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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7년 참여정부의 차별금지법 최초 입법 추진 때부터 본격화한 정계·재계·종교계의 반발은 보수 기독교 세력의 전면적이고 조직적인 혐오선동으로 이어지며 향후 십수년간 학생인권조례, 전국 방방곡곡의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한 인권조례, 서울시민인권헌장, 전국 각지에서의 퀴어문화축제 등의 사안에 있어 훼방을 놓기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21세기 대한민국 인권운동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고, 반동성애에다 이슬라모포비아, 다문화 반대운동이나 제노포비아, 인종차별 등의 고전적인 사안까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논란이 누군가는 차별받아도 된다는 혐오 정서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혐오의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프레임은 마치 수학에서의 공리처럼 '당연'한 것이니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소시민들이 겪는 각자의 불운과 부조리함이 권력구조의 문제가 아닌 소수자들의 존재 때문인듯 왜곡된 사회 정서를 형성했다.그리고 이로 인해 혐오가 정상화, 정당화되는 사회가 되었다.
특히 모두가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없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이라도 만약 직업 등을 잃거나 병이 생긴다면 극빈층이나 유병자가 될 것이고, 교통사고 등 사고로 신체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자라면서 어릴 땐 아동, 청소년이란 사회적 약자, 나이가 많으면 노년층이란 사회적 약자가 된다. 즉 사회적 약자는 그리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어찌보면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적 약자인 것이다.
그리고 한쪽에선 사회적 강자일지라도 한쪽에선 사회적 약자가 될 수가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인은 대한민국 내부에선 상대적인 사회적 강자에 속하지만, 미국이나 하다못해 일본으로 간다면 한국인은 사회적 약자이거나 사회적 소수자가 된다. 즉 당신이 아무리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이고 중산층 이상이여도 절대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안 될거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런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적어도 고용이나 용역 제공 등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서비스에 한에선 평등하게 보장하자는 법인 것이다. 즉 평등을 향해가는 출발선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2. 차별금지법은 왜 통과되어야 하는가?[편집]2.1. 차별금지법은 평등사회의 과정이자 필요조건
일상 생활에서의 차별까지 현실적으로 법의 제·개정이나 특정한 조치로 일거에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도적인 차별 역시 아직까지 해결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하물며 일상 생활에서는 더 그렇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의 차별과 혐오는, 왜곡된 오개념을 반박하고 올바른 정보를 알려나가는 노력과 인습을 타파하고 벗어나기 위한 훈련이 반드시 있어야만 없앨 수 있는 법. 그러나, 이런 노력은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일상생활에서의 차별과 혐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명백한 차별, 혐오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시정하거나 법적으로 규제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을 알아차리기 위한' 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 또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불합리하고 부당한 차별을 좋게 여기는 사람은 없지만, 무엇이 불합리하고 부당한 차별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으로도, 학계에서도 진행 중이다. 이런 문제는 가치 판단의 차이로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회적 합의점으로서의 '모범 답안'을 찾아가기 위한 사회적 진보의 일환이라는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의의가 있다.
2.2. 성 소수자의 권리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편집]2.3. 사회적 차별과 혐오는 중첩되고 교차한다[편집]
예를 들어 '난민보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반동성애 선전 금지법', '종교의 자유 보호법', '젠더폭력방지법' '인종차별방지법' 등의 별별 복잡한 인권옹호 법안이 실제로 시행된다 가정해보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등쌀에 한국 망명길에 오른 청각장애인 무슬림이 있는데, 이 사람은 흑백혼혈이며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일본계 한국인 트랜스젠더 남성과 사랑에 빠졌고 남편을 개종시키기에 이르렀지만, 난민 신분증상의 법적 성별을 바로잡지 못한 관계로 법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이 일하던 수퍼마켓에 온 악성 손님들에게 히잡을 찢기고 성희롱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청각장애인이고 무슬림이고 혼혈인지라 사건을 수사하던 인종차별적이고 장애인 차별적인 경찰에게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했고 무성의한 기독교도 경찰관에게 홀대당했으며 아내가 겪은 일에 단단히 화난 남편과의 연락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복잡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 울분에 가득차 높으신 분들한테 항의를 하려는데, 어느 천년에 저 별의별 인권옹호 법안을 찾아 적용하고 갖가지 차별시정기구를 일일이 돌아다닌단 말인가? 물론 위의 사례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몇몇의 경우는 충분히 겹쳐질 수 있다.
