그 솥에 고구려나 삶지 마시게.
대무신왕 : 연나부는 군사를 얼마나 동원할 수 있겠는가?
타호태 : (송옥구를 한번 본다)
송옥구 : .. (고개를 끄덕인다)
타호태 : (대무신왕) 연나부도.. 이번 전쟁에서 빠지겠습니다.
대무신왕 : ! (송옥구를 한번 본다)
씬14.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송매설수의 침소
송매설수, 궁녀1을 바라보고 있다.
궁녀1, 이미 시녀장에게 수지련의 이야기를 다 전했다.
송매설수 : ... 비류나부를 태워 없애라 했다?
궁녀1 : 예, 왕비마마.
시녀장 : 마마께선 비류나부에 뿌릴 두고 있지만, 소요전(笑要殿) 마마는 폐하께 뿌리를 두고 산다 하셨다옵니다.
송매설수 : ! (독한 눈빛이다)
씬15. 고구려, 국내성 오선전 일각
서슬 퍼런 송매설수, 시녀장과 시녀들, 궁녀1을 데리고 걸어간다.
씬16. 고구려, 국내성 소요전 송수지련의 침소
수지련, 궁녀2의 도움을 받아 얼굴에 마사지를 하고 있다.
문 열리고, 송매설수와 시녀장, 궁녀1 들어온다.
수지련 : 깜짝 놀랐습니다. 일국에 정비마마께오서 무슨 패싸움 하자, 애들 죄- 끌구 오셨나했네요.
송매설수 : (다탁위에 놓인 수건을 던져준다)
수지련 : (받아서, 얼굴에 바른 팩을 닦는다)
송매설수 : 네가 정녕 말라죽고 싶으냐! 뿌리를 태우고, 가지가 어찌 꽃을 피우며 살 수 있으리.
자신에 근본을 부정하면서까지 고구려 왕비가 아니라, 폐하에 여자로 살고 싶더냐?
수지련 : (궁녀1을 보고) 네 년이었구나.
궁녀1 : 송구하옵니다.. 차비마마. 이년에 소임이 본시..
수지련 : 처죽일 년. (흘기고, 수건 놓고 송매설수를 본다) 네, 그래요. 분명 제가 그리 말했습니다.
송매설수 : 하.. 하아..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난다)
씬17. 고구려, 국내성 대무신왕 집무실
대무신왕과 송옥구, 앉아 있다.
내시장, 술 담긴 자기병을 내려놓고. 안주를 내려놓으려 하면.
대무신왕 : (흘깃 보고) 가져가라. 필요 없다.
송옥구 : 맛있어 보이는군요. (느물거리는) 늙어서, 이제 신은 안주 없인 술을 못마시옵니다.
내시장 : (안주를 송옥구 앞에 놓아주고, 뒷걸음질 쳐 문쪽으로)
대무신왕 : (술을 한잔 따라준다)
송옥구 : (술 다 따르면, 두 손으로 들어 공손히 아미까지 대었다 놓고) 제가회의 하다말고, 웬 낮술을요?
대무신왕 : 간밤엔 타호태와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셨다 하던데.
송옥구 : 악으로·깡으로 간신히 버텼습니다.
대무신왕 : 연나부를 잘도 구워삶았더군. 과연, 비류나부 수장 송옥구일세.
송옥구 : 과찬에 말씀. (한 잔 하고, 한 잔 대무신왕에게 따라주고)
대무신왕 : 군사를 주오. 더도 말고, 비류나부에서 오천. 연나에서 삼천, 환나에서 이천이면 되오.
나머지 오천은 계루와 관나에서 데려갈 것인 즉.
송옥구 : 연나부는 부여·현도군과 국경이 맞닿았으니, 그들을 지켜야 하고.
환나부는 요동과 맞닿았으니, 그들에 도발을 막아야합니다.
대무신왕 : 비류나부는?
송옥구 : 최후에 방어선이지요. 폐하께서 낙랑으로 가시고, 연나부가 무너지면,
누가 있어 부여·현도가 마자수를 건너지 못하게 폐하에 집을 지키겠습니까?
대무신왕 : 장인!
송옥구 : 제가 폐하에 장인이긴 했사옵니까? (안주를 하나 집어 우물거린다)
대무신왕 : .. (그 모습을 본다)
씬18. 고구려, 국내성 소요전 송수지련의 침소
송매설수와 수지련, 이야기 나누고 있다. (시녀장을 비롯 모두 물러난)
수지련 : 언니와 내가, 목적이 같다 해서. 방법까지 같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송매설수 : 뭐라?
수지련 : 복잡하게 멀리 있는 친정에 기댈게 뭐 있나요? 베갯머리 같이 나누는 남편에게 기대면 편할 것을.
송매설수 : .. (본다)
수지련 : 왕자만 낳으면 다 끝나는 것 아닙니까? 비류나부도 살고, 나도 살고. 덤으로 언니도 살고. 안그래요?
송매설수 : 호호호~ 호호호호~~ (웃으며) 나까지 덤으로 살려주고, 고맙구나~
수지련 : 별 말씀을요~ 비록 사촌이라도, 우린 자매가 아닌가요. (방긋-)
송매설수 : 넌 아마, 그 입 때문에 죽을 것이다.
수지련 : 언니가 죽는다면, 그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겠죠. (웃는)
송매설수 : (일어나며) 여자한테 친정은 마지막 보루와 같지. 그 집을 태우면, 너도 같이 타죽는다.
수지련 : 여자에게 마지막 보루는, 친정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송매설수 : .. (잠시 생각하다) 호동은 폐하에게 아들이기 전에, 고구려 그 자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새겨둬라.
(싸늘한 눈으로 수지련을 본다)
씬19. 고구려, 국내성 대무신왕의 집무실
대무신왕, 송옥구의 잔에 술을 따른다.
