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어릴 때에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쳐서 다른 나라에서 10년, 20년 또는 50년을 살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우연히 자기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예전부터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한 성에 머물렀는데, 매우 부유하여 재산과 보물이 한없이 많았다.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파리· 진주 등이 창고마다 가득 넘쳐흘렀고, 노비․ 신하․ 일꾼도 많았으며,
코끼리· 말· 수레· 소· 양도 많았다. 또 주고받는 이익이 다른 나라에까지 미쳐서 상인들과 고객 또한 매우 많았다.
그때 가난한 아들은 여러 마을과 도시들을 떠돌다가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성에 이르게 되었다.
아버지는 늘 아들 생각만 했고 아들과 이별한 지 50여 년이나 되었으나, 아무에게도 이러한 일을 말하지 않고
다만 혼자 후회하고 한탄했다. ‘이제 나는 늙었는데 자식이 없으니, 재물이 많아 금․은 등의 진귀한 보물이
창고에 가득해도 죽으면 맡길 데가 없어 다 흩어지겠구나.’ 이런 까닭으로 늘 아들만 생각했다.
‘만일 아들을 만나 재물을 맡긴다면 마음 놓아 다른 근심이 없을 텐데.’
그때 가난한 아들은 품팔이를 하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사는 집 앞에 서게 되었다.
멀리서 아버지를 보니 그는 바라문․ 찰리․ 거사들이 공경하여 둘러싸고 있었고 보배궤로 발을 받치며
사자좌에 앉아 있었다. 그 몸은 아주 값진 진주와 영락으로 장식되었고, 일꾼과 신하들이 좌우에서
흰 부채를 들고 시중들고 있었다. 또 주위에는 보물로 치장한 휘장과 갖가지 꽃으로 만든 깃발을 드리웠으며,
땅에는 향수를 뿌리고 갖가지 이름 있는 꽃들을 흩뿌려 두었다. 또 보물을 벌여 놓고서 내고 들이고 주고받는
등 이처럼 갖가지로 장식하여 위엄과 덕이 대단했다.
가난한 아들은 그에게 큰 권세가 있음을 보고는 두려워하며 그곳에 간 것을 후회하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분명 왕이거나 왕과 비슷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내가 품을 팔아먹을 데가 못 된다.
차라리 가난한 마을로 가면 일할 땅이 있을 것이니, 거기서 품을 팔아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는 것이 좋겠다.
여기 오래 있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강제로 일을 시킬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
그때 장자는 사자좌에서 아들을 즉시 알아보고 매우 기뻐하며 생각했다.
‘이제 창고에 있는 내 재물들을 맡길 데가 생겼도다. 내 항상 이 아이를 생각해 왔건만 만나 볼 길이 없더니,
이제 저 스스로 홀연히 찾아왔으니 내 소원이 이루어 졌도다.’
그리고는 곁에 있던 사람을 보내어 급히 보내 데려오게 했다.
이에 심부름꾼이 달려가 붙드니, 가난한 아들은 몹시 놀라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붙잡느냐”며 큰 소리로 원망했다.
그러나 심부름꾼이 더욱 강하게 붙들고 끌고 가려고 하자, 가난한 아들은 ‘죄도 없이 붙잡혔으니
이제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더욱더 두려워하며 고민하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는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심부름꾼에게 말했다.
“그 사람 그리 필요하지 않으니 억지로 데려오지 마라. 냉수를 얼굴에 뿌려서 깨어나게 하고 아무 말도 하지마라.”
왜냐하면 아들의 뜻이 용렬(庸劣: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하여 자신의 부귀를 어려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면서도 방편을 써서 남에게 말하지 않으려 했던 탓이다.
그때 심부름꾼이 ‘이제 너를 놓아줄 테니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하자, 가난한 아들은 몹시 기뻐하며
그곳에서 일어나 가난한 마을로 가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그때 장자는 아들을 달래서 데려오고자, 방편을 써서 모습이 초라하고 위덕이 없는 두 사람을 은밀히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저 사람에게 가서 여기 일할 곳이 있는데 품삯을 곱으로 준다고 말해라.
