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대표이사의 "혁신의 10계명" 소개
좋은 이웃 모임 10월 조찬행사가 10월 21일 아침 7시,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모임에는 LG전자 김쌍수 대표이사 부회장이 초청되어 '실행 중심의 혁신'을 주제로 LG전자가 걸어온 도전과 혁신의 기법과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편집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경영인 여러분 앞에서 ‘기업에서의 혁신활동’에 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릴 기회를 갖게 돼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귀한 시간을 내신 만큼 제 이야기가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도전과 혁신의 역사’ 가진 LG전자
가만 생각해 보면, LG전자는 태생적으로 ‘혁신의 기운’을 타고난 기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1958년 창립 이후의 역사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척하고 혁신해 온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창립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사실상 전자산업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LG전자-당시에는 금성사-에서 국산 라디오를 만든 게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효시로 기록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 후 LG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TV,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전화기 등등 대부분의 전자제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국산 제품이 하나도 없고, 기술도 일천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최초의 제품’들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마디로 ‘도전정신’의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LG전자는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우리나라의 전자산업을 개척해 왔습니다. 그러나 80년대에 와서는 ‘전자산업의 독보적인 기업’이라는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89년 노사분규를 전후해서는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혁신’이라는 것을 기업문화로 정착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개구리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펄쩍 뛰어 나옵니다. 하지만 처음에 미지근한 물에 넣어두고 아래에서 조금씩 가열하면 뛰어나오지 않습니다. 물이 데워지는 줄도 모르고 느긋하게 그 온도를 즐기다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갑니다.
어느 기업이든 그 개구리처럼 될 수 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LG전자가 걱정했던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확산되면서 비로소 창업 당시의 정신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혁신의 대장정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혁신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은 여러 사업장 가운데서도 흔히 생활가전이라고 하는, 홈 어플라이언스 제품을 만드는 창원사업장이었습니다. 때마침 가전시장은 포화상태라느니 사양산업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돌면서 창원사업장의 위기의식은 매우 높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생존 차원의 혁신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창원의 예를 보더라도 제대로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어느 정도의 위기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혁신의 출발점 - 노경관계의 재정립
본격적인 혁신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노경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었습니다. 3개월 정도 계속된 분규를 겪고 나니까 노경관계가 안정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고, 그래서 제일 먼저 노경관계 재정립에 나섰던 것입니다.
‘노경’이라는 것은 노동자와 경영자가 맡은 역할이 다를 뿐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 동반자라는 뜻으로, LG전자가 ‘노사’라는 말 대신에 독자적으로 만들어서 쓰는 말입니다. 지금은 ‘노사’보다는 ‘노경’이 더 익숙하고 의미도 좋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LG전자는 노경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취임 후에 제일 먼저 찾아간 곳도 노조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LG전 자 노경관계는 국제사회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모범적입니다.
LG전자는 안정적인 노경관계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혁신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도중에 대대적인 ‘가격파괴’ 상황도 겪었고, IMF도 겪었습니다. 정말 어지간해서는 버티기가 쉽지 않은 위기였습니다. 다행히 노경이 안정돼 있어 서로가 힘이 되었고, 혁신활동을 하는 데도 협조가 잘 되었습니다.
그 때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혁신활동이 <3BY3>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3년 내에 3배의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입니다. 무모한 목표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90년대 초에 창원사업장 매출이 8,500억 정도였는데, 작년 말에 창원에서 5조 3,0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 사이에 땅은 한 평도 늘지 않았고, 인원은 오히려 줄었는데도 매출은 몇 배로 늘었습니다. 혁신은 정말 끝이 없습니다.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
이 때 제가 특히 강조한 것이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5%를 개선하자면 지금 하던 방식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로베이스(Zero base)에서 전혀 새로운 접근방법을 찾으면, 5%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쉽게 30%를 달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의 요지는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고 방법을 바꾸자”는 데 있는 것입니다.