대무신왕 : 장인을 우보로 삼겠소.
송옥구 : (한 잔 마시고) 그리도 낙랑이 갖고 싶으십니까?
대무신왕 : 고구려가 천대·만대를 이어가려면 내가 아니면, 호동이라도.
그도 안되면 호동에 아들·손주·증손주라도 낙랑에 평야를 가져야 하오. 낙랑땅은 고구려의 미래요.
송옥구 : (술을 한잔 따른다) 흐흠.. 그토록 폐하께 낙랑이 절실하시다니.
대무신왕 : (단숨에 마시고) 아니면, 내가 장인에게 이리 고개 숙일 리가 있겠소? (웃는)
송옥구 : 이왕 거래를 시작하셨으니.. 마저 하지요. 군사 오천에 우보는 밑지는 장삽니다.
대무신왕 : 본전치기로 맞춰보오. 날 상대로 이익 남길 생각은 말고.
송옥구 : 호동왕자에 태자책봉은 안됩니다.
대무신왕 : 이익 남길 생각은 말라 했소.
송옥구 : 이 늙은 송옥구가 죽어도. 비류나부 역시 천대·만대를 가야하니까요.
대무신왕 : 호동은 거래대상이 아니오. 내가 죽으면 누가 있어 그 뒤를 잇는단 말인가?
송옥구 : 이 늙은것을 장인이라 부르셨던가요?
대무신왕 : (본다)
송옥구 : (심정이 착잡해진다) 매설수 애미는 딸년 팔자가 가엾다구, 밤낮없이 우느라, 눈이 짓물렀지요.
대무신왕 : .. (본다)
송옥구 : 이 송옥구는 가슴이 짓물렀습니다.
대무신왕 : 그대가 그토록 왕비를 아끼는 줄 몰랐군.
송옥구 : 수지련에게서 아들을 보신다면.. 그도 어쩔 수 없으나. 매설수에게서 아들을 보십시오.
대무신왕 : ..
송옥구 : (자리에서 일어나, 부복한다) 다음대, 고구려 보위를 이으실 왕자마마를 위해,
이 늙은이 칼을 차고 나가, 낙랑을 폐하께 바치오리다.
대무신왕 : .. (냉정한 시선으로 송옥구를 본다)
씬20. 동모현, 유릉의 저택 (다른날/오후)
(자막) 대홍려, 유릉의 동모현 저택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호곡이 들어가 있는 개집 위로, 비가 쏟아진다.
유릉, 걸어온다. 우산을 들고 뒤 따르는 시비.
유릉의 발소리 들려오면, 호곡 개집에서 쇠줄을 목에 찬 체 기어 나온다.
유릉 : 왕굉이 안죽었다 해도.. (비를 보며) 불바다는 못만들었겠군.
호곡 : 면목 없습니다..
유릉 : 나는 그다지 하늘, 운명. 이런 걸 믿지 않는다만. 어쩔 수 없지.
아직, 하늘이 숙부님 원한을 갚아도 좋다, 허락지 않은 듯하니.
호곡 : ..
유릉 : 이제 그만 거기서 나와도 좋다.
호곡 : 제가 여기 있는 것은, 월나라 왕 구천이 쓸개를 핥았던 것과 같습니다.
왕굉은 죽었으니.. 최리의 살을 씹어, 유헌 폐하에 원한을 갚기까진 여기가 나, 호곡의 집입니다.
유릉 : .. 술이나 한잔 하지.
씬21. 동, 장소 (시간경과)
쏟아지는 비. 유릉, 의자에 앉아 그대로 비를 맞고 있다,
시비1, 유릉의 잔에 술을 채운다. 시비2, 개집 앞에 나와 앉은 호곡의 잔에 술을 채운다.
유릉, 잔을 조금 들어 올리면, 호곡 역시 잔을 조금 들어 올려 잔을 부딪치지 않은 채 건배를 하고..
비 반, 술 반의 잔을 단숨에 털어 넣는다.
씬22. 동모현, 내빈관 일각
모하소, 라희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모하소와 라희, 걷고 있다.
뒤따르는 동고비, 대가 긴 우산으로 모하소와 라희가 젖지 않게 씌워준다.
모하소, 연못가에 핀 영춘화를 본다.
모하소 : 영춘화네. 우리 라희, 닮아 곱기두 하지.
라희 : .. (텅빈 시선으로 보다, 손을 뻗어 꺾는다)
모하소 : 이런. 꽃두 사람두. 꺾어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곁에 두구 그냥 보는 거란다. 네가 커서 사랑을 하면 알게 되겠지.
라희 : .. (꽃을 발로 짓이기다 풀썩, 주저앉는다)
모하소/동고비 : 라희야!/아가씨!!
라희, 흙탕물에 앉아 일어나질 않고 멍-하니 모하소를 본다.
모하소 : (등을 대고) 엎자.
동고비 : 마님, 제가..
모하소 : 아니다.
모하소, 라희를 업고 간다. 동고비, 우산을 씌워주고.
모하소 : 한번두 기옐 본적이 없지? 해지면,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기옐 할꺼야. 우리 라희, 많이 웃어줄 꺼지?
라희 : .. (모하소의 등에 얼굴을 묻는다)
씬23. 동모현, 내빈관 왕자실의 숙소
치소, 계란을 깨서 큰 사발에 담는다. 수북한 계란껍질.
치소 : 열셋 (깨서 넣고) 열넷 (깨서 넣고) 열다섯 (깨서 넣고) 다 됐어요~ 마님.
왕자실 : 오냐.
왕자실, 사발을 들고 벌컥벌컥 마신다.
치소 : (입맛 다시고) 맛있으세요? (소금종지를 내민다)
왕자실 : (소금을 집어 혀끝에 찍어 먹고는 입가를 닦는다) 웬만큼 독이 풀어진 것 같으니. 이제 알은 들이지 마라.
