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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산이 늠름한 것은
또보짜므는 아홉 살짜리 짜러를 마약 판매상인인 몽족 사람에게 딸려 보냈다.
그리고 습관처럼 기도처로 들어갔다.
기도처 안은 캄캄했다.
기도를 하면 그 캄캄함 속에 빛이 비추려나?
빛을 만드셨다는 으그샤의 은총이 짜러에게 임하려나?
또보짜므는 캄캄함을 짊어지고 대신 고난이라도 받아 낼 듯이 어두움 속에서 기척도 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짜러의 아버지 짜터는 집밖으로 나와 보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마약을 빨 참으로 마약대를 끌어 당길 뿐이었다. 마약이 아니라면 아들을 파는 일도 없었겠지만 또 마약이 아니라면 아들을 파는 고통을 이길 수도 없었다.
아들을 파는 아버지!
그러나 역시 그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모든 아버지는 숙명적으로 아버지이다.
그도 갈라진 대나무 벽 사이로 밖을 내다보며 괭하도록 들어간 두 눈으로 짜러를 찾았다. 짜러가 뒤를 돌아보며 엄마를 돌아보는 모습이 카메라의 사진처럼 들어왔다.
동생 짜허가 땅바닥에 앉아서 땅을 보며 풀만 뜯고 있더니 형 짜러가 다가오자 뭔가를 아는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
짜러는 의젓했다. 아니 늠름했다.
꼭 산 같았다.
산은 언제나 늠름했다.
폭풍이 와도, 장대비가 내려도. 또 반대로 산을 태울만한 불볕이 쏟아져도, 또 산에 불이 나도, 산은 언제나 늠름했다.
짜러는 그 산과 같았다.
짜허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뭔가를 말한다. 그러더니 저 만치 앞서 있는 몽족 주인 인간 도둑놈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제단 위에 올라간 제물처럼 자기를 운명 앞에 맡겨 버렸다.
의외로 마약상인인 몽족 주인은 인간미가 있었다.
짜러가 기특한지 짜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깨에 걸려있던 헐렁해진 미처(*라후부족의 붉은가방, 붉은 실과 검은 실로 베를 짜서 만들고 어깨띠로 오른편 어깨에서 왼편 옆구리로 멘다.)를 똑바로 메주는 품세가 꽤 자상해 보이기도 했다.
작은 일이었는데 보는 사람들에게는 안도가 되었다.
하긴 진실한 모습은 큰 일 보다는 작은 일을 통해서 나타나는 법이다.
짜러의 아버지 목에서 갑자기 가래가 끓었다. 마약대를 내려 놓으며 캭하고 가래를 끌어냈다. 상채를 가까스로 반쯤 일으켜서 대나무 바닥 구멍사이로 가래를 내뱉었다.
가래는 대나무 틈새에 걸렸다.
무언가 먹을 것이 떨어지나 기대하고 잽싸게 달려왔던 개와 닭들이 잠시 소란을 떨더니 금새 잠잠해 지고 만다.
짜러의 아버지는 다시 멍하니 자리에 누워서 마약대를 입으로 끌어 당겼다. 새똥처럼 생긴 까만 생아편이 드디어 석유 호롱불에 녹아 연기가 되어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오늘 마약은 너무도 맛이 없다. 연기가 달콤하지 않다.
마약연기가 아니었다.
마치 짜러가 노예의 삶에 지치고 지쳐 결국 죽어가며 뿜어내는 기진하여 허예진 마지막 숨이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와 어느 사이 자기의 숨통을 막는 것처럼 느껴졌다.
울고 싶다.
그러나 말라버린 육체는 울음도 눈물도 내 벹지 못한다.
지나가던 짜뿌이 엄마가 쓴 소리 한마디를 기어이 한다.
"에이 휘더 빠 어떼떼 마 다"
(에이 마약쟁이! 정말 나쁘다)
자기를 두고 하는 소리겠지만 어찌할 수 없다.
하긴 지금 짜프는 짜러의 아버지가 아니다.
마약쟁이다.
그저 마약쟁이일 뿐이다.