3BY3가 한창일 때 우리는 6시그마를 도입했습니다. 6시그마는 우리가 하는 혁신활동에 강한 탄력을 주었습니다. 과거에 하던 100ppm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고, 우리에게는 혁신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아주 좋은 Tool로 인식됐습니다.
6시그마를 도입할 즈음부터 우리는, 창원사업장의 경우입니다만, 연평균 25%라는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IMF도 첫 해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됐습니다. 지금도 LG전자는 전사적으로 6시그마를 혁신의 기본 Tool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혁신사상으로서의 <혁신 10계명>
제가 가진 혁신사상을 저는 <혁신 10계명>으로 정리해서 우리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제가 자주 강조하는 말들을 묶어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인데, 지금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철학이라고 생각이 돼서 여러분께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1)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
<혁신 10계명>의 기본정신은 좀 전에 말씀드린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자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혁신목표(Stretch Goal)에 도전하자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혁신을 하려면 목표를 높이 잡아야 합니다.
(2) 한 방에 끝내자
저는 종종 ‘주먹밥식 사고’를 강조합니다. 진수성찬 준비해서 여유만만하게 식사를 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시간이 부족합니다. 물론 더러는 그렇게 먹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혁신을 하는 데 있어서는 뭉뚱그려서 한 번에 해치우는 주먹밥식 사고가 필요합니다.
하나의 제품에 50가지 부품이 들어간다면, 이것을 30% 정도 한꺼번에 줄여보자는 식입니다. 그렇게 하면 3번에 걸쳐서 해야 할 연구 프로젝트가 한 번에 끝납니다. 정말 앞서가는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원가도 크게 절감이 됩니다.
(3) 조직을 파괴하라.
기존의 연공서열식 조직, 폐쇄적인 조직 개념에서 탈피하라는 것입니다.
차장 밑에서 부장이 일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연구를 하는 프로젝트 조직에서는 과장이 리더를 맡고 경험 많은 차장, 부장이 소속 연구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 조직구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부서 저 부서에서 사람이 모여 함께 해결책을 찾는 것도 아주 유익합니다.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있게 됩니다.
(4)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Knowing과 Doing의 Gap을 줄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은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5) ‘No’ 아닌 ‘대안’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처음부터 사사건건 “어려운데요” “자신이 없는데요”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머리 속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혁신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아주 중요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면 긍정적인 생각이 나머지 반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No’ 하기 전에 ‘대안’을 찾는 문화, 그런 게 우리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6) ‘나’ 아닌 ‘우리’
물론 개개인의 능력과 창의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조직에서 끊임없이 개발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혁신과제는 똑똑한 한 사람보다는 서로 협동하는 여러 명이 더 효과적으로 해결합니다. ‘우리’라는 의식이 전제되면, 혁신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팀워크보다 개인 중심의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게 해야 합니다.
(7) 자원유한(資源有限) 지무한(智無限)
지난 세기까지가 몸으로 경쟁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머리로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것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지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특히 리더들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리더는 ‘배워서 남 준다’는 자세로 후배들에게 많은 지식을 알려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8) Early Innovation
선행적으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LG전자는 ‘Y+3’이라고 해서, 대략 3년 전부터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개발계획을 세우고, 또 특정한 과제 해결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남보다 한 발 앞서가지 않으면 요즘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에 뒤로 처지기 쉽기 때문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먼저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9) 과수원 Paradigm
패러다임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좋은 품종의 씨앗을 뿌려서 최적의 조건으로 자라도록 한 후 품질 좋은 과일을 비싼 값에 팔려는 농부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50개들이 과일 한 상자를 2만원에 파는 것보다 20개들이 과일 한 상자를 5만원에 팔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10) ‘큰 덩치’를 잡아라.
아주 상식적인 이야깁니다. 조직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럿 있다면 가장 핵심적인 것, 가장 규모가 큰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과제에는 우수한 인재를 과감하게 투입하고 자원도 충분히 지원을 해서 반드시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자질구레한 것들을 아무리 해결해도 금방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