속에서 계분냄새가 올라와 못참겠구나.
치소 : 네. 내일, 대장군님 관 모시고 떠난답니다.
왕자실 : .. (착잡한)
치소 : 약속은 지켜주시는 거죠?
왕자실 : (생각하는)
(플래시) 11부 씬34
왕자실 : 원하는 건 다 들어줄게야!! 어서!! 어서, 치소야!!
왕자실 : 흐흥.. 세상에 공짜가 없군. 그래, 뭘 원하느냐?
치소 : 중부인 마님이 왕후마마가 되어 궁에 들어가시는 날, 이 년 여관장(女官長)이 되어 따라가고자 합니다.
왕자실 : 여관장은 귀족 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개·돼지만도 못한 비녀가 어찌.
치소 : 이년 비녀이오나, 본 출신은 어엿한 백제국 귀족이옵니다. 우두산성 싸움에서, 포로로 끌려 왔을 뿐.
왕자실 : 그랬었나..
치소 : 여관장으로 품위를 갖출, 논과 집, 노예와, 재물을 주세요.
왕자실 : 욕심이 지나치면, 그 끝은 죽음이라지.
치소 : 절 죽이는 거야 뭐가 어렵겠어요. 다만, 저 같은 수족을 거느리시기는 쉽지 않으실 테지요.
죽이고 나면 반드시 아쉬우실 겁니다, 이년이.
왕자실 : 호호호~ (웃고) 치소, 네가 거래를 아는구나.
치소 : .. (본다)
왕자실 : 여관장 치소에게 첫일을 내리마.
치소 : 왕후마마에 하명을 듣사옵니다!! (부복한다)
왕자실 : 자명이를 찾아라. 반드시, 모하소 보다 먼저 찾아내야 할 것이야. (싸늘한 표정으로 본다)
씬24. 동모현, 내빈관 희희낙락 임시숙소 (밤)
자명, 소소, 묘리 등, 밥을 먹고 있다. (일품은 없다)
미추, 아이들을 화장시키며, 옷을 준비하고.
아이들도, 각기 화장하고 자기 옷과 도구를 챙기느라 밥을 편히 앉아 먹지 못하고. 서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나무사발에 조밥 반 그릇, 그 위에 나물볶음 한 가지를 얹어서 숟가락으로 퍼넣는다.
미추 : 아구 아구, 많이들도 처 밀어 넣는다. 공연이 이제 일향(一餉)도 안남았는데, 몸 무거서 어쩔라 그래!
어째 니들은 예술가 근성이 읎냐~ 어?
소소 : (어구어구 퍼 넣으며) 광대가 뭔 예술가에요?
미추 : 예술이 별거냐? 예술이나·기예나, 몸뚱이에 지닌 재주로 밥 바꿔 먹는 건 똑 같지.
자명 : 제가요, 예술가 근성을 쫌 보여드릴라 그러거든요~ 천상지희하믄 안돼요?
미추 : (자명의 배를 꾹, 찌르며) 그 배로 올라갔다간 떨어진다.
머리카락에 묻은 비를 털며, 차차숭 들어온다.
차차숭 : 어~ 차워.
미추 : 비 많이 와?
차차숭 : 뭔 장마처럼 쏟아지네.
미추 : 어차피 밖에서 공연은 못했겠네.
차차숭 : 어. (아이들에게) 밥들 다 먹었으믄, 오늘 기예할 순번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 불기예. 희희낙락에 초절정 고수 미추!!
미추 : (한손으로 가슴 짚고, 인사한다)
차차숭 : 변검 차차숭~ (인사한다)
아이들 : ..
차차숭 : 촛불 돌리기. 희희낙락에 자랑거리 미추!!
미추 : (두 손으로 가슴 짚고, 앞으로 나와 인사한다)
차차숭 : 기예 중에 기예~ 희희낙락 최고의 기예, 차력에 차차숭~~ (인사한다)
소소 : 그냥, 단장님이랑 아줌마랑 둘이 다 해먹죠, 왜?
차차숭 : 니들두 있어~ 항아리 차기, 소소. 칼 받기, 묘리~
묘리 : 싫어요, 단장님!! 그것만은 진짜 싫어요.
미추 : 배불렀구나. 싫구·좋구가 왜 필요해. 까라믄 까는 거지.
묘리 : (허리와 몸을 쓰다듬으면서) 그게요~ 요즘 몸이 뿔어서.. 칼이 (허리를 손가락으로 찝으며) 옆구리 차구 들올까봐 그러죠.
자명 : 그거 내가 할께요~~
차차숭 : 니가?
미추 : 또 판때기에다 오줌 지릴라구?
자명 : 앞으루 천상지희 할라믄, 배짱을 길러야 잖아요~ 한번 쌌는데, 두번 싸겠어요? 괜찮애요~
차차숭 : 니.. 오래비가 난리 칠텐데. (둘러보고) 행카이는?
씬25. 동모현, 내빈관 일각
일품, 추녀 밑에서 동고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품 : 배삯 만큼 일할께요.
동고비 : 내 힘으로 될 일도, 아니고.. (고개 젓는다) 무슨 일루 낙랑에 가려는 게냐?
일품 : .. (생각하다) 그것까지 말씀드려야 하나요?
동고비 : 안해두 돼. 듣는다고, 배에 태울 수 있는 것두 아니구.
일품 : ..
동고비 : 니가 때를 잘못 택했다. 후우... 지금은 너무너무 복잡해서, 너 아니라 누구두 배에 탈 수 없어.
씬26. 동모현, 내빈관 연회실 (저녁)
라희와 모하소, 동고비, 차차숭의 희희낙락의 기예를 보고 있다.
신나게 북치며, 음악을 연주하는 기예단원.