어째든지 짜러가 산마을을 떠났다.
짜러의 기구한 이야기를 산마루에 남기고 짜러도 산마을을 떠났다.
라후부족은 참 오랜 세월동안 이런 저런 일로, 정말 기구하고도 참혹한 여러 가지 사연들을 남기고 한 사람씩 또는 한 가정이, 때로는 마을 전체가 그들의 거처를 떠나서 옮기고 또 옮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저 멀리 중국 당나라 시절 운남성 최고 북부 이천미터 산 꼭대기 호수 눅구호수(Lugu lake)에서부터, 아니 더 오랜 시절은 티벹 청해지역에서 부터, 남쪽 산 능선을 타고 이주를 계속했다.
처음, 라후부족이 아직 이주를 시작 안 했을 때는 꽤 큰 민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오랑케부족은 결코 만만한 민족이 아니었다. 만리장성을 쌓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중국의 운명과 평안을 좌우하는 영향력이 있는 민족이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들을 이(왜)족(荑族오랑케족)이라 부르면서 해 뜨는 동쪽 이족을 '동이족'이라 부르고 고비 사막을 건넌 서쪽 이족을 '서이족'이라 불렀다.
동이족은 만주 벌판을 기점으로 부족국가들을 형성하다가 고구려와 거란과 같은 거대한 나라를 만들었고 결국은 중국의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서이족은 동이족에 비하여 더욱 용맹스러웠다. 말을 타고 고비 사막을 비호같이 달리던 민족이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 산맥 기슭이라 하여도 족히 3000m가 넘는 높은 산에서 눈보라와 가파른 산비탈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내며 생존한 철보다도 더 강한 민족이었다. 한 때 징키스칸이 전 세계를 점령하여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진나라 이후에는 오호십국시대를 중국 중원에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높은 산에 둘려 갇혀 지내야 했다. 이웃 마을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들은 점차 폐쇄적이 되었고 민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더니 부족은 종족으로 갈라지고 종족도 여러갈래의 족속으로 나뉘게 되었다. 언어도 서로 달라졌고 전통과 관습도 바뀌게 되었다. 부족을 부르는 이름도 서로 달라졌다.
그들 중에도 특히 현재 중국에서 이족(彝族)이라고 불리우는 민족은 중국의 서남쪽을 지배하던 큰 민족이었다. 이족은 뤄뤄(羅羅)또는 오만(烏蠻)이라고도 불리었다. 처음에는 중국 서남부, 산악지대인 쓰촨성과 운남성 1500~2000m 산간지대에 흩어져 살았었다. 현재는 중국정부의 이주계획을 따라서 고도1000m정도의 지대에 집단마을들을 구성하고 살게 되었지만 1980년대 이전만 해도 2000m 고지대에서 15내지 30가구씩 소단위 마을을 구성하고 살았었다. 1978년, 중국 정부는 순수 이족의 인구는 약 4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쓰촨 성(四川省) 량산 이족 자치주(凉山彝族自治州)와 추슝 이족 자치주(楚雄彝族自治州)에 사는 이족의 수가 무려 57만 명이라고도 발표했다. 이족은 소수부족 중에서도 그 역사의 뿌리가 확실한 부족인 것이다.
그러나 이족도 순수 이족으로만 존재할 수 없었다. 이족은 산악지형으로 말미암아 부족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부족은 또 종족으로 갈라졌다.
리쑤족(傈僳族) ·나시족(納西族) ·하니족(哈尼族) ·바이족(百族) 모수족(摩杸族) 아창족(阿昌族) 묘족(苗族) 노족(怒族) 수족(水族)그리고 납호족(拉楛族) 또는 라후족(Lahu people) 므소족(Moosuh people) 이들 모두는 바로 이족 언어계열인 티벹트-버마(또는 중국) 언어를 쓰고 있다. 이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얀마 북부와 태국 북부, 라오스, 베트남 북부에도 흩어져 살고 있으며 현재도 수렵생활과 산비탈 농사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들의 인구수를 조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학자들의 짐작은 총 오백만~일천만으로 헤아려진다.
