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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는 당(唐)의 승려인 현장법사(玄獎法師, 602~664)의
청(請)에 의해 당(唐) 태종(太宗)이 찬술(撰述)하고 고종(高宗)이 기문(記文)을 지었다.
현장법사 역(譯)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密多心經)을 합하여
왕희지(王羲之307~365)의 글씨를 홍복사(弘福寺)의 승려 회인(懷仁)이
집자(集字)하여 고종(高宗) 함형(咸亨) 3년(서기 672년) 12월에 세운 비각(碑刻)이다.
이 비석을 완공하기까지 25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고 하며 글자수는 1902字이다.
서풍(書風)은 고결(高潔)하고 미려(美麗)하다. 또한 전아단정(典雅端正)하고
골격(骨格)은 청령(淸靈)하다. 결구(結構)는 무한(無限)한 변화속에 침착(沈着)하여
그윽한 깊이가 있다. 점획(點劃)은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필세(筆勢)의 생동감(生動感)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낸다.
※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 (王羲之)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자는 일소(逸少)이며,
동진(東晉)에서 우군장군(右軍將軍)의 벼슬을 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왕우군이라고도 불렀다. 오늘날의 산둥성[山東省] 린이현[臨沂縣]인
낭야(琅琊) 출신이며, 동진 왕조 건설에 공적이 컸던 왕도(王導)의 조카이고,
왕광(王曠)의 아들이다.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그에 못지않은 서예가로 알려진 일곱번째 아들 왕헌지(王獻之)와 함께 ‘이왕(二王)’
또는 ‘희헌(羲獻)’이라 불린다. 16세 때 치감(郗鑒)의 요청으로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
처음에 서진(西晉)의 여류 서예가인 위부인(衛夫人)의 서풍(書風)을 배웠고,
뒤에 한(漢)나라 ·위(魏)나라의 비문을 연구하여 해서 ·행서 ·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예술로서의 서예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
비서랑(秘書郞)으로부터 출발하여 유량(庾亮)의 장사(長史)가 되고,
351년에는 우군장군 및 회계(會稽:浙江省 紹興)의 내사(內史)에 이르렀다.
그는 명문 출신이며, 경세(經世)의 재략이 있어 은호(殷浩)의 북벌을 간(諫)하는
글과 사안(謝安)에게 민정(民政)을 논한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찍이 속세를 피하려는 뜻을 품고 있었는데, 왕술(王述)이 중앙에서
순찰을 오자 그 밑에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355년(永和 11) 벼슬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경치가 아름다운 회계의 산수간에서 사안 ·손작(孫綽) ·이충(李充)
·허순(許詢) ·지둔(支遁) 등과 청담(淸談)을 나누고, 또 도사(道士) 허매(許邁)를
따라 채약에 몰두하는 등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다가 한평생을 마쳤다.
그는 내사 재직 중이던 353년(영화9) 늦봄에, 회계의 난정(蘭亭)에서 있었던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연회에 참석하였다. 그때 모인 41인 명사들의
시를 모아 만든 책머리에 그는 스스로 붓을 들어 서문을 썼다.
이것이 《난정서(蘭亭序)》라는 그의 일대의 걸작이며,
산수문학의 남상(濫觴)이 되었다.
그는 예서(隸書)를 잘 썼고, 당시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던 해 ·행 ·초의 3체를
예술적인 서체로 완성한 데 그의 가장 큰 공적이 있으며, 현재 그의 필적이라
전해지는 것도 모두 해 ·행 ·초의 3체에 한정되어 있다.
해서의 대표작으로는 《악의론(樂毅論)》 《황정경(黃庭經)》이,
행서로는 《난정서》, 초서로는 그가 쓴 많은 편지를 모은 《십칠첩(十七帖)》이
옛날부터 유명하다. 또 송(宋)의 태종(太宗)이 992년에 조각한
《순화각첩(淳化閣帖)》이라는 법첩에는 그의 편지가 많이 수록되었고,
당(唐)나라의 회인(懷仁)이라는 중이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672년에
왕희지의 필적 중에서 집자(集字)하여 세운 ‘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
등도 그의 서풍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 《상란첩(喪亂帖)》 《공시중첩(孔侍中帖)》 《유목첩(遊目帖)》
《이모첩(姨母帖)》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 등의 필적이 전하여온다.
그러나 이것들은 왕희지의 육필(肉筆) 그대로는 아니고 진적(眞跡)과는
많이 다를 것으로 짐작된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왕희지의 글씨를 사랑한
나머지 온 천하에 있는 그의 붓글씨를 모아, 한 조각의 글씨까지도 애석히
여겨 죽을 때 자기의 관에 넣어 묻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하여오는
필적만 보아도 그의 서풍(書風)은 전아(典雅)하고 힘차며, 귀족적인 기품이 높다.
