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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요하문명의 세계 확산(4)
요하문명(遼河文明)은 세계 4대 문명(서기전 4,000~3,000년경)보다 1,000~2,000년 앞선 문명으로서 입증되었다.
그런데 이 요하문명(遼河文明)이 전세계로 전래되어 나갔다면, 어떤 경로로 전래되었는지 탐구할 만하다.
앞서 (1)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요하문명(遼河文明)의 대표적인 유적인 싱룽와 유적(서기전 6,200~5,400년)에서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빗살무늬 토기가 요하 유역에서부터 북서쪽으로 전래되어 유럽 에스토니아까지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에스토니아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서기전 4,000년~서기전 2,000년으로 밝혀졌으며, 싱룽와 유적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는 서기전 6,200~5,400년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싱룽와 문화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서북쪽으로 유럽 에스토니아 나르바 문화로 전래되었다면, 빗살무늬토기가 남서쪽으로도 전래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요하문명(遼河文明)에서 남쪽으로 내려가서 황하 유역의 황하문명(黃河文明) 지역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은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페이리강 문화(裴李岗, 서기전 7,000~5,000년, 1977년 발견), 허우리문화(後李. 서기전 6,500~5,500년, 1989년 발견), 츠산문화(磁山, 서기전 6,000~5,500년, 1972년 발견)를 꼽을 수 있다.
[그림 1] 요하문명 인근의 가장 오래된 황하문명 유적지 세 곳(노란선 지역)
또 산동성 허우리문화(後李. 서기전 6,500~5,500년, 1989년 발견)에 이어지는 북신문화(서기전 5,300~4,100년경), 대문구문화(서기전 4,100~2,600년경). 용산문화(서기전 3,000~2,000년경) 등은 산동성을 중심으로 하남성 서부지역, 하북성 남부지역, 강소성과 안휘성 북부지역에 분포하는 문화들로서 서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또 하남성 페이리강 문화(裴李岗, 서기전 7,000~5,000년, 1977년 발견)와 하북성 츠산문화(磁山, 서기전 6,000~5,500년, 1972년 발견)로부터 영향을 받은 앙소문화(서기전 5,000~3,000년경)는 섬서성과 하남성 북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즉, 요하문명이 남쪽으로 전래되어 산동성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북신문화(서기전 5,300~4,100년경), 대문구문화(서기전 4,100~2,600년경). 용산문화(서기전 3,000~2,000년경)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또 요하문명이 황하 중류 지역인 섬서성 지역으로 전래되어 앙소문화(서기전 5,000~3,000년경)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림 2] 황하 문명
그런데 20세기 전반에 황하문명의 앙사오문화(서기전 5,000~3,000년경)가 발견된 이래, 황하 유역에서 많은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중국 문명의 발상은 황하 유역이며, 그 후 점차 장강 유역 등의 주변지역으로 확대되었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3년과 1978년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저장성 닝보시 위야오시(위요)의 하모도 문화(河姆渡文化)에 의해, 이 설은 뒤집어졌다.
하모도 문화(河姆渡文化)는 서기전 6,000~서기전 5,0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대량의 볍씨 등 벼농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벼농사를 짓고있었기 때문에 그 주거형식은 고마루식(高床式)이었다.
즉, 지금까지 중국 문명이 황하 문명이라고 하는 공식적 학설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서기전 4,000~3,000년경)이라고 하는 공식도 타파되어 당시의 정설을 크게 뒤집는 일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모도 유적은 황하 문명과는 뚜렷하게 계통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동북지역의 랴오허 주변에서도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어, 현재는 랴오허주변, 황하 지역(상, 중, 하류) , 장강 지역(상, 중, 하류) 등이 모두 각각이 서로 서로 영향을 주었으며, 한편으로 각각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 갔다고 생각되고 있다.
장강 유역의 하모도 문화(河姆渡文化)는 서기전 6,000~서기전 5,000년경 문화인데, 양자강 중류에서 추자링 문화(屈家嶺文化, 서기전 3,000~서기전 2,500년경), 하류 지역에서 량주 문화(良渚文化, 서기전 3,300년? ~ 서기전 2,200년)와 우청문화(呉城文化, 서기전 1,400~서기전 1,000년경, 청동기 문화)가 발굴되었다.
그런데 장강 중류 지역에 황하 유역의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 Erlitou culture, 서기전 2,100~서기전 1,800년경 또는 서기전 1,500년경)가 이식되었다고 한다.
