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잘 먹지 않지만 저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합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31일이 있는 달에 31세일을 할 때는 빼놓지 않고 가서 가장 큰 걸로 사다가 며칠씩 먹었습니다.
근데 근래에 와서는 ‘살이 찌는 지름길’이라고 큰아이가 말려서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음료업계가 다른 나라에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아이스크림만큼은 아직 배라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가 어려서는 1원씩 하던 아이스케끼를 사먹었는데 그 당시에 팥이 들어간 앙꼬는 2원이었습니다. 광천에 진미당과 향미당에서 만들던 그 아이스케끼는 해태에서 만드는 빙고바와 브라보콘 때문에 사라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처음 사먹었던 해태 빙고바는 20원이었습니다.
빙고바가 나온 것이 1971년이라니 중학교 시절이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과 명수일 선생님이 홍성 해태제과 대리점에 저와 제 친구 다섯 명을 데리고 가서 사주신 아이스크림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추억입니다. 그 당시 돈으로 몇 천원을 내신 것 같은데 아이스바, 크림, 네모난 포장으로 된 아이스크림은 처음 먹었던 기억입니다. 그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배 터지게 먹었으니 그게 그 시절엔 영원히 잊지 못할 행복이었을 겁니다.
저는 다른 식품은 굳이 외제를 찾지 않는데 아이스크림은 배라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 배라 얘기가 나와서 옮겼습니다.
<배스킨라빈스는 생각보다 오래된 기업입니다. 1948년 미국에서 탄생했는데요. 사명은 공동 창업주인 ‘버튼 배스킨’과 ‘어바인 라빈스’의 성에서 따왔습니다. 다른 고급 아이스크림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하겐다즈가 1961년, 벤앤제리스는 1978년에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배스킨라빈스는 이들보다 훨씬 앞서 고급 아이스크림 시장의 포문을 연 거죠.
배스킨라빈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이스크림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 같은 건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간식에 불과하다는 게 당시 아이스크림에 대한 인식이었거든요. 그런데 배스킨라빈스는 무려 31가지의 새로운 맛을 시장에 선보이는 동시에, 매장에는 화려한 색깔의 의자를 뒀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먹는 저렴한 간식이 아니라 앉아서 음미하는 고급 디저트로서의 아이스크림을 선보인 거죠. 시장은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잘 나가는 배스킨라빈스에도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지만 정작 창업주 아들에게는 외면받은 기업이거든요. 어바인의 아들이자 유일한 상속자였던 존 라빈스는 아버지의 부를 물려받길 거부하고 집을 나가 환경운동가이자 채식주의자가 됩니다.
물론 그도 어릴 때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매우 즐겼죠. 존이 환경운동을 하면서 쓴 책 중 하나인 <음식혁명>을 보면 “나는 아이스크림 속에서 태어났다”로 시작합니다. 존은 가족들과 아이스크림 맛의 이름을 따서 고양이들 이름도 짓고, 아이스크림을 아침으로 먹을 정도로 즐겼다고 합니다. 그들 가족은 아이스크림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존을 바꾼 건 삼촌의 죽음이었습니다. 1967년, 삼촌인 버튼이 쉰네 살이라는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당시 버튼은 100kg이 넘는 고도비만이었는데, 존은 삼촌이 숨진 원인이 아이스크림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도 이에 관해 물었지만 어바인은 아이스크림과 심장마비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어바인이 나중에는 결국 존이 추구하는 대로 식단을 바꾸고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샤니를 키워나가던 허영인 회장이 1985년에 배스킨라빈스를 들여왔습니다. 그때가 벌써 배스킨라빈스가 설립된 지 40년 가까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는데, 허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에 배스킨라빈스를 보고 시장성이 있다고 봤던 거죠.
하지만 아이스크림 사업의 최대 약점은 계절이었습니다. 겨울철 판매 부진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극복해야 할 최대 과제였죠. 이 문제를 해결한 건 바로 198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아이스크림 케이크였습니다. 국내 배스킨라빈스는 미국 본사에서 팔던 아이스크림 케이크 형태를 그대로 들여오지 않고 국내 맞춤형으로 개발해 출시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취향에 딱 맞는 예쁘고, 귀엽고, 세련된 케이크에 시장은 뜨겁게 반응합니다. 여름이 아닌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 월 최대 매출을 기록한 정도 있을 정도죠. 2009년부터는 국내에서 독자 개발한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미국과 중동으로 역수출되기 시작해서 지난해 11월까지 우리나라가 역수출한 아이스크림 케이크 수가 400만 개를 넘습니다.
배스킨라빈스는 트렌디한 ‘광고 맛집’으로도 유명합니다. 1958년에 LA다저스팀이 생겼을 땐 ‘베이스볼 넛’이라는 아이스크림을 내놨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땐 ‘루나 치즈케이크’를 출시했습니다.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는 달고나 맛의 ‘너는 참 달고나’가 나왔고, 최근 포켓몬빵 열풍에는 또 곧바로 포켓몬 콜라보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배스킨라빈스가 광고로 뭇매를 맞은 적도 있습니다. 2018년, 배스킨라빈스는 광고 영상 하나를 올리면서 ‘#너무_많이_흥분, #몹시_위험’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습니다. 이는 당시 미투 열풍 속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고 조민기가 피해자에게 보낸 걸로 알려진 메시지였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결국 회사가 공식으로 사과하고 영상을 내렸는데 이듬해엔 또 아동 성 상품화 논란으로 물의를 빚습니다.
당시 배스킨라빈스는 이달의 맛 광고에서 어린이가 진한 화장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입술을 근접 촬영해 내보냈습니다. 곧바로 “아동 모델을 성 상품화했다”라는 논란이 불거졌고 배스킨라빈스는 또 하루 만에 영상을 내렸는데요.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방심위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후 이 광고를 내보낸 방송사들에 무더기 제재를 내렸죠.
“아이스크림이 아닌 행복을 판다!” 배스킨라빈스의 브랜드 철학입니다. 어느덧 세상에 나온 지 80년이 되어가는 배스킨라빈스. 앞으론 건강을 염려하거나, 광고에 눈살 찌푸리는 일 없이 소비자들이 달콤한 행복만을 누릴 수 있도록 좀 더 많이 고민하는 브랜드가 되길 기대하겠습니다.>SBS biz 유선우 기자
‘행복을 판다’는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오래 전에 배라대리점을 하던 분이 업종을 바꾼다고 학교에 배라 큰 통을 여러 개 가지고 와서 정말 행복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이스크림이 살찌게 한다는 말도 없을 때라 정말 실컷 먹었습니다. 앞에 계산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쌓여 있다는 자체가 행복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놓고도 먼저 칼로리를 계산하며 먹어야하니 행복을 먹던 시절이 너무 그립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