출처 : [王羲之] (두산백과)
① 太宗文皇帝製
大唐三藏聖敎序 대당삼장성교서 太宗文皇帝製 태종문황제제 弘福寺沙門懷仁集 晉右將軍王羲之書 홍복사사문회인집진우장군왕희지서 蓋聞二儀有像 顯覆載以含生 개문이의유상 현부재이함생 四時無形 潛寒暑以化物 是以窺天鑑地 사시무형 잠한서이화물 시이규천감지 庸愚皆識其端 明陰洞陽 용우개식기단 명음동양 賢哲罕窮其數. 然而天地苞乎陰陽 현철한궁기수. 연이천지포호음양 而易識者 以其有像也. 陰陽處乎天地 이이식자 이기유상야. 음양처호천지 而難窮者 以其無形也. 故知 像顯可徵 이난궁자이기무형야. 고지 상현가징 雖愚不惑 形潛莫覩 在智猶迷 수우불혹 형잠막도 재지유미 况乎佛道崇虛 乘幽控寂 弘濟萬品 황호불도숭허 승유공적 홍제만품 典御十方 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 전어시방 거위령이무상 억신력이무하 大之則彌於宇宙 細之則攝於豪氂 대지칙미어우주 세지칙섭어호리 無滅無生 歷千劫而不古 若隱若顯 무멸무생 역천겁이불고 약은약현 運百福而長今妙道凝玄 운백복이장금 묘도응현 遵之莫知其際 法流湛寂 挹之莫測其源 준지막지기제 법류담적 읍지막측기원 故知 蠢蠢凡愚 區區庸鄙 고지 준준범우 구구용비 投其旨趣 能無疑惑者哉. 然則大敎之興 투기지취 능무의혹자재. 연즉대교지흥 基乎西土 騰漢庭而皎夢 照東域而流慈 기호서토 등한정이교몽 조동역이류자 昔者分形分跡之時 言未馳而成化 석자분형분적지시 언미치이성화 當常現常之世 民仰德而知遵 당상현상지세 민앙덕이지준 及乎晦影歸眞 遷儀越世 金容掩色 급호회영귀진 천의월세 금용엄색 不鏡三千之光 麗象開圖 空端四八之相 불경삼천지광 여상개도 공단사팔지상 於是微言廣被 拯含類於三途 遺訓遐宣 어시미언광피 증함류어삼도 유훈하선 導群生於十地 然而眞敎難仰 도군생어십지 연이진교난앙 莫能一其旨歸 曲學易遵 막능일기지귀 곡학이준 耶正於焉紛糺所以空有之論 사정어언분규 소이공유지론 或習俗而是非 大小之乘 乍沿時而隆替 혹습속이시비 대소지승 사연시이융체 有玄奘法師者 法門之領袖也 幼懷貞敏 유현장법사자 법문지영수야 유회정민 早悟三空之心 長契神情 조오삼공지심 장계신정 先苞四忍之行 松風水月 선포사인지행 송풍수월 未足比其淸華 仙露明珠 詎能方其朗潤 미족비기청화 선로명주 거능방기랑윤 故以智通無累 神測未形 고이지통무루 신측미형 超六塵而逈出 隻千古而無對 초육진이형출 척천고이무대 凝心內境 悲正法之陵遲 栖慮玄門 응심내경 비정법지릉지 서려현문 慨深文之訛謬 思欲分條析理廣彼前聞 개심문지와류 사욕분조석리광피전문 截僞續眞 開玆後學是以翹心淨土 절위속진 개자후학 시이교심정토 往遊西域 乘危遠邁杖策孤征 積雪晨飛 왕유서역승위원매장책고정적설신비 途間失地 驚砂夕起 空外迷天 萬里山川 도간길지경사석기공외미천 만리산천 撥煙霞而進影 百重寒暑躡霜雨而前蹤 발연하이진영백중한서섭상우이전종 誠重勞輕 求深願達 성중노경 구심원달 周遊西宇 十有七年 窮歷道邦 詢求正敎 주유서우 십유칠년 궁역도방 순구정교 雙林八水 味道飡風 鹿菀鷲奉 쌍림팔수 미도손풍 록원취봉 瞻奇仰異 承至言於先聖 첨기앙이 승지언어선성 受眞敎於上賢 探賾妙門 수진교어상현 탐색묘문 精窮奧業 一乘五律之道 馳驟於心田 정궁오업 일승오율지도 치취어심전 八藏三篋之文 波濤於口海 팔장삼협지문 파도어구해 爰自所歷之國 摠將三藏要文 원자소역지국 총장삼장요문 凡六百五十七部 譯布中夏 宣揚勝業 범육백오십칠부 역포중하 선양승업 引慈雲於西極 注法雨於東垂 인자운어서극 주법우어동수 聖敎缺而復全 蒼生罪而還福 성교결이부전 창생죄이환복 濕火宅之乾燄 共拔迷途 습화택지건염 공발미도 朗愛水之昏波 同臻彼岸 낭애수지혼파 동진피안 是知 惡因業墜 善以緣昇 昇墜之端 시지 악인업추 선이연승 승추지단 惟人所託 譬夫桂生高嶺 유인소탁 비부계생고령 雲露方得泫其花 蓮出淥波 운로방득현기화 연출녹파 飛塵不能汙其葉 非蓮性自潔 비진불능오기엽 비연성자결 而桂質本貞 良由所附者高 이계질본정 양유소부자고 則微物不能累 所憑者淨 則濁類不能沾 칙미물불능누 소빙자정 칙탁류불능점 夫以卉木無知 猶資善而成善 부이훼목무지 유자선이성선 況乎人倫有識 不緣慶而求慶 황호인륜유식 불연경이구경 方冀玆經流施 將日月而無窮 斯福遐敷 방기자경류시 장일월이무궁 사복하부 與乾坤而永大。朕才謝珪璋 言慙博達 여건곤이영대。짐재사규장 언참박달 至於內典 尤所未閑 昨製序文 深爲鄙拙 지어내전 우소미한 작제서문 심위비졸 唯恐穢翰墨於金簡 標瓦礫於珠林 유공예한묵어금간 표와력어주림 忽得來書 謬承褒讚 循躬省慮彌益厚顔 홀득래서 유승포찬 순궁성려미익후안 善不足稱 空勞致謝. 선불족칭 공로치사. | 대 당나라 삼장(경장, 율장, 논장)의 성교(부처나 조사(祖師)의 가르침, 또는 그것을 적은 책) 서. 태종 문황제가 지음 홍복사 사문인 회인이 진(晉)나라 우장군 왕희지의 서(書)를 집자(문헌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 하다. 