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업신여기느뇨 - 바울은 앞서 3절에서의 책망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다. 첫번째는 연약한 형제에 대한 언급이다. 즉, 채소만 먹는 자들이 고기를 먹는 자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판단하느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크리네이스'로 의문문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책망에 대한 좀더 강한 어조이다.
연약한 형제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성숙하지 못한 신앙으로 믿음이 강한 자를 판단한다. 바울은 이들에 대하여 '너희가 무슨 권리와 근거로 그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는가 ?'하며 연약한 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도록 질문 형식으로 그들의 행위를 깨우치고 있다. 두번째는 믿음이 강한 자들에 대한 언급이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겼다. 즉,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 고기도 먹고 채소도 먹는 자들이 채소만 먹는 자들을 업신여겼다. '업신여기느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여수데네이스'로 강자가 약자를 멸시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여기서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책망하고 있다.
양자간에 이러한 태도는 결코 어느 쪽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모두 온당치 못한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바울은 자신을 포함하여 믿음이 강한 자나 연약한 자 모두가 서로간에 판단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장래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여기서 '심판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베마티'는 운동 경기에서 심판이 서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장소에 있는 심판은 경기 도중에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즉시로 그들의 자격을 박탈하여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도록 하며 승리한 자에게는 상을 주었다.
따라서 각자는 그 날에 자기가 행한 대로 직고하며 선악간에 심판을 받을 것이니 남을 판단하거나 업신여기는 행위를 삼가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롬 14: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기록되었으되 - 이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은 혼합형으로서 사 45:23과 49:18을 결합시킨 것이다. 바울은 기억에 의존하여 두 구절을 무의식적으로 혼합 인용했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인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어느 방법이든 간에 구약성경의 권위있는 가르침을 인용하여 자기의 교훈을 뒷받침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 인용문 역시 앞절에서 형제를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이를 엄하게 책망하면서 결국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상기시킨 교훈에 대해 구약성경으로 인증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 이 말은 선지서에서 자주 나타나는 관용구로서.반드시 성취될 중차대한 진리를 선언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주께서 중대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규칙적인 관용구를 사용했던 것과 흡사하다.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 다만 '여소몰로게세타이''자백하리라'와 '파사 글롯사''모든 혀'이 두 단어 순서가 뒤바뀌어 있을 뿐이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준 이 예언의 말씀은(사 45:23) 여기서 구약성경의 원래의 의미 그대로 사용되었다. 즉, 한 분이신 지고한 하나님의 최종적 권위에 대항하는 자들은 모두 최후 심판시에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무릎꿇고 인정할 것이다 예컨대 남을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행위는(10절)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심판의 영역을 침해한 것이다.
따라서 형제를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우상 숭배의 올무에 빠지는 행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자백하다'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70인역에서 '인정하다', '자백하다', '찬양하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는 모든 사람이 최후에는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숨김없이 자백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내용에 대해 모든 인류가 주께 찬양하며 경배하고 복종하게 됨을 나타낸다. 즉, 이 구절은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판단하는 이방인들의 회심을 암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통치 행위인 구원과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이 자기들이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이방인들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의 회심이 이스라엘과 성경에 의해서 선포된 한 분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순종임을 상기시켜 주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크신 구원 안에서 서로 받을 것을 촉구한 것이다.
아울러 사 45:23의 인용문이 빌 2:10, 11에서는 부활하시고 승귀하신 그리스도의 신분과 역할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자백'을 말할 때 사용된 반면 본절에서는 '하나님께 자백하리로다', 즉 하나님의 심판에 적용되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바울이 그리스도의 주권과 하나님의 궁극적 권위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고 하는 자신의 통상적인 습관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롬 14: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 앞에 나온 구약성경 인용문에서 끌어낸 권고적인 결론으로서 이것은 10절의 사상을 되풀이 한 것이다. 여기서는 각 단어가 매우 강조적인 것으로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각인'은 어느 쪽도 배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강한 자나 연약한 자, 즉 판단하는 자나 판단받는 자 양쪽 모두를 가리킨다. '
자기 일을'은 자기가 판단하는 형제의 일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일에 관해서 직고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께'는 자기 파당이나 혹은 자기와 친밀한 동료에게가 아님을 강조한다. 즉, 인간이 아는 모든 것을 다 아시되 사람 마음의 은밀한 생각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 직고해야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
직고하리라' 장부에 적힌 대로 세밀히 '보고하다', '회계하다', '계산하다'는 뜻으로 심판의 철저성을 나타낸다. 신약성경의 용례를 보면 마 12:36;눅 16:12;행 19:40;히 13:17;벧전 4:5 등에서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믿음이 있다고 하여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최후 계산(셈)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예외없이 각각 자기가 행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자백할 뿐만 아니라 계산해야 한다는 진리를 각 단어마다 강조하여 선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