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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트 매거진-아띠마 원문보기 글쓴이: 아트 매거진
작품상 수상자 김남식 수필가
--제8회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
===김남식 선생 약력===
수필가 김남식은 1942년 7월 26일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달전리에서 태어났다. 달성초, 천안중,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장학사, 교육연구사, 장학관, 초등학교장, 청양교육장, 아산교육장을 역임하였고 국민포장과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정년퇴임 후에는 5년여 간 대덕대학교에서 외래교수로 강단에 섰다.
대전일보, 중도일보, 대전매일신문, 충청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글쓰기를 즐겨하였으며, 정년퇴임 후 수필가로 입문하였다.
2007년 수필 ??행복(幸福) 3제(題)??로 「문학사랑」에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 ??백수(白首)의 가는 길??로 「수필문학」에, 2009년 ??아름다운 멍텅구리??로 「월간문학」에 각각 추천되어 중앙문단에 등단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랑으로 쓰는 편지」1,2권과 에세이집 「빨간 동그라미」, 「바람과 소리」 등을 출간하였다.
===수상소감===
무더위 시달리느라고 글 한 줄도 못쓰고 있는데 수상 연락을 받고나니 한결 시원해진 느낌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상을 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인가 보다. 어려운 심사과정을 거치느라고 많은 수고를 하시고, 내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 상을 만들어 주신 원종린 선생님 생각을 하니 더욱 감회가 새롭다. ??내가 상을 타는 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 또한 간절하다. 그 분께서 살아 계실 때 응모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서 포기를 했었는데 ??그 때 도전해 볼 걸?? 하는 안타까움도 생겨난다.
문학의 길을 따라 걸음마를 뗄 때다. 문장 작법에 대한 배우기를 간청하는 나에게 당신께서 직접 문예지에 투고하셨다는??수필 작법??의 복사본을 내어 주시며 읽어 보라고 하셨다. 간간이 내가 쓴 글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오자와 탈자를 꼭꼭 집어내시고, 띄어쓰기와 부호 등 하나하나를 지적하셨다. 하지만 주제와 소재 선정 등 글쓰기에 대한 말씀은 아예 언급이 없으셔서 당시에는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신 것은 바로 내가 독창성을 다져갈 수 있는 일이기에 스스로 깨우쳐 가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알고 난 후에는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모른다. 수필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인도하시고 당신께서 제정하신 상까지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은덕에 고개가 숙여진다. 하늘나라에서도 나의 수상 장면을 바라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실 그분이 그립다.
퇴직 후 공부를 하여 대전지역과 중앙의 문단에 등단을 하였고, 전국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원하는 원종린수필문학상을 내가 받게 되어, 여러분들께 칭찬의 말씀까지 듣게 되었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더욱 깊고 넓은 문학의 세계로 부지런히 달려가야 하겠다. 평소에 격려와 지도를 해 주신 문학계의 선배님과 동지들께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선정 작품===
나는 지금 왜 울고 있는가
??사내자식이 울긴 왜 울어! 못난 놈!?? 예로부터 부모는 자식들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불호령을 내렸고 도가 넘는다 싶으면 가차 없이 종아리를 들었다. 흐느끼는 아이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남자가 모름지기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일생에 단 세 번뿐이어야 한다며 엄중하게 훈계를 하였다.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와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경우, 그리고 나라를 잃게 될 지경에 이르렀을 상황 외에는 못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에게 약함을 보이지 말고, 매사에 보다 신중하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를 빗대어 영장을 받고 군대에 가야 할 걱정에, 변심한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는 슬픔으로, F학점 맞은 성적표를 받아 들고 부모에게 꾸중을 받을 것이 염려되어 운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사정이 어려운 데다 심신이 나약해서인지 꽤나 눈물이 많았다. 잦은 병치레 때문에, 힘센 아이들에게 맞고, 춥고 배고파서, 감당하기 어려운 갖가지 일들에 짓눌려서 그랬다. 남다르게 눈시울이 여려서인지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 통곡을 하는데도 덩달아 찔끔거리고, 이웃 동네사람의 상여 뒤를 따라가면서까지 훌쩍이다가 꾸중을 듣곤 하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눈물이 헤픈 편이어서 텔레비전 화면에 치료비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등장하고, 이산가족이 상봉하여 울부짖거나, 외국에서 시집 온 여자가 어렵게 귀국을 해서 가족들과 껴안고 몸부림을 칠 때면 따라서 울먹인다. 닥친 일이 힘에 겹다 싶으면 전전긍긍하고, 작은 심적 고통만 당하게 돼도 세상 걱정을 다 떠안은 양 호들갑을 떤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의 가르침을 떠 올리며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건만 그리 쉽지 않다.