듣자 하니 이의(양과 음, 하늘과 땅)에는 형상이 있어 부재(하늘이 덮어 주고 땅이 실어 줌)가 나타남으로써 함생(含識:중생)을 포옹하고, 사시(사철)는 형상이 없으니 한서(추위와 더위. 겨울과 여름)에 잠겨서 만물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땅을 거울삼아 하늘을 살펴보면 용우(남보다 못생기고 어리석음) 한 사람이라도 모두 그 일단(사물의 일부분)을 알 수 있지만 음양의 이치를 명확하게 통달한다는 것은 현철(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도 그 수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천지가 음양을 내포하고 있음을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그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이 천지간에 머물러 있지만 사람이 알기 어려운 것은 그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像)이 나타나는 것은 징험(칭후 또는 징조)할 수가 있어 비록 어리석더라도 미혹되지 않고, 형(形)이 잠겨 볼 수 없는 것은 지혜로운 자라도 오히려 미혹(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림)된다. 하물며 불도(부처의 가르침)는 허무를 숭상하고 유현(幽玄)과 적멸(寂滅)함을 취지(담겨있는 목적)로 하여 만물을 홍제(널리 구제함)하고 시방(사방, 사우, 상하를 통틀어 일컬음)의 법을 다스려 위령을 들어 올리면 위(上)가 없고, 신력(신의 위력)을 억누르면 아래(下)가 없으니 크게 하면 우주에 두루 미치는 법이고 작게 하면 호리(자 또는 저울의 눈금)에도 끼는 법이다. 멸(滅)함도 없고 생(生)함도 없어 천겁(오랜 세월:永劫)이 지나도 옛 것이 되지 않으며 숨은 듯 나타난 듯 백복(많은 복)을 운행하여 지금까지 매우 길고 오래 지속되었다. 미묘한 도(道)는 오묘하게 이루어져 좇아가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법(불교의 진리)의 흐름은 담적(맑고 고요)하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릴 수가 없다. 고로 준준(꾸물꾸물)한범우(평범하고 어리석음)한 사람은 구구(잘고 용렬함)하고 비루(행실이 더럽고 추저분함)하니 그 지취(마음먹고 있는 뜻)를 알려준다 한들 능히 의혹(수상하게 여김)하는 자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한 즉 대교(화엄경:불교)의 시작은 서쪽 땅에서 터를 잡고 한정(한 나라의 궁궐)에 올라와 명제에 현몽(신령이 꿈에 나타남)하여 동쪽 지역을 비추어 자비를 흐르게 했다. 옛날 분형분적(석가가 태어나기 이전) 때에 말이 전해지지 않았으나 교화(불법(佛 法)으로 가르쳐서 착하게 함)는 이루어졌고 당상형상(석가가 태어난 이후) 시대에는 사람들이 그 덕을 우러러 보고 가르침을 따랐다. 모습을 감추고 진여(眞如:불교에서 진리)로 돌아가니 모습도 바뀌고 세월이 흘러 황금색의 용모는 엄색(부처나 고승의 죽음)하여 삼천(많은 수)광명을 비출 수가 없으며 아름다운 모습은 그림으로 그러져, 공허하게 사팔지상(三十二相)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미언(뜻 깊은 말)이 넓게 미치어 삼도(지옥, 아귀, 축생)에서 함류(含靈 : 중생)를구원하고 유훈(죽은 사람이 남긴 훈계)이 멀리 전해져 군생(많은 사람)을 십지(보살의 10가지 수행 단계)에 인도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교리는 신앙(믿고 받드는 일)하기 어렵고 그 지귀(뜻 하는바 돌아가는 곳)는 하나가 아니며 곡학아세(학문을 굽히어 세상에 아첨 함)하여 따르기 쉬우니 사교(부정한 종교)와 정교(바른 종교)가 어느새 얽혀서 어지럽게 되고 그래서 공유(불교의정반대 개념인 ‘공(空)’과 ‘유(有)’를 이르는 말)의 논리도 어떤 경우에는 습속(습관된 풍속)으로 시비를 하게 되고 대승(불교 유파)과 소승이 잠시 때에 따라 융체(성하고 쇠함) 하였다. 현장법사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법문(부처의 교법)의 영수(여럿 중 우두머리) 이다. 어려서부터 정민(마음이 곧고 총명하고 민첩함)하여 일찍이 삼공(空相, 空空, 所空)의 도리를 깨달았으니 장성하여 신정(미리 헤아릴 수 없는 묘한 용법을 갖추는 심정)에 기약하며 먼저 사인(불교의 교리를 믿고 지키며 동요되지 않는 것)을 열심히 수행하니 소나무에 스치는 바람이나 물에 비치는 달도 그 맑고 화려함에 비할 바가 아니며, 선로명주(선인이 내려 주는 이슬과 구슬)도 어찌 그의 명윤(환하게 나는 윤기)과 비교 가능하겠는가! 