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죽음에 대한 공포
인도 게스트하우스에서 깨달음
◇ 인도 다람살라 네충사원 *출처=금강신문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받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제가 방송을 진행하면서 곧잘 하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줄도 압니다. 반대로 사랑에 서툰 사람들을 보면 어릴 적에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받은 사랑이 있으면 사랑할 줄 알지만 받은 사랑이 없으면 사랑할 줄 모르는 거지요. 이렇게 보니 사랑은 꼭 바이러스 같습니다. 다만 행복한 바이러스지요.
폭력도 사랑처럼 전염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아이일수록 커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쉽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맞고 자란 아이는 줄곧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사실 입니다.
커가면서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가는 것이지요. 이를 가리켜 심리학에서는 ‘공격자와의 동일시’ 라고 합니다. 시집살이를 심하게 한 며느리가 늙어서 자신이 당했던 그대로 며느리를 구박하는 게 ‘공격자와의 동일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을 공격자와 동일시하게 되면 공포의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아마도 죽음일 것입니다.
저도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1996년에 도반 셋과 함께 성지순례를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다음 행선지를 놓고 말다툼을 벌이다가 저 홀로 순례길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열병이 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됐습니다. 1주일 동안 저는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1주일 내내 아팠던 것은 아닙니다. 그럭저럭 몸이 좋아졌는데도 정체 모를 두려움 때문에 바깥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 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가져다주는 음식조차 입에 못 댈 정도로 제 두려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아마 제 공포는 낯선 공간에 몸져누워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공간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낍니다. 하나는 막연한 동경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해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숙고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내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저는 선뜻 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제 시야에 보인 것이 바로 도마뱀입니다. 천장에 붙은 도마뱀들이 자유롭게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게 보였던 것이지요. 불현듯 묵직한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도마뱀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꼬리가 잡히면 얼른 꼬리를 끊고 달아나는 도마뱀처럼 나도 생존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미물에 지나지 않았구나. 아니, 나는 외려 도마뱀만도 못한 존재이다. 적어도 도마뱀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을 옥죄고 있는 정체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사실을. 그것을 깨닫고 나니 ‘한때는 죽겠다고 자살까지 시도한 놈이 지금은 죽음이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나.’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더군요.
출가해서 머리를 깎고 스님 옷을 입었다는 데 안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음을 깨닫고 부끄러운 마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속으로 읊조렸습니다.
‘출가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삭발하고 스님 옷만 걸쳤다고 수행자가 아니다. 나를 버리자. 이 세상에 애초 내 것은 없다. 따라서 나라고 할 것도 없다. 나, 그리고 내 것이라는 모든 허위의식을 버려야 비로소 본질적 자아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하여 저는 자리를 박차고 방 밖으로 나갔습니다. 밝게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잠시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눈을 떴을 땐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 녹음이 짙은 산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공기가 코로 들어와서는 폐부 깊숙이 전달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게스트하우스 여주인이 해맑게 웃으면서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헬로(Hello).”
그 말을 듣는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삶이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처럼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됐습니다.
나로 인해 남이 존재하고 남으로 인해 내가 존재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지요. <계속>
글 | 마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