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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아동학대법, 교사는 왜 불안한가
‘아동학대는 나쁘다.’ 아마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아동학대는 처벌받아야 한다.’ 이것도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는 아동학대 신고 문제로 몸살이다. 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교육 활동이 의도와 다르게 신고될까 봐 위축되고,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게 하는 데 급급해 소극적으로 임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선 한국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이중적이다.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여론이 들끓고 강력 처벌과 근절을 외치지만, 여전히 어린이·청소년 체벌에 대한 찬성 비율이 높고 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문화도 뿌리내리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 교사·보호자 세대는 2010년대에 일어난 급격한 인권 의식 향상과 인권 보호의 제도화 이전에 어린이·청소년이었으며 갱신된 기준에 따라 어린이·청소년을 대할 것을 요구받는 ‘낀 세대’다. 어릴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개입이 자칫 폭력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힘을 적절히 쓰는 법을 직·간접적으로 습득해야 한다.
교사들이 아동학대 문제에 위축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동학대 관련 제도가 도입되고 시행되는 방식의 문제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는 학교와 교실의 상황, 교육 제도, 가정과 사회의 환경 등이 얽혀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동학대라는 렌즈는 오직 정도가 심하고 문제가 될 만한 몇몇 장면만을 포착하여 교사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만다. 다른 참여와 갈등 해결의 통로 없이 교사 개인의 책임만을 강화하는 제도가 강한 구속력을 갖게 되면서 거부감과 부담감이 불거졌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교육》은 이 갈등이 ‘교사 대 학생(보호자)’ 구도로 축소되지 않고 학교 문화와 구조의 문제로 논의되기를 바란다. 그랬을 때 교육의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상호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전세란은 아동학대 문제와 관련해 ‘교권’을 확대하자는 논의는 오히려 교사를 각개 전투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수업 중 위험한 행동을 일삼는 학생을 이해하고 지원하기까지 ‘학교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학생의 행동 이면의 삶에 대한 고려와 학교 공동체적 대응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하영은 다수의 교사들이 제기하는 ‘이것도 아동학대냐’라는 질문에 “학교의 일상적인 ‘교육적 활동’들에 내재한 폭력의 경계를 성찰”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학생(보호자)과 교사 모두 안전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자고 강조한다.
신수경은 현행법상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의 강력하고 즉각적인 개입은 ‘가정 내’ 아동학대 근절에 초점을 두고 고안된 해결책으로, 학교 내 아동학대 사건 해결을 위한 별도의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고등학교에서의 갈등 양상은 학생의 도전 행위와 교사의 평가·기록 권한이라는 다른 맥락이 추가된다. 교사와 학생, 보호자의 젠더와 계급, 정치적 입장에 따른 차이도 살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더 넓은 시야에서 ‘교권’ 담론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는 숙제를 남긴다.
- 편집부
▶ 《오늘의 교육》 72호 특집은 아동학대 관련 법을 둘러싼 논란을 특히 초등학교 사례에 집중하여 다루었다.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학교 안 소수자 교사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능력주의 문제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차별과 연결되는지 이야기한 강좌 내용을 담았다. 리뷰 지면에서는 능력주의와 돌봄이라는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된 주제들에 대한 근간들을 돌아보았다. 기후 위기, 청소년 참정권, 대안교육 등 한국 사회와 교육에서 놓쳐선 안 될 주제들을 2023년 첫 《오늘의 교육》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차례
10 읽은 이야기 | 홍순성
특집 아동학대법, 교사는 왜 불안한가
18 ‘교육 사법화’와 ‘교권 강화’를 넘어,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로 | 전세란
29 ‘아동학대’라는 언어가 교육에 대한 성찰이 되려면 | 하영
- 아동학대 신고 시스템의 한계와 가능성
39 아동학대 관련 법의 변화가 학교 현장에 미친 영향 | 신수경
기획│이런 교사이지만 학교에 있습니다
53 자퇴한 학생, 교사로 돌아오다 | 이윤승
67 이방인으로 살다 | 김헌용
- 시각장애와 함께한 교직의 빛과 그늘
80 황새도 뱁새도 없는 세상을 꿈꾸며 | 선영
- 정상성 모방을 그만두기로 한 성소수자 교사의 이야기
연속 기획│변방에서 온 편지 - 경남 함양, 전북 김제
93 지역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의 기쁨과 슬픔 | 은진