그리고 보면 이족과 이족 계열의 사람들은 결코 세계가 소홀히 다루고 가서는 안 될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수 천년동안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함께 숨 쉬며 함께 살아 온 인류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삶의 고난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을 겪으면서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하여 오늘까지 수 천년을 흘러와, 지금 태국 차앙라이, 암퍼 황, 메홍손 산자락까지 이렇게 내려 온 것이다.
그 수많은 히말라야 산자락에 밀림의 나무보다 더 많은, 짜러의 사연과 같은 이야기들을 남기면서 말이다.
짜러의 부족인 라후니족은 특히 그 심성이 넓고 이해심이 깊어 타 부족의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또 천부적이라 할 만큼 뛰어난 음악적 감각으로 항상 행복해 보였고 숫한 고난도 노래로써 극복하여 타 부족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예로부터 호랑이를 잡는 사냥부족이었다.(*'라후'라는 단어의 뜻은 '호랑이 사냥'이다) 아주 용맹스러운 부족이어서 타 부족민들이 라후족을 두려워하는 뜻에서 붙여 준 이름이다.
라후부족은 라후나 라후니 라후씨 라후셀레 라후프 이렇게 크게 다섯 종족으로 나눠진다.
그 중에서도 특히 라후니족은 라후부족 중에서는 그 수가 가장 많고 또 그 용맹성이 뛰어나고 산에서 싸우는 전투 능력이 뛰어나서 2차대전 후 공산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이 태국과 미얀마에서 대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용병으로 채용되어 싸웠다.(*그들 중에 사천여명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망명되어 그 후손들은 지금도 미국과 태국에서 살고 있다.) 또 베트남 전에서도 용병이 되었다.
그들은 산길과 정글을 삵괭이 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정글 최고의 사냥꾼들이다.
바로 짜러는 이러한 라후니 종족이었던 것이다.
용맹스럽고 고난을 잘 이기는 고산지 사람!
그러나 비극의 주인공으로 떠돌아 인류의 검은 구름이 되어 비애의 비를 온 땅에 뿌린 산지 종족인!
그 비애의 비로 중국 서남부의 산림을 이루고 산림을 지켜 온, 사실은 말할 수 없이 착한 사람들!
오늘, 짜러는 그의 수 천년 선조들처럼 그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고향을 떠나는 것이다.
짜러의 이야기가 짜러가 몸으로, 마음으로 겪어 만드는 슬픈 사연이기에 진실한 호소가 되고, 그 호소가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만들고, 황금 만능주의로 물들어 경건함을 상실한 현대인을 경건하게 만들고,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여 사랑을 위하여 머리를 숙이게만 할 수 있다면, 이 슬픈 짜러의 이야기도 우리 인류에게 고운 역사를 새롭게 쓰게 하는 진주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겠는가?
짜러는 늠름하게 몽족 새 주인을 따라 갔고, 동생 짜허는 땅바닥에 앉아 울음을 그치고 그 작은 뭉툭한 손으로 풀을 뽑았고, 짜러의 어머니는 산비탈에 앉아서 망연자실 하늘과 산을 바라보았고, 그의 아버지는 아편 연기 속에서 대나무 틈새를 헤집으며 짜러를 찾았다.
이들은 인류가 사랑이 되기를 바라는 신의 뜻에 따라서 또 말없이 비애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었다.
그들의 수천년 조상들처럼 또 마을을 떠나고, 떠나보내며 역사의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에게 사랑의 호소가 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은 인류의 역사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것처럼 마을을 떠나며, 또 떠나보내며 짜러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여, 당신들이 이런 우리들을 모르고 있다면, 외면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비극이기에 앞서서 당신들의 비극입니다.
죽은 사랑, 죽은 마음, 죽은 신앙, 죽은 인격....
그리고, 그 죽은 인격을 가리는 위선! 회칠한 무덤!
그것은 당신들의 비극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참한 이 일을 오늘도 계속 당해야 합니다. 실천되는 인류의 사랑을 위하여 우리는 십자가처럼 고난의 상징인 것입니다.
