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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인사해 볼까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창립 8주년을 지나고 첫 이제 9년 차를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창립기념주일 여러분들은 어떤 의미 부여를 하고 지내셨나요?
그냥 단순하게 기념일 생일 정도의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우리가 창립 기념주의를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 창립을 기념하는 날 우리는 이 교회가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세우셨는지, 또 지금 우리가 이 교회 안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지 뒤를 돌아보아야 하고요. 또 앞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새로운 결단의 시간임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까?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느냐 또 지금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 모습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지고 우리 교회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이 교회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를 소망하고 계십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어떠한 교회를 물려주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 중에 한 가지를 좀 몇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데살라니카 교회 여러 번 우리가 묵상했던 교회인데요. 1절에 보니까 바울과 신라 그리고 디모데가 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2차 전도 여행과 관련돼 있는 교회예요. 2차 전도 여행이 바로 바울이 소아시아의 말씀을 전하는 그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했는데 방향을 하나님이 유럽으로 선교의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간 그 지역이 바로 빌립보라고 하는 지역이었어요. 그곳에 처음 이제 도착을 해서 그곳에서 사역하는 가운데 귀신 들린 여정의 귀신을 쫓아냄으로 말미암아 그 주인이 고소하여서 심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근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풀려나게 돼요. 그리고 나서 그다음으로 사역한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입니다.
근데 이 데살로니가에서 3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헬라인과 기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지난주에 우리 김기동 목사님이 그 부분에 대한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죠.
그런데 그 가운데도 큰 핍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베레아라고 하는 지역으로 또 이동을 해요.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아테네로 그래서 이제 이곳까지 간 바울이 너무나도 짧은 시간 복음을 전하고 또 많은 환란을 당하고 있는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너무 애타는 마음이 가득해서 디모데를 보내 그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고린도라고 하는 지역으로 이동했어요.
그런데 이제 고린도로 갔을 때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고 그들의 소식을 모아가지고 이제 바울에게 와서 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으니까 바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역사를 하나님이 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허락하셨음을 발견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또 그들을 더욱더 성장케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록한 것이 이 데살로니가전서 후서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 가운데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앞으로 이런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몇 가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뿌리가 튼튼한 교회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는요. 뿌리가 건강하게 내려야 합니다. 여러분 집을 지을 때 가장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그 공사의 시간들은 바로 터를 다지는 시간입니다. 기초가 얼마나 튼튼하게 다져졌느냐에 따라서 그 건물이 얼마나 높이 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게 되죠. 가장 중요합니다.
근데 집 짓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모든 걸 봐도요. 학생들 기초가 안 돼 있으면 아무리 고차원의 뭔가를 풀어낸다 해도 금방 막힐 수밖에 없어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초등학교 때 배우는 학문이지만 그 기초가 제대로 안 돼 있으면 아무리 고학력을 가져도 그는 더 나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약하면 더 이상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무에게 있어서 뿌리 그것은 바로 나무의 기초와 같습니다. 땅과 나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 나무가 어떤 땅에 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그 나무는 아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뿌리가 어디에 내렸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나무는 스스로 자기가 옮기고 싶다고 옮길 수가 없죠. 여기는 뿌리를 내려봤더니 별로 물도 없고 뭔가 영양분도 없고 다른 데로 가야 되겠네 하고 움직이는 나무 보셨습니까?
예전에 어디 무슨 책을 봤더니 움직이는 나무가 있더라고요.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해가지고 움직인대요. 물론 그 나무를 제외하고 대부분 모든 나무는 딱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잖아요.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옮겨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땅을 만나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너무나도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아무리 열매를 잘 맺는 나무에 그 싹을 줄기를 뽑아서 나무 땅에다 심는다 해도 그 땅이 메마르고 영양분이 없으면요. 맛있는 귤나무라도 잘못 땅을 만나면 탱자나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지금 이 말을 드리냐면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 교회는 바로 뿌리를 어느 곳에 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이 교회를 세우고 이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카 교회는 어떠한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1절에서 소개를 하고 있는데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의 교회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 지금 이 데살로니가에는요. 교회 건물이 있지도 않습니다.
또 신학을 해가지고 막 아주 학문이 뛰어난 목회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과 디모데가 잠깐 3주밖에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지금 심각한 환란을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런 환경에서 지금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요. 그 이유가 바로 뿌리를 아주 좋은 곳에 내렸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즉 예수님을 머리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랑 공동체, 예배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참된 뿌리를 내림이라는 거예요.