미추, 불쇼를 하고. 차차숭, 변검을 하며 라희 앞에서 재주를 핀다.
모하소 : (라희를 보며) 어떠냐? 정말 신기하구나.
라희 : .. (무표정한)
문 열리고, 왕자실 들어온다.
모하소 : 어서 오게, 동생.
차차숭 : 인사드립니다~ 마님~ (변검의 얼굴을 왕자실 앞에서 바꾼다)
왕자실 : (차차숭의 변검 얼굴을 밀어낸다)
차차숭 : .. (뻘쭘한)
왕자실, 라희를 바라본다. 라희, 왕자실에게서 시선 비켜 다른 곳을 본다.
씬27. 동 장소 (시간경과)
차차숭, 맨 몸에 사슬(밀가루 반죽한)을 휘감고 차력을 하고 있다.
미추 : 저래 뵈두, 저 쇠줄 이백근이 넘는 강철이옵니다~ 진정한 이 시대에 역사, 차차숭에게 바악수!!!
왕자실과 라희, 냉담하고 모하소만이 박수를 친다.
미추 : 기예는 돈으루 사는게 아니라, 박수루 사는 것이옵니다~
항우도 울다갈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장사, 사내 중에 사내 차차숭에게 바악수~~
모하소만이 박수를 친다.
모하소 : (라희에게) 재밌지 않아? 박수를 치려무나. 그래야 신나서, 더 재밌는 걸 우리 라희한테 보여주지.
미추와 단원들, “와와~ 와와~~” 소리 지르며 박수를 친다.
모하소, 라희의 한 손바닥을 잡고, 자신의 손바닥에 박수를 친다.
자명 : (부러운 듯 모하소와 라희를 본다) ..
일품 : (자명을 본다)
자명 : 좋겠다. 저 공주님은..
일품 : 공주야, 저 아가씨가? 그런 소린 못들었는데.
자명 : 응, 저기 예쁜 언니들이 쏙닥쏙닥 하는 거 들었어. 공주님이 되려는데. 갑자기 귀신이 쓰여 혼이 나갔데.
일품 : 근데 뭐가 좋아?
자명 : 혼이 나가두... 이뻐해주는 엄마가 있잖아.. (눈물을 글썽한다)
일품 : 오빠가 찾아준댔잖아.
자명 : 찾아두 말야. 이뻐 해주는 엄마·아버지가 아니라 우릴 죽일라구, 쓰레기처럼, 미역건데기처럼 바다에 버린 사람들이잖애.
(눈물이 뚝, 떨어진다)
일품 : .. (손으로 자명의 눈물을 닦아준다)
차차숭, “끄응!!” 마지막으로 힘을 쓰고 사슬을 다 끊는다.
모하소, 문득 자명의 시선을 느낀다.
모하소 : (웃어준다)
자명 : .. (눈물을 뚝, 떨어트리다 고개 숙여 절한다)
차차숭, 두 팔을 벌리고 썰렁한 박수에 답하고.
차차숭 : 이제 마지막 진기! 희희낙락에 자랑, 칼던지기! 원래 저희 기예단에 자랑은, 천상지희라구 공중곡예이지만서두.
장소가 장소인지라, 버금가는 묘기~ 칼던지기루 아쉬운 막을 내리겠습니다~
미추 : 기대하시라 (징을 지잉- 한번 치고) 칼 던지기~
일품 : (자명에게) 괜찮겠어?
자명 : (고개 끄덕인다) 혹시 알아? 놀래서 저기 공주님, 귀신이 도망갈지~
씬28. 동 장소 (시간경과)
미추 : 아슬아슬, 조마조마! 칼 던지기엔 역발산기개세의 아까 그 장사, 차차숭~
칼 받기에는 희희낙락에 차세대 큰 일꾼~ 인기만발, 인기장(長), 뿌쿠!!
차차숭, 단도 허리띠를 차고, 옷 갈아입은 자명과 함께 손잡고 나온다.
동고비 : 아구, 웃겨. 여자애 더러 큰 일꾼 이래. 하하-
미추 : 모르셔서 그래요. 나중에 뿌쿤 차차숭처럼 차력을 해두 할 애거든요.
차차숭과 자명, 모하소와 왕자실, 라희 앞으로 가 인사한다.
모하소 : (자명에게) 그렇게 입으니 더 예쁘구나. 아름다운 큰 일꾼이 되렴.
자명 : 고맙습니다, 왕비님~
왕자실 : .. (왕비라는 소리가 거슬린다. 인상 쓰는)
일품을 비롯한 단원들 칼 던지기 판을 준비한다.
자명을 칼 던지기 판에 묶는다. 판이 돌기 시작한다.
차차숭, 단도를 잘 골라 던진다. 자명의 허리 근처에 칼이 꽂힌다.
라희 : .. (본다)
모하소 :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살짝 감는다)
차차숭, 다시 단도를 던진다. 자명의 다리 사이에 박힌다.
라희 : .. (흥미를 보인다)
왕자실 : .. (라희의 표정을 본다)
모하소 : (고개를 살짝- 돌린다)
차차숭 : (단도를 뽑아든다)
모하소 : 이보게!! 애가... 무서워하지 않겠는가?
차차숭 : 우리 큰 일꾼, 이름이 뿌쿱니다. 울지 않는다, 뿌쿠! 사내보다 담력 크다, 뿌쿠!
자명 : (큰소리로 모하소에게) 전 괜찮애요~ 왕비님~~
차차숭 : 이 놈이 또, 한칼 합니다요. 하하- (단도를 고른다)
라희 : (벌떡, 일어난다)
모하소 : 라희야..?
왕자실과 모하소, 놀라서 라희를 본다.
라희, 차차숭에게로 다가가 단도허리띠에서 단도를 하나 꺼낸다.