그래서 그가 따라오려고 하면 데려와서 일을 시키라. 그리고 그가 만일 무슨 일을 시킬 것이냐고 묻거든
거름 치우는 일을 하라고 대답하고 또 너희 두 사람도 함께 일할 것이라고 말해라.”
이에 두 심부름꾼은 가난한 아들을 찾아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그는 품삯을 먼저 받고 그들과 함께 거름을 치우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가엾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용렬함을 이상하게 여겼다.
어느 날 아버지는 창문으로, 앙상하게 여위어 초췌한 데다 거름과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더러운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곧 영락과 장신구와 가볍고 고운 옷을 벗고, 더럽고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몸에 흙먼지를 바르고
거름 치우는 기구를 들고서 조심스럽게 일꾼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라.”
그리고는 이런 식으로 짐짓 아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쯧쯧, 이 사람아. 자네는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늘 여기서 일하게. 품삯도 올려주겠네.
그릇이나 쌀․ 밀가루 ․소금․ 식초 등 모든 필요한 물건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네.
또 늙은 일꾼도 필요하거든 보내 줄 테니 그저 안심하고 지내게.
나는 늙고 자네는 젊으니 나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아무 걱정 말게. 내 보니 자네는 일할 때 다른 일꾼들처럼 속이고
게으르거나 성내지 않고, 한탄하거나 원망하지 않더군. 그러니 지금부터 자네를 내 친아들처럼 여기겠네.”
그리고는 이름을 다시 지어주고 아들로 삼았다.
가난한 아들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품팔이하는 천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20년 동안이나 그에게 거름치우는 일을 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서로 믿고 친하게 되어 어려움 없이 드나들었지만 그래도 그 아들의 거처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였다.
어느 날 장자는 병에 걸려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난한 아들에게 말했다.
“내 창고에는 금․ 은 등의 진귀한 보물이 가득하니 많고 적은 것이라든지 주고받을 것을 모두 네가 알아서 해라.
내 마음이 이러하니 아무쪼록 네 뜻대로 행하도록해라. 왜냐하면 이제 너와 나는 한 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주의해서 잃지 않도록 해라.”
이에 가난한 아들은 분부를 받들어 금· 은 등의 진귀한 보물과 모든 창고들을 관리했으나,
밥 한 그릇 더 가지려는 생각이 없었고 머무는 거처도 여전히 그대로였으며, 용렬한 마음 역시 버리지 못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차츰 넓어져 큰 뜻을 지니게 되었고, 또 그 스스로 예전의 마음을 천하다
여김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임종 때가 되자, 아들에게 명하여 친족들과 국왕· 대신· 찰리· 거사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한 뒤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 사람은 내가 낳은 아들인데, 전에 살던 곳에서 나를 버리고 도망쳐서 50년간이나 방랑하며 갖은 고생을 겪었소.
이 사람 본래 이름은 아무개이고 내 이름은 아무개요. 내 예전에 고향에서 늘 근심하며 찾아 헤맸는데,
여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소. 이 사람은 내 아들이요 나는 그의 아버지이오. 이제 나의 모든 재산은 다 그의 것이오.
그리고 예전에 행하던 모든 주고받는 것도 모두 내 아들이 알아서 할 것이오.”
그때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전에 없었던 일이라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 본래 바라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제 이 보물창고가 절로 굴러들어 왔구나.’
※ 여기서 부호는 여래를 상징하고, 가난한 아들은 성문제자들을 상징하며, 보물창고는 성불의 가르침을,
거름치우는 일은 수행을 통해 갖가지 악행과 잘못된 소견을 버리는 일을,
품삯은 열반을, 부호가 방편으로 아들에게 접근함은 근기에 맞게 방편의 가르침을 베푼 것을 상징한다.
-《법화경(제4품 5~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