그러므로 지혜는 여러 무(無)를 통달하고 정신은 형체가 없는 것까지 알아볼 수 있고, 육진(빛,소리,냄새,맛,감촉,법 의 욕정)을 초월하여 멀리 나감에 천고(영원한 세월)에 하나뿐, 상대가 없느니라. 내경(법경)에 응심(마음과 생각을 모음)하니 정법이 릉지(점차 쇠하여 감)함을 슬퍼하였고, 현문(현묘한 법문)을 생각하여 몸을 담으니 심문(엄한 법률)에 와류(오류)가 있음을 개탄 하여, 조리 있게 나누고 널리 전해들은 바를 분석 하여 거짓은 잘라내고 참된 것을 이어서 후학을 위하여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마음은 정토(아주 깨끗한 세상)에 바쳐서 서역(인도)으로 불도의 배움 길에 오르니 위험을 무릅쓰고 먼 만리길 지팡이만 잡고 홀로 갈 적에 새벽엔 쌓인 눈이 날려 도중에 길을 잃기도 하고, 저녁엔 모래가 세차게 일어나 먼 하늘이 아득하기도 하였다. 만리 산천 먼 길을 그림자를 벗 삼아안개와 노을 헤치며 나아갔고 수많은 추위와 더위, 찬서리와 궂은비에 시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노고를 가벼이, 정성을 소중히 여겨 심오한 불도를 탐구하고 바라는 바가 달성 하기를 기원하였다. 서쪽 집(인도)을 주유(두루 돌아다님)하기 17년 동안 불교의 나라들을 순력(각처로 돌아다님)하고 정교(바른 종교)를 묻고 구하였다. 쌍림(석가가 죽을 때 사방에 각각 한 쌍씩 서있던 사라수)과 팔수(인도의 八大河)에서 불교를 음미하고 풍속에 젖어서 녹원(녹야원)과 취봉(영취산)의 기승(기묘한 경치)과 이경(색다른 풍경)을 우러러 바라보며 선성(옛 성인)의지언(지극히 옳은 말)을 받들고, 상현(현자:성인의 다음가는 사람)들로 부터 진실한 가르침을 받아 묘문(열만의 경지에 들어가는 문)을 깊숙이 탐색하고 심오한 뜻을 세밀히 연구 하여 일승(성불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과 오율(5부의 율장:삼장의 하나)의 법도는 마음속에 빠르게 달려 팔장(8부의 법문)삼협의 경문이 입안에서 바다의 파도처럼 넘쳐 나왔다. 이에 그가 지내던 나라에서 삼장(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셋으로 불교성전(佛敎聖典))의 중요한 문서 총 657부를 모두 가져와 번역하여 하(夏:중국)에 배포하고 승업(불교를 왕성하게 유행 함)을 선양(널리 떨치게 함) 하게 하였다. 서극(인도)에서 자비(사랑하고 불쌍히 여김)의 구름을 끌어와 동수(중국)에 법우(佛法을 비에 비유)를 내리게 하여 일그러진 성교(석가소설의 교법)가 다시 온전하게 되었고, 창생(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악에서 돌아와 행복하게 되었다. 화택(번뇌의 고통,이승을 불이난 집에 비유)의 건염(건조)함을 적셔서 미도(어지럽게 갈래가 져 있는 길)에서 함께 빠져나오게 하고 애수(갈애(渴愛):악한 결과를 무르익게 하는 격정적인 욕망)의 어두운 물결을 밝혀서 같이 피안(사바세계의 저 쪽에 있다는 정토)에 이르게 하였다. 이것으로 악(惡)은 업(業)으로 인하여 추락되고, 선(善)은연(緣)으로서 상승하는 것이니 상승하고 추락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비유컨대 계수나무가 높은 산봉우리에 나면 구름과 이슬이 그 꽃을 적셔 이슬이 빛나고 연꽃이 녹파(맑은 물결)에서 나면 날리는 먼지가 그 잎을 더럽히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연꽃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한 것이 아니고, 계수나무의 본래 바탕이 곧은 것이 아니라, 자라 난 곳이 높고 좋으면 미물이 능히 포개지 못하는 법이고, 기대고 있는 곳이 깨끗하면 탁(濁)한 무리도 능히 적시지 못하는 법이다. 아무리 무지(지식이 없음)한 훼목(초목:풀과 나무)이라도 오히려 바탕이 선(善)하면 성선(착한 일을 이룸)하거늘 하물며 유식(지식이 있음)한 인륜(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 있어 경(慶:善行)을 인연하여 경(慶)을 구(求)하지 않으리오. 바야흐로 이 경문이 이롭게 유포되어서 장차일월(세월)이 무궁(공간이나 시간의 끝이 없음)하고, 이 복이 멀리 퍼져서 건곤(온 세상)과 더불어 길이 커질 것을 바라노라. 짐(朕)은 재주가 규장(훌륭한 인품)만 못하고, 말은 박달(널리 통달함)하지 못하여 내전(불교의 경전)에 이르러서는 더욱 익히지 못한 바라. 어제 지은 서문은 매우 비졸(문장이 천박하고 졸렬하여 보잘 것 없음)하여 다만 한묵(문필)으로 금관(금 같은 종이)을 더럽히고, 와력(기와 와 자갈)으로 주림(구슬 숲)을 나타낸 것 같아 두려워하였는데 문득서찰을 받아보니 지나친 칭찬을 받고 몸소 반성하며 두루 살펴보니 후안(두꺼운 낯가죽: 염치 없음)만 더할 뿐이다. 선(善)은 족히 칭송할 것이 없는데, 헛되이 치사(감사 사다는 뜻을 표함)의노고(애쓰고 노력한 수고로움)만 드리게 되었도다. |