지금의 나는 특별히 울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먹고 입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편하게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널찍한 집도 있으며, 건강한 편이라 이것저것 일을 보러 돌아다니거나 여행을 즐기는 데에 아무 불편함이 없다. 식구가 사랑을 해 주고 자식들이 이것저것 챙겨 주며 일가친척들과도 따뜻하게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와 응석을 부려도 될 선배가 있고, 어려움에 처하면 도닥거려 주며 기도를 해 주는 교우들도 여럿이 있다.
이렇게 많은 복을 누리며 살면서도 때로는 먼저 떠난 가족들을 생각하며 서러워하고 병약해져 가는 아내와 내 모습을 바라보며 초조해 한다. 또한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탓하고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두려워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보기에 흉할 뿐만 아니라 결코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다고 해서 막혔던 문제가 시원하게 뚫어질 리가 없고 나를 대신해서 슬픔을 껴안고 가 줄 사람도 없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로 좌절하고 닥쳐오지도 않은 내일을 조바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선인들의 가르침처럼 무엇 때문에 울어야 하는지를 구별하여야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돈과 명예와 권력에 눈이 어두워 없어질 것들을 탐하였음을 뉘우쳐야 한다. 내 잘못은 바로 알지 못하고 남의 실수만을 탓하려 들고 거짓된 말로 상대를 미혹한 일은 얼마나 되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별스럽지 않은 일로 시비를 걸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를 책해야 한다.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비굴하며 공익을 위하는 척하면서 사욕을 취한 일, 머리로는 음행을 계획하고 가슴에는 독기를 품으며 손으로는 악행을 저지른 것들을 탓해야 한다. 이렇듯 수없이 많은 죄를 짓고서도 온전하기를 바라며 회개는 하지 않고, 복 받을 생각만 한 것에 대하여 속죄의 눈물을 흘려야 마땅하다.
나는 그동안 자식들을 남들처럼 호의호식 시키지 못해서 탄식을 하고, 조금만 다쳐도 내 살이 찢기는 듯이 아파하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싶으면 가슴을 두드리며 울어댔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다. 아이들에게 사소한 일까지 일일이 손을 대어 줌으로써 작은 어려움만 닥쳐도 당황하게 만들었고, 제 손 안에 든 것은 꽉 움켜쥐고서도 더 많은 것을 취하려고 나쁜 짓을 해도 꾸짖지 않았음을 안타까워 한다.
내가 못 이룬 한풀이로 일류대학과 좋은 직장만을 주문했지, 열심히 일해서 나누어 주는 것이 최상의 행복임을 알려주지 않았다. 남에게 뒤져서는 절대로 안 되고 그래야만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만 고집하여, 주위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가를 터득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길러왔다.
이제까지 저지른 일들로 인하여 앞날에 내 아이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더욱 염려가 된다. 산을 마구 파헤친 흙더미 속에 묻히고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약물 때문에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 없으며, 곳곳에서 뿜어 낸 독한 연기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갈 자식들의 앞날을 애석하게 생각해야 한다. 과학 문명으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이상기온과 지진과 해일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사고 등을 바라보면서, 이 시대에 내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후대들을 걱정해야 마땅하다.