차차숭 : 안됩니다, 아가씨!
모하소 : (다가와) 안된다, 라희야.
왕자실 : (일어나 온다) 왜 안된다는 거죠?
모하소 : 잘못하면 (자명을 보면서) 애가 다치네.
왕자실 : 라흰, 정식으로 검을 배운 아입니다.
모하소 : 검하고 기예가 같은가.
차차숭 : 그 말씀이 옳습니다. 기예하고 검은 다릅니다, 마님. 장난으로 만질게 못됩니다.
왕자실 : (라희를 한번 보고) 설사 다친다 쳐요. 천한 계집아이 하나가 뭐길래요?
라희가 본 정신만 차린다면, 나라도 저 판에 묶이고 싶군요.
모하소 : 아우님..
왕자실 : (모하소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잘하면 자명일 찾게 될테니, 라희가 저 상태로 있어주면 싶은가요?
모하소 : 무슨 말을!! 후우.. (한숨 쉰다)
일품 : 안됩니다!!
모하소 : 네 동생이냐?
일품 : 천한 목숨이라도 귀한 공주님 못지않게, 제겐 소중합니다!
왕자실 : (그 모습을 보다, 머리에 꽂고 있는 뒤꽂이를 빼서, 차차숭 발아래 던진다)
차차숭 : ... (본다)
미추 : (얼른 집고) 아구~ 귀한 뒤꽂이를. (차차숭에게, 조용히) 뭐해? 준비시키잖구..
차차숭 : 미추야.. 그게 말이다, 그게.. 이러면 안되잖아..
미추 : 어쩔 꺼야, 그럼!! 우릴, 죄 끌구가 단매에 패 죽인대두, 입 한번 뗄 수 없는게 천것들 신세야. 별일 없겠지.. 검술 한다잖아.
모하소 : 우리 애가, 검술을 제법 하니. 판만 빙빙-돌리지 않는다면 크게 위험하진.. (자신 없는)
자명 : 괜찮애요~ 검술 하신다니까. 그게 그렇게 날카롭지 않거든요. 공주님, 쓰인 귀신 나가신다믄 해보시라구 하세요~
자명, 모하소에게 웃어준다.
씬29. 동모현, 내빈관 빈청 안 (밤)
최리, 왕굉의 관 앞에 앉아 있다.
최리, 일어나 대청과 통해 있는 곳으로 간다.
최리 : ... (내리는 비를 본다)
씬30. 동모현, 내빈관 연회실 (밤)
자명, 칼던지기 판에 묶여 있다.
라희, 단도허리띠를 묶고 매서운 눈초리로 단도를 고른다.
왕자실과 모하소, 그런 라희를 각기 다른 심정으로 쳐다보고.
연회실 안의 사람들, 차차숭·미추·일품을 비롯해 모두 긴장감이 감돈다.
라희, 단도를 하나 던진다. 자명의 허리께에 가깝게 박힌다.
자명 : .. (식은땀이 난다) 후아.. (크게 숨 내쉰다)
모하소 : (자명을 본다)
자명 : 목만 조심해주심 돼요~ 괜찮애요~
다시금 라희, 단도를 고른다.
라희, 단도를 고르면서 왕자실을 생각한다.
(플래시) 11부 씬34 왕굉의 선실
왕굉을 질식사 시키려는 왕자실의 모습.
라희 : ! (눈에 살기를 띄며, 단도를 던진다)
왕자실 : .. (본다)
모하소, 왕자실을 본다. 그녀의 냉랭한 표정에서 지난날이 떠오른다.
(플래시) 3부 씬41
왕자실, 자명을 산호뒤꽂이로 찌르던.
모하소 : 그만해!! 그만해라, 라희야!!
자명의 겨드랑이 사이에 단도가 아슬하게 꽂힌다.
일품 : 뿌쿠야!!!
자명 : (일품에게, 손들어 안심하라고) 후아.. 후아.. (큰 숨을 내쉰다) 무서웠어요, 공주님~
저기요. 더 이상 위루 던지시믄 안되걸랑요. 아셨죠!
라희 : (단도를 꺼낸다) ..
라희, 단도를 고르며 생각한다.
(플래시) 11부, 씬36
왕자실이 등을 흔들며, 미친 듯이 웃는다.
라희 : ..
라희,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단도를 휙- 던진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단도.
자명의 눈이 동그래진다.
자명 : 오빠아!!!!!
모하소 : (동시에) 위험해!!! (벌떡 일어나 황급히 걸어간다)
일품, 급한 김에 옆에 있는 꽃병을 단검을 향해 던진다.
단검, 꽃병을 깨트리고 날아간다. 그 바람에 조금 방향이 틀어진다. 자명의 잘린 옷자락이 바닥에 떨어진다.
놀란 차차숭과 미추, 일품, 자명의 묶인 끈을 푼다.
“많이 베였니?/공주님이 벌써 기를 배웠나보네. 기가 실려서 상처가 생각보다 커..” 이런 대화들 나눈다.
모하소 : 이런, 고약한 녀석!!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라희의 뺨을 때려준다)
왕자실 : 형님!!
모하소 : (라희의 어깨를 잡고) 엄만... 널.. 이렇게 기르지 않았다.. (눈물이 핑- 돈다)
왕자실 : 라희야. (모하소의 손을 털어내고, 라희를 안는다)
모하소 : .. (자명에게) 많이 다쳤느냐?
자명 : ..
모하소, 자명을 안는다.
왕자실, 라희를 안고 그런 모하소를 바라본다. (Dis)
씬31. 동모현, 내빈관 모하소의 숙소 (밤)
모하소, 동고비와 함께 자명을 치료하고 있다.
자명, 상처 입은 어깨만 내린.
모하소 : 옷을 벗어 보렴. 그래야, 잘 바르지.