주는 사랑도 힘든 것이지만 받는 사랑은 자기를 죽이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짜러를 데리고 간 몽족 주인은 마약상인이었다.
얌체처럼 난 턱수염하고 양 턱주가리에 굵은 한 오라기씩 난 수염 두 개가 얼굴에 균형을 잡아 주듯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마약상인이라면 험악해야 할 것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꽤 인정이 있었다.
그 덕에 짜러는 비교적 마음을 편하게 하여 몽족 주인과 함께 관광객용 모터 쪽배를 타고 강(*곡강, 메콩강의 지류)을 내려와서 치앙라이 시내를 구경할 수 있었다.
몽족 주인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치앙라이 시내 여러 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자동차에, 빌딩에, 시장에.... 짜러는 주인이 말하는 말이 태국말인지 아니면 몽족말인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도시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영민함 때문이었다. 짜러는 처음 보는 도시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도시 문명을 보는 것 마다 사냥감을 집어 삼켜 내듯이 침을 삼키며 살폈다.
짜러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밤시장이었다.
이튼 날 짜러는 처음으로 자동차를 탔다. 쏭테우라고 불리는 픽업자동차였다. '쏭테우'라는 이름은 픽업 자동차 짐칸을 포장으로 씌우고 긴 간이의자를 양편 옆에 나란히 두 줄로 놓고 사람들이 앉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쏭-둘이라는 태국어, 태우-줄이라는 태국어) 보통 임시버스로 사용했지만 흥정을 하여 택시로도 많이 쓰였다. 몽족 주인은 경찰의 심문을 피하기 위하여 쏭태우를 마우(전세라는 태국어)했다. 택시로 달리려 한 것이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기에는 태국신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어린 짜러를 데리고 가기에 검문을 피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동차가 달리자 갑자기 나무들이 스쳐가고 산들이 짜러를 따라 함께 가는 것처럼 따라왔다. 짜러도 목을 빼고 자기가 살던 산이 어디쯤인지 살펴보며 신기해 했다.
몽족 주인도 손을 들어서 저 먼쪽을 가르친다. 저 너머가 짜러의 마을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짜러는 생각했다.
10분이 지나자 짜러는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 멀미는 치앙마이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네 시간동안 계속 됐다. 더욱이 차가 검문소를 지날 때가 되면 짜러는 운전석 뒤 좁은 틈에 그의 몸을 숨겨야했다. 혹시라도 경찰의 의심을 살까 염려한 까닭이었다. 이러기를 두어 차례 지나며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짜러의 몸은 지칠대로 지쳤고 도무지 일어설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몽족 주인의 집이었는지 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그 떠드는 소리에 짜러는 정신을 잃은 것인지 잠이 든 것인지....
짜러가 일어난 것은 따뜻한 물체가 그의 목을 간질이며 넘어가는 느낌 때문이었다. 몽족 주인이 한 여인과 함께 짜러에게 미음을 먹이고 있었다. 놀란 짜러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다시 누웠다. 누운 체 먹여주는 미음을 목으로 넘겼다. 누운 체로 미움을 삼키니 목이 더 간질거렸다.
또보짜므를 비롯해서 라후니 사람들은 산과 깊은 인연을 갖고 살았다. 산은 항상 어머니 같았다. 그들 모두는 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항상 산에서 살았다.
그들은 크고 유명한 바다도, 그 큰 강들도, 도시도, 나라도, 멕도날드도, 코카 콜라도, 한국의 삼성과 엘지 휴대폰도 몰랐다.
또 세상사람들도 육십오억명이나 살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몰랐다. 그들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몇몇의 학자들이 그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서 논문을 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원숭이의 한 종족을 연구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들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것은 오직 산뿐이었다.
다만 산만이 그들을 알아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산은 그들에게 양식과 생명을 공급했다. 물을 만들어 주었다. 용기를 주었고 무엇보다도 으그샤님을 알게 했다.
라후니 사람들은 산에서 사는 이상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긴 가뭄도 견디어 낼 자신이 있었다.
