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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5일(산상변모 주일)
누가복음 5:1~11
만선보다 더 큰 기적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본문 접맥적 주제설교 형식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 일어나는 가장 큰 기적은 만선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삶이다.
*설교 목적: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렬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when?
여러분은 이번 명절을 어떻게 보내실 계획입니까? 뉴스를 보니까, 이번 연휴에 72만 명이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설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 1, 2위가 즐거움, 행복이란 단어들이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나 설날에 떠오르는 또 다른 단어들도 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고통이란 단어들도 10위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설날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고향은 있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만남이 더는 행복이 아닌, 고통이요, 스트레스입니다.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그 어떤 만남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만남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남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은 인생 최고의 만남이요, 궁극적 만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과 만남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나 주시고, 야고보와 요한을 만나 주신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호숫가에 서 있던 배 두 척을 보시고, 그중 한배에 올랐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오르신 배는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고기 잡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일상 속에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셨고, 베드로도 일상 속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10년 전에도 그곳에 있었고, 예수님을 만나기 하루 전에도 그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어떤 꿈이 있었을까요? 아마 많은 사람처럼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켜, 훌륭한 사람 만나 시집, 장가보내는 꿈 정도가 아닐까요?
사실, 이 꿈도 보통 꿈이 아니지요. 인생을 좀 더 길게 살아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우리가 남들 정도만 하고 살기도 얼마나 힘든지 말이에요. 혹시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루하루 무미건조한 일상의 삶을 넘어서, 여러분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꿈이 있습니까?
이준익 감독이 2007년에 개봉했던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대학 시절에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지는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현실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유학 간 자식과 아내의 생활비를 댈 수 없다…내가 일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과외비는 꿈도 꿀 수 없다…내가 일하지 않으면 아내 덕을 보고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이 중년 남자들은 일하는 겁니다. 특별한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기적을 기대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who?
예수님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꿈을 잃은 사람들에게 찾아오십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물고기 한 마리 잡을 수 없던 사람에게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일상에 지친 베드로와 같다면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상에 찾아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일상에 찾아오시는 일이 왜 중요합니까? 나를 찾아오시는 분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 하는 점 때문입니다.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던 예수님이 이번에는 그물을 깁고 있던 베드로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물을 던지라 하십니까?”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율법 선생님이 어찌 물고기 잡는 일이 직업인 어부에게 그물을 던지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때는 오전이었습니다. 오전에는 물고기가 깊은 곳이 아니라 얕은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명하십니다. 경험 많은 베드로가 이 말씀에 순종하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베드로가 이 말씀에 순종하려면 어부로서 자존심과 경험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순종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여러분은 베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아실 겁니다.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혀 그물이 찢어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당황한 베드로는 다른 배에 있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어서 와서 날 좀 도와주시오. 지금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몰려들고 있어요.”
곧 물고기들이 두 배에 가득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어부들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부로서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만선(滿船)의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삶에 찾아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허무를 충만함으로 바꾸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던 제자 빌립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호렙산의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실패자요, 낙오자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미디안 광야는 도망자 모세에게 실패의 장소였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자기 양도 아닌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나이 80세의 모세에게 애굽에서 배운 학문은 쓸모가 없었습니다. 꿈 없이, 열정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명령하셨습니다. 도망자의 땅이 거룩한 땅이 된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리시는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명령하시자, 베드로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집니다.
여러분이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먼저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여러분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존심도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도 버려야 합니다. 남들의 시선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what’s then?
과연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기적의 하나님,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던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큰 변화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요?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자신의 참된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말씀으로 기적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8절에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생님에서 주님”(5, 8절)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한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 찔림을 받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있는 더러움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우리도 설교를 듣고 고백했던 사람들처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10절)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명을 수여 받은 후에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그는 만선의 기쁨에 도취해서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게 된 이유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하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만선보다 더 큰 기적은 배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사명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명입니까? 여러분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일상의 현장에서 부르십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직업을 포기해야 하거나, 가족을 배신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여러분의 일을 통해 여러분이 ‘사람을 취하는’, ‘사람을 사로잡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70세 가까이 된 뉴질랜드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20대 후반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는 선교사나 목사로 헌신한 게 아니라 사업가로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는 자기 삶의 수준을 미리 정해 놓고, 그 이상으로는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는 비싸고 화려한 옷 대신 낡고 검소한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전도하기 위해서 그곳에 40번 정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는 누구든지 만나면 전도하고, 돈을 벌면 어느 정도 이상은 갖지 않고 남은 이익을 헌금합니다. 후원금은 직접 관리하지 않고 신실한 사람에게 맡깁니다.
그는 목사나 선교사라는 타이틀은 없지만, 자신의 직업을 통해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는 만선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따름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사업을 하고, 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다니면서 이분처럼 주님께 헌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하용조,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두란노, 2008); 「생명의 삶」(두란노, 2017년 2월호), 105쪽에서 재인용.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일상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자기의 생각, 경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십시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만선보다 더 큰 기적은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여러분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