너무 당연한 것 같죠?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데 여러분들이 지금 신앙생활하는 뿌리가 어디에 내려져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힘을 공급받고 있는지 도움을 공급받고 있는지, 내 지금 뿌리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가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동행에 깊이 박혀 있지 않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에 힘 노력은 힘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세상적으로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해도 그것이 하나님께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허사와 같은 마치 솔로몬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된 헛되고 헛되다 여러분들의 신앙이 메말라감을 느끼십니까?
아니면 신앙을 하는데 뭔가 힘이 없다라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나님과 더욱더 친밀하게 연결되어 내 뿌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지 않은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뿌리가 하나님께만 깊이 내려야 하는데 하나님께 내렸다가 세상에 내렸다가 뿌리가 왔다 갔다 합니다. 결국 그 뿌리는요. 땅 위로 올라와버린 뿌리는 메말라버리고 밟히고 결국 부러지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늘 소망 공동체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그러한 공동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내 자녀들 복받기 위해서 그게 신앙의 기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날씨,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께만 뿌리를 딱 내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공급하심으로 말미암아 마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흔들림 없는 건강한 신앙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환경과 상관없이 늘 푸르르고 열매 맺는 교회 두 번째가 이것과 연결됩니다. 바로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는 것이죠.
2절을 보니까 사도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서 그들로 인하여 항상 감사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감사의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에요. 세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그것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첫 번째, 믿음의 역사 여기서 역사는 바로 행함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진실된 믿음은요.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지요.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위기, 어떠한 상황이, 어떠한 폭풍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습니다. 심지어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우리는 그 가운데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하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살아있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즘 히브리서 11장을 수요일 저녁에 함께 나누면서 얼마나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게 되는지 몰라요. 그들의 삶을 보면 살아있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을 가졌음을 보게 됩니다. 노아는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갈대와 우루를 떠나서 정말 알지 못하는 곳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아갔고,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 합니다. 중풍병자와 내 친구들은 믿음으로 남의 지붕을 뜯어냅니다. 혈루증 앓은 여인은 사람들의 비난을 각오하고도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믿음에는요 행동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믿음 생활을 하면서 그냥 의식적으로만 믿습니다. 개념적으로만 믿습니다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믿음에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움직여야 돼요. 그 행동하는 믿음 가운데 역사하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행동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는 사랑의 수고입니다. 여러분 참된 사랑은요. 서로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거짓된 사랑은요. 나만 사랑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 중심적이고 나만 섬겨달라고 말을 합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서 수고하고 희생합니다. 상대가 다가오지 않아도 내가 먼저 다가가고,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를 향하여 헌신합니다.
근데 거짓된 사랑은 상대가 나를 사랑하니까 나도 사랑하고, 상대가 나를 불편하게 하면 나도 불편하게 하고,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사랑을 보여주셨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보내셨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그냥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직접 보여주신 거예요. 예수님도 또한 이 땅에 우리에게 사랑을 이론적으로만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직접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수고와 희생으로 그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언제나 수고와 헌신이 따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다시 묻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하는데 지금 나는 시간의 수고를 주님 앞에 드리고 있는가?
내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놓고 있는가? 물질의 수고를 드리고 있는가 내 육체의 헌신을 드리고 있는가?
여러분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더 더 더 주님 앞에 헌신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요. 이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웃을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수고와 헌신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좀 져주고 그들을 향해서 나아가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열리는 거예요. 찾는 이는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 세 가족들이 지금 한 명, 두 명 이렇게 등록하고 오늘도 이제 지난주에 등록한 친구를 소개할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명 한 명을 전도할 때 그냥 그분들을 전도하는 것이 그냥 당연한 것이 아니에요. 그들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고 또 입을 열어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이 기회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리고 성도들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수고가 넘치는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칭찬받고 사람들에게도 칭찬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다른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넘치는 공동체 세상은 나만 사랑해 달라고 나만 사랑받고 싶다라고 그것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공동체는 서로 사랑의 수고를 하는 공동체라는 거예요.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도 이러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수고, 또 이웃과 우리 공동체 지체들을 향한 수고가 더욱더 넘쳐나서 칭찬받는 더욱더 풍성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바로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인내할 수 있어요. 소망이 끊어지는 순간 우리는 작은 것에서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6절을 보니까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요. 많은 환란을 당하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황제 숭배를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핍박을 경험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로부터 기독교인이라는 말 때문에 그들은 소외를 당합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들의 삶으로도 여러 가지 핍박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환란 속에서 그들이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무엇이냐 바로 주님이 주신 말씀의 주님을 향한 소망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들 안에 하늘의 소망이 있으십니까?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늘 소망 교회가 하늘 소망 교회로 이름할 때 우리의 안에 있는 목적이 있었어요.