② 皇帝春宮述三藏聖記
皇帝在春宮述三藏聖記 황제재춘궁술삼장성기 夫顯揚正敎 非智無以廣其文 부현양정교 비지무이광기문 崇闡微言 非賢莫能定其旨 숭천미언 비현막능정기지 蓋眞如聖敎者 諸法之玄宗 개진여성교자 제법지현종 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 奧旨遐深 중경지궤탁야。종괄굉원 오지하심 極空有之精微 體生滅之機要 극공유지정미 체생멸지기요 詞茂道曠 尋之者 不究其源 文顯義幽 사무도광 심지자 불구기원 문현의유 履之者 莫測其際。故知聖慈所被 이지자 막측기제。고지성자소피 業無善而不臻 妙化所敷 緣無惡而不剪 업무선이불진 묘화소부 연무악이불전 開法網之綱紀 弘六度之正敎 개법망지강기 홍육도지정교 拯羣有之塗炭 啓三藏之秘扃 증군유지도탄 계삼장지비경 是以名無翼而長飛 道無根而永固 시이명무익이장비 도무근이영고 道名流慶 歷遂古而鎭常 赴感應身 도명류경 역수고이진상 부감응신 經塵劫而不朽 晨鐘夕梵 경진겁이불후 신종석범 交二音於鷲峯 慧日法流 교이음어취봉 혜일법류 轉雙輪鹿苑 排空寶蓋 전쌍륜녹원 배공보개 接翔雲而共飛 莊野春林 與天花而合彩 접상운이공비 장야춘림 여천화이합채 伏惟 皇帝陛下 上玄資福 垂拱而治八荒 복유 황제폐하 상현자복 수공이치팔황 德被黔黎 斂衽而朝萬國 덕피검려 염임이조만국 恩可朽骨 石室歸貝葉之文 澤及昆蟲 은가후골 석실귀패엽지문 택급곤충 金匱流梵說之偈 遂使阿耨達水 금궤유범설지게 수사아뇩달수 通神甸之八川 耆闍崛山 통신전지팔천 기사굴산 接嵩華之翠嶺 竊以法性凝寂 접숭화지취령 절이법성응적 靡歸心而不通 智地玄奧 感懇誠而遂顯 미귀심이불통 지지현오 감간성이수현 豈謂重昏之夜 燭慧炬之光 火宅之朝 기위중혼지야 촉혜거지광 화택지조 降法雨之澤。於是百川異流 同會於海 강법우지택。어시백천이류 동회어해 萬區分義 摠成乎實 豈與湯武挍其優劣 만구분의 총성호실 기여탕무교기우열 堯舜比其聖德者哉。玄奬法師者 요순비기성덕자재。현장법사자 夙懷聰令 立志夷簡 神淸齠齔之年 숙회총령 입지이간 신청초친지년 體拔浮華之世 凝情定室 匿迹幽巖 체발부화지세 응정정실 닉적유암 栖息三禪 巡遊十地 超六塵之境 서식삼선 순유십지 초육진지경 獨步迦維 會一乘之旨 隨機化物 독보가유 회일승지지 수기화물 以中華之無質 尋印度之眞文 遠涉恒河 이중하지무질 심인도지진문 원섭항하 終期滿字 頻登雪嶺 更獲半珠 종기만자 빈등설령 갱획반주 問道往還 十有七載 備通釋典 利物爲心 문도왕환 십유칠재 비통석전 이물위심 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 奉勅於弘福寺 이정관십구년이월육일 봉칙어홍복사 飜譯聖敎要文 凡六百五十七部 번역성교요문 범육백오십칠부 引大海之法流 洗塵勞而不竭 인대해지법류 세진노이불갈 傳智燈之長燄 皎幽闇而恒明 전지등지장염 교유암이항명 自非久植勝緣 何以顯揚斯旨 자비구치승연 하이현양사지 所謂法相常住 齊三光之明 我皇福臻 소위법상상주 제삼광지명 아황복진 同二儀之固。伏見御製衆經論序 동이의지고。복견어제중경론서 照古騰今 理含金石之聲 文抱風雲之潤 조고등금 이함금석지성 문포풍운지윤 治輒以輕塵足岳 墜露添流 치첩이경진주악 추로첨류 略擧大綱 以爲斯記。治素無才學 약거대강 이위사기。치소무재학 性不聰敏 內典諸文 殊未觀攬 所作論序 성불총민 내전제문 수미관람 소작론서 鄙拙尤繁 忽見來書 褒揚讚述 비졸우번 홀견내서 포양찬술 撫躬自省 慙悚交幷 勞師等遠臻 무궁자성 참송교병 노사등원진 深以爲愧。 심이위괴。 | 황제재춘궁(태자궁,세자궁의 별칭) 술삼장성기(三藏聖記). 대체로 보아서 정교(불교의 바른 가르침)를 현양(세상에 높이 들어냄)함에는 지혜가 있는 자가 아니면 그 경문을 광포(널리 알림)하지 못하고, 미언(뜻이 깊은 말, 부처의 말)을 높게 밝히는 것은 현철(어질고 사리에 밝음)한 자가 아니면 능히 그 뜻을 확정하지 못한다. 대개 진여(참되고 한결같은 마음)한 성교(부처의 가르침)는 제법(우주에 있는 모든 사물)의 현종(현묘(玄妙)한 종지(宗旨))이요 중경(대장경(大藏經))의궤촉(옛사람이 남긴 본보기)이라. 굉원(너르고 멂)한 것을 모아 깊게 연구해 보면 오묘한 뜻이 멀고도 깊다. 