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 개 두 마리를 마당에서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개를 키운다는 건 도시의 애완견관 사믓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목욕이란 일절 없고 예방접종은 최소 한 번에 그치고 밥은 사료와 때때로 먹다 남은 밥을 얹어 준다.
하루 종일 쇳대에 묶여 있다.
요즘 개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개 학대 아니냐고 따질지 모른다.
시골은 과거나 지금이나 개를 다루는 방법은 변함이 없다.
개는 애완용이 아니라 집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본다.
적당히 크면 팔거나 잡아먹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일은 없다.
예전부터 개를 키우며 집안을 지키는 일을 맡겼기에 그 습관이 남아서 개를 키우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한 것이다.
애들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러니 개라도 집안에 있어야 노인들의 눈요기도 하고 말동무도 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편찮기도 하거니와 한옥 서실이 아버지댁과 가까이에 있어서 일주일에 삼일 또는 사일 한옥에서 출퇴근을 한다.
한옥에 갈 때마다 아버지 집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한옥으로 내려올 땐 두 마리의 개를 모두 데려오기도 하고 때론 한 마리만
데리고 한옥으로 내려간다. 산책할 때는 두 마리를 데리고 함께 간다.
아버진 전형적인 시골노인이지만 난 그래도 명색이 도시에서 사는 중이므로 개가 개로 보이지 않고 애완개로 보인다.
그래서 함께 산책을 나가고 함께 놀아주고 함께 대화를 나누곤 한다. 뭐 특별한 반응은 없다.
앉으라고 하면 엉덩이만 어중간하게 땅으로 내리고 앞발을 달라 하면 마지못해 자신의 어깨 위로 들어 올린다.
그래도 그게 기특해서 먹던 과자도 나눠주고 개 간식을 나누어 주곤 한다.
나도 어릴 적에 늘 집에서 키우던 개와 함께 자랐다.
그땐 개나 고양이 심지어 닭까지도 길바닥에 모두 내놓고 키웠다. 걸리는 게 애들이고 좁은 산골마을에서 산짐승이 가축들을
잡아갈 기회는 거의 주지 않았다. 잡아간다면 모두가 곤히 잠든 한밤중에 일어나는 일이어서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
암튼 그 시절 개나 고양인 늘 내 주위에서 어슬렁 거렸고 깔을 베러 갈 때나 소를 몰고 풀을 뜯기러 갈 때에 개는 항상 나를
따라 함께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집안에서 고깃국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고기라면 명절 아침에나 얻어먹는 걸로 알고 있던 터라 이게 웬 횡재냐 싶어 밥상 위에 올라온 고깃국을 맛나게 먹었다.
그러고서 아버지께 물었다.
"아부지 이게 무슨 고깃국이유"
"이 그거 누렁이지"
"누렁이유 우리 집 개 말여유"
"그려 이눔아 여태 몰렀냐"
"......."
내가 우리 집 개를 먹었구나 그것도 아주 맛있게 이걸 어쩐담
그리고 며칠 있다 아버진 다시 쪼끄만 강아지 한 마릴 데려왔다.
뱃속에 들어간 개는 영영 나올 줄을 몰랐지만 다시 들어온 개는 어쩐지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맘대로 된다더냐 며칠 만에 난 또 새로 들여온 강아지를 달고 다녔다.
매일 묶여 있으니 똥이 마려워도 오줌이 마려워도 제때에 볼일을 못 본다.
아버진 그러거나 말거나 개는 개니까 개처럼 싸면 된다는 식으로 아무런 관심이 없다.
풍이 오셔서 바깥출입을 못하니 더더욱 관심을 두질 못한다.
나라도 오면 얼른 개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큰 녀석은 냅다 뛴다.
작은 녀석은 엉거주춤 길바닥에 엉덩일 낮추고 벌써 똥을 싸고 있다
큰 녀석은 아무리 급해도 절대로 훤히 보이는 길바닥 같은 데선 실례를 안 한다.
어디 풀숲이나 두엄 더미 근처로 가서 한참을 뭉그적뭉그적 빙빙 제자릴 돌다가 겨우 볼일을 본다.
과자를 나눠 먹은 날은 똥을 제대로 놓질 못한다.
짠 음식을 준 날엔 설사를 한다.
초코파이를 먹인 날은 변비를 한다.
그래서 알았다. 사람 입맛에 맞는다고 개 입맛도 맞는 건 아니란 걸
그래서 꼬리치고 별짓을 다해도 내가 먹는 인스턴트는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보리는 하얀 백두보다 일 년 먼저 들어왔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녀석이다. 한 번 혼구멍을 당하면 주인이 와서 머리를 쓰다듬기 전엔 절대로 꼬릴 들지 않는다.
한 마디로 삐짐이다. 그래서 반드시 사과하는 의미로 안아주거나 얼굴을 들고 비벼줘야 한다. 그제야 기분이 풀어져서
헥헥 대며 방방 거린다. 이게 개다. 주인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걸 개는 기가 막히게 잘 안다.
반대로 버림받았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니 개라고 무시해선 절대로 안 된다. 개도 사람만큼이나 눈치가 빠르다.
어쩌면 눈치는 사람보다 개가 더 빠르다. 인간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운명이고 보니 본능적으로 아는 게다.
가능하면 개를 개처럼 대하지 말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 같이 대하란 말은 아니다.
개는 엄연한 동물이요 개다. 개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런데 개를 사람처럼 대하는 인간들이 참 많은 세상이다.
자신의 개를 사람보다 더 우위에 두려고 애를 쓰는 이상한 인간들도 있다. 참 안타깝다.
결혼하고 자식은 낳지 않으면서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어처구니없는 개 엄마 개 아버지도 봤다.
뭣 때문에 그 지경이 됐는진 몰라도 개가 결코 어린 아긴 될 수 없다는 걸 그들도 잘 알 텐데 왜 개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려
하는지 참말로 가슴이 아프다. 자식을 낳기 전에 자식에게 들어갈 돈 걱정을 먼저 하고 돈이 모아지면 이미 자식을 생산할
몸이 아니거나 노산으로 기형아를 출산하는 사례가 있으니 무엇이 중한 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나도 없는 살림에 자식 둘 낳아 길렀다. 물론 돈 걱정 나도 했다. 그러나 애를 낳고 키우다 보니 돈보다 사람이 먼저란 걸 뼈저리게
알았다.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인간을 조종할 순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이 자신들의 삶을 조종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 개 얘기다.
개는 너무 좋아하면 개가 주인을 주인으로 보질 않는다.
뭐 자신들의 시종 정도로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산책을 안 하면 제 때에 간식을 주지 않으면 괴성을 질러댄다.
할 말이 없다. 이게 개다.
그러므로 개는 적당한 거리에서 다독거려 주고 관심 갖는 것이 상책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게 나와 개 사이의 관계형성법이다.
첫댓글 산책길에 한발 앞서가던 보리가 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