어떤 개별 사유에 따른 차별 경험의 합으로만 바라보거나 여러 사유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이런 복잡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경험을 설명하려 한다면,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진 사회적 소수자가 겪어야 했던 수모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차별이 발생하는 맥락을 여러 요인과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차별이 어떤 경험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복합차별을 다룰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비록 대한민국에서 실제 시행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의 개별적 법률이 크고 작은 기능을 하며 특정한 차별사유를 구체화, 심화하여 분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줬지만, 개별법만으로는 다양한 맥락에서 이뤄지는 복합적인 차별 경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복합적 차별 사유 중 효과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여 구제받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러한 차별이 발생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차별의 경험을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억울한 차별의 경험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다.
2.4.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더 급한 과제가 있음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허나, 이 더 급하다는 것, 무엇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은 보편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이를테면, 한 성전환자가 능력과 하등 무관한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공개채용에서 '걸러지는' 등의 불이익을 겪는 것이 주취폭력으로 순직한 여성 소방관이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지 못해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일보다 하찮은 사안이며 좀더 시일을 두고 해결해나가도 되는 문제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가?[1] 천부인권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마땅히 부여받는 권리이지 다수가 사회적 합의로 허락하여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평등은 불평등과 갈등을 빚으며 발전한다. '인권의식 함양'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이 아니라 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인권의식을 함양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차별금지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가깝다.
그리고 제도적 해결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88%에 달하는데 전혀 급할 이유가 없다.(하단의 사회적 합의 관련 단락 참조.) 임대차 3법은 지지율이 30%대인데도 통과시켰다. 또한 지지율과는 달리 인권에 관한 법률들은 국민의 지지율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프랑스의 사형제 폐지 여론에 70%가 넘는 반대가 있었는데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밀어붙여 사형제도를 폐지한 바가 있다. 국민의 지지율대로라면 인권을 침해하는 법률도 국민의 지지율에 의해 제정될 수가 있고 결론적으로 국민들 스스로가 권리를 잡아먹는 괴물을 뽑을 수가 있다. 나치와 중우정치의 사례 참조.
2.4.1. 성소수자까지 차별하지 말란 건 시기상조 아닌가?
실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히자 병력/출신국가/언어/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성적 지향/학력 7개 차별금지 사유를 빼버린 채 입법하려 했는데, 이에 대해 '지금은 어려우니 일단 논란이 되는 조항은 후일을 기약하고 가는 게 어떠냐'는 옹호론이 나왔다. 법조문에 적힌 차별금지 사유는 예시조항이므로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에 등에 대한 차별이라는 말로도 포괄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이러한 의견은, 현실적으로는 아주 이해 못할 의견은 아니다. 실제로 해외의 증오범죄방지법이나 차별금지법 등의 사례에서는 이런 예시 조항들이 조금씩이나마 다르다. 세계인권선언도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혹은 기타의 의견, 국민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이들과 유사한 그 어떤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문구로 9개 사유만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인권규범은 세계인권선언 이후 차별금지사유를 더욱 많이 밝혀나가고 있다. 차별금지사유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것은, 인류가 역사적으로 깨달아온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자는 의미가 있다. 헌데, 법무부의 2007년 입법 시도에서는 자신들이 밝혀놓은 것을 다시 덮어버리려 했다는 과오가 존재한다. 차별금지 사유에서 특정 항목을 밝히지 말자, 빼버리자는 것은, 그 해당사유와 관련된 차별은 해도 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세상에 '차별받지 말아야 할 자 vs. 차별받아도 되는 자'는 없으며, 따라서 이 둘을 구분해 놓은 차별금지법은 오히려 어떤 이들은 차별하면 안 되고 나머지들은 차별해도 되는 식의 이중잣대식 '차별 조장법'이라는 오명을 쓸 수가 있다. 평등에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평등이 아니다.
2.4.2.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는데 굳이?
나중에 소동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캠프 측에서 내세웠던 차별금지법 반대 사유이기도 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그 법에 의거하여 활동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에 있어 왕성한 활동을 벌였고 상당한 결실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직권조사 권한, 긴급구제 조치 권고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한은 절대 충분치 않다.