공유(없으면서 있음)의 정미(신비)가 궁극(극도에 달함)하고 생멸(생겨남과 소멸함)의 기요(중요하고 긴요함)한 묘체(묘한 진리)를 체득하려 하니 말은 무성하고 길은 넓어서 찾는 자가 그 원천을 연구하지 못하고, 글은 나타나 있어도 뜻이 깊어서 격는(공부 하는)자가 그 끝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성스러운 자비의은총을 입은 곳에는 업(業)이 선(善)에 이르지 못함이 없고, 묘(妙)한 교화(가르쳐 착하게 함)가 펼쳐진 곳에는 연(緣)이 악(惡)을 끊지 않음이 없다. 법망(각종 잘못된 견해)의 강기(법의 기율과 풍속)를 열고 육도(六波羅蜜:열반에 이르기 위한 여섯 가지 수행)의 정교를 넓혀서 도탄(몹시 고통스러운 지경)에 빠진 군유(만물)를 건지고 삼장(불경의 經, 律, 論)의 비경(신묘(神妙)하여 알기 어려운 문의 빗장)을 열었다. 이로 인해 명(名:五蘊의 受, 想, 行, 識 작용으로 붙여진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길게 날고, 도(道:불교)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다. 도와 명의 경(선행)이 흐르면 수고(태고)때 부터 진상(늘) 감응(믿음이 통함)하여 나아가니 응신(부처님이 중생과 같은 몸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하여 진겁(무한한 시간.불가=劫,도가=塵이라 함)을 지나도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 새벽 종소리와 저녁 범패(석가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 소리의 두음이 취봉(영취산 봉우리)에 교향(交響:서로 울림)시키고 혜일(부처의 지혜)과 법류(正法이 끊임없이 相續하는것)의 쌍륜(두개의 바퀴)이 녹원(鹿野苑의 준말)에 구르는 듯 하고, 비공(하늘로 솟구침)하는 보개(불상이나 보살상의 머리 위를 가리는 덮개)는 날개와 구름을 이은 듯 함께 날고, 들판을 장식한 봄 수풀은 천화(高僧이 講經할 때 떨어진다는 꽃)와 더불어 채색을 합한다.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상현(하늘)의 도움이 있어 수공(팔짱만 끼고 가만히 있음)하고 있어도 팔황(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덕(德)을 검려(黔首:관을 쓰지 않은 검은머리, 일반 백성)에게 입히시니 염임(斂襟:옷깃을 바로잡고 정숙히 함)한 만국(온갖 나라)들이 조하(朝賀)를 하여 은혜는 후골(썩은 뼈)까지 베풀어지고, 석실(귀중한 글을 두는 곳)에 패엽(貝多羅葉)의 경문을 돌려보내어 덕택이 곤충에게 까지 미치고 금궤(귀중한 글을 두는 곳)의 범어 문체로 된 게(偈頌: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유포하였다. 마침내 아뇩달지(상상의 연못)의 물로 하여금 신전(신주(神州):중국을 말함. 전(甸):왕도 주위 500리 이내 지역)의 여덟 내와 통하게 하고, 기사굴산(영취(靈鷲), 취두(鷲頭), 취봉(鷲峰))의 취령(푸른색 산봉우리)을 숭산(嵩山)과화산(華山)을 접근시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법성(모든 사물의 본성)은 응적(얼어붙은 듯이 고요함)하여 귀심(마음으로 셤겨 따름)하면 통하지 않음이 없고, 지지(지혜)는 현오(그윽하고 깊음)하여 간성(간곡하고 성실함)에 감동되면 마침내 나타나 놀랍게도 밤의 중혼(첩첩의 어둠)을 지혜의 횃불을 비추고, 아침의 화택(이승을 불이 일어난 집에 비유)에 윤택의 법우(불법을 비에 비유)를 내리게 하는 것과 같다. 이에 이류(섞일 수 없는 개념)하는 백천(수많은 강, 하천)도 바다에서 함께 모이고, 의(義)를 만 가지로 나누어 구분 할지라도 모두 결실을 이루게 하니 어찌 탕무(탕왕과 무왕)와 더불어 그 우열을 견주고, 요순(요와 순 임금 )의 그 성덕(임금의 덕을 일컫는 말)을 비교하는 사람이겠는가. 현장법사라는 사람은 일찍이 총명하여 이간(夷簡)에 뜻을 세워 초친(일곱이나 여덟 살의 어린 때)의 나이에 정신이 맑았고, 신체는 부화(겉치레만 화려함)한 세상에서 빼어났고, 정실(禪定을 수행하는 방)에 심정(心情)을 집중하여 족적을 깊은 암혈에 숨기어 삼선(三界六道 중 하나)에 머물며 십지(수행 단계)를 순유(이곳저곳 돌아다님)하고, 육진(심성을 더럽히는 六識의 對象界)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가유(迦維羅:고대 인도의 석가족이 세운 국가)에 거닐고 일승(성불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의 뜻을 모아기회를 따라서 만물을 교화 하더니, 중화(중국)에는 질(質:자료)이 없기 때문에 인도의 진문(부처나 보살이 