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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자락을 걷다가 오래된 탑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사람들은 수없이 그 앞을 지나갔지만 탑은 떠나지 않았다. 네모난 기단부에 새겨진 조각 중 눈길을 붙잡는 게 하나 있다. 불교의 팔부신중 중 하나로 음악을 맡은 천신인 건달바(乾達婆)이다.
건달바는 칼을 들고 앞장서 싸우는 신이 아니라 음악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지키는 존재이다. 밥 대신 향기를 먹고 산다고 전해지기에 식향(食香), 향신(香神)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향기를 먹고 음악을 연주하는 신이라는 대목에서 마음이 머문다.
건달바를 바라보고 있으니 한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는 울산과 경주, 포항에서 인문학을 강의하시면서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문화의 언저리에서 건달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와의 인연은 경주 박물관 대학 때부터다. 그 시절은 내 인생에 거대한 지적 충격과 신비로운 탐험의 세상이었다. 토요일이면 강의실에 앉아 깊이 있는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배웠고, 일요일이면 현장으로 다니면서 눈과 귀로 역사를 체험했다.
조금씩 지식이 쌓여갈수록 묘한 자만심이 머리를 들었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으스대며, 얕은 지식 몇 조각을 밑거름 삼아 수학여행 온 어린 학생들에게 아는 체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땐 그것조차도 순수한 열정이라 생각했다. 그런 마음 뒤에는 ‘문화 건달’로 살고 계시는 스승이 계셨다.
그는 스스로를 세상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의 깊은 매력을 유랑하는 건달이라 칭하며 권위적이고 지루한 학자가 아닌 풍류를 아는 멋지고 매력적인 분이었다. 돈에도 연연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울산, 경주, 포항 인문학 단체로부터 강의료를 받지 않으신다. 그러다 보니 매년 수강자가 늘어나 대기자가 생길 정도이다. 나 역시 그분의 자유롭고 깊은 세계에 매료되어 20여 년간 기꺼이 그 ‘건달무리’의 일원이 되었다. 그분의 삶을 닮고 싶었기에 언저리에 서성이며 살았다.
문화건달의 삶 또한 만만하지는 않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문화 유적 답사를 다녀 보면 알 수 있다. 일반인이 보았을 땐 돌덩어리로만 보이는 석탑을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백제, 고구려, 고려 탑의 양식이 다르다. 그 다른 점을 찾아내는 재미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 처음에는 돌로만 보이는 문화재를 두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언제 저 자리에 낄 수 있을까’ 부럽고 중도에 포기할까 불안했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지나고 반을 넘기는 시간 동안 그 언저리에서 살아보니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처럼 해보라 권하고 싶다. 인문학을 통해 느꼈던 가슴 뛰는 설렘과 기쁨은 첫사랑을 만났을 때처럼 즐겁고 행복하였다. 언제라도 훌쩍 떠나 옛것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돌로 조각된 무던한 석탑도 말을 걸어올 것이다. 문화 답사는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시간이 쌓인 한옥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내가 아닌 남에게 배려 해주는 법과 베푸는 보시 공덕을 알게 해준다.
“알면 곧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며, 볼 줄 알면 좀 더 일찍 보았을 것을” 이라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결이 고스란히 쌓여야 비로소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환갑과 진갑이라는 인생의 큰 마디를 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던 발걸음을 줄이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넉넉한 시선이 어느 때부터 생겨났다. 산골 사찰의 고즈넉한 불상과 석탑은 세월을 견뎌냈고, 수백 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 푸른 물결 위에서 나누는 대화는 지나온 삶의 순간, 기쁨과 슬픔, 아쉬움마저도 따뜻하게 안아주는 화해와 자비의 시간이었음을 느낀다. 비록 조금 늦은 나이에 문화에 눈을 뜬 아쉬움이 스칠지라도, 그 아쉬움마저도 지나온 나의 시간에 선물이라 생각한다.
내일은 문화 답사 가는 날이다. 함께 하는 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면서 돈 안 되고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쓰는 오지랖에 그래도 즐겁고 행복하니 어쩌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임을 깨닫는다. ‘문화 건달‘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바람결에 묻어오는 은은한 향내를 따라 유유자적한 길을 걸어보려 한다. 선생님을 닮은 작은 건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