- 서울에서 이 글을 읽을 벗에게
108 우리는 왜 고장을 떠나가는가 | 장세린
- 시골 학교 교사 생존기
지상 중계│능력주의 횡단하기
122 지방은 어떻게 무능력한 공간이 되었을까 | 하승우
- 능력주의와 지역 격차
132 후회가 희망이 되는 사회 | 루인
- 트랜스젠더퀴어에게 학력과 능력주의란
‘대안교육 이야기 마당’ 정리 모임
142 대안교육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 박복선
- 대안교육의 대안으로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
연재
나의 프로젝트 수업 ③
158 최저임금 프로젝트 | 정용주
몸을 살리는 교육 ③
176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몸 | 변화의월담
함께 보는 교육 연구 ⑥
195 제대로 ‘능력주의’ 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울까 | 이선미
기고
206 파국을 넘어서는 대안학교 청소년들의 기후정의 선언 | 길핀풀
222 청소년 참정권, 확대됐지만 변하지 않은 | 민서연
231 교장은 어떻게 학생을 만나야 하는가 | 이상대
- 인간의 존엄을 학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특별 기고
243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영원한 동지 | 고민경
- 고 노옥희 선생님을 추모하며
리뷰
252 누군가 능력주의의 대안을 묻는다면 | 공현
- 《한국의 능력주의》, 《시험능력주의》, 《공정 이후의 세계》
264 모두가 돌봄하는 사람이자 돌봄받는 사람 | 우새롬
- 《돌봄이 돌보는 세계》, 《사랑의 노동》
272 오늘, 읽기 | 이윤승, 서경
276 내가 밀고 있는 단체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 서경
책 속에서
결국 ‘교권’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 교권 침해’라는 납작한 구도는 오히려 각 교실마다 다른 촘촘한 상황을 가릴 뿐이다. 개인이 판단하고 조치할 수 있는 교권의 확장이라는 접근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을 도울 수 없으며 조치와 관련한 보호자와의 대응도 교사의 몫으로 남겨둔다. 나와 믿을 만한 동료 교사들이 신고의 두려움 없이 학교에서의 다양한 역동을 기꺼이, 안전하게 마주하기 위해서는 교실을 지원하는 다른 관점과 방안이 필요하다.
- 본문 24쪽, 전세란, 〈‘교육 사법화’와 ‘교권 강화’를 넘어,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로〉
학생이 학교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아동학대 신고 시스템을 통해 고발하는 것에는 스쿨 미투 고발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학교에서 교사에게 직접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정리된 언어로 문제를 설명하기보다는 울거나 화를 내거나 입을 닫아 버리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표출하는 경우가 잦다. 학생이 직접 공식적인 언어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대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담임 교사가 하루 중 대부분을 학생과 함께하기에, 한번 ‘대드는 학생’으로 낙인이 찍히면 학교생활이 더욱 곤란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호자가 아동을 대신하여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것은 재발 방지를 요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편일 수 있다. 한편, 그동안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학교가 폭력을 은폐해 왔던 관습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본문 35쪽, 하영, 〈‘아동학대’라는 언어가 교육에 대한 성찰이 되려면〉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개입의 강화는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아동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당연히 바람직하다. 아동학대가 발생한 경우 아동이 양육되고 있던 원래의 가정에 필요한 지원과 개입을 함으로써 해당 가정이 아동이 건강히 양육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한다는 정책의 방향도 일견 타당하다. 문제는 ‘학교’와 같이, 현행 아동학대 관련 법의 제·개정을 가져온 유인과 원가정 회복이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는 결이 다른 ‘가정 외’에서 발생한 아동학대에 대한 대응이다.
- 본문 42쪽, 신수경, 〈아동학대 관련 법의 변화가 학교 현장에 미친 영향〉
열일곱 살의 이윤승을 떠올렸다. 너에게 필요했던 것이 자유로움이었다면, 통제되고 있지 않음을 느끼는 일상들이었다면, 만약 학교를 다니고 있는 시간 속에서도 그럴 수 있었다면 굳이 학교를 나올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만약 열여덟 살의 이윤승에게 지금의 통제와 규칙들, 폭력을 참으라고만 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는 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스무 살의 이윤승은 학교를 졸업하고 시를 쓰거나 영화를 배우러 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자퇴해서 좋았던 것들을 자퇴하기 전에 느낄 수 있었다면, 학교가 그런 곳이라면, 학교에 나를 위한 교사들이 있었다면. 온갖 생각들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 나도 졸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학생으로가 아닌 교사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열일곱의 이윤승과 열여덟의 이윤승이 원하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었다.