성 어어거스틴 어머니 모니카도 자식을 위해 눈물을 뿌려 가며 기도를 했다.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을 두고 처절할 정도로 간구를 한 끝에 마침내 위대한 믿음의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부처님과 공자님도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태연한 척 하는 불쌍한 중생들을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은 죄 많은 인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려고 나아가시는 당신을 따라오며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여인들을 향해서,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다. 머지않아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서 엄청난 환난을 당할 이스라엘 민족의 처지를 뻔히 아셨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지은 죄에 대해 진실로 회개하지 못한 나를 딱하게 여기고,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겪게 될 아픔을 걱정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내가 울어야 할 가장 큰 이유이어야 한다.
고슴도치 새끼 자랑
지난주에 총동문회에 참여했더니 한 친구는 미국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가서, 서너 달 동안 머물며 관광을 하게 되었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민다. 어떤 선배는 사위들이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갖고 있고 회계사 업무도 맡고 있다며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한다. 다른 후배는 딸들이 영국에서 명품 점퍼와 코트를 사왔다고 은근히 자랑을 해서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졸아드는 기분도 들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그들에 비해 내 처지는 어떠한지를 생각하다가 마음을 돌이켜 보니, 그들이 나보다 훨씬 복이 많고 반드시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을 서울이나 외국으로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 걱정에 노심초사하고, 자손들이 보고 싶어 안달을 하며 밀려오는 외로움에 몹시 힘들어 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 못지않게 속 깊고 든든한 딸이 셋이나 되고 교수와 원자력연구소 연구사 그리고 중등학교 교사인 사위도 얻었다. 더욱이 그들이 앞뒤 동네에 거주하여 늘 함께 살다시피 하니 누구 못지않은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셈이다.
자식들 모두가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진실 되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안팎으로 안정된 직장에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생활을 하여 믿음직하다. 사위들은 가끔 집에 들러 정겨운 이야기를 해 주고 딸들은 유행하는 옷가지들을 입혀주기도 하며, 저희들 나들이에 동행을 하게 해주는 등 여러 가지 기쁨을 주곤 하니 나만한 사람도 그리 흔하지 않을 듯싶다.
손자 손녀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음료수나 과자 등을 사들고 찾아가고, 때로는 직접 기른 상추와 아욱, 그리고 토마토와 자두 보따리를 가지고 들러서 쑥쑥 자라는 그 놈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는 재미도 본다. 녀석들이 주말이면 우르르 몰려와 사랑한다고 손을 벌려 품에 안기며 볼에 뽀뽀를 할 때면 깨물어 주고 싶도록 예쁘고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제 부모들한테 우리 집에 가게 해달라고 자꾸만 조른다는데 실제로 만나게 되면 시끌벅적 야단들이다. 특별한 음식이 나오면 제일 먼저 내 입에 넣어주고 피곤한 것 같으면 앞을 다투어 어깨와 다리를 주무른다. 그러다가 흥이 나면 장기자랑을 하며 갖은 재롱을 떨기도 한다.
간혹 함께 밤을 보내게 되면 어떤 녀석은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하고 다른 녀석들은 내 양팔을 베고서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며 조르는 통에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함께 어울려 놀다가 각기 집에 돌아갈 때면 고사리 같은 손들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빠이빠이?? 하며 양팔을 흔들어 주어 따뜻한 사랑을 한껏 맛보게 된다.
어젯밤에 다섯 손자 손녀들이 함께 잠을 자고 옹기종기 아침 식탁에 모여 앉았다. 셋째 놈이 기도를 해달라고 하니까 모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건강하고 착하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해 달라는 나의 간구가 마쳐지니 수저로 밥을 떠올리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으려고 야단들인데 열두 살 큰 아이가 양팔로 가로 막는다.
??잠깐! 할아버지께서 먼저 잡수신 후에 시작해야지.??
??어! 이놈이 벌써 이렇게 컸는가.??
제 동생들에게 나름대로 식사 예절을 가르치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놀랍고도 기특하여 등을 도닥거려 준다.