우선, 국가인권위원회에의 진정접수 현황을 보면, 2001년 53건이던 차별행위 진정이 2010년 2,681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권침해 진정에 비해 적은 수로, 2015년 전체 진정 건수 중 차별행위 진정은 20.4%이다. 한국사회에서 과연 차별행위가 인권침해보다 적게 일어날까? 진정이 적은 이유는 누군가 부당한 차별을 당해도, 그것을 ‘차별행위’로 인식하지 않거나, 인식하더라도 어떻게 구제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차별행위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이해의 장을 넓히고 지금은 전문 인권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이들에겐 어렵게만 느껴지는 권리구제절차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차별시정기구를 두어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홍보와 교육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행위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을 총괄하는 직제와 구성을 갖출만큼 몸집을 키우고 제4의 헌법기관에 준하는 독립성을 확보하여 차별시정기구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차별행위를 보다 폭넓게 다뤄야 한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차별행위 진정 전체 건수 중 10%에도 못 미치는 진정만이 인용 처리되고 나머지는 대개 기각, 각하된 채 묻힌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조직의 구성과 절차 등을 다루는 법이라 차별행위를 분석하고 판단할 때 어떤 점을 살펴야 하는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등 실체적 내용을 다루지는 않기에 차별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데에는 현재의 국가인권위법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에서 벌어지는 층간소음 문제를 지적한 포스터가 소음의 원인으로 어린이와 여성만을 저격하는 내용이라면 차별적 광고에 해당할 것이나, 포스터로 인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면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인권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하되 풍부하게 차별행위를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 법령과 전문적 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게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기능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비록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운동사에 남을 의미있는 권고들을 적잖이 해왔지만, 권고를 들은 기관이나 법인의 입장에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그만이었다. 그런 곳에서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은 내부고발자가 조직에서 매장당하듯이 꾸준한 인권침해를 지속해서 견뎌야 했다. 과거 이런 일이 있었다.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원 모집 대상을 대학 여자 재학생/휴학생으로 제한한 것이 성별 및 학력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이라 주장하는 진정이 있었는데, 인권위에서는 이를 '학력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로 결론지었다. 왜 성차별로 결론짓지 않았냐면, 인권위가 성차별이 아니라 본 것은 아니지만 고용노동청으로부터 성차별 시정명령을 받은 회사가 인권위 권고가 나오기 전에 '여자'라는 조건을 삭제한 것이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기간제법, 파견법, 연령차별금지법 등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 그만인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와 달리 씹었다간 인실좆 당하는 수가 있는 시정명령 권한을 갖추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역시 다양한 권한과 기능을 가져서 적절한 방식으로 사회적 차별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2.4.3.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뭐가 달라지기나 할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7년 제정된 후 10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진정이 크게 늘어났다. 이것은 그동안 장애인 차별이 그만큼 늘어나서가 아니라, 차별을 당했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가지 않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져서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주택 임대를 거부당하거나 승차를 거부당하고 모욕을 들었을 때, 과거에는 이런 차별 경험이 공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곤 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존재 덕에 장애인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 경험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분노하고 위로해주고, 주거의 자유를 보장하고 휠체어 승하차에 보다 용이한 저상버스를 늘려나가는 등 고칠 수 있는 부분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다고 장애인 차별이 없어지지 않았듯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사회 곳곳의 온갖 차별적 언행이나 제도들이 쉬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으로 피해를 입었거든 자신이 화났다고, 바로잡으라고 분노한 목소리를 낼 창구가 생긴다는 점은 분명 다르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실현될 수 있다. 차별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절차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기 위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이다. 차별 경험을 누군가가 겪은 불행한 일로만 여긴 채 잊어버리지 않고, 아직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못함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야 한다.
2.4.4. 차별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니 개별법 개정으로만 만족하자?
위의 주장과 같이 실용론을 내세우면서 반대하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문제가 많다. 먼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은 제재로 피해가 생길 것이 우려되면 해당 제재의 범주가 최대한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해놓으면 될 일이다. '차별을 정확하게 구분하기에는 너무 많은 요소가 존재한다'는 반대 측의 주장은 선진국의 사례처럼 차별사유는 7~13가지 등의 핵심사유로 한정시키되 나머지 세부적인 차별 영역은 하위 법령으로 해결하도록 유도시키면 해결할 수 있다. 관련논문 575~576 페이지
사법체계의 복잡성만 늘어나니 기존법을 개정하고, 사법체계의 공정성을 세우면 해결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기존 사법체계의 개정 및 사법체계의 공정성 확보 역시 그 자체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팩트체크했듯이 기존의 법체계는 일부 영역에서만 적용되고 있으며, 인권위법의 경우 인권위의 권한이 조사와 권고 수준에 그쳐 인권위를 통한 구제도 한계가 크다. 따라서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만으로는 실질적인 차별구제에 한계가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기존의 개별법 개정으로 차별금지법을 대신할 경우 차별 사유를 지정한 개별법의 수가 더 많아지는 만큼 오히려 반대 측의 주장보다 사법체계의 복잡성이 더 커질 수 있다. # 또한 포괄적 차별금지법만으로 차별구제를 시행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거나 부작용이 우려되면 기존의 개별법을 개정하고 하위 법령으로 포함시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면 된다.