자명 : 싫어요! 아무한테두 내 몸 안 보여줘요!
모하소 : ..
동고비 : (고약 바르며) 주인나으리 전쟁 나가실 때, 가져가시는 백호골에 비단초 고은 약이야.
모하소 : 용서하렴. 지금, 내 딸이 많이 아프단다. 원래 착한 아인데, 아파서 그런 것이니..
자명 : 아무리 아파두, 공주마마래두요. 자길 죽일라 그러는데 용서할 순 없는 거에요.
모하소 : 그래, 네 말이 옳다.
자명 : 그리구요. 원래 착한 사람이, 귀신 쓰였다구 나빠지지는 않아요.
모하소 : 그건.. 후우 (한숨 쉬고) 아무리 착한 사람두.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잠시 잠깐, 그럴 수도 있는 거란다.
자명 : (일어난다)
모하소, 자명을 보다가 “가만, 얘야..” 하며 팔찌를 빼서 자명에게 내민다.
자명 : (보고) 이거 비싼 거죠?
모하소 : 아마도..
자명 : 주고 싶으심, 우리 단장님한테 주세요. 난 싫어요. (인사한다)
모하소 : 얘야, 그럼 이거라도. (자명에게 발라주던 약을 집어 내민다)
자명 : .. 저처럼 천한 것은요. 그렇게 비싼 거 안바르구요. 오적골(烏賊骨)이라구, 갑오징어 뼈 빻은 것만 뿌려두 금방 나아요.
모하소 : ..
자명 : 안녕히 계세요.. (나가려고 하면)
모하소 : 얘야. 아가.
자명 : 또 왜요!
모하소 : (가만 생각하다, 머리를 묶은 비단끈을 푼다) 이건 받아주면 안되겠니..?
자명 : 싫어요.
모하소, 자명을 가만히 끌어다 앉히고 머리를 묶어주기 시작한다.
모하소 : 뿌쿠라고 했지?
자명 : (고개 끄덕)
모하소 : 미안하구나. 자존심을 건드려서.. 나이가 들면, 이리 뻔뻔해지기도 해.
상대방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두 모르고, 돈으로 해결하려구.. 그저 편하고 쉽게 살고파서...
자명 : ..
모하소 : 용서하렴. (묶어주면서) 차력하던 사람이, 아버지니?
자명 : 엄마·아버진 없어요.
모하소 : ?
자명 : 우리 같은 애들은요! 다 팔려온 애들이거든요! 아님, 버린 애들이던가!!
못 살아서, 배 고파서!! 자기 배에 밥 넣을라구, 자식을 팔았던가요! 귀찮아서 죽으라구 버려진 애들이에요!!
자명, 벌떡 일어나서 문쪽으로 뛰어간다.
모하소 : (일어난다) 뿌쿠야!! 뿌쿠야!!
자명 : (못들은 척 달려간다)
씬32. 어느 길 (밤)
자명, 어두운 길을 달려간다.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그 비를 맞으며 달려가는 자명. 자명의 뒷머리에 모하소의 비단 머리끈이 매달려 있다.
씬33. 동모현, 내빈관 왕자실의 숙소 (밤)
왕자실, 라희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다.
라희, 휙- 돌아앉으며 왕자실에게서 빗을 빼앗아 바닥에 던지고.
라희 : 난 어머니가 싫어요!
왕자실 : ! (충격)
라희 : 독하구. 무섭구. 사납구. 정 떨어져요! 어머니 딸인게 너무너무 싫어요!
왕자실 : 나두 라희 네가 좋진 않다.
라희 : ! (충격)
왕자실 : 이쁘길 하냐. 독하길 하냐. 아들이길 하냐. 될 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라는데. 흐흥..
라희 : 근데 나한테 왜 그렇게 집착해요?
왕자실 : 내 딸이니까.
라희 : (본다)
왕자실 : 원래 자식이란 그런 거다. 내 뱃속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못나고·잘나고를 떠나 그저 귀한 것.
걷는 한걸음 걸음마다. 맨 땅. 진창바닥 밟지 않도록 비단이불 깔아주고픈..
라희 : 흥! (벌떡 일어나서, 오만하게 왕자실을 쏘아보며) 그건 뱃속에 없었서도 할 수 있어요! 모하소 엄마도 그러니까!!
라희, 왕자실을 흘겨보며 밖으로 뛰어간다.
씬34. 동, 복도 (밤)
왕자실, 달려와 라희를 잡는다.
라희 : 놔요! 징그러!! (손 털어낸다)
왕자실 : 넌 모하소 딸이 아니라, 내 딸이야! 이, 왕자실에 딸!!
라희 : 글쎄, 그게 싫어요! 난 정말이지. 모하소 엄마 딸이었음 좋겠다구요!
왕자실 : 호호호- 호호- (웃는다) 바보 같은 것.
라희 : 뭐가요!
왕자실 : 물어봐라, 모하소에게. “엄마, 어렸을 때 왜 날 죽이려고 했어요?”
라희 : !! 거짓말... 엄마가 왜 날 죽일라구 해요!
왕자실 : 뭐라 뭐라 변명을 하겠지. 그러면 또 물어보아라.
라희 : (본다)
왕자실 : “엄마. 엄마 딸, 자명이하구, 나 하구 둘 중 한명만 살릴 수 있다믄 엄만 누굴 살리겠어요?”
라희 : 자명이가.... 누구에요?
왕자실 : 궁금하면 물어보라니.
라희 : 난 어머니 말 안 믿어요. (뛰어간다)
왕자실 : (쓸쓸한) 몹쓸 것... 내가 절 어떻게 살렸는데... 모하소가 아무리, 널 귀여워한다 해도, 내 마음 같을까.
씬35. 동모현, 선착장 (낮)
왕굉의 관이 수하들에 의해, 운구 되고 있다.
