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청풍호반의 가을 풍경
청풍호. 충북 충주호 상류, 제천땅 청풍면 쪽의 호수다. 충주댐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호수여서 충주호로 불리지만, 제천 사람들은 한사코
‘청풍호’를 고집한다. 청풍면·금성면 등 제천지역이 호수의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충주에서 유람선으로 제천까지 간다면,
충주호에서 타서 청풍호에서 내리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청풍호반은 한창 가을빛에 휩싸여가고 있다. 호숫가 산길엔 코스모스와 물봉선이 만발해 있고, 한켠에선 호수를 가슴에 안고 즐기는
짜릿한 레포츠들이 기다린다. 호숫가 비포장 산길로 간다.
청풍호반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비포장길이 있다. 금성면 소재지에서 호수 북쪽 물가를 따라 충주 동량면 접경지역 부근까지 굽이굽이
이어진(일부 구간 포장) 흙길(532번 지방도)이다. 길 중간에 부산리 마을이 있는 까닭에, 이 흙길을 좋아하는 제천 사람들은 ‘부산 가는
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5년 완공된 충주댐 공사로 수몰된 마을을 산기슭 위쪽으로 옮긴 뒤 닦은 산길이다. 황석리·후산리 등 새로 생긴
마을이 이 길로 이어진다.
쑥부쟁이 코스모스 머리 흔들고
산토끼 청솔모 꿩가족 노니는‥
충주호가 아니라 청풍호올시다
금성면사무소 앞에서 오른쪽으로 비포장길이 시작된다. 얼마 안 가 왼쪽으로 수려한 호수 풍경이 드러나고, 물 건너론 첩첩이 쌓인 산줄기들의
윤곽이 아름다운 수묵화를 그리며 펼쳐진다. 차가 비켜갈 정도의 널찍한 길. 호수 풍경말고는 별볼일 없어 보인다. 그러나 차의 속도를 줄이고
길섶을 살피면, 또 한 세상이 거기 펼쳐져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 물살 가르는 유람선을 향해 손짓하는 억새 무리 아래로, 그리고 칡넝쿨 우거진
산비탈로, 붉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별처럼 박혀 빛나고 있다. 가장 흐드러지게 핀 꽃은 빨갛고 노란 물봉선들과 노란 마타리, 쑥부쟁이 들이다.
|
△ 청풍호반
금성면소재지와 황석리·후산리를 잇는 비포장길.
|
산길에는 자주 진객들이 나와 앉아 차를 멈추게 한다. 쫑긋 귀를 세운 산토끼며, 뒤뚱거리며 달아나는 꿩 가족, 아무 때나 길을 가로질러
달리는 청설모 들이다. 비포장길이기에 만날 수 있는 장면이자, 돌부리에 흔들리며 천천히 차를 몰아야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간혹 사람도
마주친다.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행렬. 비포장길을 쉼없이 달려나가는 동그라미들이 울창한 숲과 호수를 배경으로 운치있는 그림을 그려낸다.
10㎞쯤 가면 느티나무 옆으로 황석리(황두리) 표지석이 나온다. 옛 황석리는 130가구나 살던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물밑 30m 아래
잠긴 마을의 주민 일부가 이사해 새 마을을 이룬 곳이다. 지금 9가구가 사는 마을 앞길은 지난 여름 아스팔트 포장을 했다. 포장 전엔 차량이
일으키는 먼지 등으로 주민 고통이 심했다.
“빨래를 널 수 있나, 방문을 맘놓고 열어놓길 하나….” 이장 류윤걸(66)씨가 당신 마침 잘 만났다는 듯 붙잡는다. “자동차 회사들이 새
차를 만들 적마다 여기 와서 내달리며 성능시험인가를 하는 통에 위험도 하고 불편하다. 하루빨리 전 구간을 포장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같다”는 말씀이다. 불편은 사실 이것만이 아니다. 청풍면 소재지로 가려면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이 길엔 버스가 하루 세 차례
오가는데, 이마저 눈이 오거나 폭우가 쏟아지면 운행이 중지된다. 주민 대부분은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는 70~80대 노인들이다.
포장공사를 반대하는 이들도 이 대목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류씨는 “비포장으로 남겨 두고 산악자전거길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면,
시에서 자갈이라도 깔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말을 마쳤다.
한굽이 돌아 청소년야영장(캠프·옛 황석초등학교)을 거쳐 살미골삼거리 지나면 또하나의 수몰 이전마을 후산리다. 여기서부터 부산리 들머리까지는
포장길이다. 금성면소재지에서 후산리까지 12㎞. 드라이브를 끝내고 금성 쪽으로 돌아가려면 부산리 삼거리에서 직진 뒤 다시 우회전하면 되고, 충주
접경까지 이어지는 나머지 비포장길을 맛보려면 좌회전해 호숫가 산길을 달려야 한다. 부산리 거쳐 단돈리, 오산리 지나 물봉선 무리가 더욱 장관인
산길을 달리면 충주시 동량면 만지로 빠지는 삼거리다. 직진하면 접경 표지도 없이, 갑자기 2차선 포장길이 나오고 충주 동량면이 시작된다. 출발한
곳에서 여기까지 37㎞.
이 길 일부 구간은 곧 포장될 예정이다. 측량 등 모든 준비를 끝내고 포장작업 개시만을 남겨뒀다고 한다.
길이란 것도 진화한다. 비좁은 오솔길에 사람 발길이 잦아지면 길은 금세 넓어진다. 넓어진 길로는 차가 자주 드나든다. 차가 드나들면 곧
포장공사가 시작된다. 포장된 길로 온갖 차들이 질주한다. 그리고 어느 새 드넓은 4차선 도로가 ‘시원스레’ 뚫리게 되는 것이다.
제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leebh99@hani.co.kr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번갈아
타고 남제천 나들목에서 나와 금성면, 청풍호반 쪽으로 간다. 서울에서 약 2시간30분.
■ 먹을거리= 제천시 남천동의 개미식당은 약초순대로 이름높다. 황기·당귀·백출 등 온갖 약초를 달인 진액을 찹쌀·좁쌀, 각종
야채, 당면·선지와 버무린 뒤, 직접 사서 손질한 소창에 다져넣어 만든 순대다. 약초향이 은은한 가운데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매우 좋다.
약초순대 5000원, 찹쌀순대 4000원, 순대모듬 5000원, 순대국밥 4000원. (043)643-5093.
꺼먹돼지집(043-647-1004)의 소금구이, 처음 그 자리(043-644-1600)의 떡갈비와 김치말이도 있다.
■ 묵을 곳= 청풍면사무소(043-648-0301)에 연락하면 민박집을 안내받을 수 있다. 청풍호반에 국민연금
청풍리조트(043-640-7000)가 있다. 힐호텔과 레이크호텔로 나뉜다. 9만2000원부터. 국민연금 가입자에 주중 30%, 주말 20%
할인.
제천시 문화관광과 (043)640-5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