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의 사례가 불명확한 경우가 나온다고 차별금지법상 차별 사유를 선진국 수준까지 넓히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차별행위 방치를 하는 것이 힘들더라도 보완을 거쳐 최선의 행태로 막을 수 있는 조항을 가지는 것보다 사회에 더 이로운 것인가? 그렇다는 실증적, 학술적 근거는 없다. 반면 보완을 거쳐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행태로 차별금지법을 가지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더 낫다는 것은 최소한 실증적 근거는 있다. OECD에서 내놓는 Better Life Index나 취약국가지수, 인간개발지수 등 삶의 질을 나타내는 각종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보다 더 나은 점수나 순위를 차지하는 나라들의 대부분은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OECD 회원국들 중 세 지수 모두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들은 거의 모두 차별금지법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2]. 취약국가지수 순위(위키백과), 인간개발지수 순위(위키백과), OECD BLI 순위(위키백과, Ranking 참조)
사법체계의 공정성을 내세워서 반대하는 주장은 사실 논점일탈의 오류에 가까운 주장이다. 사법체계라는 몸이 망가져있으면 그 몸 자체를 고칠 수단을 이용해서 고치면 될 일이지 옷을 안 만든다고 저절로 고쳐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사법체계의 공정성 부족을 이유로 반대를 한다면 차리리 국회를 폐지하고 입법권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 논리에 더 맞을 것이다. 사법체계가 불공정한 상황에서는 어떤 법안을 만드는 간에 그 법안이 불공정하게 작동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다수자 무고론을 내세우는 것은 정작 다수자의 횡포 역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주장이다. 사실 다수자의 횡포가 소수자의 횡포보다 더 취약하다. 죄없는 다수자라도 잘못된 인식으로 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면 이것 역시 다수자의 횡포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소수자의 횡포만큼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양되어야 할 점이다. 또한, 차별의 문제는 집단 대 집단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개개인 간의 문제로도 생길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차별의 문제가 항상 다수자 대 소수자 구도로만 생기지 않는다는 것 역시 해당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2.5. 차별금지법은 극단적인가?
2.5.1. 차별금지법은 다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차별금지법은 흔히 집단 대 집단의 문제로 여겨진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차별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남성이 여성을 차별한다는 식으로.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해 다수자의 양보를 요구하는 법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차별은 집단 대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성차별 진정 중에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간호사 채용을 거부당한 맨박스 관련 사례도 있었고, 외국인 영어교사 채용에서 백인만을 뽑는다고 광고했다가 인종차별로 물의를 빚은 일도 있었다. 이는 백인이 흑인을 차별한 것이 아니라, 피부색이나 출신국가, 민족의 차이를 구분하면서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문제이다. 차별은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차별이 존속하는 한 우리 모두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권리는 파이(pie)가 아니다. 누군가 권리를 누리게 된다고 내가 뭔가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고 이성결혼이 불법화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법 앞에 사랑을 인정받을 권리가 보다 널리 인정되는 것으로, 인권을 '인권답게' 하는 과정이다. 누군가 겪는 차별이 정당화될 때 또다른 누군가를 향한 차별도 정당화된다. 그런데 일자리는 파이라서 누군가 누리면 사라진다. 그러한 차별의 화살은 언젠가 남을 향해 차별행위를 하거나 남이 겪은 차별을 묵인한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누구도 영원히 어느 방면에서나 다수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자성은 정말 셀 수 없이 어느 누가 그 모든 소수자성을 다 피해가겠는가? 동성애자 백인이 이성애자 흑인에게 차별당할 수도 반대로 이성애자 흑인을 차별할 수도 있으며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집회에 다녀오던 길 횡단보도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며 멀쩡히 살아가다가 눈떠보니 희소질환자가 되어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 열거한 모든 예가 실제로 차별에 쉽게 노출되는 사람들인데 영원히 여기 적히지 않은 모든 소수자성까지 피해갈 자신이 있는가? 차별이 정당한 사회를 만들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스스로가 영원한 다수자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소수자는 한 사회가 특정한 인민들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배제하기에 형성된다. 그래서 소수자들이 차별 경험을 더욱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데,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결국 평등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우리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 동료 시민이 되어가기 위한 소중한 계기이다. 차별금지법은 그렇기에 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닌 모두를 위한 법이다.