모하소, 왕자실 등 왕굉의 관을 운구하는 모습을 본다.
최리, 유릉과 한쪽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릉 : 안타까운 일이요. 하필이면 우리 황제폐하를 만나러 오는 길에.
최리 : 광무제 폐하께는 잘 말씀 드려주시오.
유릉 : 신생 낙랑국은 우리 낙랑군을 깨트린 원수국이라고 하면, 원수국이나.
최리 : (눈이 빛난다) ..
유릉 : 한족·조선족 2·3·4세들이 살고 있으니. 애매한 형제국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최리 : 대홍려에 숙부님이 유헌 왕이라는 것은 알고 있소.
유릉 : 하하- (웃고)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 어차피 인간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에 것인데.
최리 : ..
유릉 : 다음에 볼 때는, 신생 낙랑국에 왕으로서겠구려. 축하하오. (욍굉의 관을 보며) 경쟁자를 아주 잘 요리했구려.
최리 : ..
씬36. 동모현, 바닷가 일각
멀리, 희희낙락 기예단 아이들 연습하는 모습.
치소, 차차숭·미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차차숭 : (놀랐지만, 내색 않고) 삿갓배에 갓난쟁이들 타고 흘러온 걸 본적이 있느냐?
치소 : 기예단이 허구헌날 여기서 연습을 한다니 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봤어요?
차차숭 : 글쎄요..
치소 : 못봤어요?
차차숭 : 글쎄요..
미추 : (불쑥- 끼어드는) 찾아주믄 뭐 주나요?
치소 : ! 봤구나!!
미추 : 아니. 건 아니지만서두.. 일루 흘러 들어왔다믄 우리가 함 찾아볼라구요. 돈만 챙겨주신다믄.
치소 : 그런 흥정은 찾구 나서 하게.
차차숭 :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삿갓배에 갓난애들이 왜 탄 겁니까?
치소 : 내가.. 옛날에도 이런 말을 누구한테 했던 것 같은데.. 그런 거 알려구 하다 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지?
차차숭/미추 : .. (얼굴을 마주본다)
씬37. 차차숭의 천막극장, 식당
일품, 커다란 광주리를 젖히면 거기 자명이 웅크리고 있다.
일품 : 이 녀석!! 어제부터 오빠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어!!
자명 : .. (올려다 본다)
일품 : (짐짓) 뭘 그렇게 축- 쳐져서 그래. 기예 하다보믄 다치는 거 당연하지.
자명 : 생각해봤는데.
일품 : (옆에 앉는다) 응.
자명 : 다시는 다른 사람이 나한테 칼 못던지게 할꺼야. 공주래두. 아니, 왕이래두! 검법을 배울 테야!
여자 중에서두, 남자 중에서두 최고루 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말테야! (벌떡- 일어난다)
일품 : 어디가? 뿌쿠야!! 뿌쿠야!!!
자명 : 사부님, 찾으루!!!
씬38. 바다
다시 증산포로 향하는 배.
씬39. 배, 모하소의 선실
모하소, 상복 바느질을 하다 멍한 표정을 짓는다.
동고비, 본다.
동고비 : 마님..
모하소 : 뿌쿠 말이 생각나서. 부모가 죽으라구 버리구. 굶어서 버리구... 우리 자명이두 지금, 그 아이처럼 고생하며 살까?
동고비 : 좋은 집에서, 좋게 산다구 믿으세요.
모하소 : .. 삿갓배는 알아봤니?
동고비 : 너무 급히 떠나오느라 샅샅이 훑어보진 못했지만.. 사람을 샀어요. 자명애기씨 흔적 찾는대루 연락이 올꺼에요.
동고비가 말하는데 문 열리고, 라희 들어온다.
라희 : (동고비의 이야기 들었다)
모하소 : (보고) 라희 왔구나. 멀미나지? (작은 주머니에서 계피를 꺼낸다) 계피조각을 씹음 괜찮아진데. (입에 넣어주려는)
라희 : (손으로 밀어내고) 치소한테 들었는데, 엄마가 날 옛날에 연못에 던져 죽일려구 했다면서?
모하소 : ! 라희야.. 그건, (하는데)
라희 : (OL) 건 괜찮어. 옛날이니깐. 근데 나 엄마한테 물어볼게 있어.
모하소 : .. (본다)
라희 : 거짓말 하면 안돼. 진짜만 말해야 해.
모하소 : 그래. 알았다.
라희 : 나하구 엄마 친 딸, 자명이하구 지금 물에 빠져 죽어가거든. 엄만, 한명만 살릴 수 있어. 누굴 살릴 꺼야?
동고비 : 아가씨, 그런 얘기가, (하는데)
라희 : 동고비 니가 내 엄마 아니잖니? 가만 있어줄래?
동고비 : ..
라희 : 말해줘, 엄마. 나한텐 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 중요해.
모하소 : ... 아가.
라희 : 그냥 대답만 듣고파.
모하소 : (괴로운) 엄만.... 자명일... 건져야 해...
라희 : !! (충격 받은 표정으로 본다)
모하소 : 그렇지만, 아가 (하는데)
라희 : (입술을 깨물고 문 열고 달려간다)
동고비 : 아가씨!! (일어난다)
문 소리가 쾅- 나면서 미닫이문이 닫힌다.
모하소 : 엄만.. 그래야 해. 자명일 살려야 해. 그렇지만 아가... 엄만, 자명일 구하구.. 우리 라희하구 같이 죽을 꺼야...
씬40. 배, 일각
라희, 벽에 기대 있다.
라희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씬41. 고구려, 주몽사당 안 (밤)
송매설수, 돗자리 위에 앉아 주몽의 진영을 보고 있다.
시녀장, 한쪽에 시립해 있고.