즉, 황하 유역의 사람들이 장강 중류 지역을 정복된 결과라고 추측된다고 하는데, 황제와 신농이나 치우의 대립 등 전설이 황하 문명과 장강 문명의 세력 다툼에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림 3] 장강 문명
또 위찬옌 유적(玉蟾巖遺跡)은 후난성 다오현(도현)에서 발견된 서기전 14,000년(?) ~서기전 12,000년경(?)의 유적으로 추측되는 유적인데, 볍씨가 발견되고 있지만, 재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또 셴런퉁 루퉁환 유적(仙人洞・呂桶環遺跡)은 장시성 상요시 완넨현에서 발견된 서기전 12,000년경의 유적지이다. 재배한 벼가 발견되었고, 중국의 농경이 독자적으로 전파된 가장 오래된 것 증거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또 펑터우산 문화(彭頭山文化)는 호남성 상덕시 리현 펑터우산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유적인데, 서기전 7,000~5,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산파농법을 하고 있어 중국의 가장 오래된 수도(水稻)로 추측된다고 한다.
또 다시 문화(大溪文化)는 사천성 중경시 우산현에서 발견된 대표 유적인데, 서기전 4,500년경에서 서기전 3,3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며, 채문홍도가 특징으로 후기에는 흑도, 회도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관개 농법이 확립되어 주거지가 물의 보급을 위한 수원지로부터 대규모 농경을 할 수 있는 평야지대로 이동했다고 한다.
또 추자링 문화(屈家嶺文化)는 호북성 형문시 경산현 추자링에서 발견된 유적으로서 서기전 3,000년경에서 서기전 2,5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다시 문화를 계승하고, 녹로를 사용한 흑도가 특징이다. 허난 지방의 황허 문명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된다.
또 스자허 문화(石家河文化)는 호북성 천문시 스자허에서 발견된 대규모의 도성으로서 서기전 2,500년경의 유적인데, 추자링과 구별된다고 한다. 도성은 남북으로 1.3km, 동서로 1.1km의 크기로 황하 상류 유역의 부족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하모도 문화(河姆渡文化)는 저장성 위야오시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서기전 ,5000년경에서 서기전 4,000년경의 유적으로 추측된다. 하류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벼농사나 수렵, 그리고 어로도 행해져 돼지를 가축화를 시켰다.
마자방 문화(馬家浜文化)는 저장성 자싱시 마자방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서기전 5,000년경에서 서기전 3,800년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하모도 문화를 계승 발전시켰으며, 관개를 시작하였고, 홍도가 특징이다.
쑹쩌 문화(崧澤 文化)는 상하이시 칭푸구 쑹쩌 촌(崧澤村)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서기전 3,800년경에서 서기전 3,5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구슬로 만든 팔찌 등의 장식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량주 문화(良渚文化)는 저장성 위항구 량주 진에서 에서 발견된 서기전 3,500년에서 서기전 2,200년경의 유적으로 마자방 문화, 송저문화를 계승했다. 다수의 옥기 외에도 비단이 출토되었다.
분업이나 계층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순장을 시킨 무덤이 발견되었다. 황하문명의 산동 룡산문화와는 서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며, 동 시기에 쇠퇴한 것은 어떤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우청 문화(吳城文化)는 장시성 장수시 우청진에서 발견된 서기전 1,400년에서 서기전 1,000년경의 유적으로 황하문명과는 이질적인 청동기가 출토되었고, 원시적인 자기 등도 출토되었다.
즉, 장강 문명의 시기는 서기전 14,000년경부터 서기전 1,000년경으로 추측되며, 이후의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등의 국가로 발전해 갔다고 한다.
한편, 사천성 지역에서 바오둔 문화(宝墩文化)와 삼성퇴 유적(三星堆遺跡)이 발굴되었는데 쓰촨문명이라고 부른다.
바오둔 문화(宝墩文化)는 청두시 신진현 민강 바오둔촌에서 발견된 서기전 2,500년에서서기전 1,750년경의 유적지이다. 신석기 시대의 성벽에 둘러싸인 취락이 청두 평원의 민강 선상지에 복수 존재했다. 최대의 유적인 보물 유적은 1990년대에 발견되었고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퇴 유적(三星堆遺跡)은 쓰촨성 삼성퇴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서기전 2,600년경에서 서기전 85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대량의 청동기가 출토되었고, 눈이 올라간 가면과 세로 눈의 가면, 황금 지팡이 등이 나왔으며, 자안패(子安貝)나 상아 등도 출토되어 권력 계측의 존재를 알려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에는 원시적인 과정이 없이 고도의 청동기가 제작되었기 때문에 황하 유역에서 기술이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장강 문명과 같이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파촉문자(巴蜀文字)라고 불리는 문자가 있어 인더스 문자와 연결하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