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물관의 운영방침 중에는 ‘사랑이 넘치는 즐거운 일터 조성’이라는 것이 있다. 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월 1회 영화보기’로 휴관일인 월요일을 이용해서 박물관 세미나실에서 직원들이 추천하는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을 하고 있다.
이번에 본 것은 2004년에 개봉된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로 관람 후에 많은 토론이 있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870년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의 일본.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막부(幕府)파와 서구화를 추진하는 왕당파간의 세력다툼이 내전으로 발전하고 있던 때다.
이 때 일본 정규군에 미국 남북전쟁의 영웅 네이던 알그렌(톰 크루즈) 대위가 서양의 군사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오게 된다. 하지만 첫 싸움에서 정부군에 반기를 든 사무라이 카츠모토에게 포로가 되어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이 곳에서 죽음을 초월하는 사무라이의 신념에 동화되어 새로운 편에서 전쟁에 뛰어들게 되는 줄거리다.
이 영화는 살벌한 전투장면과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이를 본 세계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환상을 가지도록 말이다. 마치 일본인들이 배용준의 겨울연가를 보고 한국을 찾아오듯이.
하지만 영화를 보고 일본에 대한 환상에 빠졌던 팬들은 많은 실망을 했으리라. 실제 촬영지는 뉴질랜드의 뉴플리머스라는 곳으로, 이 곳에 일본식 논과 경지를 만들고 벼와 나무를 심었으며, 영화에 멋있게 나오는 벚나무는 나뭇가지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게 제작하여 촬영 장면에 따라 각 계절에 맞는 나뭇가지를 바꿔가며 사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영화를 본 직원들도 한번 가봤으면 하는 의견이 다수 있었으나, 이런 사실을 알고는 다들 허탈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이 영화에서 직원들 간에 논쟁이 있었던 부분은 바로 멋지게 죽는 사무라이 카츠모토에 대한 평가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산화해가는 사무라이의 모습이, 아름답게 떨어지는 벚꽃 배경과 어울려 너무나 낭만적이지 않느냐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날아오는 기관총탄 속으로 말을 타고 달려들다 죽어가는 것은, 멋있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변화와 개혁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한 무모함이 아니냐는 반론이 이어졌다.
지금 우리 시대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적인 저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국은 이런 사무라이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또 하나 우리를 숙연하게 한 것은 기관총의 세례 속에 말과 함께 쓰러지는 사무라이의 최후를 보면서, 그 속에서 1890년대 말 동학농민군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말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당시 ‘부국안민, 외세척결’을 외치며 일본군의 기관총 앞으로 돌진하던, 그래서 이 땅을 피로 물들였던 우리 동학농민군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으며, 이들은 과연 누가 이렇게 멋지게 기려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다는 말에 우리 모두는 숙연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 앞에는 한미 FTA라는 대규모 변화와 개혁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기관총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무장할 것인가, 아니면 말을 타고 돌진하다 산화하는 사무라이가 될 것인가를 현명하게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첫댓글 사무라이 정신은 애국심의 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