하늘 소망을 품고 하늘 소망을 전하는 공동체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하늘 소망을 품고 하늘 소망을 전하는 공동체 전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될 게 뭐예요?
품어야 돼요. 여러분 하늘의 소망을 품고 계십니까?
소망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도 흔들리지 않고 더욱더 견고하게 서게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우리 공동체 가운데 요즘 육체적으로 연약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정말 기도 제목이 긴급하게 기도가 필요한 동력자들도 요즘 많이 있어서 여러분들도 마음이 무겁게 그들을 향하여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향한 소망의 인내가 우리에게 가득하면 그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데사노니카 교회는 다른 교회에게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환란을 경험하는 가운데서도요. 그들은 본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6절에 보십시오.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여기서 본받는 자라고 하는 이 말이 모방 모조, 이미테이션이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한마디로 예술 작품을 있는 모습 그대로 따라서 흉내내는 것, 또는 어떤 영웅이나 위대한 스승에 대하여 그대로 흉내 내는 것, 그런 모방 모조 이런 말을 할 때 이 단어가 쓰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본받는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그 사람을 따라하는 행동과 그의 삶을 따라하는 것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요. 사도 바울과 복음을 증거한 그들의 삶을 보고 따라하고 모조하고 모방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주님을 믿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 앞에 있는 우리의 부모님들을 그 신앙을 보고 모방 모조하는 거예요.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을 본받음으로써 결국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7절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라고 이 본이라는 말, 이 단어의 말의 의미를 좀 더 되새겨 보니까 쇠를 녹여서 어떤 제품을 만들 때 필요한 틀, 빵을 구울 때 그 모양을 만들어내는 틀 원형 모형을 말합니다.
아까 전에 6절에서 말했던 본받는 자라고 하는 그 말에서 굉장히 발전된 모습을 보게 되죠. 아까 전에는 그냥 그저 따라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아예 틀을 만들어 가지고 이 사람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양산되게 되는 그러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바울을 따라 하던 그 모습이 이제 주님을 따라하는 모습으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하여 이들 바울을 보면서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야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그렇게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우리 여러분들의 삶이 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서 그냥 본받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확장되고 많이 늘어나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그들은 건강한 교회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세 가지 특징을 오늘 나누었죠. 첫 번째 뿌리가 튼튼한 교회 어디에 뿌리를 내렸느냐 두 번째 열매가 풍성한 교회 믿음의 열매를 아까 전에 세 가지로 이야기했죠.
무엇이었습니까?
네 다시 한 번 주보를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러한 풍성한 열매가 가득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 번째는 영향력을 끼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 하늘 소망 교회가 이렇게 뿌리가 튼튼한 교회 열매가 풍성한 교회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바로 우리가 그냥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 같은 공동체를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정말 주님께 온전히 뿌리를 내리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충만한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나뿐만 아니라 내 변화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 내 자녀들에게 거룩한 영향을 미치는 본이 되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 8년 차를 지나 9년 차를 맞이합니다. 아이들 9살이 되면 초등학교 2학년 이제는 2학년만 돼도 혼자 놀 줄 알고요. 우리 이제 좀 이따가 소개할 새 가족이 2학년인데 보니까 얼마나 씩씩하게 그냥 잘 자기 행동을 하는지 몰라요. 이제 우리 나이가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9년 차에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이제 과거의 어떤 아픔, 상처, 연약함, 우리의 부족함 그런 것들을 다 주님 앞에 내어놓고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이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뿌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소망으로 인내하고 사랑으로 서로 수고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더욱더 아름다운 열매와 결실들을 풍성히 일으켜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그러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서로 함께 결단하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옆에 분들 보면서 우리가 그러한 교회를 이룹시다 하고 한번 이야기합시다.
아멘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