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첨
《子平真诠》作者沈孝瞻是清康熙年间生人,乾隆四年进士。他对子平法深有心得,《子平真诠》当初只是他的一份心得手稿,原稿并没有书名。由干他是进士出身,是官场中的人物,他谈论命理的对象都是仕绅官宦。这一份手稿转借干仕绅官宦之中,辗转抄录十余年后,有一位在宛平府中任幕府的胡空甫见到此稿,认为非常好,因而在乾隆四十一年将文稿出版,命名为《子平真诠》,此后陆续出版很多种版本。民国二十五年,方重审与徐乐吾又作了一次章节上的调整,并在1936年出版,就是今日所见到的《子平真诠评注》。
沈孝瞻的原始手稿是三十九篇,后人加以分割,如“论偏官”与“偏官取运”本来是一篇,后人分为二篇。民国二十年出版的《子平真诠》是四十四篇,方重审与徐乐吾调整而成四十七篇,补上各家之差异处合为五十四篇。最明显的附添文笔是附《滴天髓》天干宜忌,以及附论四时五行。
파파고 번역이라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평진전》의 저자 심효첨은 청 강희 연간 출생으로 건륭 4년에 진사하였습니다.그는 자평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진사(進士) 출신으로 관청의 인물이며, 그의 명리를 논하는 대상은 모두 관사의 벼슬아치입니다. 자평진전《子平真诠》은 애당초 그가 깨달아 심득한 친필 원고일 뿐이었다. 원고에는 책 제목이 없었습니다. 이 원고를 관리들에게 빌려주면서 다시 빌리고 하여 10여 년 동안 수정 베껴 쓴 후, 완평부에서 막부를 지낸 후궁보가 이 원고를 보고 매우 좋다고 여겨 건륭 41년에 원고를 출판하여 자평진전 《子平真诠》 이라고 명명하고, 그 후 여러 판본이 계속 출판되었습니다. 중화민국 25년 서낙오는 또 한 차례 재심하여 장과 절을 조정을 하여 1936년에 출판했는데, 바로 오늘 본 《자평진전평주》입니다.
심효첨의 원본 원고는 39편으로 후손들이 분할하였는데, 예를 들어 '편관'과 '편관취운'은 원래 한 편이고 후손들은 두 편으로 나뉩니다. 민국 25년(民国二十年 1951년)에 출판된 '자평진전《子平真诠》'은 44편이었고, 이를 재심하여 서락오는 47편으로 조정하였고, 각 가정의 차이를 합치면 54편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가장 분명하게 첨부가 된 그의 문필은 《적천수》 천간의기(天宜忌)와 부론 사시오행(四時五行)입니다.
설명
자평진전은 심효첨의 필기책(필사본)인가?
여기 필사본이라 함은 경촌집을 그대로 복사한 것을 말한다.
즉 자평진전은 심효첨의 작품이 아니라 경촌집에서 모방하여 쓴 모작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 원고를 관리들에게 빌려주면서 다시 빌리고 하여 10여 년 동안 수정 베껴 쓴 후,]
이야기를 보면 심효첨은 초벌원고를 가지고
10년간 여기 저기 원고를 빌려 초안을 잡고 수정했다는 말이다
원래 책을 쓴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한다
여기 저기 초벌 원고를 빌려와 짜맞추기 하고 나의 견해를 넣기도 한다
10년간 수정 교정한 것이라면 원본 경촌집(耕寸集) 하고 달라도 많이 달라야 한다
그런데 정작 경촌부와 자평진전의 내용은 동일하다
심효첨이 뭐하러 10년간 동일한 자료를 복사했다는 말인가
만약 경촌집(耕寸集)이 자평진전의 초벌 원고라면
10년간 수정 교정할 필요가 있을까
경촌집(耕寸集) 와 자평진전의 원문은 동일하다
만약 심효첨이 경촌집(耕寸集)를 그대로 빼겼다면 10년간 교정할 이유가 있겠는가 말이다
10년간 교정을 보았다면 달라도 많이 달라야 하는데
실상 경촌집(耕寸集) 와 자평진전의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동일하게 베꼈다면 10년동안 베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똑같은 원본을 베껴 복사하는데 10년이란 세월이 소요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교정 수정을 하느라 10년을 걸렸다고 한다면
그럼 뭐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경촌집의 존재가 있었다면 서락오, 원수산, 위천리등이 이를 모를리가 없다
불과 십수년 전만해도 경촌집의 존재 조차 없던 중국에서
갑자기 명대 출간한 자평진전의 원본이라며 급 부상한 경촌집...
심효첨이 10년간을 수정, 교정을 보아 청대에 출간한 책의 내용이
어떻게 명대의 경촌집의 내용과 거의 동일할 수 있을까?
중국인이 만든 희대의 사기극인가 아니면 진실인가