설교한 문구)을 찾으려 멀리항하(갠지스 강)를 건너서 끝내 만자(대승교의 남김없이 원만하게 설법한다는 의미)를 기약했고 설령(大雪山 :히말라야)에 자주 올라 다시 반주(반쪽 구슬:소승교의 경전)를 얻어 진리를 찾아 왕환(왕복)한 십유칠재(17년), 동안 석전(불경:대장경)을 모두 통달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기로 마음먹음 으로써 정관(당나라 태종 때의 연호(年號))19년 2월 6일에 홍복사 에서 봉칙(칙명 혹은 칙서를 받듦)하여 성교(부처나 조사의 가르침 또는 그것을 적은 책)의 요문(중요한 문구)657부 전부를 번역하니 대해(넓고 큰 바다)의 법류(정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르는 물과 같음)를 끌어서 진로(번뇌. 세속적인 노고)를 씻어도 없어지지 않고, 지등(혜등:無明의 어둠을 깨뜨리는 지혜를 등불)의 불꽃을 길게 전(傳)하여 유암(어둠침침함)을 항상 밝게 밝히고, 스스로 승연(勝因緣:훌륭한 좋은 인연)을 오래도록 두지 않는데 어찌 이 뜻(종지:敎義의 취지)을 현양(세상에 높이 드러냄)하리오 이른바 법상(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상태)이 상주(변하지 않고 항상 존속함)하면삼광(삼신:해,달,별의 빛)이 가지런히 밝고, 우리 황제에 복이 이르면 이의(하늘과 땅)와 함께 견고할 것이다. 엎드려 어제의 여러 경론(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經과 그 가르침을 요약한 論)의 서문을 보니 옛 것을 본받아 지금의 것을 밝혔고, 이치(理致)는 금석의 소리를 머금고, 문장(文章)은 풍운의 윤필(潤筆)을 품고 있도다. 나(治:唐高宗의 이름)는 문득 가벼운 먼지로 큰 산에 보태고, 떨어지는 이슬로 흐르는 물줄기에 더하는 듯하여 간략(簡略)하게 대강(大綱) 들추어서 이 기문(記文)을 짖는다. 나(治:唐高宗의 이름)는 본래 재학(재주와 학문)이 없고, 성품이 총민(총명하고 민첩함)하지 못해 내전(불교의 경전)의 모든 문장을 끝내 보고 취하지 못하여 소작한 론서(論序)는 비졸(문장이 천박하고 졸렬하여 보잘 것 없음)한 곳이 더욱 많거늘 문득 내서(편지)를 보니 찬술(찬양하는 글)을 포양(칭찬하여 장려함)하여 몸을 어루만지며 자성(스스로 반성함)하니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함께 교차 하고, 법사(승려)님들에게 멀리 오시는 노고를 끼쳐 부끄러움이 깊어진다. |
③ 般若波羅密多
貞觀卄二年八月三日 정관입이년팔월삼일 內出 般若波羅密多心經 내출 반야파라밀다심경 沙門玄奬奉詔譯 사문현장봉조역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不增不減 是故空中無色 無受相行識 불증불감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乃至 無意識界 무안계내지 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依般若波羅密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故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眞實不許 故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진실불허 고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菩提莎婆訶 모지사바하 般若多心經 반야다심경 太子太傅 尙書左僕射 燕國公 于志寧 태자태부 상서좌복사 연국공 우지령 中書令 南陽懸 開國男 來濟 중서령 남양현 개국남 내제 禮部尙書 高陽懸 開國男 許敬宗 예부상서 고양현 개국남 허경종 守黃門侍郞 兼左庶子 薛元超 수황문시랑 겸좌서자 설원초 守中書侍郞 兼右庶子 李義府等 수중서시랑 겸우서자 이의부등 奉勅潤色 봉칙윤색 咸亨三年十二月八日 京城法侶建立 함형삼년십이월팔일 경성법려건립 文林郞諸葛神力勒石 문림랑제갈신력륵석 武騎尉朱靜藏鎸字 무기위주정장전자 | 정관(당(唐)나라 태종(太宗) 때의 연호(年號)) 22년 8월 3일 반야파라밀다심경을 출간한다. 사문(出家하여 수행하는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 현장(삼장법사)이 조서(임금이 선포, 명령을 백성들게 전달하기 위하여 작성한 문서)를 받들어 번역한다.