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시(詩)의 미래
─『귀뚜라미 생포 작전』(푸른사상, 2011)
정원도
23년만에 내는 시집이라니, 정작 내가 들어도 어이가 없다. 그 오랜 청춘의 시절 동안 시는 어디다 팽개쳐 두었다가 나이 쉰을 넘겨서야 겨우 후줄근히 땀내 젖은 몰골로 다시 시를 찾아 나선다는 말인지.
나의 시는 약관의 30대 초반에 이미 거대한 노동의 메카니즘에 함몰되어 나의 정체성을 찾아 나설 기력조차 상실한 채 방랑하는 영혼이 되어 있었다. 삶을 지키는 수단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오로지 그 노동의 속도와 강도에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버텨야 하는 나날들 속에서 시는 늘 가슴속에서만 어설프게 맴돌다가, 지친 몸과 함께 깊은 잠 속의 망각 속으로 배설되어야했던 시절이 너무 길었다.
그것은 노동이라는 무기로 무장된 전투 상황이라 해야 옳겠다. 세계는 보다 더 빠르게,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강하게 노동을 강요해야 살아남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이미 첨예한 노동현장들은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전쟁터가 된지 오래이다. 나는 1988년 첫 시집을 발간할 때에도 첨예한 노동현장에 머물렀다. 자고 나면 또다시 거대한 문제들과 씨름해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가 열악한 노동 계급의 삶의 질적 향상과 인간 존엄을 향하여 우리 사회에 일대 충격을 줄 때에도 나는 내 앞에 할당된 노동의 무게에 짓눌려 좌충우돌 버둥대고 있었을 뿐, 그 굴레를 박차고 나오거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내지 못했다. 그런 무지렁이의 노동 방식에 잠도 없이 헤매야 했던 날이 몇 날 이었을까? 빨간 공휴일 한번 제대로 쉴 틈 없이 달려와야 했던 날이 몇 날 이었을까? 나는 오로지 내 가족의 평화와 내가 머무는 주변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고군분투 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시는 나에게 거대한 물음표로 다가왔고, 그러한 삶의 피 터지는 힘겨움을 뚫고 시를 새겨내는 일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다.
내가 시에게 항복한 셈이다. 다 나의 못난 탓이리라! 그 살벌한 전쟁터에서 오로지 생각나는 것은 이 현실에서 살아남아 나만 믿고 의지하는 가족을 제대로 건사해야 한다는 의무감뿐이었다. 그 의무감을 우화적으로 발견해 낸 시가 「한우와 나」이다.
방법은 달라도 저 한우들과 나는
누군가의 밥이 되기 위해
맛있는 살을 찌워야 하는 목표는 동일하다
더러 제 무게를 못 이기고
허리를 비틀어 보는 것이나
무릎 연골이 시큰거려서
서 있기도 힘든 한여름 폭염에
필사적으로 기력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닮았다.
―「한우와 나」 부분
미래의 사회는 지금보다 더 혹독한 통제와 속도를 강요하며 비인간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모든 인간이 여지없는 부속품이 되어 숨 돌릴 틈도 없이 제 몫의 노동을 강요당하는 시대. 그 틈바구니 속에서는 어떤 구성원도 반발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우리를 통제할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는 효율화란 이름으로, 생산성이란 이름으로 점점 더 비인간화된 속도전으로 내몰아가고 있다. 인간의 게으름이란 가장 큰 죄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숨통마저 조여 올 것이다. 그것을 예견한 것이 「현대전」이란 시다.
밤새워 바치는 숨소리마저
기계의 정확성과 흡사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므로
정복당한 마지막 종족처럼
사소한 유전인자마저 닮아가야 한다
게으름이나 시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기계끼리의 강력한 연대만이 지배하는 사회!
기계보다 더 기계 같은 인간들이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기계를 내세워 벌이는
현대전이다.
―「현대전」 부분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개성의 몰락을 요구하고, 인간을 기계화시키는 사회!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을 말살하고 인공의 것으로 대체하는 상업주의적 시장경제! 나는 벌써 그런 사회의 불길한 징조들을 여기저기서 감지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애착을 포기할 수 없다.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생명 있는 것들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소중함을 아는 인간만이 존재의 아름다움을 아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뭇 생명들을 함부로 제거해도 무방할 어떤 권한도 없다. 그것은 결국에는 우리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소한 풀꽃 한 포기일지언정, 곤충 한 마리일지언정 한 생명의 길은 곧 온 우주의 길이다. 앞으로 도래할 사회의 과제는 자연을 인공으로 파괴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잘못된 인공의 문명 양식을 친환경의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환경이 없으면 인간도 없고 인간이 없으면 문화도 없다. 어쩌면 지상의 모든 생명가진 것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예술이다. 여기 귀뚜라미 한 마리의 생명이 온 우주의 생명과 통하는 길인 것이다.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남은 여름마저 몰아내려고 열어둔 창문 사이로
귀뚜라미 한 마리 아장아장
거실 안으로 뛰어든다
그냥 두면 누구의 발에 압사 당할지 알 수 없으므로
밖으로 돌려보내자고 생포하기로 하는데
그는 남의 속도 모른 채
붙잡히지 않으려고 잽싸게, 애타게 달아난다
이런 것이 짝사랑일 것이다
그냥 꽉 움켜잡기는 쉬운데
손아귀 속으로 귀하게 모시자니 어렵다
지금 그를 생포하는 것은
이 가을을 다 생포하는 것이므로
사력을 다해 따라 다니다가
손 안에 모시는 행운을 잡았는데
혹시나 저를 해치는 손길일까
버둥대는 몸짓
고이 풀밭에 내려놓는다
이 가을을 고스란히 내려놓는다.
―「귀뚜라미 생포 작전」 전문
나는 졸시 「예초의 모순」에서 노래 한 것처럼 우리 주변의 풀 한 포기조차 우리의 보건을 위해서 함부로 예초해 버리는 식의 생명 경시를 반대한다. 보다 안락한 생활환경을 위한 당연한 행위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지만 거꾸로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의 환경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 예초해버리는 풀꽃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할까? 제대로 꽃 한번 피워 보기도 전에 무지한 폭력의 힘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목숨을 처단해 버린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다고 그 풀들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풀들은 잘릴수록 다시금 살아나서 온 세상을 푸르게 하듯 우리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푸르게 무성해져서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조화롭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시에』 2011년 가을호
정원도
대구 출생. 1985년 『시인』으로 등단. 시집 『그리운 흙』, 『귀뚜라미 생포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