산이 그들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라후니 사람들이 산을 보호하거나 아끼거나 고마워한 것은 아니다. 산 자체가 그들의 생명과 같은 것이니 아껴야 했지만, 사실 그들은 그들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자체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저 살아있으니 산을 깎아서 밭을 만들고 나무에 구멍을 내어 죽이고 죽은 나무에 불을 지르고 숲에 불을 질러 화전을 만들고 산이 헐벗고 지쳐서 물을 못 내고 곡식을 기르지 못하면 산을 저주했고 그들 스스로를 저주했고 아이를 안고 울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라후니족 사람들이 견디어 온 것은 산이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들을 품고 서 있었다. 그들이 산의 생명을 다 파괴하듯 불을 지르고 나무를 잘라내도 산은 또 어느 사이 생명을 되찾아 그들을 품는 것이다.
그래서 라후니족 사람들은 산을 보면 평안을 느꼈다.
산 속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집을 짓는 것도, 밭을 만드는 것도, 나무를 자르는 것도, 대나무로 새 덫을 만들어서 새벽 새를 잡는 것, 메추라기가 "또록 또록"하고 울면 고양이처럼 기어가서 둥우리채 잡아 오는 것, 화승총에 화약을 잽싸게 재워서 공기를 밀어 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짜러도 어렸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짜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음이나 먹다가 이대로 죽으면 그냥 버려지리라 생각하니 자신이 지푸라기 같다고 느껴졌다.
또보짜므는 짜러에게 으그샤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해 주곤 하였다.
산과 하늘의 주인이신 으그샤님은 산이 그들을 축복하도록 그들에게 산과 마을을 주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마을 안에 있는 이상 그들은 항상 산의 축복 안에 거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또보짜므는 마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축복이라고 믿었다. 산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산이 만든 숲속에 각종의 새가 살고 삵괭이와 원숭이가 사는 것, 키 큰 나무들이 살고 대나무 숲이 터널을 만들어 신비함을 더해 주는 것, 능선 가운데에 낭떠러지가 생기면 나무들은 뿌리에서 물을 내어서 물들이 모이게 하고 물은 폭포가 되어 산과 하늘의 주인인 으그샤님도 그곳을 좋아하여서 신이 머무는 기도의 자리가 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축복이며 사랑이며 자랑이었다.
으그샤님은 복을 주며 은혜를 베푸는 신이어서 그들의 잘못은 용서되고 그들의 삶은 축복을 받고 그들의 미래는 번영으로 약속되었다는 생각은 선민사상과 같았다. 라후니 종족은 모든 사람을 으그샤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 종족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항상 또보짜므와 마을 사람들에게 라후니 종족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만들어 주었다.
바로 그 생각이 산에서 사는 생활을 미소와 노래로 가득하게 해 주었다. 때론 감사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참 좋은 행복의 요소였다. 그리고 희망이었다.
이것이 라후니 사람들의 신앙이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라후니 사람들과 또보짜므에게 마을이 아닌 모든 것, 즉 마을 울타리 밖에 있는 모든 것은 적이었고 분노였다. 그들이 매일 보는 건너편 산과 건너편 산에 사는 다른 사람들, 그 어떤 것도 마을 울타리 안이 아니면 용서 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러니 온 세상이 작은 산마을을 공격하는 적이었다. 온 세상이...정말 마을 밖에 있는 온 세상이!
마을 울타리 밖 밀림에 사는 귀신들은 사람들만 보면 덮쳐들어서 질병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질병의 폭풍을 마을에 일으켰다.
으그샤님은 마을 안에만 계셨다. 마을 울타리 밖에는 안 계셨다. 대신 더 넓고 큰 다른 세상에는 '져' '메' 두 종류의 귀신이 버글 거렸다.
'져'는 나쁜 일을 일으키는 귀신인데 주로 농사가 안되게 하고 산에 원인 모를 불이 나게 하는 귀신이었다. 사람을 가난하게 하고 살기 힘들게 만드는 귀신이었다. '메'귀신은 나쁜 일이 사람에게 일어나게 하는 귀신이었다. 사람이 미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짐승에게 공격을 당하여 상처를 입거나 죽음을 당하는 것 이런 것들은 '메'귀신이 일으키는 일들이었다.