2.5.2.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말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불안을 부추기는 이들이 있다. 일단 최근의 차별금지법이 정하는 범위는 1. 고용, 2.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3.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4. 법령과 정책의 집행 이다. 즉, 유튜브 댓글이나 교회, 공공장소에서 동성애를 죄악이라 한들 차별금지법이 정하는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전투적 무신론자가 공공장소에서 "Religion: Together we can find a cure. (한국어 번역: 종교: 함께라면 치유할 수 있습니다.)"라는 티셔츠를 입거나 종교는 망상이라 주장해도 마찬가지다. 차별금지법 비판 중에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애초에 집회와 집회 발언을 제한하지도 않는 최근의 차별금지법안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차별금지법만으로 모든 증오발언을 규제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다. 증오를 띤 표현이나 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의 파급력이나 수위, 형태의 경중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이 필요하다. 여러 국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혐오선동이나 차별행위에 대한 일벌백계보다는 '차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교육과 더 많은 안내 등이 실질적으로 차별을 줄여나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처벌 위주의 접근보다는 차별에 대한 의식과 감각을 키우고 확장할 수 있도록 풍부한 대처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혐오선동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선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모두의 자유를 위한 행동이다. 표현의 자유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이자, 누구한테 이야기가 들릴 권리이다. 국제인권규범은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발언이나 표현을 표현의 자유랍시고 보호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자유를 침해당하는 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란 타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누려야 한다.[3]
혐오표현의 금지는 자유 대 평등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유 대 자유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이라 신앙고백하는 것과 무슬림이라 신앙고백하는 것의 무게가 같을까? 아니다! 누군가는 교리라는 이름으로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데, 누군가는 이성애자 커플들 사이에서 동성 애인과의 데이트 썰조차 풀지 못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특권일 뿐이다.
국가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서 혐오와 차별을 없애가겠다는 의지를 밝힌다면 우리들의 대항표현도 훨씬 당당하고 자유로울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을 포함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사상을 말하는 데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 Hate speech에 맞서는 Counterspeech가 중요하다. 차별의 피해당사자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 악의적인 편견, 부당한 주장 등에 맞설 때 혐오표현도 무력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당당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계기는 반대하는 주장을 무력화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발언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계기는 성소수자들 스스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왔기 때문이지 동성애에 반대하는 자들의 반대입장 자체를 막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동성애를 포함한 성소수자가 그동안 유교적이고 성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말하는 차별없는 구성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반대의 주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라 그들이 주장하는 합리적인(의학적, 과학적인) 근거들을 토대로 대중들을 설득해나가는 것이 가장 부작용없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자들이 지속적으로 아무튼 죄악이다 식으로 나오면 설득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2.5.3. 차별금지법과 자유권적 기본권 관련 국제지수 비교
자유권적 기본권을 얼마나 보장받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지수로는 프리덤 하우스의 세계의 자유(Freedom in the World), 자유지상주의 성향 싱크탱크인 카토 연구소(Cato Institute)[4]에서 발발하는 인간 자유지수(Human Freedom Index) 등이 있다.
먼저, 세계의 자유지수[5]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상위 25개국 중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는 사실상 일본 하나뿐이며, 일본보다도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 12개국(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뉴질랜드, 캐나다, 네덜란드, 우루과이, 호주, 덴마크,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모두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상태이다. 또한 형법 130조에 명시된 국민선동죄로 증오발언을 매우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는 독일[6]은 2021년 기준 20위로 오르면서 63위인 한국보다 자유권적 기본권이 보장된 것으로 나왔다. #, #
다음으로, 인간 자유지수[7]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8]보다 순위가 더 높은 상위 25개국 중 일본, 홍콩 두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 모두 포괄적 수준의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있다. 홍콩이 공식적으로는 중국 영토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 상위 국가 가운데 포괄적 수준의 차별금지법이 없는 독립국가는 사실상 일본 하나 밖에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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