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편안히 머물러 전적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에, 사랑에, 돈에, 명예에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거기에 기대어 집착하고 머물고자 하는 것은 괴로움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머물러 안주할 곳을 찾는다. 내 집을 찾고, 내 배우자, 내 돈, 내 땅을 찾는다. 사실 집과 땅이야 내 것이 아님은 당연하고, 남편이나 아내도 서류 한 장이면 남남이 되지 않는가. 전적으로 영원한 ‘내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영원히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너무 과도하게 의지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저 영원에서 잠시 여행 와 이 한 생의 동반자로 잠시 걷기를 약속했을 뿐, 근원에서는 모두 혼자일 수밖에 없다. 본연의 자리에서 우리는 이 우주를 여행하는 나그네일 뿐이다. 나그네는 여행길에서 만난 벗들과 잠시 어울려 외로움을 달래고 잠시 같은 길을 걷기도 하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영원한 ‘내 가족’이라고 여겨, 전적으로 의지하거나 기대려고 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부모님에게도 20여 년 의지하면서 살겠지만, 어느 순간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만 한다. 부모의 길과는 전혀 다른 나는 나만이 가야 할 독자적인 내 삶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도 자식이 어릴 때처럼 부모 말을 잘 듣고 따라줄 거라고 여기며 부모의 길을 자식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자녀는 ‘내 자식’인 것이 아니라, 잠시 ‘자식’이라는 역할극을 함께 하는 이번 생의 길벗일 뿐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삶의 길이 있고 그것은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자녀를 내 뜻대로 맞게 키우려고 과도하게 구속시킬 것도 없다. 그들은 독자적인 자신의 삶이 있고, 자기만의 여행 스케줄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저 너머에서 온 영원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내, 회사의 사장, 사원, 이런 것들은 아주 잠시 주어진 역할일 뿐, 영원한 것이 아니다. 잠시 의지하고 살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영원히 기대어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어디에도 없다.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영원히 안심하고 안주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일 뿐이다. 머물러 안주할 곳을 찾기 보다, 이 우주를 여행하는 나그네가 되라. 삶에서 펼쳐지는 그 모든 역동적인 변화 가능성의 파도를 서핑하듯 타고 다니라. 변화하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머물러 있을 때라도, 그것이 ‘잠시’임을 잊지 말라. 영원한 내 집은 없다. 오히려 머물지 않으면 우주 전체가 내 집이다.
당신은 특정한 한 명의 개별성의 존재가 아니라 당신이 곧 우주이고, 그 본연의 자리에서는 너와 나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안주하는 순간, 머물러 집착하는 순간, 우리는 개별성의 소아적 존재로 제한되고 만다. 의지하는 순간, 의지할 대상이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비좁은 존재로 한정되는 것이다. 사실 근원에서 우리는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 어디에도 기대지 않으면서도 홀로 우뚝 선 존재로 설 수 있는 우주적인 존재임을 기억하라. 내가 기댈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나는 기댈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모든 인연들과 자연스레 어울려 살되, 과도하게 머물러 집착하고 의존하지 않을 때 오고 감에 자유로운 본연의 존재가 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