송매설수 : 할아버지.. 주몽이시여. 이 손주며느리, 송매설수. 정녕 죽을 길 밖에 없는 것이오니까?
할아버지... 방도를 알려주소소. 매설수가 살고, 비류나부가 살고, 고구려가 사는 길을 알려주소소...
송매설수, 생각에 잠긴다.
(플래시) 6부 씬4
대무신왕 : 처녀인 채 늙어 죽게 하진 않겠네. 그대 더 나이 들어, 월경이 멈추고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는 날.
그때도 내가 살아 있고, 내 여전히 남자라면. 왕비로서 안아주지.
송매설수 : (시녀장을 본다) 양덕아, 내 살아날 길이 있어!
시녀장 : (반색) 무엇이오니까?
송매설수 : 월경이 끊기는 약을 구해오라.
시녀장 : 그.. 무슨. 월경이 끊기면, 마마 회임을 어찌 하시려구..
씬42. 고구려, 국내성 대무신왕 집무실 (밤)
대무신왕, 을두지, 추발소, 우나루, 호동과 함께 앉아 있다.
대무신왕 : (호동에게) 비류나부를 보며, 호동은 무얼 배웠느냐?
호동 : 정치가 얼마나 냉혹한지, 힘없는 군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배웠습니다.
을두지 : 국가를 오직, 군주 혼자 이끌어 간다 생각하니, 그런 것이옵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것은 민의옵니다.
정치란 백성들의 뜻을 바로 알아듣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대무신왕 : 좌보. 그만하라. 민의를 듣는 정치? 언젠가 그 때가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고구려에는 맞지 않다.
을두지 : ..
대무신왕 : (호동에게) 흐흥.. 아비의 몰골이 우습게 보였겠다만. 어쩔 수 없지. 그것이 현실이니.
우나루 : 송옥구가 호동왕자를 태자로 세우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다는 소문이 벌써 오나부에 파다합니다.
호동 : !! 아바마마는 무어라 대답하셨는지.. 소자 궁금하옵니다.
추발소 : 폐하께서 확답치 않으셨다는 소문 또한 함께 돌고 있사옵니다.
대무신왕 : 짧게 갈 거리를, 빙빙- 돌아가야겠다, 이제.
을두지 : 무슨 말씀이신지..
대무신왕 : 군사를 안준다니 어쩔 수 없는 일. 낙랑을 손에 넣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추발소 : (본다)
대무신왕 : 호동에 나이, 이미 성혼을 할 때가 되었다.
추발소 : 비류나부에서 왕자비를 데려오시렵니까?
대무신왕 : 호동아, 너는 최리에 딸과 혼인해야겠다.
호동 : !!
대무신왕 : 욍굉의 조문사절을 보낼 때, 최리의 딸에게 청혼하라.
호동 : 아바마마!!!
씬43. 낙랑국, 영호장원 앞 (다른날/낮)
만장이 펄럭이며, 왕굉의 관이 돌아오고 있다.
흰 연에 실린 관이, 부달과 영호장원 가신들의 호위 속에 운구 된다.
백성들, 엎드려 “폐하...폐하...” 눈물을 흘린다.
씬44. 낙랑국, 영호장원 마당
왕굉의 관이 들어온다. 왕홀, 시비들, 종복들 맞이한다.
도찰, “폐하..”부르며 부복한다.
쿵쿵, 거리며 모양혜, 걸어온다.
상복차림에 얼굴에 흰 베보자기(야슈마크/yashmak)를 덮어쓴 모양혜, 계단을 내려온다.
부달과 가신들, 관을 내린다.
모양혜 : 열어라.
도찰 : 태대부인 마님.
모양혜 : 내가 내 남편을 보겠다는데, 감히 누가!! 열어라!!
모양혜의 고함소리에 부달과 가신들, 관을 연다.
얼음에 담긴, 왕굉의 모습이 드러난다.
왕홀 : 형님.. (눈물이 삐죽)
모양혜 : !! 내, 왕자실 이 년을!!
모양혜, 얼굴에 뒤집어 쓴 베보자기를 부욱- 찢어내 버린다.
모양혜 : 폐하에 원수를 갚고 싶으면 나를 따라와라.
도찰 : 마님.
모양혜 : 없으면 말고!! (종복에게) 말을 준비해라!! 왕자실한테 갈테니!!
씬45. 달리는 모양혜
모양혜, 칼과 활을 메고 말을 타고 달려간다.
그 뒤로, 부달과 탁치(부관1), 몇 명의 호위무사들 달려간다.
씬46. 낙랑국, 청해헌 앞 (밤)
모양혜, 달려와 말을 멈춘다.
부달과 탁치, 말에서 뛰어내린다.
부달 : (문을 두드리며) 문 열어라!! 영호장원에 태대부인 마님께서 오셨다!!! 어서 문 열지 못할까!!
부달, 발로 문을 차 연다.
씬47. 낙랑국, 청해헌 후원 일각 (밤)
여기저기, 등불이 밝혀져 있다.
모양혜, 부달·탁치와 함께 걸어온다. 청해헌의 호위무사들, 앞을 막아선다.
무사1 : 안됩니다!! 칼을 지닌 체 이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탁치 : 개소리! (단칼에 무사1을 베어버린다)
왕자실, 치소와 라희와 함께 건물에서 나온다.
모양혜 : .. (노려본다)
왕자실 : 그렇잖아도, 라흴 데리고 문상을 가려했습니다. 오라버니 빈청을 비우시면 어쩝니까?
모양혜 : 자실이 네 년이, 내 남편을 얼음에 재워 보냈으니, 널 태워 죽이러 왔다!!
모양혜, 부달에게서 활을 받아, 화살촉에 천을 감은 화살을 멕인다. 화살촉에 등잔불을 붙여 왕자실에게 쏜다.
모양혜가 쏜 불붙은 화살이 왕자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