본문 57-58쪽, 이윤승, 〈자퇴한 학생, 교사로 돌아오다〉
차별은 조금씩 내 마음에 스며들어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갉아 먹었다. 첫 학교에서 쭉 담임 교사를 맡지 못한 데 이어 새 학교에서 첫 3년 동안 저학년만 담당하고 보니 교사로서의 역할이 반의반으로 쪼그라든 기분이었다. 학교는 계속해서 내가 교사가 아니라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교사와 장애인이라는 두 정체성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님에도 마치 그런 것처럼 모두가 행동하니 나 자신도 혼란을 느끼고 위축되고 말았다. 열정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교사로서의 경력은 쌓이는데 성장은 멈춘 비대칭적 상황이 괴로웠다.
본문 75-76쪽, 김헌용, 〈이방인으로 살다〉
아이는 분명 칭찬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은연중에 드러난 학생들의 생각에 매우 놀랐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을 이렇게 생각한다고? 죄 짓고 쫓겨난 사람이 오는 곳으로? 좋은 사람이 있을 리 없는 곳으로? 내가 한 학기 동안 ‘우리 고장 김제’를 이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직설적으로 말했을 뿐, 학부모들의 머릿속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는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하니까 전주로 보낸다는 말을 들을 때다. 어떤 학부모에게 시골 초등학교는 방과 후를 4시 반까지 무료로 해 주고 승마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시켜 주는 곳이고, 공부는 도시로 나가 하는 것인 것 같다. 이게 과연 건강한 구조라 할 수 있을까?
- 본문 120쪽, 장세린, 〈우리는 왜 고장을 떠나는가〉
나는 삶을 후회할 가능성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태도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능력주의가 요구하는 삶이 바로 후회가 용납되지 않는 삶, 모든 순간에 뒤처지지 않고 달려가야 하는 삶이다. 좀 잘못된 선택을 해서 후회하면 왜 안 되는가? 선택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다른 시작을 하면 왜 안 되는가? 상처를 받고 좌절하고 절망하다가 다시 혹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은 안 되는가?
여기에서 후회란 정체성을 둘러싼 후회를 포함한다. 한 번 성전환 수술을 하고 호적상 성별을 바꿨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성전환 수술을 하고 호적상 성별을 또 한 번 바꾸는 일은 왜 문제가 되는가?
- 본문 140쪽, 루인, 〈후회가 희망이 되는 사회〉
이전에 ‘대안교육운동’에서 나온 언어와 실천들은 대부분 제도 안에 흡수되었습니다. 탈학교, 벽 없는 학교, 프로젝트와 인턴십, 지역 사회(마을), 자치 등. 특성화 대안학교, 공립형 대안학교, 오디세이 학교 그리고 진보 교육감들의 브랜드가 된 혁신학교 안으로 들어간 것이죠. 어떤 분들은 이것을 대안교육이 공교육을 자극하고 견인한 결과이며, 대안교육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한 방증이라고 합니다. (‘대안학교가 사라지는 것이 대안학교가 해야 할 일이다’라는 멋진(?) 말도 이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몇 개 학교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는 제도 밖의 학교를 ‘선별하고’, 지원하되 관리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정부를 탓할 생각도 없고, 제도 안에 자리 잡은 대안학교가 잘못됐다고 비판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운동을 흡수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성찰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본문 146쪽, 박복선, 〈대안교육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청소년들은 흔히 기후 위기의 세대 간 부정의(이 개념이 계급성을 제거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의 당사자로 지목되고는 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기후 위기가 닥쳐오기 전에도 늘 착취적 삶에 시달려 왔다. 인간을 상품화하여 인간 자신으로 보지 않고 그가 소유한 스펙과 사회적 지위, 부로 사람을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스스로를 착취한다. 조금 맥락이 다른 비유일지도 모르겠으나, 청소년들의 삶을 보고 있자면 공장식 축산 속의 비인간 동물들이 겹쳐 보인다. 최상 등급의 고기를 만들기 위한 잔혹한 착취와 최상의 성적을 갖기 위한 경쟁적 착취.
- 본문 217쪽, 길핀풀, 〈파국을 넘어서는 대안학교 청소년들의 기후정의 선언〉
〈윤석열차〉 사건은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이슈에 관해 발언하는 것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시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고 여겨지지 않고, 청소년에게 금기시되는 일,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청소년의 정치는 못마땅한, 우려스러운 일이다. 특히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청소년 참정권에 비우호적이며, 18세 선거권·피선거권 등이 이루어졌더라도 ‘투표권이 없는 18세 미만’은 계속해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본문 228쪽, 민서연, 〈청소년 참정권, 확대됐지만 변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