거실에서는 막내 손녀의 걸음마 학습에 모두들 조마조마,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합창을 하며 세더니 스물 한 발자국이나 떼었다고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얼마 전 막내딸의 주선으로 첫 돌도 채 돌아오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새 사돈 내외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3박 4일 동안 비행기를 타는 것을 시작으로, 서귀포를 비롯한 여러 곳의 해변과 성산일출봉, 그리고 용두암과 한라산 등 곳곳의 관광지를 다니느라고 온종일 차를 타고 또 걸었다,
마지막 날에는 한국의 최남단 마라도를 왕복하는 동안 배를 탔는데 마침 풍랑이 거칠게 일어 어른들도 멀미를 하고 아기의 눈이 쾡 들어 갈 정도로 지쳤다. 성인들도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고 짜증을 하는데 아기는 오히려 잘 참아 주었다. 새 사돈 양가 내외에게 수시로 재롱을 선물하여 어색한 분위기를 새롭게 바꾸어 주고 잘 먹고 자는 등 별 탈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게 해주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랬던 녀석이 이번에는 걸음마로 다시 한 번 짜릿한 기쁨을 맛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엘 들렀다. 각자 옷을 잘 벗어 정리하고 수영복을 갈아입은 후 큰 아이가 체조를 하고 물에 들어가니 작은 손자도 제 형을 따라 물에 들어가고 두 손녀들도 합류한다. 큰 놈은 자유영 속도가 하도 빨라 따라갈 수가 없고 작은 녀석은 잠수를 하며 평영을 한다. 큰 손녀의 배영 폼도 제법인데 작은 아이는 내 등에 매달려 물장구를 치며 좋아한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두 손자가 내게 다가와 비누칠을 해주고 수건으로 등을 문지른다. 하도 고마워서 내가 큰 놈을 닦아 준다니까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사양하더니 제 동생까지 챙긴다. 저희들이 스스로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고 탈수기로 옷을 짜기도 한다. 손을 잡고 나오는 손녀들은 빨간 모자에 마스크를 하는 등 매서운 추위에 단단히 대비한 차림이다. 제 앞가림을 못하고 징징거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니 대견스럽기만 하다.
음료수를 사먹으라고 천 원짜리를 두 개씩 주었더니 속닥거리더니, ??아이티 난민 돕기?? 모급함에 한 장씩 넣은 다음 자판기에서 캔 두 개를 꺼내어 나누어 먹는다. 제일 어린 아이가 다른 것을 더 사먹자고 하니까 큰 아이가 몸에도 좋지 않고 또 절약도 해야 한다며 만류를 하더니 남은 돈을 모아서 내게 도루 준다.
이렇듯 의젓하게 크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고 신통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푼돈을 달라며 졸라대더니 어느새 많이 자란 것을 보니 대견스럽다. 나도 아이들처럼 지폐 몇 장을 모금함에 넣으니 마치 커다란 일이나 한 듯 기분이 좋다. 여러 차례 이곳을 다녔어도 모금함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나이든 내가 오히려 어린 아이들에게 한 수 배우게 된 셈이다.
??참 착하네요. 어쩜 저렇게 예쁘게 키웠어요.??
휴게소 소파에 앉아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낙네들이 칭찬을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려진다. 아이들 가운데에 서서 키를 재어 보니 내 어깨 위를 따라 쑥쑥 올라오는 느낌이다. 요즈음에는 말끝마다 경어를 쓰고 내가 하는 일을 거들어 주려고 하는 것을 보니 많이 자란 것 같다.
큰 손녀가 ??할아버지가 저희들과 함께 수영을 다니니까 매우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얼굴이 전보다 훨씬 상한 것 같아 안쓰럽다.??고 말하더라는 제 어미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뜨뜻해진다.
누구나 있을 법한 일일 테지만 이 세상에서 나만 큰 복을 누리고 있는 듯싶어 친구들과 교우들에게, 나중에는 가끔 들르는 병원의 의사에게까지도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참으로 착하다며 장단을 맞추어 준다. 비록 놀림을 받을지라도 여기저기 다니며 더 많이 자랑을 해야 하겠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한다고 하지 않는가.
* [문학사랑] 2012년 가을호(통권 101호)에서 발췌하여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