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대자비심을 베푸는 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진리를 깨달은 지혜로 피안의 세계로 간다)를 행할 때 오온(불교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色,受,想,行,識)이 다 공(空:비다) 한 것을 조견(깨달음)하고 모든 현상의 고난과 재액을 벗어났다. 사리자(석가모니불 십대제자 중 한사람)야 색(色:물질)이 공(空:없다)에 다르지 아니하고 공(空)이 색(色)에 다르지 아니하여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受:감각), 상(相:지각),행(行:의지와 행함),식(識:인식작용)도 또한 이와 같나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법(진리)은 공상(허공의 상태)이어서 태어나고 소멸하는 것도 없고, 깨끗하고 더러운 것도 없으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으니 이런 까닭으로 공 가운데는 색(물질)도 없고 수(감각), 상(지각), 행(의지와 행함), 식(인식작용)도 없으며, 눈. 귀. 코. 혀. 피부(살). 뜻(마음)『육근(六根)』도 없으며 색(물질). 소리. 냄새. 맛. 촉감. 법(현상)『(육진(六塵)』도 없으며 안계(十八界중 처음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도 없고 내지(심지어)의식계(十八界중 끝인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도 없으며, 무명(밝음이 없는 것. 곧 불교의 진리를 모름)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했다는 것도 없으며 내지(심지어)노사(十二因緣의 하나로 늙음과 죽음)도 없고 또한 노사(늙고 죽는다는 의식)가 다하는 것도 없으며 고(괴로움), 집(일어나는 원인), 멸(사라져 없어짐), 도(우주의 근본 원리).『사제(四諦)』도 없고, 지(지혜)도 없으며 또한 득(획득. 성취)도 없으니 고 로 득(획득. 성취)한 바가 없으므로 보리살타(보살)가 반야바라밀다(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를 의지 하므로 마음의 가애(막힘. 걸림)가 없게 되고, 가애(막힘. 걸림)가 없으므로 있던 공포(무서움과 두려움)도 없게 되어 전도(모든 사물을 거꾸로 보는 것)와 몽상(헛된 꿈을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을 멀리 떠나 구경열반(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깨달음)을 이루었다. 삼세제불(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치는 일체의 모든 부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한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처가 통달한 최고의 깨달음.『無上正遍正覺 : 위 없이 두루한 바른 깨달음』)를 얻었노라. 고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는 이 큰 신주(신비한 주문)요, 이 큰 명주(밝은 주문)요, 이 상주(위가 없이 더 높은 주문)요, 등등주(누구에게나 평등한 주문)이니 능히 일체(모든 것)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진실하여 거짓이 없으므로 반야바라밀다(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를 세상에 널리 퍼뜨려 주문을 말하다.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가자 가자 피안「到彼岸의 준말.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으로 가자 피안으로 편히 가자) 모지사바하(빨리 깨달음을 성취하자) 반야다심경 태자태부 상서좌복사 연국공 우지령, 중서령 남양현 개국남 내제, 예부상서 고양현 개국남 허경종, 수황문시랑겸 좌서자 설원초, 수중서시랑겸 우서자 이의부 등이 봉칙(임금의 명령을 받음)하여 윤색(글을 더하여 꾸밈. 윤이 나도록 매만져 곱게 함)하였다. 함형(당나라 高宗의 年號)3년 12월 8일 경성(도읍의 성)의 법려(불법을 같이 배우는 벗)가 건립하고, 문림랑 제갈이 신력(보살이 갖추고 있는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석(돌 비석)을 세우고 무기위 주정장이 글자를 새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