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계절을 감지하는 체내 시계가 있다.
개는 마치 시간을 아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가령 날이 저물면 멀리 짖기를 하고 지평선 가까이 걸려 있는 해를 보고 아침해와 저녁 해를 착각하는 일도 없다.
하루 중 해질 무렵의 시간을 알고 언제 산책을 나가는지 그 시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애견도 있다. 이런 개는 사육주가 시계를 보면서 ‘슬슬 산책할 시간이군’하고 현관문을 열면 어느새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또 개에게는 한해에 두 번 털을 가는 시기가 있는데 매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털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지금이 일년 중 몇 월인지 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개는 사람처럼 오늘이 몇 월 몇일이고 몇 시 몇분인지 알지 못한다. 하루를 24시간 일년을 12개월이라고 정한 것은 사람이고 이것은 사람의 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이 사용하는 이러한 시간의 척도는 개에게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가 마치 시간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신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개의 몸 속에 존재하는 ‘체내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개의 체내 시계는 빛의 영향을 받는다.
개의 체내 시계는 사람이 사용하는 시계처럼 수치화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생물 자체의 체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변화에 의해 감지되는 시간이다.
이러한 체내 시계 덕분에 개는 24시라는 시간 감각과 탈모와 같은 년 중 주기를 감지할 수 있다. 체내 시계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수명을 다할 때까지)일생동안 작동한다.
그러나 개가 항상 이 체내 시계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매년 같은 시기에 탈모기가 찾아오지만 개는 그저 어느새 털이 빠지기 시작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개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개의 체내 시계는 저절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한다.
개의 체내 시계가 기능을 발휘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다. 자연계에서의 빛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확실한 변화를 나타낸다.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이 반복되는 하루의 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일년의 주기도 계절에 따라 일조시간이 달라진다. 이러한 빛의 양의 변화에 수반해 개의 몸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빛은 눈으로 들어와 그 자극이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된다. 시신경 가까이에는 시상하부가 있다. 시상하부는 신체 내부환경을 조성하는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부분으로 시신경으로 들어온 빛을 민감하게 캐치한다.
시상하부는 호르몬 분비기관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히 뇌의 중앙에 있는 송과체는 시상하부와 연동해 ‘체내 시계’를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과체에서는 메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메라토닌에는 발정과 수면을 조절하는 작용이 있다.
메라토닌의 분비량은 시상하부에 전달되는 빛의 양에 따라 변화한다. 광량이 적을 때(어두울 때)에는 분비량이 감소한다.
따라서 날이 저물어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면 메라닌의 분비량이 서서히 증가한다. 떠 일년중에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면 일조시간이 길어져 메라닌의 분비량이 감소한다.
개는 이처럼 빛의 양이 변화함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호르몬 분비량의 변화에 의해 자연스레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개는 사람처럼 시계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용하는 시간의 단위가 본래 태양의 위치에서 산출된 것인 만큼 자연계의 빛의 양과 관계하는 개의 체내 시계와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따라서 개의 체내 시계 역시 사람의 시계나 달력과 같은 정확성을 갖는다.
그러나 개는 광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지면 체내 시계가 정확성을 상실한다. 많은 실내견이 봄과 가을에 환모를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내에서 사육되는 개는 옥외에서 사육되는 개만큼 낮과 밤, 춘하추동에 따른 광량의 변화를 정확하게 캐치할 수 없다.
행동 패턴을 학습하면 식사 시간을 알 수 있다.
시간을 감지함에 있어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는 행동 패턴의 학습이다. 일상의 생활인 식사, 산책, 놀이 시간 등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빛의 변화 뿐 아니라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함에 따라 생활 패턴을 학습, 그것이 습관으로 몸에 밴 때문이다.
공복을 알리는 배 시계가 발달한 개는 식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식사를 졸라댄다.
개의 배 시계에는 공복감과 배설 등의 생리적 리듬이 관계한다. 가령 하루에 2번 식사를 급여할 경우 그에 따른 흡수와 소화, 배설 등의 시간이 저절로 결정된다. 따라서 동일한 시간에 배가 고프고 식사시간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의 신체 변화 외엔 매일의 생활 패턴이 식사시간을 알리는 단서가 되는데 가령 항상 주인의 귀가한 후나 산책 후에 식사를 급여하는 경우 이 생활 패턴을 학습해 주인이 귀가했거나 산책이 끝나면 식사를 조르게 된다.
이처럼 개가 시간을 아는 메카니즘은 체내 시계에 의한 생리적 리듬과 생활 패턴의 학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다.
체내 시계와 학습으로 시간을 안다
동경대학 농학부 교수 우에노씨가 사육했던 아끼다견 하찌는 시부야역까지 주인을 마중하러 가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하찌의 이러한 일과는 주인이 죽은 후에도 10년간 계속되었다. 저녁이 되면 역전으로 가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렸다.
하찌는 항상 우에노 교수의 퇴근시간에 맞춰 역전에 나갔는데 어떻게 시간을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하찌의 체내 시계와 매일의 생활 패턴이 습과화된 때문일 것이다.
사육주가 달리 관리하지 않아도 개의 하루 생활 패턴은 거의 정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에 가고 낮에는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어디로 가는 등의 동일한 생활 패턴을 반복하는 예가 많다.
하찌가 정해진 시간에 시부야역 앞으로 간 것은 빛의 변화에 따라 체내 시계가 작동, 시간을 알았고 이와 함께 변화하는 거리의 모습 등을 통해 경험적으로 역에 마중갈 시간이라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리에 집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마을 여기저기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냄새가 피어 오르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가 하찌에게 역으로 갈 시간임을 알려준다.
수명에도 체내 시계가 작동한다
가장 큰 시간의 단위는 ‘일생’이라는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다. 개의 몸에 찾아 드는 ‘수명’에도 체내 시계가 작동한다.
발정이나 환모 등은 체내 시계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신체변화이다. 수명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개의 몸에 찾아오는 무의식의 변화이다.
최근에는 개의 수명이 연장되 평균 수명이 10세를 넘어섰으며 15-16세 정도는 일반적이고 20살이 넘게 장수를 하는 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사육환경의 향상과 수의학의 발달과 관계한다. 그러나 아무리 개의 수명이 연장됐다 하더라도 사람처럼 80년을 사는 개는 없다. 이는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마다 동물의 종류에 따라 고유의 수명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개는 자신의 몸이 건강치 않다는 것을 의식하기는 하나 죽음의 시기 그 자체를 감지하지는 못한다. 육체의 죽음 역시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신체 상태이다. 개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 하나의 세포에는 이미 죽음까지의 시간이 각인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