바로 마을 울타리 밖에는 이런 귀신들로 꽉 차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마을 밖에 것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것이 사실은 라후니 사람들을 상하게 했고 갇히게 했고 그들 안에서도 분열과 다툼을 갖게 하는 원인이었다. 마을에 질병이 도는 이유는 마을 사람 누군가가 마을 밖으로 가서 '져'와 '메'귀신을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서로를 정죄하며 다투곤 했다.
외부를 차단하면 내적인 단결이 이루지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외부와의 단절은 내부의 사랑도 무력하게 만들고 결국 분열을 만드는 법이었다.
그런대,
아차 하는 사이에 짜러는 마을 울타리 밖에서도 아주 먼 곳 도시까지 와 있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 라후 말을 하는 사람도 없다. 으그샤님에게 기도하는 사람도 없다. 차를 타면서부터 아파온 것도 져귀신과 메귀신이 짜러를 따라 왔기 때문일 것이다.
'속히 또보에게 가야 할텐데...져귀신과 메귀신을 쫓아내려면 대나무를 얇게 벗겨서 레오또나 레오져(라후니. 귀신을 지켜주는 대나무껍질로 만든 부적물)를 만들어야 할텐데....'
짜러는 산 생각으로 가득해지며 다시 스스르 잠이 들었다.
짜러는 꿈 속에서 산에 있었다.
산들은 모두 늠름했다. 산에 있는 모든 것들도 늠름했다. 산 속에서 또보는 신령처럼 신비했다.
그리고 짜러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늠름했다.
짜러가 '그 산들은 왜 그렇게 늠름할까?' 라는 생각을 갖는 사이에 짜러는 산에서 나와 있었다. 모든 산을 볼 수 있도록 그의 몸은 산 밖에 나와 있었다. 그의 몸이 산 밖으로 나와 보니 하늘이 보였다. 산에 있는 동안은 하늘도 산의 일부였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보는 하늘은 항상 산보다 작았다. 그런대 산 밖으로 나오자 그 하늘은 훨씬 넓고 높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분명한 한 생각이 짜러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바로 '으그샤님은 좁은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넓고 높은 하늘에 계신다.'는 생각이었다. 으그샤님은 넓고 높은 하늘에 꽉 차도록 계시기에 세상 어디에도 으그샤님은 계신다. 으그샤님의 은혜와 축복과 용서를 받기 위해서 나는 어디서나 기도 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으그샤님의 하늘 아래 있기 때문이다.
짜러는 꿈 길을 걸으며 또보를 만났다.
또보와 함께 허예(라후니족의 성전)로 걸어갔다.
짜러는 으그샤님은 하늘에도 계신다며 놀란 표정으로 또보에게 말했다. 또보는 웃으며 "져해"(그렇구나)라며 대꾸했다.
두 사람은 두 손을 잡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손과 같았다.
그리고 둘은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산이 늠름한 것은
산은
하늘 아래 있다.
하늘 아래 있어서
언제나 늠름하다.
산이 언제나 늠름한 것은
언제나 하늘 아래 있기 때문이다.
산이 높아져
감히 사람들이 못 오르고
구름만이 올라 올 때에도
산은 하늘 보다 높아지지 않는다.
산은 구름으로 찬양하며
하늘 아래 있음을
으그샤께 감사한다.
산도
어둠이 깔리고 흑암이 덮이면
짖눌림을 당한다.
바위도 짖누르고
나무의 뿌리가 산의 심장을 파헤치고
바람은 산을 깍는다.
그러면 산은
하늘 아래 누워서 하늘에 안긴다.
하늘을 위하여
달을 내어 올려드리고
별도 내어 하늘에 달아 드리고
그림자를 만들어 땅에 신비를 더한다.
라후니 사람들이 기도터에 오르면
산은 하늘 아래서
라후니 사람들을 하늘에 올린다.
은혜와 축복과 용서를 받으라고...
산이 늠름한 것은
언제나
하늘 아래 있기 때문이다.
1994년. 2월 어느날(제목: 산이 늠름한 것은. 박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